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름쯤 지나니까 동동 뜨기 시작한 밥알들을 보고서 군침 흘리며 한잔씩 떠마시다가 본격적으로 술을 거르는 날이 다가왔습니다.
위에 뜬 밥알들까지 거르기엔 동동주를 만든 의미가 없으니까, 학식에서 빌린 고무대야에 미리 떠놓습니다.
여기는 과방입니다. 개판이죠. 그러나 모든 양조 기구는 끓는 물과, 약국에서 파는 소독용 알콜로 지지고서 시작했기 때문에 매우 위생적입니다.
사진에 보이는 분은 저와 함께 워크숍 같은 조가 된 죄로 노동력을 착취당하고 있는 선배입니다.
위에 뜬 밥알들과 함께 청주를 적절히 걷어낸 뒤, 집에서 준비해온 천주머니를 항아리에 묶어 술을 거릅니다.
그런데 주머니가 젖자 안걸러지기 시작하더라구요. 그래서 집에서 미리 준비해온 체를 끓는 물에 소독해서 술을 거릅니다.
그런데 체 망이 너무 섬세해서, 잘 안걸러지더라구요. 보다시피요.
어쩔 수가 있나요. 이렇게 손으로 짜내야죠.
저는 체 위에서 술지게미를 짜내고, 노동력을 착취당해준 형은 술을 병에 담습니다. 영광스러운 첫 병입입니다.
이게 술지게미라는 거예요. 술을 거르고 나면 남는거죠. 두부로 치면 비지 같은 겁니다. 알콜 성분이 그대로 남아있기 때문에 이것만 먹어도 취해요.
옛날 어른들 말씀 들어보면, 어릴 때 술지게미 맛있다고 집어먹고서 꽐라된 경험을 추억처럼 말씀하시곤 하시죠. 그래서 저는 술 거르는 중에 이거 주섬주섬 주워먹다가 꽐라가 됩니다.
이때는 이미 시간이 꽤 늦었을 때입니다. 그래서 24시간 하는 근처 식당에 후배를 원정 보내서 체바구니 하나 빌려오라 했죠. 그게 왔습니다.
덕분에 수월하게 술을 거를 수 있게 됐어요.
옹기가 꽤 무거워요ㅎㅎ처음 술 거르기 시작할 때가 밤 아홉시 무렵이었는데, 생각보다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구요. 그래서 이 날도 집에 못들어갔습니다^^
이때가 워크숍 막바지일 때라, 언론매체실에선 신방과 사람들 죄다 밤 새고 있어서 술 거르다가 한번씩 놀러가보고 그랬습죠.
물론 잔뜩 꽐라돼서 말입니다.
순찰 도는 경비아저씨들ㅎㅎ과방 문 열고 "뭐여?" 하고 식겁하시길래 얼른 술 한잔씩 드리고 그랬죠. 다들 연세도 있으시고 해서 추억에 잠기시고들 하더라구요. 누룩의 힘이 세서인가, 찹쌀로 빚었는데도 도수가 엄청 높아서 조금 마셔도 술이 확 올라오곤 했습니다.
다음날.
잘 빚은 우리 술은 숙취가 없습니다. 간밤 병입하고 남은 술을 거진 혼자 다 마시다시피 했지만, 속이고 머리고 깨끗합니다.
술빚느라 과방이 전쟁통이 됐습니다만 진흙탕 속에 피어나는 연꽃이 진흙엔 더럽혀지지 않듯 술은 철저한 위생 관리 속에 빚어져 고고한 자태를 뽐냅니다. 이를 위해 집에서 커피 포트를 가져왔고, 약국에서 산 소독용 알콜은 한통을 다 썼습니다.
소매가로 사면 유리병은 엄청 비싸더라구요. 다행히 병은 강원도 홍천에서 술 빚고 있는 정회철 대표의 전통주조 예술' 에서 협찬받았습니다.
쓰고 보니까 술 거르는 과정만으로 얘기가 길어졌네요.
학교 느티나무에서 지냈던 제사나, 감홍로 식품명인님이 학교 와서 술 빚는 것 도와주시거나 했던 영상 파일들이 지금 제게 없어서요. 그것들을 받는 대로 합쳐서 남은 얘기는 뒤이어 올리거나 할게요.
아, 그리고 양조에 있어 궁금하거나, 맛보고 싶다거나 하시는 분은 여기로 연락주셔도 좋아요. 메일 주소를 남길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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