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할아버지는 독립운동가였다 1930년 일제에 반대하는 격문을 쓰고 만세운동을 벌여 투옥됐다 고생은 아버지 대까지 이어졌다
“친일파가 독립운동가 좌익으로 몰아 죽인 거 역사에 기록해야죠” “그런 데 함부로 나서지 말아라 세상이 그리 만만한 게 아니다”
나 아버지 <조선일보> 좀 제발 그만 보세요.
아버지 내가 보고 싶어서 보니. 보수파들이 뭐라고 하는지 알아야 할 거 아니냐.
새벽 첫 대면부터 충돌 직전인 아버지와 아들의 대화는 꼭 술을 먹어야 원활하게 이어진다. 이것은 어쩔 수 없는 우리 부자의 숙명이다. 이 대화는 지난달 말께 이루어졌다.
아버지 담근 술 있다. 술 너무 많이 먹고 다니지 마. 집에서 너 걱정 안 하게 해줘야지.
나 좋은 세상 오면 술도 끊고 담배도 끊고 뭐 그래야죠.
아버지 할아버지 제사에 몇 시에 올래, 너 오는 시간에 맞춰 지내야지.
나 최대한 일찍 올게요. 건강은 어떠세요, 요즘 독감 유행하는데.
아버지 노인은 무료로 독감 예방주사 놔 준다. 매년 맞고 있고 나는 괜찮다, 니 엄마가 걱정이지.
나 저는 결막염에 걸려 고생하다가 약을 잘못 먹어서 아나필락시스 쇼크가 와 죽다 살았어요. 발진이 나고 온몸이 타들어가는 거 같고 숨도 못 쉬겠고 사는 것도 힘들어 죽겠는데 아주 가지가지 해요.
아버지 몸조심해라, 건강 챙기고, 밥 꼭 챙겨 먹고. 우리는 너가 해준 집에서 아무 불편함 없이 잘 있다. 우리 걱정은 조금도 하지 마라. 너 때문에 걱정이 많아.
나 제가 올해 신년운세를 봤는데 좋다고 하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어머니는 2009년에 뇌동맥 파열로 쓰러져 12시간이 넘는 수술을 받고 중환자실에서 오래 계시다가 기적적으로 소생했다. 그 뒤로는 건강이 많이 안 좋으시다. 당시 개두술이라 어머니의 병원비 90%가 국가에서 지원된 것을 보면서 아버진 이 정책을 만든 참여정부에 대해 다시 생각했다고 한다. 아들이라고 하나 있는 게 지 맘대로 살며 속만 썩이고, 뭐 하나 해드린 것도 없어서 그동안 모은 돈으로 지난해 부모님께 작은 거처를 마련해 드렸다. 좋아하시던 부모님 얼굴을 잊을 수 없다. 술값으로 펑펑 쓰고, 억울한 분들 편에서 끝장을 봐야 한다고 외치며 없는 돈 쪼개 후원금까지 내던 나는 정작 가족은 잘 챙기지 못했다. 그래서 많이는 못 드리지만 용돈과 생활비도 조금씩 보내드린다. 술은 해 뜰 무렵까지 계속되었고 우리의 대화는 국정 교과서와 박정희 그리고 친일인명사전과 해방 후 이야기까지를 넘나들었다.
나 아버지 예전에 건국절 만든다고 할 때 기억나세요? 독립유공자 서훈 반납하겠다고 하셨잖아요.
아버지 그랬지, 그거 뉴라이트라는 사람들이 그렇게 적극적으로 외쳤었지. 있을 수 없는 일이야.
나 아니 당연한 말씀을 하시면서 친일인명사전은 왜 그렇게 싫어하세요?
아버지 친일인명사전에는 친일 졸개들이 없어. 당시 사람들을 괴롭힌 건 고위 관리들이 아니야. 면서기, 순사, 이런 것들이 가장 악질이었어. 이들을 빼고서 만든 친일인명사전은 가짜야.
나 이놈들이 이제는 교과서까지 자기들 입맛대로 바꾸려고 해요.
아버지 그런 데 나서지 말아라. 세상이 그리 만만한 게 아니다.
나 독립운동가들과 반민특위 조사관들이 붉은 덧칠을 당해 피신하고, 심지어 전란 때는 괴한들에게 끌려가 총살당했던 역사를 있는 그대로 기술해야죠. 국정 교과서가 이런 내용을 담을 리 없잖아요. 친일파 후손이 득세하는 세상, 아버진 화도 안 나세요?
아버지 전란 전에는 법이 없었어. 그냥 서북청년단이나 일본 놈 앞잡이들이 저거 빨갱이다 하면 빨갱인 거야. 전란 때는 학교에 사람들을 모아놓고 기름을 부어 태워죽이기도 했다. 나는 그걸 다 보고 자랐어.
나 해방 이후 좌익활동했던 박상희가 살아 있었다면, 박정희는 통치기간에 자기 형도 좌익으로 몰아 죽였을까요?
아버지 어디 가서 말조심해라, 그저 행동 조심하고. 누차 이야기하지만 세상이 너가 생각하는 거만큼 그렇지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