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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람과 결혼할것인가.
게시물ID : wedlock_6822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요레요레요
추천 : 50
조회수 : 5144회
댓글수 : 39개
등록시간 : 2017/02/02 21:4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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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하얗고 가녀린 아내의 별명은 호빵이다.

겉은 하얗고 따스하지만
속에는 뜨겁고 까만 앙꼬의 기운이 흐른다.

이번 명절, 친척동생들과 맥주 한 잔을 하는데
애인있는 사람을 짝사랑한다며 한 번 들이대볼까하는 녀석이 있었다.

와이프는, 묵묵히 듣고있다가
그 얘기 이후로 땅콩, 오징어, 돈까스, 계란말이 등등...

먹던 모든 것을 한 번 씩 녀석의 손바닥 위에 뱉어놓았다.

취하셨냐고 묻는 녀석의 말에 와이프가 대답했다.

'그래, 술이 아무리 취하고 사람이 정신이 없어도 남이 씹던거는 못 삼키겠는거지, 다들 그렇게 사는거야.'

그리고는 멀쩡하게 일어나 어묵국을 끓이러 갔다.

다들 집에 갈 때, 아내는 몰래 그녀석에게만 꽤 두툼한 용돈을 주었다.
잠바벗고 코트 한 벌 사서 입고, 구두도 좋은 거 사고, 혼자서 뮤지컬도 보고 전시회도 보라고.
잘못된 인연으로 채우지말고 좋은 걸로 채우라고 카톡도 보냈다고 한다.


태어나 소개팅을 처음으로 하는, 모태솔로에 공부밖에 모르던 못생긴 나.
지나가던 사람들이 한 번 쯤 뒤돌아볼 정도로 예쁘고 참하게 생겼던 당신.
형편없는 코디의 내 복장이 부끄러워서 연신 죄송하다고 했을 때 아내가 했던 말이 기억난다.

'열심히 생각해서 입고 나와주셨다는 게 느껴져서 정말 고마웠어요, 명품 수트보다 더 멋있어보여요.'

멋있게 보이고 싶어서 깔창을 끼웠다가 한 짝을 잃어버렸을 때, 갑자기 아내는 발이 아프다며 지하상가로 들어가
만원짜리 단화를 사서 신어주었던 그 날이 생각났다.
지금까지도 그 날 내 깔창에 대한 얘기를 아내는 한 적이 없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이후로 집밥을 먹어본적이 없었다고 했을 때, 주말데이트는 항상 차에서 아내가 만든 도시락을 먹었었다.

디저트에 대해 잘 모른다고 말했더니, 도시락 먹고 나서는 늘 케이크나 단과자를 먹으러 갔고
아버지의 것까지 포장해주어서 헤어질때 아쉬운만큼 집에 돌아가서 아버지를 뵙고싶었다.


무섭지만, 단호하고 정확하지만
뜨겁고 깊은 사람이다.

딸이 밥 먹으면서 그랬었지. '엄마같은 사람이 되어서 아빠같은 사람이랑 결혼하고 싶다고.'
아, 난 정말 행복한 사람이구나. 복이 많구나 싶었다.

그래, 단점없는 사람없지. 이런 아내조차 나와 맞지 않는 부분이 있고 모자란 점들이 있지만
항상 행동으로 보여주고 먼저 생색내는 법이 없는 이 사람을 거의 모든 시간에 존경한다.

결혼은, 현재 수만가지 단점이 있더라도 그것들을 하나씩 줄여나갈것이라는 믿음을 주는 사람과 하면 된다고 느낀다.
그리고 그 긴 시간을 기쁨으로 기다려 줄 수 있는 자신이 될 수 있도록 꾸준히 노력해야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마음으로, 서랍장 먼지를 털고 하얗게 먼지가 쌓인 텔레비전을 닦고
침대매트에 끼어있는 실밥을 골라내고 반찬자국이 남은 식탁을 치우며
플라스틱 칸에 엉망진창으로 쳐박힌 우유팩을 골라내고 그러는 것이다.

냉장고에 있는 유제품이나 어묵, 소세지를 먹을 때는 늘 유통기한 먼저 확인하고
아내가 직접 따라주는 우유는 절대 마시지 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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