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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우둔한 효도. 손가락을 잘라 부모를 살리다.
게시물ID : history_6715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푸쉬킨
추천 : 6
조회수 : 1765회
댓글수 : 4개
등록시간 : 2012/12/09 23:29:10

당나라에 이어 중국에서 송나라가 건국했을 때

 

알려진바 송나라는 문치주의 사대부를 위한 나라였습니다.

 

기존 과거제도를 처음 시행한 수,당 이후

 

5대 10국을 거치며 과거의 문벌을 바탕으로 한 귀족을 제치고

 

유학을 공부한 사대부들이 조정의 권력을 잡고

 

유학을 통해 국정이 운영되는 국가를 만든 것이죠.

 

이전 덕치주의 글에서도 언급을 했지만

 

이런 유학을 중시하는 국가에서 특히 강조되는 것이

 

효경입니다.

 

송나라때 이런 효에 대한 다양한 믿음이 유포되었습니다.

 

유명한 것이 단지효행, 할고효행, 3년 시묘살이 등이 그것이고

 

이는 국가적으로도 장려하여  

 

열녀문도 세워지고 효도를 행한 이는 공적비를 세워

 

국가적으로 칭송했습니다.

 

바로 효도가 충으로 연결되는 이념이기 때문인데

 

부모에게 효를 하듯 이런 가족관계의 수직적 사고를 기반으로

 

곧 사회의 군신관계라는 수직관계인 충으로 국가질서를 만드는 과정입니다.

 

유교의 사상을 정치이념으로 국가에서 설파한 경우죠

 

일찍히 이런 효경을 통한 국가이데올리기를 시함한

 

한나라에서 과거시험 이전에 아예 효렴이라 하여

 

효도를 잘 한이를 지방에서 천거하여 관리를 쓴 것과 같은 이치죠

 

지나친 국가의 선동운동은 효도에 대한 맹목적인 이야기를 만들어냈습니다.

 

이른바 단지효행, 할고효행이 그것으로

 

죽어가는 부모님을 앞에두고 자식이 약지를 깨물어 피를 먹이니

 

부모가 다시 살아났다

 

또는 중병에 시달리는 부모를 위해 자식이 허벅지 살을 베어내어

 

약으로 만들어 먹이니 부모님의 병이 나았더라 와 같은

 

효행의 미담이 양산되었고

 

익히 유명한 신체발부 수지부모 머리카락 한올도 부모님이 주신거라는

 

극단적인 부모에 대한 복종사상으로 발전한게 바로 송나라 시대죠

 

이런 효의 미담은 곧 국가에 대한 충성으로 이어지는 것이 당연합니다

 

역시 송나라 시기 창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삼국지 유비의 설화가 그것이죠. 유비가 도망치던 중 농가에 들렸는데  

 

먹을 것이 없어 아내를 죽여 허벅지 살로 유비를 대접했다는 전설이 그것입니다.

 

이는 무슨 중국의 인육 풍습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자식이 부모를 섬기는 효행의 대명사로 알려진 할고효행이

 

곧 부모만을 대상으로 한게 아닌 군왕에 대한 신하와 백성의 충성도

 

의미한다는 것을 연결시켜 알리는 고사인 것이죠.

 

 

송나라때 정립된 이런 효도에 대한 이상적이고 극단적인 미담이 만들어 진 이유는

 

간단하게 효경이란 유교의 경전을 일반 민중들이 공부해서 배우는게 불가능 했기 때문었습니다.

 

과거를 보는 사대부나 유교경전의 깊은 의미를 공부해서 아는 것이지

 

평범한 삶을 살아가는 민중들이 이를 알수가 없다면

 

가장 손 쉬운 방법은 이야기를 통해 효도가 무엇인지 미담으로 가르치는 것입니다.

 

때문에 유교에서 의도한바 없는 극단적인 방식의 효도가 마치 효도의 모범인양

 

왜곡되어 우둔한 충성, 우둔한 효행이 널리 확산 되었습니다.

 

 

조선왕조는 역시 이런 효경을 바탕으로 한 유교를 국시로 건국한 국가였습니다.

 

원나라때 정리가 된 효경대의를 받아들여 효경을 기준으로 삼았으나

 

역시 중국이 그러했듯 민중들이 효경을 알 이유도 알 수도 없는 노릇이죠

 

그래서 간행된 것이 그 유명한 삼강행실도 라는 책입니다.

 

100 여편의 효행에 대한 이야기로 이루어진 책은

 

당연히 민중들에게 효라는 것을 학습시키기 위함이고

 

그 목적은 이를 바탕으로 한 국왕에 대한 충성을 생활화 시키는 과정이죠

 

조선 세종 때 한글로 번역되어 널리 퍼진 삼강행실도는 효경을 뛰어 넘어

 

조선의 민중과 500년 조선이 생각하는 효 사상의 기준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아는 자식이 손가락을 깨물어 죽어가는 부모를 살렸다는 이야기가

 

바로 이 책에 수록 된 이야기입니다.

 

이것이 얼마나 파급력이 컸는가 하면

 

이후 죽어가는 사람에게 약지를 깨물어 피를 먹이면

 

죽은 사람도 깨어날 수 있다는 민간요법으로 널리 알려진 것은 물론이고

 

또한 이 단지효행의 고사는 효자를 지칭하는 사실상의 대명사가 되어

 

무릇 효자는 단지효행을 한 자를 지칭한다는 수준으로 거의 고정적인 대명사로

 

효자를 부르는 다른 지칭이 되었죠

 

지금도 전국 각지에 있는 효자에 대한 설화나 공덕비

 

각 가문의 족보에 있는 효자에 대한 기록은 공통적으로 모두

 

단지효행 고사를 인용하여 이런 효자였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는 민중 들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위에 족보를 언급하듯 사대부에서 더욱 모범으로 성행하였고

 

심지어  왕과 왕후까지 효자이자 충성을 증명하는 수단으로 인용하였죠

 

인종이 승하하기 직전 인성왕후가 단지를 하여 살리려 하자

 

신료들이 울며 간언하는 장면과 그 갸륵한 모습이 실록에 기록된 사례가 이런 예죠

 

 

죽어가는 사람에게 약지를 잘라 피를 먹이면 죽은 사람도 정신이 든다라는

 

이야긴 제가 학창시절 한문 교과서에도 나왔던 이야기고

 

살아가며 종종 어른들한테 들었던 고사입니다.

 

물론 의학적인 근거는 전혀 없는 이야기죠

 

듣자하니 피그말리온 효과와 플라시보 효과라고 하더군요

 

죽어가는 와중에 자식의 갸륵한 지극정성이 영향을 미쳐

 

심리적으로 이겨낸 사례가 아마 어느지역에 존재했을 것이고

 

이것이 미담으로 정치선전의 도구가 되며 유포된 것이겠죠.

 

물론 그 과정에서 가짜 효자들이 이를 이용한 사례나

 

그릇된 민간요법이 퍼지며 피해보았을 사람도 부지기수였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문둥병을 치료하는 방법으로 아이의 간을 빼먹는 다는 괴담도 있던

 

그때 시절에 약지가 죽어가는 이를 살린다는

 

우둔하고 극단적인 민간요법이 얼마나 많은 이를 해쳤을지 짐작 못할바는 아닌듯 하네요..

 

 

아레 유아살해에서 sungsik의 댓글을 보고 생각나 써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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