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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자왕에 대한 완전 개인적인 해석
게시물ID : history_6560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GwangGaeTo
추천 : 3
조회수 : 838회
댓글수 : 2개
등록시간 : 2012/11/30 12:50:45

이건 사료적인 근거는 거의 없는 제 망상에 가까운 생각인데요.

 

보통 왕조의 말기에 보면

 

왕권과 신권의 대립이 심해지잖아요.

 

그 와중에 개혁군주가 나오면 그게 더 심화되는 편이고요.

 

의자왕이 그런 개혁군주로서의 면모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해동증자 소리 듣던 인간이 하루아침에 ㅄ이 되버릴 일은 희박하다고 보고요.

 

아마 의자왕은 사비를 중심으로 기득권을 잡고 왕권을 무시하는 신권에 대항하려고 했을거 같습니다.

 

보통 그런 경우 천도라는 방법을쓰기도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의자왕의 경우에는

 

웅진에서 천도한지 얼마 되지 않았고

 

기울어져가는 나라에 천도를 할 여력이 없었을 상황이었을 것입니다.,

 

또, 웅진에서 천도를 하는 목적중에

 

귀족의 기반을 흔들려고 하는 것도 있었을텐데, 제 생각에는 기운 나라에서 천도를 무리해서 하다보니 오히려 왕족과 왕권의 기반이 흔들린 그런 상황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래서 의자는 왕권의 강화책으로 전쟁을 택해서 당항성이나 대야성 등을 정복했는데,

 

그래도 귀족의 파워가 크게 줄지 않았을거 같습니다.

 

그래서 의자가 한 것중에 보시면 아들 41명을 좌평으로 임명하잖아요.

 

그게

 

무너진 왕족에게 권력을 분산시키는 목적하고

 

그 아들들이 보통 귀족의 딸 사이에서 얻었을 것이기 때문에

 

귀족간의 내분과 귀족세력의 지지를 얻기 위한 것일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 모든게 실패하고

 

신권이 왕권을 이기게 되는게

 

집권 15년 이후 멸망하기 5년전 즈음, 즉 왕이 주색잡기에 취해버렸다는 시점일것 같습니다.

 

이 방탕한 왕의 이미지도 그 때 귀족세력이 승리하면서 왜곡된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리고

 

승리한 귀족세력 속에서도

 

친왕파와 반왕파로 분열이 있었을 것 같다고 생각하는데

 

결사대를 이끈 계백이나 성충 흥수등이 친왕파이었고,

 

반왕파에 의해 제거되었다고 생각해볼수 있을거 같습니다.

 

그리고 반왕파는

 

자신의 기득권을 어느정도 보장한다는당이나 신라의 꾀임 혹은 날조 혹은 소문 등에 의해서

 

무기력하게 백제를 넘겼을 것이고요.

 

 

엊그제

 

대학원 가는 과 형이랑 밥먹다가 성왕중흥론 이야기 하면서 문득 한 이야기입니다.

 

소설에 가까운 이야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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