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지난 설에 부모님 뵙고 와서 시사게에 글 하나 파야지 생각만 하다가 미뤘었는데 필리버스터 이후로 분위기가 핫 해진 것 같아서 이제야 씁니다.
저희 친정엄마는 전라도 해남 분이십니다. 평생을 김대중 빨갱이를 외치는 아버지와 싸우며 대립하며 사신 분입니다. 지금도 김대중 전 대통령님을 존경하며 사시는 분이고 정치에 관심 많으십니다.
2012년 대선 때는 심지어 동네에 문재인 후보 선거유세 했을 때 맨 앞자리에 서 계신게 기자 카메라에 찍혀서 신문기사에 사진도 나오신 적도 있습니다(아주 작게 보였지만 우리 딸들은 알아봄ㅋ). 지금도 폰으로 다음 정치면 기사 보시면서 댓글도 달고 평생 열렬한 민주당 지지자 이십니다.
그런 엄마와 지난 설에 만났는데, 자연스럽게 화제는 총선으로 이어졌지요. 그런 우리 엄마가, 신랑과 제가 더민주당 잘 되야 하는데 라는 대화를 하고 있으니, "난 이번에 안철수당 찍을건데?" 이러시는 겁니다!!!!!!!!
신랑과 저는 엄청난 멘붕에 휩싸였다가 정신을 차리고 엄마한테 왜 그렇게 생각하시냐고 여쭤봤습니다.
엄마의 대답은 "그냥 새인물이잖아~ 새 정치 할거 같아서~ 민주당 지들끼리 밥그릇 싸움하는것도 지겹고.. 그리고 난 문재인이 싫어~"
네 정확히 저 워딩이었습니다. 제가 그 뒤로 엄마를 설득시키기 위해 얼마나 폭풍 논쟁을 했는지는 쓰지 않겠습니다. 다만 저는 몇 년 전, 문재인 후보 선거유세까지 쫓아다녔던 엄마가 왜 갑자기 그 분을 싫어하게 됐는지 너무 궁금했습니다.
엄마와 대화해보니, 원인은 종편이었습니다. 평생을 민주당 지지자로 사신 엄마가 종편 방송에 세뇌된 겁니다. 거기서 하루종일 문재인의원 까고 있잖아요? 말도 안되는 개 헛소리들 찍찍 해 가며 그 분을 나쁜 사람 만들려고 혈안이 되어 있지 않습니까? 그거 듣고 세뇌되신 겁니다ㅠㅠ
자, 그럼 우리 엄마가 왜 하루종일 종편을 틀어놓고 있는가, 왜 나는 엄마집 tv의 종편 채널을 진작 지우지 않았던가, 라는 의문이 생깁니다. 엄마가 못지우게 합니다. 이유는요, 그.. 어른들 좋아하는 건강 관련 프로그램 있죠? 비타민 같은거.. 애초에 타겟이 젊은 층인 JTBC와는 달리 기타 종편에선 어른들을 겨냥한 건강관련 프로그램들이 많습니다. 우리 젊은 사람들은 종편 그거 시청률도 거지같이 나오는거 누가 본다고.. 라고 생각하지만, 아니요. 의외로 어른들은 좋아합니다. 동치미인가 뭔가 이름도 모르겠는 건강관련 프로그램 보느라 종편에 채널 고정인 집, 생각보다 적지 않습니다. 그리고 틀어놓고 보든 안보든 종편 시사프로그램에서 더민주 대차게 까는거 들으면서 어느새 세뇌당하고 있더란 말입니다. 심지어 우리 엄마같은 사람이요.
저는 정말 놀랐습니다. 다른사람도 아니고 우리 엄마가? 더 웃긴 사실 하나 말씀드릴까요?
저희 시어머님같은 경우는 전라도 분이시지만 정치에 아예 관심이 없으십니다. 다만 평생 한나라당을 찍은적은 없으시죠. 설날에 내려가니 여지없이 종편이 틀어져 있더군요. 마찬가지로 건강 식품 관련 프로그램을 놓치지 않고 보시려고 고정해 두신답니다. 그리고 비슷한 말씀을 하십니다. "나는 문재인 싫어~ 안철수가 참신해 보여서 이번엔 안철수 찍을거야"라고요.. 제가 시어머님과 언쟁을 할 수는 없으니 신랑이 두시간에 걸쳐 엄마와 논쟁 후 간신히 마음을 되돌려 왔습니다.
여러분, 세뇌가 이렇게 무섭습니다. 그리고 종편, 이 쓰레기같은 새끼들은 생각보다 치밀합니다. 지들이 어차피 젊은 층엔 먹히지 않는다는 걸 알고는 우리 부모님들이 좋아할 만한 건강 관련 프로그램을 미끼로 걸어두고 하루 종일 문재인, 더민주 까대기 + 국민의당 찬양, 박그네 찬양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좀 더 냉철해 질 필요성이 있습니다. 이런 식으로 세뇌된 분 많을겁니다.
암튼 이 원흉이 된 종편채널을 신랑도 저도 각자 엄마들의 강력한 반발때문에 지우지는 못했습니다. 그 대신, 좋아하는 프로그램 끝나면 즉시 채널 돌리는 것을 약속받는걸로 합의했습니다. 안타깝지만..ㅠㅠ
짧게 쓰려고 했는데 길어져서 죄송합니다. 우리는 인터넷 여론과 현실세계의 간극을 느끼고 대비해야 합니다. 인터넷 쓸 줄 모르시는 많은 중도층 어른들은, 동네에 안철수와 악수하는 사진이 걸린 후보를 바라보며 흐뭇 하게 미소짓고 계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