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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경제성장 박정희
게시물ID : sisa_450390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감자의깡
추천 : 1/2
조회수 : 582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13/11/06 18:28:02

못보신 분들을 위해...(글의 간략성을위해 음슴체양해)
 
 
2차대전 승리후 미국의 최대적은 소련이였는데 소련은 주변국가에게 군사와 경제적으로 지원을해 세력을 넓혀나갔음
 
공산주의 팽창을 막기위해 미국은 일본을 점령한후 즉시 개조(민주주의전파)에 들어갔음
 
이에 애치슨 국무장관은 유럽과 아시아의 부흥을 위해 서독과 일본을 세계의 공장으로 만들겠다고 선언하고 전폭적인 지원을 해줌
 
그러자 일본경제는 빠르게 복구됨 1950년 한국전쟁 발발후 한국에 물자를 보급함으로서 일본은 고속성장을 이뤄냄
 
그에반해 남한은 거지꼴..
 
남한에 이승만정권을 세워놨던 미국은 막대한 원조를 했지만 남한의 경제는 처참했음
 
이승만과 친일파 세력의 부정부패가 극에달했음 4.19 혁명이 일어나고 이승만은 미국망명을 함
 
이에반해 공산주의의 원조를 받은 북한은 3년만에 복구를 마치고 경제성장을 이룸
 
1960년기준 북한의 경제력은 50위 남한은 101위로 됐음
 
아이젠하워드 미국대통령은 가난한 한국인들이 북한을 부러워하다가 공산주의로 전향할까봐 위기를 느꼈음
 
1961년 케네디대통령이 취임후 친미국가개발전략을 실행함
 
공산주의 혁명은 가난한 국가들에서 발생한다는 공통점을 발견함
 
따라서 가난한 국가들의 경제를 발전시켜야한다는 친미국가개발전략의 핵심이였음
 
이때 긴급보고서를 받는데
 
"남한 상황이 위험스런 방향으로 악화되고 있다 반정부 심리가 강력한 반미 감정으로 폭발해서 혁명으로 발전할 수도 있다" 라고함
 
1961년 4월 11일 주한 미대사관에서 역시 긴급보고서를 올렸다 "4.19혁명 이후 남한에서 민족주의 감정이 일어나고 있다
 
따라서 미국이 개입했다는 비난을 듣지 않으면서 남한의 경제를 발전시켜야한다 -매카나기 주한 미대사"
 
케네디는 즉시 매카나기를 미국으로 부른후 동아시아 담당 차관보로 임명후
 
매카나기 아래 Make a Task force on Korea 팀을 만들고 5월 15일 까지 종합보고서를 작성해라 명령함
 
이때 새로 등장한 장면 총리도 경제부흥을 최우선으로 목표로 내걸었다
 
그리고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발표하고 가난한 국민을 달래기위해 노력함
 
그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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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본문으로 갑니다 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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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1년 5월 16일 쿠데타가 벌어졌고 케네디는 바로 박정희에대한 조사를 명령 다음날 부터 보고서들이 올라오기 시작했음
 
제일먼저 케네디가 알게된 정보는 [1944년 1월 박정희는 일본 군사학교에서 임관했다 그리고 만주의 일본 군대에서 복무했다]
 
그유명한 이름 다카키 마사오 중위
 
그리고 1949년 박정희는 공산주의로 활동하다 체포되어 사형 판결
 
이때 박정희는 300여명의 동료를 팔아먹어 사형을 면제받았다 이때 미국에서 박정희를 부르는 별명은 스네이크박 이였음
 
케네디는 쿠테타의 주인공이 공산주의라 걱정을 했지만
 
Special National Intelligence Estimate No.224 보고서엔 [그들은 미국에 계속 의지하면서 우리에게 협조할 것 같다]라는
 
희망적인 보고서들이 속속 올라오고 한국에 전폭적인 지원을 해줌
 
1961년 6월 5일 대통력 직속 한국 태스크 포스팀 보고서가 올라옴
 
그보고서엔 미국이 한국을 지원해야하는 중요한 세가지 이유가 나오는데
 
1. 북한 공산주의와의 대결에서 이겨야한다
 
2. 미국의 국가적 위신
 
3. 특히 일본을 보호하는데 중요하다 (태평양 방어라인)

그리고 한국 교육은 유교적 전통에 따라 인문과 철학을 강조하고 자연과학,공업기술, 경영, 사회과학을 경시했다라고 씀
 
이에 근대화 전략을 수립
 
미국은 일본으로가 아케다 수상에게 한국의 경제개발에 일본의 참여도 필요하다, 한국과의 국교정상화를 하라고 당부함
 
아케다는 협조하겠다함
 
(일본의 협력이유 : 일본 의존형 산업구조를 만들려고함, 일본 설비와 원자재로 상품을 만들고 번돈으로 다시 일본에게 수입해야하는 전략)
 
요시다 시게오가 당당하게 밝히기도했음 "일본은 이토 히로부미의 길을따라 한국에 재차 뿌리를 내리겠다 (경제식민지)"라고함
 
이때 박정희는 반공법을 선포, 자신이 공산주의와 손을 끊었다는 메시지를 전파했음
 
어떻게?
 
민족일보사장 조용수(31) 재일동포북한보내기정책에 대해 반대운동까지 하던 언론인을 북한을 찬양했다는 누명을 씌운후 사형에 처했음
 
(47년후 이 조용수 사장은 무죄를 선고받았음)
 
이런 강렬한 반공정책은 미국인들에게 효과가 컷음 박정희가 더이상 공산주의에 동조하거나 접촉하지 않을것이다라고 보고서를 올렸음
 
박정희는 권력자들을 만나기위해 일본으로 갔고 거기서 나구모 육군 중장을 만났는데
 
고개를 숙이면서 하는말이 "선생님께서 저를 이렇게 키워 주셔서 감사합니다" 라는 말을했음
 
그리고 극우파들의 초대를 받아 요정에 까지 가게됐음
 
분위기가 무르익자 일본어로 대화하기 시작했는데 거기서 했던말이 "혁명을 했을때 일본 명치유신의 지사들을 떠올렸습니다 저는
 
명치유신의 지사들을 존경합니다" 라고 했음 (명치유신이란 : 조선침략의 선두주자, 사이고 다카모리, 이토 히로부미등)
 
1961년~65년가지 박정희의 공화당이 일본으로 부터 받은돈은 6천6백만달러 현재가치 2초1천억원을 뇌물로 먹었음
 
이대로가면 대일무역적자의 수렁속으로 빠지게됨
 
박정희가 미국에 가기 10일전 케네디는 새로운 부서를 창설함 USAID 국제개발처 Agency for International Development
 
친미개발전략을 수행하는 경제전문가들의 모임임
 
일본방문을 마친후 워싱턴으로 간 박정희는 특별원조를 뜬금없이 요청함
 
우리는 경제개발 계획서를 작성중이다 특별안정기금으로 2억5천만 달러를 지원해달라 라고했음
 
케네디는 내심당황함 그는 이미 박정희의 계획에대해서 알고있었기 때문
 
석달전 버거 주한 미대사가 박정희에게 경고를 보냈음
 
"당신들이 만든 경제계획은 현실성이없다 몇명의 경제학자들이 수작업 했다는 것을 미국은 이미 파악하고있다"
 
사실 1차 계획안은 통계의 미비와 작성 기술도 문제가 있었다 - 송정범 경제기획원 부원장도 인정
 
그리고 실무진 회담에서 해밀턴 AID 처장이 경제개발 계획을 수정하는 것이 어떤가하자 안된다고하고
 
이때부터 미국과의 갈등이 시작됐음
 
실무진은 냉정하게 비판했는데 비현실적인 경제성장목표, 수출 전략이 없다
 
하지만 박정희의 수출전략은 있었음 토끼털을 깍아팔고, 생선을 많이잡고, 돼지를 키워서 외화를벌자, 국민들 돈을걷어
 
투자비가 많이드는 거대 중공업 시설을 만들겠다
 
박정희는 밀어붙였고 이때부터 자신의 생각을 거리낌없이 전파했음
 
"한마디로 말해서 한국의 5천년 역사는 퇴영과 조잡과 침체의 연쇄사다" - 박정희 [국가와 혁명과 나]
 
심지어 방송에 까지 자신의 생각을 당당히 밝혔음
 
" 생략..우리의 운명을 우리 스스로 개척하고 극복해나가겠다는 자족적인 정신이 너무나도 결핍되있다고.."
 
1962년 5월 박정희의 조카사위 김종필 중앙정보부장은 정치자금을 마련할려고 사상최대의 주가조작 사기를 펼쳐
 
2천만~3천만달러 현재가치 약 9천억원을 벌어들여 박정희에게 상납되고 공화당창당자금, 야당 교란작전등에 쓰임
 
증권시장은 붕괴되고 걸음마를 때려는 한국경제에 치명타를 입힘
 
증권파동이 벌어진 후 투자자들은 주식 시장에 대한 공포감에 사로잡혀 기업들은 주식으로 사업자금을 마련할수 없었고
 
이 문제들을 완전히 극복하는 데 10년이 걸렸음
 
바로뒤 1962년 6월에 화폐개혁을 사전조사없이 밀여붙여 시행함 게다가 예금한돈까지 못빼게했음
 
그때문에 돈의 유통이멈춰 경제가 마비됐고 전국 중소기업절반이상이 가동중지가 됐음 (중소기업 45%가동)
 
이때 미국의 보고서엔 "믿을 수 없을 만큼 멍청한 짓을 저질렀다 -The Transformation of Korea" 쓰였음
 
이때 삼성의 이병철 사장이 박정희에게 달려가 화폐개혁의 위험성을 설명했음
 
그러자 박정희는 "경제인들 의견도 사전에 들을 걸 그랬군요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미국은 박정희 정권에 대한 지지 정책을 심각하게 재검토 해야 한다 했고 이때가 박정희정권의 최대위기임
 
미국은 박정희에게 예금동결을 해제하라 압박하고 미국과 관련된 모든 문제에 대해 사전에 반드시 우리와 협의해야 한다라고 요구했음
 
박정희는 단호하게 거부했고 버거는 조용히 말했음 "당신이 더 이상 미국의 원조를 원하지 않는다고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겠군"
 
그 말을 듣자 박정희는 태도를 바꿨고 꼭두각시가 됐음
 
그러자 박정희의 참모 유원식 재경위원, 박희범 최고회의 경제자문등 핵심참모들도 대거 짤렸다
 
그리고 새롭게 경제참모들이 등장하고 미국의 보고서엔
 
"새로운 총리와 경제기획원장이 우리와 매우 협조적으로 일하고 있다 -Telegram From Embassy To Department of State"적혔다
 
새 관료들은 5개년 계획 다소 수정 필요하다고 했고 박정희는 수정시 확대해야한다고 했다
 
이러자 미국은 전면에 나서 언론에 5년 계획 결함때문에 경제원조 전액 어렵다라고 흘렸다
 
그당시 한국은 미국의 원조가 끊기면 붕괴되는 시점이였음
 
결국 박정희는 미국의 힘앞에 완전히 무릎꿇었음
 
새로운참모진은 5년 개획을 수정했고 미국은 비밀리에 요구했다
 
"종합기계제작소 같은 대규모 산업화 전략을 포기하라 그리고 수출을 증대시키는 정책으로 전환하라"
 
미국의 요구사항은 전부들어갔고 새로운 경제개발 계획서가 모습을 드러냄
 
그래서 탄생한게 수출주도형 국가 EXPORT-LED NATION
 
할일이 없어진 박정희는 언론을 불러모은후 카메라앞에서 수출품도 만져보고 노동자와 함께하고 부지런히 사진을 찍었음
 
그리고 외쳤다 "한국민족의 갈길은 본인이 제시한다 가자 수출10억불을 향해"
 
한국은 무섭게 변하기 시작했으며 어르신들은 언론에 노출된 박정희을 말을 100% 믿었음
 
아직까지도...
 
그외 코리아게이트 이건 네이버에 검색해보세요 힘듬..ㅋ
 
 
1부 끝....
다큐보며 정리한건데 다소 내용이길었네요 볼땐 굉장히 짧은내용이였는데..ㅠ
머 결론은 박정희는 경제성장을 이룬게아니라 반대로 초급속성장을 급속정도로 깍아내렸다는 생각?ㅎㅎ
요즘 나라가 망조경제를 함으로써 박정희도 자연스럽게 대화에 나오는데
사람들이 그래도 박정희는 경제는 살렸으니까 라고 말하는 사람이많아 이렇게 글올려봅니다
 
 

출처: HISTORY FOR YOU 민족문제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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