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둔갑의 천재 하얀여우가 납신다!
~몸빛이 하얀 게 죄가 되나?~
하얀 빛깔의 동물은 예로부터 좋은 인상을 받아왔다. 하얀 호랑이 백호나 하얀 뱀 백사, 하얀 꿩인 백치, 하얀 노루인 백장 등, 하얀 동물은 상서롭고 귀한 대접을 받아왔다. 그러나 그런 대접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왕따가 있으니, 하얀여우, 즉 백여우다.12
물론, 백여우 역시 털빛이 아름답고 그 모습이 매력적이라 국가간 예물이나 진상품으로 가끔 사용되기는 했으나, 살아있는 하얀여우를 보는 일이 유쾌한 일만은 아니라는 것이 정설이다. 오죽하면 역사서에까지 망조의 복선으로 기록이 될까? 다음은 삼국유사 기이 제1편의 기록을 간추린 것으로, 백제가 멸망하기 얼마 전에 있었던 일이다.
「현경 4년 기미년(659) 2월 여러 마리의 여우가 의자왕의 궁궐로 들어왔는데, 흰여우 한마리가 좌평의 책상 위에 앉아 있었다.」
~그때 그때 배역이 달라져요~
백여우는 구전되는 정보와 기록으로 남은 정보의 차이가 큰 편인데, 기본적으로 백여우는 오래 살면서 수행과 도술을 익힘으로 여러가지 술법을 부릴 수 있다. 사람처럼 두발로 걷고 사람처럼 말할 수 있으며 둔갑에도 능한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사람보다 못한 존재라고 생각하고 사람을 피한다고 한다. 백여우는 백년을 살아서 백여우라고도 하고 털빛이 하얗기 때문에 백여우라고도 하는데, 후자의 가설이 더 타당한 것으로 보이며, 한문과 한글을 섞어 백여우라고 부름은 비슷한 이름의 백호와의 혼동을 피하기 위함이라 본다.
기록으로 드러난 백여우는 자신이 사람보다 못한 것에 대한 열등감을 그다지 현명하지 않은 방법으로 해소한다. 국가가 혼란해지고 사회의 꼴이 말 같지 않아 비웃어 줄만하다고 생각될 때 사람 앞에 나타나 사람의 행동을 흉내내고 따라하면서 놀리는 것이다.3 이런 식으로 행동하다보니 평판이 좋을래야 좋아질 수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백여우를 마귀에 준하는 요괴로 본다.
구전으로 내려오는 백여우는 다른 방법을 사용한다. 스스로 사람이 되는 것이다. 사람이 되기 위해선 특정조건을 달성해야하는데 목표 달성을 위해 백여우는 절세미녀로 둔갑해 인간남자와 결혼하는 경우가 많으며, 달성목표는 사람의 간을 먹는다던지, 들키지 않고 인간남자와 결혼해 살기 등 여러가지 바리에이션이 존재한다. 헌데 어째선지 달성목표가 전부 전부 10의 제곱수다. 그리고 꼭 마지막 하나를 목전에서 놓쳐 실패하고 만다. 결과적으로 최종 달성량는 99나 999. 지독한 아홉수의 저주에 걸린 것 같다. 경우에 따라선 인간남자와 순수한 사랑에 빠져 인간되기를 포기하고 자신의 힘의 상징인 꼬리까지 바치는 여우가 등장하기도 한다.
~둔갑의 천재가 된 진짜 이유~
전에도 언급했듯이 여우는 둔갑의 천재로 알려져있다. 대부분의 이야기에서 여우는 술법과 재주가 능하고 둔갑을 하며 사람을 홀리는데, 그런 이미지를 만드는 데에는 여우 자체의 특성이 한 몫을 했다고 볼 수 있다. 여우는 짐승들 중에서도 머리가 비상하고 속임수를 잘 쓴다. 사냥꾼과 사냥개에게 쫓길 때에도 기비를 발휘해 시내를 건너 냄새를 지우거나 나무 위로 올라가는 등 자신의 흔적을 지워 마치 갑자기 사라진 듯 보인다. 그래서 술법이나 둔갑을 한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또 여우는 (몇 사람은 부정할지도 모르지만) 그 모습이 매우 날렵하고 매력적으로 생겼다. 또한 여성적인 외향을 가졌으며 특히 백여우의 경우 그 아름다움이 배가 된다. 따라서 여우가 여자로 둔갑해 사람을 홀릴지도 모른다는 상상을 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여우는 자신의 외모 덕에 사람을 홀리는 그다지 좋지 않은 배역을 떠맡은 것이다.
출처 : 은여우 공작소
[출처] [한국 요괴 대사전] 018. 백여우|작성자 은여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