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적>
1996년 18승 3패 24세이브로 다승과 구원부문을 동시에 석권하면서 정규리그 최우수선수상을 수상(다승왕 구원상 함께 수상 : 이제까지 송진우, 신윤호, 구대성만 유일함)
1999년 한화이글스 한국시리즈 우승 1승 1패 3세이브 최우수 선수상
2000년 오릭스 블루웨이브 시절 : 2년차부터는 방어율 2위를 찍기도 했지만, 그 당시 오릭스가 팀이 하위권 성적을 냈을때라 ㄷㄷㄷ . 일본에서는 통산 성적 24승 34패 10세이브 평균자책 3.86
일본에서 활동을 마지막으로 메이저리그 뉴욕메츠로 33경기 나와 중간요원으로 활동해서 평균자책점 3.91
랜디 존스에게 2루타와 득점을 성공하고 그때 무리하게 홈승부 하다가 부상 ㅠㅠㅠ
다시 대한민국 복귀 2006년 시즌 마무리 투수로 활동하면서 평균 자책 1.82, 3승 4패 37세이브 . 그당시 그의 나이는 37.
<일본킬러 구대성>
2000년 시드니 올림픽 때 일본과 한국의 동메달전. 상대 투수는 괴물 투수 마쓰자카
구대성은 9회까지 혼신의 160구를 던져 우리에게 동메달을 안겨주었다.
그 당시 구대성은 4일전에 일본과의 예선전에서 6이닝을 던졌었다.
<구대성 일화>
대전중 졸업반이었던 즉, 대전고 입학 한 달 전 당시 최강팀 신일고와 연습경기
1회, 갑자기 세 타자에게 연속 볼넷을 내주고 무사 주자 만루를 만들었다.
그 후 후속 3타자 연속 삼진. 경기 후 그는 전국대회에 이런 일이 있을 수도 있어서 시험해본거라고 말함 .
IMF 시절 모기업 한화가 연봉 소폭 인상을 제시하자 , 구대성은 스스로 연봉 삭감
선수협 창단시 일본에 가기전 구대성은 송진우에게 후배들을 위해 도울 수 없느냐 하자 1000만원을 보탬. 선수협 창단시 돈을 기부한 사람은 구대성, 송진우, 정민철, 양준혁, 이상훈 . 선수협 파동 때 가담한 선수들은 트레이드 되었지만 한화는 그들을 트레이드 하지 않았다.
일본에서 선수시절, 구대성은 고 임수혁에게 2000만원 송금.
WBC시절, 이치로 망언에 화가 난 구대성은 이치로를 맞춘 사람은 10만원 주겠다. 그 다음날 내가 책임지겠다. 라고 하고 배영수가 이치로를 맞추자 그 다음 나온 구대성은 일본타자를 잘 막아냄.
구대성의 인터뷰 : "위기 상황 때 무슨 생각을 하십니까?" 라는 질문에 "저녁은 무엇을 먹을까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좋아하는 연예인은 누구입니까? "라는 질문에 "내가 연예인이다" 라고 답한다.
<대성불패 구대성>
그의 투구폼. 특이한 투구폼 때문에 잔부상이 많았지만 나는 그의 투구폼을 좋아했다.
구대성 은퇴.. 이 날 경기장에 갔는데 아슬아슬하게 마지막 공을 던지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삼성과의 경기였는데 그날 아마 졌던걸로 ;;;;;;
그의 등번호 15번은 영구결번이 되지 못했다.
한화는 영구결변을 하려했으나 자신이 거절했다고..
그는 내 번호를 단 후배가 잘 한다면 내가 더 유명해질것이다라고 말했다.
현재 한화의 15번은 유창식이다.............................
내 기억 속의 영웅 대성불패 구대성.
어렸을 적 한화 레전드는 모두 동네 아저씨 같았다.
야구장 가서 구대성 구대성 하고 외쳤다고
"왜 반말해. 아저씨라고 불러"라고 하고 싸인해 줬던 기억이 난다.
많은 한화의 레전드가 떠나고 나는 아직도 한화팬이고
지금 한화는 승률 3할에서 허덕이고 있지만 난 계속 이들과 함께 했던 추억 때문에 영원히 한화팬일것 같다.
혹시 모른다. 제 2의 구대성이 나오고 제 2의 정민철이 나오고 제2의 장종훈이 나오고 제2의 송진우가 나올지도.
(이미 제2의 정민철은 류현진이라고 생각한다... 정민철한테 미안했던것을 류현진한테 느끼고 있으니깐..........)
하지만 하나의 바램이 있다면
다시 한번 그를 마운드에서 보고 싶다.
항상 마운드에 서면 벌벌 떠는 한화 투수들때문에 더욱 그립다.
나는 보살이니라.
그래도 매번 지는 레파토리가 조금씩 달라서 다행이야......학습능력은 있는거라고 생각할게......
괜찮아 우린 지금 성장중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