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도연맹 학살이 단순한 학살이 아닌 매우 정치적인 학살입니다.
이 학살에 희생당한 보도연맹원들 상당수가 일제때 농민운동,노동운동,야학등 활동해왔던 사람들이었던 지식인층 계층에 사람들이 상당히 많았습니다.
보도연맹 사건에 대해 오늘날 극우세력들에 의해 인식이 상당히 많이 왜곡되있는것 가운데 하나가 '이들이 인민군 점령때 부역행위를 했기에 다 죽였던것이다'라고 주장합니다. 그런데, 실제로는 그게 전혀 아니었죠.(이와 관련된 자료로는 사상검사-오늘날로 치면 공안검사-로 악명을 높았던 오제도씨나 정희택씨의 증언을 통해 반박이 가능합니다. (http://www.sisapress.com/news/articleView.html?idxno=2014)
이 학살이 전국적인 규모였으나, 그 가운데 학살의 피해가 가장 극심했던곳이 경상도였습니다.(특히 경남 일대에서 보도연맹원 학살 피해는 상상을 초월할 수준급.. 특히 거제도 지심도 앞바다 경우가 한국전쟁 시기 보도연맹원들 대량학살하고 수장시켰던곳이었죠.)
역사학자 한홍구 교수 표현을 빌리자면, 이 학살이 '한국의 민주주의 시작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