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투자증권에서 게시물을 삭제해달라는 요청이 왔어요. 정정보도를 요청했던 기사라면서..삭제를 안 하면 명예훼손으로 소송을 걸겠다고…”(인터넷 A매체 관계자)
“뉴스타파도 이미 고발을 한 상태라면서 우리도 고발할 거라고, 게시물을 내리라고 하던데요. 어떻게 된 거예요?”(인터넷 B매체 관계자)
기자는 최근 한 달 사이 여러 인터넷 매체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이 매체들의 이름은 해당매체의 요청으로 비공개 한다. 이들은 뉴스타파가 1년 전에 보도한 방송화면을 편집해 올린 한 네티즌의 글을 자사에 게시했다가 최근 한화투자증권 측으로부터 거센 항의를 받았다고 한다. 이 항의를 받고서 일부매체는 게시물을 삭제했고, 일부는 유지했다.
한화투자증권이 항의를 했다는 게시물은 1년 전 뉴스타파가 보도했던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한화의 고졸채용>이라는 기사와 관련된 것이다. 기사는 고졸채용 열풍이 불던 MB정부 때 대규모로 고졸공채를 실시해 사회적 책무를 다하는 기업이라며 홍보해 놓고는 1년 만에 고졸직원들을 구조조정 대상에 포함시킨 한화증권을 비판하는 내용을 담았다.
이 기사는 한 달 전 쯤, 한 네티즌이 ‘오늘의 유머’라는 게시판에 뉴스타파 방송 화면을 캡쳐해 올리면서다시 회자되기 시작했다. 게시물의 조회수는 9만을 넘어섰고, 이를 타 온라인 매체가 스크랩하면서 빠르게 확산됐다. 1년 전 방송했던 뉴스보다 이 게시물에 더 많은 댓글이 달렸다.
1년 전에 썼던 기사 내용이 다시 주목을 받는 건 기자로서 참 반가운 일이다. 그러나 기사에서 비판의 대상이었던 한화투자증권측은 이런 현상이 몹시 불편했나 보다. 게시물이 뉴스타파 보도를 악의적으로 짜깁기 해 한화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해당 매체들에 게시물 삭제를 요청하며 확산 방지에 나선 것이다.
기자가 보기엔 해당 게시물이 뉴스타파 보도를 요약한 수준에 불과하지만 한화측에서 악의적인 편집으로 느꼈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 문제는 다른 매체에 게시물 삭제를 요청하면서 뉴스타파와 관련해 ‘없는 사실’까지 덧붙였다는 것이다.
뉴스타파를 고발했다고?
한화증권 홍보팀은 해당 인터넷 매체들에 “뉴스타파도 고발했으니 당신들이 올린 글도 문제가 될 수 있다. 명예훼손으로 고발하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리고 실제로 고발을 한 곳도 있다. 한화측의 요청을 협박으로 느낀 일부 매체는 기자에게 연락해 “진짜 그런일이 있었느냐”고 물어왔다. 나는 당연히 “아니라”고 잘라 말했다. 한화증권 측은 뉴스타파 보도 이후 공식적으로 정정보도를 요청하거나 소송을 제기한 바가 없기 때문이다.
사실과 다른 이야기를 한 쪽은 홍보팀 뿐만이 아니다. 최근 한화투자증권 주진형 사장은 인터넷에 회자된 고졸채용 기사와 관련해 직접 자신의 페이스북에 불쾌한 심정을 드러내는 글을 올렸다. 그런데 이 역시 사실과 다른 부분이 많다.
“우리 회사에 관해 뉴스타파가 올린 보도는 아예 처음부터 마음먹고 의도적으로 왜곡한 기사였다…
2013년 말에 대량감원을 할 때 끝까지 버티다가 정리해고된 사람들이 제공한 얘기를 갖고 만든 일방적 주장에 불과했다…
홍보팀에서 자세한 설명자료와 함께 정정보도를 요구했지만 그들은 아무런 응답도 없이 그냥 깔아뭉갰다고 한다. ”
(주진형 한화투자증권 사장 페이스북 글 중)
거듭 말하지만 한화증권은 고졸채용 희망퇴직 기사와 관련해 뉴스타파에 정식으로 정정보도를 청구한 적이 없다. 이 글을 본 뒤 홍보팀에 어떻게 된 일인지 물어보니 “구두로 정정보도를 요청했었고, 그때 기자가 사실과 다른 부분이 있으면 추가 인터뷰에 응하라고 말했었는데 응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홍보팀의 말이 맞다고 해도 결국 설명할 기회를 거부한 쪽은 한화측이다. 그런데도 뉴스타파가 일방적으로 한화측의 정정보도 요구를 아무런 응답도 없이 그냥 깔아뭉갰다며 사실과 다른 말을 한 것이다.
뉴스타파가 정리해고자의 일방적인 주장을 듣고 썼다는 사장의 말도 뉴스타파 방송을 한 번이라도 봤다면 할 수 없는 말이다.(관련기사 :‘달면 삼키고 쓰면 뱉고’…한화의 고졸채용) 뉴스타파 보도에는 여러 명의 고졸직원 인터뷰가 등장한다. 사정상 전화통화만 한 직원도 있고, 직접 만나서 인터뷰한 직원도 있다. 물론 제보가 있어 취재에 나선 것이지만, 실제 당사자들의 말을 듣지 않고 기사를 쓸 수는 없다.
그래서 페이스북 등을 일일이 검색해 당시 퇴사한 고졸직원의 연락처를 확보했고 그들을 어렵사리 설득해 인터뷰 했다. 퇴사 후 갈팡질팡 하는 학생들을 설득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뿐만 아니라 고졸직원이 졸업한 학교 선생님들의 이야기, 이들과 함께 일했던 동료 고졸직원들의 이야기를 최대한 수집해 퇴사한 직원들만의 일방적 주장이 아님을 확인했다.
(참고로 주 사장이 언급한 정리해고자들은 희망퇴직 대상자로 분류됐으나 거부했다가 정리해고 된 50대 직원들이다. 중앙노동위원회는 이들이 제기한 부당해고 구제신청에서 지난 2014년 11월 ‘부당해고가 맞다’라는 판정을 내렸다. 그러니까 이들 역시 정리되어야 할 해고자가 아니라, 회사에 의해 부당하게 해고된 부당해고자란 뜻이다. )
이렇게 직접 당사자들의 이야기를 취재해서 쓴 기사를 일방적으로 정리해고자들의 주장을 들어 편파적으로 쓴 기사로 폄하하는 것이야 말로 악의적인 사실 왜곡 아닌가? 자사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고졸채용 관련 게시물을 내리기 급급한 한화증권은 왜 뉴스타파의 명예는 아무렇지 않게 훼손시키는 지 모르겠다.
주 사장이 올린 글은 나만 본 것이 아니다. 실제 한화증권에서 희망퇴직으로 회사를 떠났던 전 고졸 직원들도 주 사장의 글을 봤다. 퇴사의 당사자들은 어떻게 느꼈을까. 취재 후 1년 6개월 만에 다시 그 직원과 통화를 했다. 그는 여전히 미안하다는 말 대신 희망퇴직이 정당했다고 주장하는 회사측에 화가 나 있었다.
“회사는 가해자고 우리는 피해자잖아요. 피해를 당한 쪽에서 피해를 입었다고 하는데 가해자가 아니라고 한다고 해서 아닌 게 되나요? 희망퇴직 면담 과정에서 고졸채용자들이 1호 면담 대상자가 됐고, 차별을, 상처를 받았다고 하는데 가해자가 그런 적 없다고 해서 없는 게 되나요?”
그러면서 그는 1년 전 못 다했던 말을 꺼냈다. “그때 한화만 아니었으면, 공무원이 됐을지도 몰라요. 한화증권 면접과 공무원 면접 두 개가 잡혀있었는데, 그때 한화 면접을 택했거든요. 대기업인 데다 임금도 높고 복지도 좋을 것 같아서…이렇게 1년 만에 퇴사할 줄 알았으면 한화를 안 갔을 거예요.”
그도 그럴 것이 한화그룹이 고졸 공채를 실시할 당시 내놓은 발표자료들을 보면 1년 후 증권사에 구조조정이라는 태풍이 불어닥칠 줄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한화그룹 2012년 1월 9일 자 보도자료에는 이런 내용이 나온다. “고졸채용은 김승연 회장이 강조한 차별 없는 능력 중심의 그룹문화 조성의지를 실천하는 첫 걸음이라 할 수 있다”
또 고졸 사원 채용 직후인 2012년 12월 한화증권 측은 타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고졸채용은 기업의 사회적 책무 그 이상의 의미가 있다”, “고졸 신입사원들에게 다양한 육성 프로그램을 지원함으로써 개인역량을 키울 기회를 제공하겠다”고 말했다.
이처럼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이 직접 의지를 갖고 진행한 고졸공채였고, 한화증권이 ‘사회적 책무 그 이상’의 의미를 부여하며 뽑았던 고졸직원들인데 설마 1년 만에 퇴사시킬 것이라고 누가 상상을 했겠는가. 그러나 한화증권은 상상도 못했던 일을 했다. 1년 뒤인 2013년 12월, 고졸공채 직원 전원을 평가절차 없이 희망퇴직 신청 대상자로 분류해 사내 인트라넷에 공지한 것이다.
이 공지 이후 각 지점장은 고졸공채 직원들을 불러 면담을 진행했고, 이 과정에서 퇴사 압박을 당한 직원들은 자의반 타의반으로 희망퇴직 신청서를 냈다. 그렇게 59명의 고졸공채 직원중 23명이 희망퇴직을 했고, 12명은 자발적으로 퇴사했다.
한화증권은 자발적으로 퇴사한 12명에 대해 대학에 진학했거나, 부적응했거나 적성이 맞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 역시 고졸직원들에 대한 명예훼손 감이다.
한화투자증권에 학생들을 입사시켰던 한 고등학교 선생님은 1년 전 이런 말을 했다. “3명이 입사했는데, 지금은 3명 모두 퇴사했어요. 애들이 스스로 퇴사했다기 보다는 퇴사를 ‘당한’ 거예요. 증권사로 잔뜩 뽑아놓고 갑자기 보험사로 돌린다고 하니까 그만둔 거죠. 증권사 업무가 적성에 안 맞았다거나, 회사생활에 적응을 못해서 그만둔 게 아닙니다. 모두 성실하고 공부도 잘하던 학생들이었어요.”
한화투자증권은 2011년~2013년까지 3년 연속 1000억대 적자를 기록해 대규모 감원이 불가피했다는 말로 고졸직원 감원을 합리화 했다. 그렇지만 적자인 걸 알면서 고졸직원을 뽑아놓고 적자라서 감원이 불가피했다는 말은 어딘가 앞뒤가 맞지 않아 보인다.
더 이해하기 어려운 건 적자라서 고졸직원들을 사실상 해고해 놓고, “기업이미지 제고 차원”이라며 적자기간 광고비는 더 늘려 집행했다는 것이다. 한화증권이 광고회사 ‘한컴’에 집행한 광고비는 2011년 57억에서 2012년 105억으로 두배 이상 늘었다. 한컴은 김승연 회장 가족이 지분 100퍼센트를 보유한 회사다. 적자기간에도 총수 일가 회사엔 아낌없이 광고비를 쏟아부은 것이다. 이 광고비로 한화증권은 얼마나 이미지 개선 효과를 봤을까.(관련기사 : ‘고졸사원’ 해고하면서 김승연 일가에 천억대 일감)
혼자서 상상을 한 번 해본다. 한화증권이 어려웠던 시기에 내보냈던 직원들을 올해 흑자전환 이후 일부라도 재고용 했다면, 그게 안 되면 고졸직원들에게 채용 1년 만에 내보내서 미안하다고 공개적으로 사과의 글을 올렸다면, 또는 뉴스타파 보도에 대해 희망퇴직을 강압적으로 했던 지점이 있다면 조사해 시정하겠다고 답했더라면 어땠을까.
이것이 그 어떤 광고보다 ‘신용과 의리’를 내세우는 한화의 기업가치에 더 부합한 이미지 개선 방법이 아니었을까? 이것이 인터넷에 공유되는 뉴스타파 보도내용을 막는 것보다 더 효과적인 명예회복 방법이 아니었을까? (관련기사 : 600명 해고 한화증권, 뒤로는 돈잔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