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송나라 당시 발행되던 화폐인 보초/// 광대한 제국을 하나의 경제권으로 묶기 위해 쿠빌라이와 참모들은 전례가 없었던 통화정책을 폈으니 바로 불태환 지폐인 보초(寶鈔)의 유통이다. 중국에서 정부발행지폐는 11세기 초 북송에서 비롯되어 남송과 금나라에서도 발행되었다. 그러나 원나라 이전의 지폐는 동전의 보조수단에 불과했다. 아니면 망국 직전의 재정파탄을 구제하는 수단으로서 남발되었을 뿐이다.
이에 비해 원 왕조의 지폐는 성질을 아주 달리했다. 세조 쿠빌라이가 즉위한 중통(中統) 원년(1260)에는 은을 준비금으로 삼아 중통초(中統鈔)가 발행되었고 쿠빌라이 말년에는 별도로 지원초(至元鈔)가 발행되었다. 이 두 종류의 지폐는 원 왕조 치세 중 계속 유통되었다. 이들 지폐는 다른 중국 왕조의 지폐와 비교해 기능이 뚜렷한 차이가 있다. ///
이 보초라는 지폐는 3년마다 한번씩 구형지폐를 신형지폐와 교환을하여 늘 일정량만 유통되게 했다 라고 하는데
그냥 3년마다 계를 설정하지 않고 그냥 그양 그대로 두어도 상관없던것 아닌가요?아 참고로 다시 말하자면 송나라는 이 보초를
3년마다 한번씩회수 하여 통화의 양을 일정하게 만들었다고 하는데 이것이 궁금해서요 3년마다 거둘 필요없이
그냥 그대로 말입니다
다른 왕조에서 동전이 주요 통화이고 지폐는 보조통화였으나 원 제국에서는 지폐만이 유일한 통화였다. 그러므로 발행고가 전무후무하게 막대했다. 또한 원 왕조의 지폐는 남송처럼 유효기간을 설정하지 않았다. 남송에서는 지폐의 유통기간을 3년으로 정하고 이를 계(界)라 했다. 4년째로 접어들면 전계(前界)의 지폐를 회수해서 신계(新界) 지폐와 교환했다. 따라서 신계의 지페만 유통되어 구계의 지폐가 누적되지 않아 유통되는 지폐의 양은 일정했다. 이에 비해 원 왕조는 계를 설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발행고는 누적되어 갔다. 인플레이션은 있었어도 통화의 기능은 말기까지 유지했다. 이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국가예산에서 국방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적었던 데 이유가 있다. 한족 왕조는 북방 민족에 대비하기 위해 막대한 군사비를 지출하여 조세 수입의 50% 가량을 소비했다. 그러나 원 왕조는 북변 방위용 군사비가 많이 들지 않아 국가 수입을 지폐 발행 준비금으로 돌릴 수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