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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때 목숨을 바쳐 싸운 사대부와 장수들
게시물ID : history_6791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sungsik
추천 : 12
조회수 : 1844회
댓글수 : 10개
등록시간 : 2012/12/16 01:58:04



김성일 - 일본 통신사로 파견 돼 히데요시를 원숭이에 비유하며 전쟁 위협이 없다 말하며

조선이 전쟁준비를 하지 않게 한 인물이라 알려졌지만,

임진왜란 3대 전쟁 중 하나인 1차 진주성 전투를 승리로 이끌고 그 직후에 병사함.


송상현 - 동래부사. 임진란이 발발하고 부산이 함락되자 도망치려는 이각을 설득하려 했으나 

결국 이각은 도망감. 송상현은 도망치지 않고 성을지킴

원래 송상현과 과거에 친분이 있었던 히라요시가 전투전 송상현에게 피하여 숨도록 했으나 따르지 않음.

그래서 전투 중 생포하려고 하자 발로 걷어차면서 항거하다가 결국 사망.


신립 - 탄금대 전투의 패배로 유명하지만 사실 임진왜란 전만해도 여진족에게 공포의 대상 그 자체였음.

알다시피 탄금대에서 대패하고 강가에서 끝까지 항거하다 강에 빠져 자살함.



정담 - 적이 이치로 침범할 때 적장을 활로 쏘아죽이는 활약을 함.

그러나 같은 전투에서 다시 적에게 포위당하고 부하가 후퇴하라고 하자

'차라리 적병 한 놈을 더 죽이고 죽을지언정 내 몸을 위해 도망가는 적의 기세를 올려줄 순 없다.'

하며 고분분투하다 전사함. 이 때 종사관 이봉도 같이 전사.

이들의 희생 이후 권율과 황진, 이복남등이 분전하여 결국 승리를 거둠. 



유종개 - 선조 때 과거에 급제한 문신.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향병을 수백 모아 목숨을 걸고 그 지방을 지킴.

그러나 안타깝게도 왜적과의 전투에서 전사하자 이 일을 계기로 목숨을 보전하려 했던 그 지역 사대부들이 다 일어남.



홍언수 - 수원판관을 지냈던 의병장. 아들 홍계남과 함께 활약했으나

홍계남이 잠깐 진을 비운 사이에 왜적과 전투를 벌이다가 전사함.

이 때 홍계남이 왜적의 본진으로 달려가 아버지의 시신을 가지고 돌아옴.



조헌 - 문신이자 유학자. 도끼 들고 상소 올리던 인물로 유명함.

또한 최초의 승병장 영규와 함께 청주성을 수복한 의병장.

금산성 전투에서 전투가 불리해지자 주위에서 빨리 빠져나가라 청하자

'대장부가 죽으면 그만이지 구차스럽게 살 수는 없다.' 하며 끝까지 항쟁하다가 전사함.

그의 딸은 성을 빠져나와 도망치다가 남편이 적에게 잡히자

여종에게 '아버지가 돌아가셨음에도 같이 죽지 않은 건 남편이 있었기 때문인데,

남편이 사로잡혔으니 어찌 홀로 살겠는가.' 라고 말하곤 자결함.


같은 전투에서 조종도도 '나는 녹을 먹는 사람인데 도망치는 무리와 초야에서 죽을 순 없다.

죽을 때는 분명하게 죽어야한다.' 하고는 성안에서 전사함.



변응정 - 해남 현감. 의병장 조헌과 함께 금산을 같이 공격할 걸 약속했는데 기일에 도착하지 못해

조헌히 패배하여 전사했다는 소식을 듣자 '어찌 의병장과 약속하고는 위배하여 함께 죽지 못했단 말인가.'

하며 단독으로 전투하여 전사함. 


고경명 - 명종 때 장원급제한 문신. 나이많은 문관이었으나 임진란이 발발하자 유팽로와 함께 의병군을 모집함.

유팽로,도 같이 사망하고 아들 고인후는 아버지의 목이 적진에 걸린 걸 알곤 종의 만류를 꾸짖고 적진으로 뛰어들어가 사망.

그의 다른 아들 고종후는 고경명의 남은 병사를 추스려 의병활동을 하고

진주성 2차 전투 때 항거하다가 사망.


김제갑 - 왜적이 원주 영원산성을 함락 시켰을 때 끝까지 성을 지키려고 하다가 전사함.


장사진 - 군위현의 교생.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의병장으로 활약함. 

왜란 초기에 상당히 크게 활약해 왜적조차 장장군이라 부를 정도였는데

적의 복병에 당해 한쪽 팔이 짤린 상태에서도 분투하다 전사함.


곽준 - 우척현 전투에서 전라도로 진군하려 한 왜군을 패퇴시킬 때 활약한 의병장. 

정유재란 때 가토 기요마사가 쳐들어왔을 때 형세가 위급하자 

웃으면서 '이곳이 내가 죽을 곳이다.' 하며 전사함.

이 때 그의 아들 곽이상곽이후가 아버지의 시체를 부여안고 적을 꾸짖으면서

같이 죽임을 당함. 


1차 진주성 전투 - 왜군 3만을 관군과 의병장이 합심해 3천의 병사로 막은 대승. 그러나 이 때 유숭인, 정득열, 주대청 등이 전사함. 


2차 진주성 전투 - 1차 때 굴욕적인 패배를 당한 일본군이 그 근처의 거의 모든 일본군을 동원해 진주성을 함락시킴.

이 때 조정에선 방어가 불가능하다 판단하고 성을 버리라 명령하지만, 

당시 진주성에 남은 장수들은 성을 버리지 않고 항쟁을 결의함.

상당히 분전하고 초반만해도 적을 전부다 격퇴하며 엄청난 사상자를 냈으나

권율과 이치전투에서 승리를 이끌었었던 황진이 적의 탄환을 이마에 맞고 사망하자 사기가 떨어졌고,

그 후임이었던 장윤도 탄환을 맞고 사망.

결국 숫적인 불리함으로 밤낮으로 쉬지 않고 공격하는 적을 끝까지 막을 수 없어 함락당함.


이 때 서예원만 자신의 목숨을 보전하려 도망치다 사망하고, 종인은 항전하다 탄환을 맞고 사망.

김천일과 그의 아들 김상건, 최경회, 고종후, 양산숙 등이 성이 함락당하기 직전 강에 몸을 던져 죽음.

이종인은 끝까지 싸우다가 양팔로 두 명의 적을 끼고 같이 몸을 던져 사망.

문홍헌, 오차, 고경형도 모두 따라 죽음.

김준민은 말을 타고 적을 하나라도 더 죽이려고 하다가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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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의 막연한 이미지가 있습니다.

사대부와 장수, 관군들은 다 도망치고 백성들은 목숨을 걸고 싸웠다.

그런데 우리가 아는 의병장은 몇몇 승려를 제외하면 모두 양반집 사대부들이고

패한전투든 승리한 전투든 거의 모든 전투에서 조선의 장수가 참전했고 사망합니다.

그리고 사실 도망친 관군도 백성이고 목숨을 걸고 싸운 관군도 백성입니다.


물론, 많은 사대부들이 도망친 건 사실이고 원균같은 장수들은 도망치며 목숨을 보전하려하다 전사하지만,

이런 인물들 때문에 위와같이 목숨바쳐 나라를 지키려 했던 분들

그리고 제 지식이 부족해 위에 언급하지 못한 분들을

또 기록에 이름이 남지 않아 우리가 알 수 없는 분들을 한 묶음으로 묶어 욕하면

오히려 그들에 대한 아주 크나큰 실례라고 봅니다.


전 오히려 이런 분들을 보면,

서양에서 그렇게 강조하는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한 게 조선의 선비들이었다.

라고 주장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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