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당 지시는 따르지 않아야 한다…이게 검사제도 취지”
조영곤 서울중앙지검장이 본인에 대한 직무감찰을 신청한 22일 낮,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 앞에 직원들이 지나가는 모습이 비치고 있다.
검찰 내부에서 본 ‘항명 논란’
형소법 ‘범죄 발견땐 수사’ 강행규정
국정원 수사 막은 조영곤 지검장
‘형소법 기본정신 망각한 것’ 지적
검사들 “시간끌면 수사 망쳐”
국가정보원의 대선 여론조작 및 정치개입 사건을 수사했던 윤석열(53·여주지청장) 전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팀장의 21일 국회 국정감사 발언을 두고 벌어지는 ‘항명’ ‘하극상’ 논란은 국정원 직원들의 대선개입 실체 규명이라는 본질적 문제를 왜곡시킨다는 지적이 검찰 내부에서도 나오고 있다. 윤 전 팀장이 상부의 승인을 받지 않고 국정원 직원들의 압수수색·체포영장을 청구하는 등 절차상 문제가 있었더라도, 이런 흠결이 국기를 흔드는 중대한 범죄 혐의를 규명하는 것에 우선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형사소송법 195조는 ‘검사는 범죄의 혐의가 있다고 사료하는 때에는 범인, 범죄사실과 증거를 수사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수사해야 한다’는 강행 규정으로, 범죄 혐의를 인지한 검사한테 수사를 하도록 명문화한 것이다. 검찰 관계자는 “범죄 단서가 발견돼 즉각 압수수색·체포를 해야 한다고 판단했는데 절차를 따지며 시간을 끌면 제대로 수사를 못 한다. 이런 부당한 지시가 내려오면 검사는 따르지 않아야 한다. 이게 검사 제도의 취지다”라고 말했다.
21일 국정감사에서는 윤 전 팀장이 조영곤(55) 서울중앙지검장으로부터 국정원 직원의 압수수색·체포영장 승인을 받지 않고 독자적으로 영장 청구를 해 ‘절차적 흠결’이 있다는 지적이 불거졌지만, 조 지검장이 영장 청구 승인을 하지 않은 행위 등에 오히려 위법 가능성이 있다. 윤 전 팀장도 “검사의 원래 모습이라면 이런 (국정원 직원들의 대선개입 트위터) 글이 발견됐을 때 신병 및 증거 확보를 하자고 나오는 게 맞다. 그런데 조 지검장이 모르겠다고 했다. 중대 선거 범죄를 즉각 수사 못하게 하는 건 (조 지검장이) 위법의 소지가 있다. 위법한 지시는 따르면 안 된다. 그런 지시를 따르는 게 불법 행위다”라고 말했다.
더욱이 이번 사건은 국가 안보를 책임지는 국정원이 대선에 영향을 미쳐 특정 후보를 당선시키거나 떨어뜨릴 목적으로 인터넷과 트위터에 글을 올려 불법 선거운동을 했다는 게 검찰 공소사실의 요지다. 특수부 출신의 한 부장검사는 “국정원 선거개입은 국기문란 사건인데, 이걸 어떻게 수사를 안할 수가 있나. 윤 전 팀장의 얘기를 보면, 서울중앙지검장한테 수사 의지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물론 영장 청구 때 보고하지 않은 것은 잘못이다. 위에서 수사를 하지 말라고 하면 다음날 또 보고서를 만들어가서 설득한다. 그래도 안되면 수사를 강행하든지 수사를 접든지 고민한다. 국정원 사건은 워낙 심각한 사안이어서 나라도 당연히 수사를 했을 것 같다”고 말했다.
국정원 사건을 둘러싸고 논란이 끊이지 않는 것은 이번 사건이 현 정권의 정당성을 훼손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시각이 많다. 인터넷·트위터에서 밝혀진 선거개입 글은 ‘판단’이 아니라 ‘사실’의 영역이다. 그런데도 황교안 법무부 장관이 공직선거법 적용을 못하도록 하거나 조 지검장이 강제수사를 막은 것은 검찰 외부의 입김이 작용한 게 아니냐는 의구심을 불러 일으킨다.
검찰 관계자는 “이런 사태까지 벌어진 이유를 생각해보면 국정원이 중간에 끼어 있긴 하지만 현 정권과 정면 대립하는 수사를 하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윤 전 팀장과 조 지검장은 각각 수사하는 입장과 수사를 지휘하는 입장에서 둘 다 어쩔 수 없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