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당 홈페이지에서 펌
전국좌파연대회의
[입장] 『제국의 위안부』 현상, 무엇이 문제인가?
『제국의 위안부』 문제가 국내외의 뜨거운 감자로 급부상하고 있다. 지난 달 검찰이 저자 박유하 교수(세종대)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기소하자, 먼저 일본 쪽에서 무라야마 전 총리와 고노 전 관방장관, 우에노 지즈코 교수(도쿄대) 등 친한파 지식인 54명이 성명을 통해 "어떻게 역사를 해석하는가는 학문의 자유에 관한 문제"라며 항의에 나섰다.
이어 어제(2일) 박유하는 “'매춘'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다고 해서 그것이 곧 '매춘부 취급'이 되는 것은 아니”라며 피해자 할머니에 대한 비판이나 폄훼가 아니었음을 밝히는 성명으로 소송 기각을 요구했고, <『제국의 위안부』 형사 기소에 대한 지식인> 90명은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강조하는 항의 성명으로 검찰의 기소 취하를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그리고 같은 날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아픔에 깊이 공감하고, '위안부' 문제의 정의로운 해결을 위해 활동하는 연구자와 활동가 일동>이라는 긴 명의의 70인은 검찰 기소가 과하다는 단서를 붙였지만“충분한 학문적 뒷받침 없는 서술로 피해자들에게 아픔을 주는 책"이라며 향후 공개 토론을 통해 강력 비판할 것임을 암시하는 맞불을 놓았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제국의 위안부』에서 ‘제국’은 자본주의가 팽창되는 과정에서 빚어진 결과물이므로 우리는 그 속살인 ‘자본’부터 얘기하지 않을 수 없다. 지난 시기 영·미 등 선발 자본주의와 일본과 같은 후발 자본주의는 때로는 거래를 통해 때로는 전쟁을 통해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곤 했다.
잘 알려진 대로 ‘가쓰라-태프트 밀약’(1905년)이 그런 것이다. 이를 통해 미국은 일본 제국의 대한제국(조선)에 대한 지배권을 승인하고 일본은 필리핀에 대한 미국의 식민지 통치를 인정하는 정치적 흥정으로 말미암아 조선과 필리핀의 민중들은 각기 일·미의 강점 아래 놓이게 된다.
이후 일본은 중일전쟁(1937년)을 시작으로 자신의 세력 확장에 제동을 거는 제국주의 열강들을 상대로 이른바 대동아전쟁으로 불리는 2차 세계대전(1941년)에 참전하였고 1945년 무조건 항복하기에 이른다.
『제국의 위안부』는 이러한 일련의 역사적 과정에서 빚어진 사회적 성적 ‘현상’으로 『‘자본’의 위안부』라고 호명해야 더 많은 것을 설명할 수 있다. 일본군 위안부는 ‘국가’라는 외피를 쓴 일제의 자본과 자본가권력이 식민지에서 구조적으로 그리고 조직적으로 강제한 징용과 징병 등 '인력 수탈'의 단면인 까닭이다.
『제국의 위안부』가 당시 “'일본제국'의 일원으로서” 취업사기꾼들을 비롯해 조선 여성들의 다양한 형태의 매춘 현상을 언급한 것을 후일 ‘자본’의 관점에서 보면 일본군에 이어 미군·유엔군·국군, 그리고 일반을 대상으로 한 빈민 여성들의 생계형 매춘 현상으로도 설명이 가능하다. 다만 구조적 강제 아래서 그들의 자발성 여부를 논하는 것은 오늘날에도 그렇듯 모두를 간단히 ‘피해자’로 간주하는 것과 다른 논제이므로 토론으로 풀어나갈 일이다.
또한 전쟁과 같은 혹독한 참화 속에서 성 문제만 특별히 분리할 수 있는가 하는 점도 고민거리다. 인도적인 제네바 조약에도 불구하고 실제 전장은 살인과 폭력이 다반사로 일어나는 지옥과 같은 곳이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파시즘에 훈육된 사람들은 국가나 민족에 쉽게 포획되고 성을 넘어 ‘동지애’를 지닐 개연성 또한 적지 않다. 그 점에서 우리의 구호는 단호하게 ‘전쟁 반대’이어야 한다.
『제국의 위안부』를 문제 삼는 대표적인 지원단체로는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와 나눔의집이 있다. 생산적인 토론으로 결과를 도출하면 될 일을 오늘처럼 극단적으로 적대시하게 된 배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정대협의 초기 상황으로 돌아가야 한다.
정대협은 민주정의당(새누리당 전신) 출신 대통령 노태우 정권 3년차인 1990년에 37개 여성단체가 모여 창립되었는데 회원단체 중 최대 세력이 한국여성단체연합(여연)이다. 역대 대표로는 이우정, 이효재, 조화순, 한명숙, 이영순, 이미경, 지은희, 한명희, 신혜수, 이경숙, 정현백, 남윤인순, 이강실, 박영미, 권미혁, 김경희, 김금옥이 있다. 다음은 주요 인사의 약력이다.
윤정옥 : 이대, 정대협 공동대표, 한겨레신문에 정신대 취재기 게재
이우정 : 한신대, 신학자, 페미니스트, 민주당, 전 의원(비례대표)
이효재 : 이대, 한겨레 이사, 여성학자, 정대협 설립 초대 공동대표, 위안부 문제 부각
한명숙 : 이대, 새천년민주당, 전 의원(비례대표), 여성부·환경부 전 장관, 전 총리
이미경 : 이대, 여성 운동가, 민주당, 전 의원(비례대표)
지은희 : 이대, 정대협 공동대표, 여성부 장관(노무현 정부)
신혜수 : 이대, 성매매추방범국민운동 상임대표, 한국여성의전화 상임대표, 정대협 상임대표, 유엔 여성 차별 철폐 위원회 부위원장
지난 권위주의 정권 시절에는 보수적인 ‘한국여성단체협의회’(여협)가 관변단체 성격으로 움직였다. 그러나 87년 6월 항쟁 이후 김대중·김영삼 후보의 단일화 실패로 노태우가 대통령에 당선된 이후 같은 해2월에 창립한 ‘여연’은 야당 세력을 기반으로 활동에 돌입해 ‘여협’을 유명무실하게 만들 정도로 실력을 쌓기 시작한다. 사실 야당에서는 친일 아킬레스건에 결박된 여당을 타격하는데 여연과 정대협은 매우 효과적인 전략이었다.
특히 1990년에 윤정옥이 한겨레신문에 '정신대' 취재기를 실으면서부터 ‘일본군 위안부’라는 NG0 프로젝트는 빛을 발하기 시작한다. 당시 정대협 산파역인 윤정옥은 일제 강점기 말기에 조직된 태평양 전쟁 지원 조직인 '조선여자근로정신대'와 위안부를 혼동했는데 이는 오늘 정대협 명칭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윤정옥은 당시 군수품 공장에 동원된 일본·조선·대만의 여성 총 20만 명을 조선인 출신 위안부 숫자와 착각하는 바람에 오늘까지도 강제연행 당한 ‘10대 소녀, 20만 명’ 이미지가 고착화 되어 한일관계에 악영향을 끼치고 있다.
위에서 보듯 이들은 야당(주로 민주당)과 그 언저리에서 본격 정치 활동에 나서는데 이후 2004년 성매매 금지 특별법 제정과 시행에도 주도적인 역할을 함으로써 권력에 성공적으로 안착한다. 그리고 주류 여성계가 되어 일본군 위안부 문제로 여당의 친일 아킬레스건을 치고, 성매매 특별법의 전위가 되어 보수적인 성교육의 전도사임을 자임한다. 해서 이들의 ‘성정치’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만능 아젠다로 부족함이 없다.
따라서 이들이 『제국의 위안부』 현상 앞에서 주춤거린다면 그간 파워엘리트가 되어 여권과의 권력분점으로 확고하게 누려온 ‘성정치’의 후퇴를 의미하는 것이므로 결코 용납하지 않을 듯하다. 이번에 지원단체쪽 모임에서 기소가 과하다는 표현이 나온 것도 실은 언론용 립서비스일 뿐 오히려 공개 토론을 빌미로 강공책을 구사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그러나 그래선 안 된다. 더 큰 문제는 『제국의 위안부』 현상이 정국에 미치는 영향이다. 현 정권은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등 퇴행성 정책을 무리하게 강행하는 과정에서 다수의 주권자들과 전면적으로 충돌하고 있는 중이다. 이러한 중차대한 시점에 『제국의 위안부』를 두고 저자와 지원단체가, 그리고 양측을 각기 지지하는 지식인들이 서로 대치하는 형국은 지배세력에게 호기를 안겨줄 뿐이다.
민주사회의 절대적 가치인 ‘표현의 자유’와 ‘학문의 자유’를 수호하는 차원에서, 상당한 팩트를 근거로 한 『제국의 위안부』의 저자 박유하에 대한 기소는 당연히 철회되어야 한다. 그리고 광장에서 열린 토론으로 ‘우리 안의 문제’를 지혜롭게 해결해야 한다. 터무니없는 권력욕으로 사회를 분열시키고 일본의 우경화에 일조하는 어리석음은 당장 끝내야 한다. 우리 사회는 변화를 필요로 한다. 위안부 문제 앞에서 양립 불가능한 언론인 조선과 한겨레가 함께하는 ‘87체제는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2015. 12. 3
전 국 좌 파 연 대 회 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