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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기타리스트 - 그들의 기타가 조용히 흐느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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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밸망
추천 : 3
조회수 : 1702회
댓글수 : 2개
등록시간 : 2013/10/17 12:28:18




더 기타리스트 그들의 기타가 조용히 흐느낄 때

(정일서 지음  / 어바웃어북)


책소개 
1950년대부터 2010년대까지 대중음악계를 이끈 
105명 마에스트로 기타리스트가 들려주는 저릿한 감동과 열정
재즈와 블루스의 태동, 록큰롤의 폭발, 포크와 록의 만남, 사이키델릭과 프로그레시브 록으로의 진화, 하드 록과 헤비메탈 등 더 강한 비트와 현란한 테크닉 경쟁, 그리고 펑크와 모던 록의 탄생에 이르기까지 대중음악의 역사를 주도했던 주인공은 다름 아닌 기타리스트들이었다. 
옛날에는 기타가 노래의 반주 악기 정도로 활용되는 게 전부였고, 재즈의 시대에도 관악기의 위세에 눌려 그 존재가치가 미미했었다. 1930년대 전후로 기타가 서서히 자리매김을 해나간 곳은 아이러니하게도 재즈의 메카인 미국이 아니라 유럽이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 장애를 이기고 세 손가락만으로 당대 최고가 된 벨기에 출신 기타리스트 장고 라인하르트가 있었다. 라인하르트 이후 불세출의 기타리스트들이 출현해 다양한 음악적 스펙트럼을 발현하면서 기타는 대중음악계를 이끈 핵심 악기로 발돋움했다.
이 책은 장고 라인하르트와 로버트 존슨 등 기타계의 레전드에서 시작해 티본 워커, 머디 워터스, 레스 폴, 비비 킹 등 초기 거장들과 지미 헨드릭스, 지미 페이지, 에릭 클랩튼, 에드워드 반 헤일런 등 7,80년대 기타 영웅들을 거쳐, 조니 그린우드, 잭 화이트, 매튜 벨라미, 존 메이어 등 21세기 신성에 이르기까지 105명 기타리스트들의 삶과 음악을 통해 대중음악의 역사를 조명했다. 


|저자 소개|

정일서
1970년 순천에서 태어나 중학교 시절 가족과 함께 서울로 이사했다. 이때부터 지독한 라디오 키드, 팝송 키드였다. 휘문고등학교와 연세대학교 신문방송학과, 성공회대 문화대학원에서 공부했으며 1995년부터 지금까지 19년째 KBS에서 라디오 PD로 일하고 있다. 무슨 일을 하던 귀에서 헤드폰을 빼는 일이 거의 없는, 방송국에서도 소문난 음악광으로 예나 지금이나 하루 중 가장 많은 시간을 음악 듣는데 쓴다. 
그동안 연출한 프로그램으로는 <황정민의 FM대행진> <남궁연의 뮤직스테이션> <이금희의 가요산책> <김광한의 골든팝스> <전영혁의 음악세계> <이상은의 사랑해요 FM> <신화 이민우의 자유선언> <레코드마니아> <팝스갤러리> <유희열의 라디오천국> 등이 있으며 지금은 KBS2 라디오(Happy FM)에서 <이소라의 메모리즈>를 연출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팝 음악사의 라이벌들』(2011년, 돋을새김) 『365일 팝 음악사』(2009년, 개정증보판, 돋을새김) 『KBS FM 월드뮤직 : 음악으로 떠나는 세계여행』(2005년, 문학사상, 공저) 등이 있다.


|차례|

추천의 글 _그들의 기타가 조용히 흐느낄 때면 사람들은 그들을 추억하고 그들을 꿈꾼다!
머리글 _105명 위대한 기타리스트들과의 행복한 만남

chapter 1. 초기 블루스의 거장 _1950년대 이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세 손가락 _장고 라인하르트
◾그래서 그는 전설이다 _로버트 존슨
◾거장 위의 거장 _티본 워커
◾록큰롤을 잉태한 블루스, 그 목도자 _머디 워터스 
◾기타의 이름이 된 기타리스트 _레스 폴
◾슬라이드 기타의 제왕 _엘모어 제임스
◾플라잉 브이와 파이프, 그리고 블루스 _앨버트 킹
◾내쉬빌 사운드의 창시자, 컨트리 뮤직의 안내자 _쳇 앳킨스
◾Blues All Around Me _비비 킹

chapter 2. 록큰롤의 개척자들 _1950년대 
◾록큰롤의 원조에 관한 논란 _아이크 터너
◾초기 록큰롤의 완성자 _척 베리 
◾리듬 앤 록큰롤 _보 디들리
◾엘비스가 선택한 기타리스트 _스코티 무어 
◾로커빌리의 왕 _칼 퍼킨스
◾실험정신이 곧 록 스피릿이다 _버디 가이
◾헤비메탈의 시조 _딕 데일

chapter 3. 영웅들의 탄생 _1960년대 
◾멤피스 사운드를 추억하다 _스티브 크로퍼
◾그의 기타가 조용히 흐느낄 때 _조지 해리슨
◾롤링 스톤스의 음악 감독 _키스 리처드
◾‘세계 최고의 무명 기타리스트’라는 농담 _로이 부캐넌
◾Life is Slowhand _에릭 클랩튼
◾흑인 블루스 마스터를 향한 백인 블루스 보이의 경의 _마이크 블룸필드
◾록이 포스트모더니즘에 말을 걸다 _프랭크 자파 
◾에어 타운센드, 디스트로이어 타운센드 _피트 타운센드
◾밥 딜런과 비틀스의 조우, 그리고 버즈 _로저 맥귄 
◾뒤바뀌지 않는 넘버 원 _지미 헨드릭스 
◾기타리스트의 애티튜드란 어떠해야 하는가 _제프 벡
◾록 음악의 여러 정경을 풍요롭게 그려낸 축복 _로비 로버트슨
◾여름, 몬트레이, 우드스톡 그리고 그레이트풀 데드 _제리 가르시아
◾컨트리 록을 탄생시킨 숨은 그림자 _클라렌스 화이트 
◾어느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제플린호’의 선장 _지미 페이지 
◾대영제국의 기타 학자 _존 맥러플린
◾하드 록 기타의 교본을 완성하다 _리치 블랙모어 
◾록 역사상 두 가지 아쉬운 질문 _피터 그린
◾아티스트 혹은 엔터테이너 논란 _조지 벤슨 
◾슈퍼 그룹의 계보를 논하다 _스티븐 스틸스
◾예측불허라는 사실만을 예측할 수 있는 사람 _닐 영
◾뮤지션의 인생을 바꾼 한 줄의 기사 _조니 윈터
◾록의 여신에게 가혹하게 선택된 자유로운 새 _듀언 올맨
◾우드스톡의 신성에서 록계의 초자연주의자로 귀환 _산타나
◾그들은 결국 인식의 문을 열었는가? _로비 크리거
◾위대한 프로그레시브 록 밴드의 1등 항해사 _데이비드 길모어
◾브리티시 포크계의 뚜렷한 족적 _리처드 톰슨 
◾록에 예술의 옷을 입히다 _로버트 프립

chapter 4. 록 오브 에이지 _1970년대 
◾캘리포니아 호텔 위를 유영하는 독수리 _조 월시
◾1970년대 록 기타의 문법을 새롭게 쓰다 _스티브 하우
◾드넓은 음악의 바다를 유유히 가르는 슬라이드 기타의 명인 _라이 쿠더
◾글램 록, 데이비드 보위 그리고 믹 론슨 _믹 론슨
◾텍사스 블루스 록의 계보를 이어주는 가교 _빌리 기본스
◾위대한 ‘퀸’을 완성한 진정한 ‘킹’ _브라이언 메이
◾넘침 없는 기교, 조화와 절제의 미덕 _린지 버킹햄 
◾뉴 웨이브, 폴리스 그리고 서머스 _앤디 서머스 
◾클랩튼 키드가 들려주는 저릿한 블루스 _폴 코소프
◾지옥에서 온 아이언 맨 _토니 아이오미 
◾하늘대장장이들, 미국 록음악계를 평정하다 _조 페리 
◾현란한 기교를 버리고 펑크의 원형으로 돌아가라 _조니 라몬 
◾하드 록과 재즈 록을 가지고 논 어린 천재 _토미 볼린
◾록계의 노자, 천의무봉의 경지 _마크 노플러

chapter 5. 헤비메탈 무법지대를 크로스오버하는 연금술사들 _1980년대 
◾그의 기타만큼 슬피 우는 기타는 없다 _개리 무어 
◾‘메탈의 神’으로 불리는 트윈 기타리스트들 _케이 케이 다우닝 & 글렌 팁튼
◾반바지 교복을 입고 하드 록의 본령을 사수하다 _앵거스 영
◾‘Rock will never die’의 진원지 _마이클 쉥커
◾퓨전 재즈계 단 한 명의 ‘캡틴 핑거’ _리 릿나워
◾피킹의 마술적 경지에 오른 사나이 _알 디 메올라
◾현존하는 가장 실험적이고 혁신적인 기타리스트 _팻 메스니 
◾오직 헨드릭스만이 그의 앞에 있다 _애드워드 반 헤일런
◾끔찍한 고문기구만큼 파괴적인 사운드 _데이브 머레이
◾기타계의 비르투오소 _조 새트리아니 
◾섬광보다 강렬한 기타 소리, 불꽃같은 삶 _랜디 로즈
◾섹시한 팝스타 혹은 비범한 뮤지션 _프린스
◾반주자라는 오해, 연주자로서의 정체성 _스티브 루카서
◾길 잃은 1980년대 블루스 록계의 나침반 _스티비 레이 본
◾평범함을 잃지 않는 연주가 가장 비범하다 _피터 벅
◾‘깁슨 레스 폴 커스텀’을 제대로 폭발시키는 파워 기타맨 _존 사이크스
◾그를 평가절하할 이유는 없다 _리치 샘보라
◾기타계의 손꼽히는 멜로디 메이커 _에릭 존슨 
◾불협화음을 ‘연주’하는 기타리스트 _더스턴 무어
◾음악은 코드 세 개만으로도 감동을 준다 _엣지 
◾헤비메탈과 바로크 음악의 예기치 않은 조우 _잉베이 말름스틴
◾가슴 깊이 블루스 필을 간직한 벨파스트의 기타 영웅 _비비안 캠벨
◾스래시 메탈이 지고 있다. 그러나, 타협은 없다! _데이브 머스테인
◾브릿팝의 시조, 그 쟁글거리는 기타 톤 _조니 마
◾헤비메탈 정통성의 마지막 사수자 _커크 해밋 
◾그는 왜 그토록 속주에 집착했을까 _크리스 임펠리테리 
◾동양적인 헤비메탈이란 어떤 것일까 _마티 프리드먼
◾마음으로 치는 기타가 조용히 흐느낄 때 _제이슨 베커 
◾그의 기타에는 총과 장미가 공존한다 _슬래쉬
◾매드체스터, 맨체스터 폭발의 뇌관 _존 스콰이어

chapter 5. 좀 더 강한 사운드 혹은 그 대안 _1990년대와 2000년대 이후
◾1980년대 테크닉 전쟁 최후의 승자 _폴 길버트
◾난해한 테크닉의 끝은 어디인가 _존 페트루치
◾헤비메탈과 펑크를 함께 주무르다 _누노 베텐코트 
◾보다 날카로운, 보다 공격적인 _다임백 대럴
◾오지 오스본은 그에게 시작이자 한계였다 _잭 와일드 
◾그는 록의 시대를 다시 열었고, 다시 닫았다 _커트 코베인 
◾록은, 듣지 말고 느껴라 _존 프루시안테 
◾기타는 착취가 아닌 해방의 수단이어야 한다 _톰 모렐로
◾그의 기타는 브릿팝 폭발의 뇌관이었다 _버나드 버틀러
◾공격적이면서도 영리하고, 정교하면서도 난수표 같은 _조니 그린우드
◾그는 왜 잔혹함으로 무장하는가? _믹 톰슨
◾21세기 록 아이콘의 자격 _잭 화이트
◾하드 록, 얼터너티브, 프로그레시브, 그리고 일렉트로니카까지 넘나들다 _매튜 벨라미
◾왜 사람들은 그의 기타에 그토록 열광하는가 _존 메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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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문헌


|출판사서평|

작은 오케스트라인 기타가 어울리지 않는 음악이란 없다!
기타는 누구나 주변에서 쉽게 접하고 배울 수 있는 악기이다. 기타만큼 만만하고 편하게 접할 수 있는 악기도 드물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기타가 표현할 수 있는 음악적 영역은 무한하다 할 만큼 넓다. 클래식에서 팝과 록, 재즈에 이르기까지 기타가 어울리지 않는 자리는 없다. 한마디로 기타는 음악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서나 어울리는 팔방미인이다. 그래서 일찍이 베토벤은 ‘기타는 작은 오케스트라이다’라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12쪽) 
기타와 이를 연주하는 기타리스트의 활약은 클래식보다는 대중음악에서 더욱 진가를 발휘해 왔다. 재즈와 블루스의 태동, 록큰롤의 폭발, 포크와 록의 만남, 사이키델릭과 프로그레시브 록으로의 진화, 하드 록과 헤비메탈 등 더 강한 비트와 현란한 테크닉 경쟁, 그리고 펑크와 모던 록의 탄생에 이르기까지 대중음악의 역사를 주도했던 주인공은 다름 아닌 기타와 기타리스트였다. 
옛날에는 기타가 노래의 반주 악기 정도로 활용되는 게 전부였고, 재즈의 시대에도 관악기의 위세에 눌려 그 존재가치가 미미했다. 1930년대 전후로 기타가 서서히 자리매김을 해나간 곳은 아이러니하게도 재즈의 메카인 미국이 아니라 유럽이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 장애를 이기고 세 손가락만으로 당대 최고가 된 벨기에 출신 기타리스트 장고 라인하르트가 있었다. 라인하르트 이후 불세출의 기타리스트들이 출현해 다양한 음악적 스펙트럼을 발현하면서 기타는 대중음악계를 이끈 핵심 악기로 발돋움했다.

기타리스트의 계보를 통해 본 대중음악의 역사
기타리스트들이 저마다 지니고 있는 고유한 연주법과 멜로디, 리듬 등은 하나의 새로운 음악 장르를 창조해내는 디딤돌이 되었다. 또 레코딩 기술이 발달하면서 선대 기타리스트들의 음악은 후대 기타리스트들에게 무한한 자양분을 제공했다. 
1938년에 스물일곱의 나이로 요절한 로버트 존슨은 일렉트릭 기타가 등장하기 전부터 시대를 풍미했던 기타리스트로 오로지 어쿠스틱 기타만을 연주했다. 그럼에도 그의 연주는 블루스 기타의 전범으로 남았으며 특히 슬라이드 주법은 에릭 클랩튼 등 후대 뮤지션들에게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다.(37쪽) 그리고 에릭 클랩튼의 음악은 다시 21세기를 대표하는 젊은 거장 존 메이어에게로 이어졌다. 
1960년대 영국발 블루스 폭발이 일어났을 당시 영국의 많은 R&B 밴드들은 머디 워터스를 가장 많이 영향 받은 인물로 지목했다. 머디 워터스는 블루스의 성지였던 시카고에서 일렉트릭 블루스의 태동과 부흥을 이끌었던 기타리스트이다. 롤링 스톤스는 아예 밴드 이름을 머디 워터스의 히트곡 에서 따왔을 정도였다.(45쪽) 
1980년대 이후 현란한 속주 테크니션인 에드워드 반 헤일런과 잉베이 말름스틴, 크리스 임펠리테리, 폴 길버트 등의 앞자리에는 어김없이 지미 헨드릭스와 리치 블랙모어 같은 196,70년대 기타 영웅들이 자리했다. 제 아무리 탁월한 천재라 하더라도 선대 기타리스트들의 음악적 우산에서 벗어나는 것은 불가능했다. 
이처럼 기타리스트만큼 대중음악의 영속성을 견고하게 이어주는 뮤지션도 없을 것이다. 결국 기타리스트의 계보를 살펴보는 것은 대중음악의 역사를 되짚어보는 것과 다르지 않다. 
이 책은 장고 라인하르트와 로버트 존슨 등 레전드 기타리스트에서 시작해 티본 워커, 머디 워터스, 레스 폴, 비비 킹 등 초기 거장들과 지미 헨드릭스, 지미 페이지, 에릭 클랩튼, 에드워드 반 헤일런 등 7,80년대 기타 영웅들을 거쳐, 조니 그린우드, 잭 화이트, 매튜 벨라미, 존 메이어 등 21세기 신성에 이르기까지 105명 기타리스트들의 삶과 음악을 통해 대중음악의 흐름을 조명했다.

블루스와 록큰롤의 탄생을 주도하다
기타는 그 기능성의 측면에서 인류가 만들어낸 가장 탁월한 악기 가운데 하나이다. 리드 파트와 리듬 파트의 역할을 모두 맡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리드와 리듬을 동시에 들려주는 것도 가능하다. 작고 가벼워서 어떤 장소로든 이동이 용이하며, 앉든 서든 어떤 자세로도 연주가 자유롭다. 하지만 가능성이 무궁한 악기임에도 불구하고 한동안 기타는 태생적으로 적은 음량 때문에 일정 규모 이상의 무대에서는 거의 사용되지 못했다. 기타가 폭발적인 성장을 하게 된 계기가 전기적 증폭장치(픽업과 앰프)의 발명과 맞물려 있다는 사실은 그래서 주목할 만하다. 거의 유일한 약점으로 간주됐던 적은 음량의 문제가 해결되면서 비로소 기타가 그 잠재력을 뿜어내기 시작했을 뿐만 아니라 일렉트릭 기타의 탄생이 록큰롤의 태동을 견인하는 기폭제로 작용하기도 했기 때문이다. 
블루스가 록큰롤의 등장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었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다. 하지만 일렉트릭 기타의 발명이 없었다면 블루스가 미시시피강 유역의 델타 지역을 벗어나 미국 전역으로 확산되는 과정이 훨씬 더디고 험난했을 것이라는 사실은 흔히 간과되곤 한다. 일렉트릭 기타는 블루스 연주자들이 보다 많은 청중 앞에서 공연하는 걸 가능하게 만들어주었다. 관객들이 기타리스트의 이미지로부터 보다 직접적인 영향을 받게 된 것도 바로 그 즈음이었다. 무대 위에 서서 관객을 쥐락펴락하는 마술사와 같은 존재로서의 뮤지션. 그러므로 우리가 기억하는 위대한 기타리스트들이 바로 그 시절부터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는 사실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이 책은 바로 그 지점을 출발선으로 잡았다. 기타리스트가 아이콘으로서 자리매김하기 시작한 이래의 음악사를 위대한 연주자들의 개인사로 엮어 냄으로써 궁극적으로 기타라는 악기의 매력과 마력을 소구했다.(7쪽) 

서로 다른 장르의 음악을 연결시켜온 가교 
블루스에 뿌리를 두고서 가지를 치며 뻗어 나온 록큰롤은 대중음악의 메인 스트림으로 군림하면서 여러 음악 장르에 막대한 영향을 끼쳐왔다. 이러한 록큰롤을 다양한 음악 장르에 전파시킨 메신저 역시 다름 아닌 기타리스트들이다. 
1965년 7월에 있은 뉴포트 포크 페스티벌은 포크와 록의 역사에서 커다란 논쟁을 야기한 문제적 장면을 남겼다. 이 날 어쿠스틱 기타 대신 일렉트릭 기타를 둘러매고 무대에 선 포크의 제왕 밥 딜런이 자신의 새로운 히트곡 을 일렉트릭 기타로 연주하자 객석에서는 격렬한 야유가 쏟아졌다. 포크의 순수 팬들은 밥 딜런의 변절을 용서할 수 없었다. 비록 그 장면은 골수 포크 마니아들에게는 충격이었지만, 한편으로는 포크 록이라는 새로운 음악 장르의 탄생을 알리는 계기가 됐다. 그리고 바로 그 문제적 장면의 배후에서 위풍당당하게 일렉트릭 기타를 쳤던 이가 바로 기타리스트 마이크 블룸필드이다.(170쪽) 이처럼 기타와 기타리스트들은 대중음악사의 중요 장면들을 연출해왔다.  
포크와 음악적 스타일이 유사한 컨트리의 발전도 기타라는 악기를 빼고는 생각할 수가 없다. 미국의 전통가요격에 해당하는 컨트리가 내쉬빌이라는 지역적 한계를 벗어나 전 세계로 뻗어 나갈 수 있었던 것은 기타리스트 쳇 앳킨스 덕택이다. 쳇 앳킨스의 기타 연주는 컨트리의 목가적 서정성에 팝적인 세련미를 더해 ‘컨트리의 세계화’를 이끌었다. 

‘반주자’라는 오명, ‘연주자’로서의 정체성
비틀스와 롤링 스톤스가 출현하기 전인 1950년대까지 기타리스트는 한 명의 독립된 연주자라기보다는 가수의 반주자 정도로 여겨졌다. 아무래도 당시 사람들은 무거운 악기를 짊어진 무표정한 기타리스트보다는 잘 생긴데다 춤까지 잘 추는 보컬리스트에 더 많이 환호했다. 사람들은 대스타가 된 보컬리스트의 영광 뒤에 유능한 기타리스트가 있었음은 쉽게 간과했다. 
엘비스 프레슬리 곁에는 항상 스코티 무어라는 기타리스트가 떠나지 않았다. 스코티 무어는 엘비스의 록큰롤 리듬감을 가장 돋보이게 했던 연주자였다. 엘비스도 무대에서 기타를 쳤지만 스코티 무어의 리드 기타 자리는 절대 넘보지 않았다. 엘비스는 자신의 음악을 완성시킨 일등공신 기타리스트에 대한 예우를 소홀히 하지 않았고, 그 덕분에 엘비스는 최고가 될 수 있었다.(106쪽) 
존 레논과 폴 메카트니 뒤에서 묵묵히 기타를 쳤던 조지 해리슨이 없었다면 비틀스의 성공 또한 장담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비틀스가 음악적으로 개화한 「Abby Road」 앨범을 들어보면 조지 해리슨의 역량이 어느 정도였는지 여실히 드러난다. 과거에도 현재에도 사람들은 주로 레논과 메카트니를 기억하지만 그렇다고 조지 해리슨의 공과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1970년대 록계의 아이콘 데이비드 보위 곁에는 믹 론슨이라는 걸출한 기타리스트가 있었다. 믹 론슨을 만나기 전까지 데이비드 보위는 부족했다. 데이비드 보위의 머릿속에서는 온갖 기발한 아이디어와 상상력이 넘쳐났지만 그것을 실현시킬 연주력이 그에게는 없었다. 그 절박한 갈증은 믹 론슨을 만나면서 해갈되었다.(356쪽)
연주자로서의 정체성에 방점을 찍었던 기타리스트를 꼽는다면 (약간의 논란을 뒤로 하고) 아마도 지미 헨드릭스가 가장 많은 표를 얻을 것이다. 지미 헨드릭스도 척 베리처럼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불렀지만 그가 대중음악사에서 보컬리스트로 기억되는 일은 거의 없다. 오히려 그의 노래는 그의 기타 연주를 위한 전주 정도의 의미를 가질 뿐이다. 지미 헨드릭스 이후 사람들은 무대에서 오로지 가수만을 바라보지 않게 되었고,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에서도 기타 소리에 귀를 기울이게 되었다.

기타 영웅들이 일궈낸 ‘진정한 록의 시대’ 
기타 천재들이 활약한 ‘기타 올림픽의 시대’
지미 헨드릭스는 미래 록 음악이 가야 할 방향을 제시한 위대한 예언자였다. 그의 기타가 써내려간 예언대로 사이키델릭과 하드 록, 헤비메탈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고 또 그에게서 영향 받은 후대 기타 영웅들이 하나 둘 탄생하기 시작했다.
대중음악에서 록 음악이, 그리고 다시 록 음악 안에서 기타리스트의 존재가 부각되면서 그들의 기타 연주도 훨씬 화려해지고 음악적으로도 진화를 거듭했다. 에릭 클랩튼, 지미 페이지, 제프 벡, 리치 블랙모어, 피트 타운센드, 로이 부캐넌, 카를로스 산타나, 듀언 올맨, 피터 그린, 존 맥러플린 등 1960년대에 출현한 기타 영웅들은 1970년대를 ‘록의 시대’(Rock of Age)로 수놓는 밑거름이 되었다. 
그리고 이들 기타 영웅들의 계보를 잇는 기타 천재들이 1980년대를 열었다. 에드워드 반 헤일런을 시작으로 잉베이 말름스틴, 크리스 임펠리테리, 폴 길버트 등 속주와 현란한 테크닉으로 무장한 이른바 ‘기타 선수’들이 세계 록 음악계를 평정한 것이다. 당시에는 이들의 연주 속도와 파워 리프를 뛰어 넘지 못하면 록 음악계에서 명함을 내밀지 못할 정도였다. 다른 한쪽에서는 역시 고감도 테크닉을 자랑하는 퓨전 재즈 기타리스트들이 출현했으니, 리 릿나워, 팻 메스니, 알 디 메올라, 에릭 존슨 등이 그들이었다. 1980년대는 이들 기타 테크니션들이 활약한 ‘기타 올림픽의 시대’였다. 

기타를 잘 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그러나 사람들은 기타 천재들의 현란한 연주를 들으며 의문을 갖기 시작했다. ‘진정으로 기타를 잘 친다는 것은 도대체 어떤 의미일까?’라고. 
이에 대한 답변은 이미 오래 전에 마크 노플러라는 기타리스트와 그리고 그보다 더 오래 전에 쳇 앳킨스라는 기타리스트가 제시했었다. 쳇 앳킨스는 불필요한 기교와 음들을 배제하고 효율적인 연주를 추구했던 기타리스트였다. 그의 연주는 기술적으로 낭비가 없는 효율성으로 유명했다.(75쪽) 절제와 완급조절 면에서라면 다이어 스트레이츠의 마크 노플러도 손꼽힌다. 그는 실제로 솔로 연주를 아주 잘하고 테크닉 또한 뛰어났지만 절대로 오버하는 법이 없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중요한 것은 곡이다. 현란한 테크닉의 솔로는 단지 보여주기 위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화려함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곡과 잘 연결되는 솔로가 좋은 연주이다.”(420쪽)
아울러 U2의 엣지는 기타리스트의 애티튜드란 어떠해야 하는지를 직언했다. “지판 위에서 손가락을 정말 빨리 움직이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다. 그건 그냥 기타 올림픽일 뿐이다. 그런 무의미한 일에 관해서라면 생각하고 싶지도 않다. 나는 이런 것도 할 수 있어 하는 식의 과시적인 연주에는 전혀 흥미가 없다.”(562쪽) 실제로 U2의 음악은 서너 개의 코드 진행만으로 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Three Chord and the Truth’라는 U2의 슬로건은 엣지의 슬로건이기도 하다.(567쪽) 단 세 개의 코드로 만든 음악도 충분히 감동을 줄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철학인 것이다.  
이제 사람들은 더 이상 기타 천재들의 현란한 테크닉에 놀라워하지 않았다. 그보다 예전 기타 영웅들의 연주에서 느꼈던 저릿한 감동을 다시 느끼고 싶을 뿐이었다.  

기타와 기타리스트에서 대중음악의 미래를 보다 
(그러나 음악에서 저릿한 감동을 느끼고 싶은 사람들의 욕구와는 거리가 멀게도) 컴퓨터 한 대만 있으면 어떤 장르의 음악도 순식간에 만들어내는 시대가 도래했다. ‘디지털’이란 이름 아래에서는 더 이상 기타 영웅도 기타 천재도 무의미하다. 컴퓨터 프로그램이 악기를 대체하고, 그러다 보니 세상에는 공장에서 찍어낸 듯 비슷비슷한 음악들이 넘쳐난다. 이제 음악은 디지털화된 파일을 통해 과거의 LP나 테이프나 CD처럼 음반이라는 실체가 없이도 잘도 돌아다니고 한쪽에선 음악이 예능의 재료로 소비되기도 한다.(12쪽)
우리나라의 상황은 좀 더 심각하다. K-POP이라는 이름으로 아이돌 가수들이 지구 저편 대륙에서 콘서트를 열고 모 가수는 코믹한 퍼포먼스의 뮤직비디오를 유튜브에 올리며 빌보드 정상권까지 진입했지만, 시간이 흐른 뒤에도 사람들이 그들의 음악을 얼마나 기억할지는 다시 생각해볼 일이다. 멕시코계 기타리스트 카를로스 산타나가 자신의 태생적 뿌리와 맞닿은 라틴 리듬을 록에 접목시켜 그래미를 석권하고 뮤지션을 꿈꾸는 전 세계 젊은이들로부터 커다란 존경을 받는 것과 K-POP 열풍은 그 격이 너무나 다르다.  
세계 대중음악의 본산인 영국과 미국에서 커트 코베인과 라디오헤드가 여전히 젊은이들의 ‘음악 대통령’으로 군림하고 있고, 수년 동안 계속되는 U2의 월드투어가 매진 사례를 이어가는 것만으로도 밴드음악과 이를 진두지휘하는 기타리스트의 위상을 가늠할 수 있다. 과거에도 그랬듯이 대중음악의 미래는 여전히 기타리스트들의 두 손에 달려 있는 것이다. 이 책에서 다룬 기타리스트들이 이를 방증해왔고, 또 앞으로도 입증해 나갈 것이다.  
   
     
추천평

‘기타’…… 친구같이 옆에서 마음을 나눈 지 어느덧 반세기를 넘어 이제 나는 기타의 몸이 되어버렸다. 그런데, 여기 이 기타 플레이어들의 이름들, 생생하게 내 귀청을 때리는 이 소리, 왜 내 마음을 들뜨게 하는가.                                               
_신중현

저는 기타를 아주 좋아합니다. 기타에 관한 건 어떤 얘기라도 귀가 솔깃해지지요. 많은 기타리스트들의 전설 같은 이야기를 만난 오늘, LP를 뒤져가며 밤새도록 기타 연주를 들어야겠어요.                                                                         
_이정선

놀라운 이름들, 나를 꿈꾸게 하는 책. 내가 세 손가락밖에 못 가졌더라도 장고 라인하르트처럼 노력하면 언젠가는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기타리스트 지미 페이지와 협연할 수도 있다는 꿈. 나이란 없다.                                                    
_전인권(들국화)

이 책은 역사적인 기타리스트들의 다양하고 새로운 이야기들을 전해준다. 기타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꼭 한 번 읽어봐야 할 책. _한상원
 
처음 기타를 만나 정신없이 그 세계로 빠져 들어가며 하나 둘 나의 영웅을 만들기 시작했다. 여기 그들의 이야기를 단숨에 읽는다. 그리고 내 어린 시절 나의 영웅이자 진정한 이 시대 최고의 기타리스트인 그들에게 다시 한 번 경의를 표한다.                     _함춘호

그 날 쇼윈도엔 비가 내리고 있었고 빨간색 기타가 놓여 있었다. 가슴 아팠던 1981년의 그녀는 내게서 떠나가고 있었고 나는 지금도 그 빨간 기타를 치고 있다. 아, 기타! 
_김태원(부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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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즈가 블루스에 의해 잉태되었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블루스에서 주도적인 지위를 차지했던 기타가 재즈의 시대에 홀대받은 것은 다소 의외이다. 재즈의 태동기에 기타는 관악기의 위세에 자리를 내어주고 폐기처분되다시피 했다. 재즈의 발원지 미국에서 버림받은 기타가 다시 생명을 얻은 것은 바다 건너 유럽에서였다. 그리고 그 시작은 바로 장고 라인하르트였다. 재즈 기타의 계보를 거슬러 올라가면 그 맨 윗자리에는 항상 그의 이름이 자리한다. 집시 음악의 낭만 위에 재즈의 스윙과 비밥을 장착한 라인하르트의 음악은 미국의 재즈와는 정서가 다른 새로운 유럽 재즈의 본류를 만들었다. 운지에 활용할 수 있는 두 개의 왼손가락만으로 펼친 그의 연주는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든 경이로움이었고 그가 기타로 만든 음악은 집시와 유럽이 재즈를 향해 보내는 환희와 낭만에 찬 초대였다.(31쪽)
_‘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세 손가락’ 중에서

애초 그는 연주력이 형편없어서 공연장에서 쫓겨나기 일쑤였는데,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일취월장한 실력으로 나타났다. 단숨에 손 하우스를 비롯한 당대의 실력파 연주자들의 기량을 뛰어넘어 버린 것이다. 그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해 보이는 일이었기에, 여기에서 그 유명한 전설이 태어났다. 즉, 로버트 존슨이 악마와 거래를 했다는 소문으로, 교차로에서 악마를 만나 생명을 저당 잡히는 대가로 음악적 재능과 기타 실력을 얻었다는 것이다. 일반적인 시각에서 보면 터무니없는 이야기이지만 로버트 존슨의 노래 중에 이와 같은 사실을 암시하는 내용이 있고, 또 그가 실제로 스물일곱 살에 요절했기 때문에 전설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괴테의 『파우스트』에서 빌어온 이야기임이 분명할 텐데도 말이다.(35쪽)
_‘그래서 그는 전설이다’ 중에서

한영애와 신촌블루스가 노래했던 ‘루씰’은 이름이다. 그런데 사람이 아니라 기타의 이름이다. 루씰. 1949년 겨울은 유난히 추웠다. 그 때 비비 킹은 미국 아칸사스주 트위스트에 있는 한 작은 클럽에서 연주하고 있었다. (예나 지금이나 비비 킹은 언제나 클럽에서 연주한다.) 클럽의 홀 안에는 난방을 위해 등유램프가 켜져 있었다. 당시에는 흔한 풍경이었다. 그런데 공연 도중 두 남자 사이에 싸움이 일어났다. 싸움은 금방 주먹다짐으로 발전했고 두 남자의 난투극 와중에 등유램프가 넘어지면서 불이 났다. 화재는 삽시간에 번졌다. 손님이며 종업원이며 연주자며 할 것 없이 정신없이 밖을 향해 뛰었다. 가까스로 탈출에 성공한 비비 킹은 그러나 다음 순간 자신이 기타를 안에 두고 나온 것을 깨달았다. 그 기타는 깁슨 세미 할로우 바디 기타로 그가 애지중지하는 자신의 유일한 기타였다. 비비 킹은 곧 바로 기타를 찾으러 다시 불 속으로 뛰어들었고 겨우 기타를 구출해 다시 빠져나올 수 있었다. 그 직후 건물은 붕괴되었고 두 사람이 이 화재로 목숨을 잃었다. 다음 날 비비 킹은 두 남자가 싸운 이유가 한 여인 때문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 여자의 이름은 ‘루씰’(Lucille)이었다. 그는 자신의 생명과 맞바꿀 뻔한 이 기타에 ‘루씰’이라는 이름을 붙였고, 후에 이라는 노래를 만들어 자신이 사랑하는 기타에게 바쳤다. 그렇다. ‘루씰’은 역사상 가장 중요하고 뛰어난 블루스 기타리스트인 비비 킹의 기타에 붙여진 애칭이다.(78쪽)
_‘Blues All Around Me’ 중에서

록큰롤 기타에 처음 본격적으로 리드 기타 플레이를 도입한 공로 또한 크다. 그가 1950년대에 리드 기타 플레이를 펼친 유일한 인물은 아니었지만 많은 사람들이 스코티 무어를 록큰롤 씬에서 가장 돋보였던 리드 기타리스트로 지목한다. 록큰롤이라는 음악 안에서 기타는 보통 리듬 악기의 역할을 맡았지만 스코티 무어는 그 역할을 리드 솔로 악기로까지 확장시켰다. 엘비스 프레슬리는 언제나 리듬 기타를 쳤지만 리드 기타의 역할만은 스코티 무어에게 맡긴 채 그 영역을 침범하지 않았다.(110쪽)
_‘엘비스가 선택한 기타리스트’ 중에서

거의 모든 조사에서 역사상 가장 위대한 기타리스트의 자리는 오직 한 사람의 차지다. 「롤링 스톤」「토털 기타」의 조사에서도, ‘www.guitar.com’의 조사에서도 아래 순위가 아무리 바뀌어도 맨 윗자리를 차지한 한 사람의 이름만은 항상 그대로다. 수없이 명멸해 간 그 수많은 기타리스트들 중에서도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 독보적인 단 한 사람, 그의 이름은 바로 지미 헨드릭스이다.(205쪽) 
_‘뒤바뀌지 않는 넘버 원’ 중에서

아티스트와 엔터테이너의 지위는 많은 경우 서로 충돌을 일으킨다. 아티스트에는 존경과 경의의 의미가 담겨있는 반면 엔터테이너에서는 그것들이 거세된 채 우리식 표현으로 하면 소위 ‘딴따라’ ‘광대’의 의미만이 부각되기 때문이다. 그것은 어쩌면 인기와 성공에 대한 질시어린 반대급부일 수도 있겠다. 조지 벤슨은 바로 그 점에서 가장 큰 논란을 야기했거나 가장 크게 평가절하된 뮤지션이다. 그는 아티스트라는 칭호를 얻기에 결코 부족함이 없는 재능과 실력을 갖춘 인물이지만 불행인지 다행인지 그의 능력이 상업성 또한 놓치지 않았던 탓에 평단으로부터는 대체로 박한 평가를 받아왔다. 그는 협소한 분야에서 일로매진하며 아티스트의 영역에 머물기에는 너무나 많은 재능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신이 그에게 내린 축복이었지만 역설적이게도 신이 그의 재능을 시기한 저주이기도 했다.(261쪽)
_‘아티스트 혹은 엔터테이너 논란’ 중에서

열다섯 살 때 그는 아버지와 함께 100년 이상 된 벽난로용 마호가니 나무에다 오토바이 벨브 스프링, 뜨개질용 바늘 등을 활용해 세상에 하나뿐인 수제 기타를 만들었다. 레드 스페셜이라고 불리는 이 기타는 이후 50년 동안 스튜디오 녹음에서나 라이브에서나 한결같이 브라이언 메이의 메인 기타가 되었다. 레드 스페셜은 특히 다른 어떤 기타로도 낼 수 없는 독특한 질감의 사운드를 자랑했는데, 때로는 오케스트라를 흉내 낼 수 있었고 때로는 트럼본과 피콜로 소리를 냈으며 또 때로는 기타가 아니라 신디사이저로 착각할 만큼 특이한 소리들을 만들어내기도 했다.(366쪽)
_‘위대한 퀸을 완성한 진정한 킹’ 중에서

U2의 기타리스트 엣지는 테크닉보다는 전체적인 사운드를 중시하며 난해한 연주보다는 절약된 음표 내에서의 효율성을 추구한다. 이런 성향은 어느 인터뷰에선가 스스로 다음과 같이 밝힌 것에서 잘 드러난다. “난 항상 요점을 잘 전달할 수 있는 더 효율적인 방법을 찾고자 한다. 좋은 곡과 리프, 아이디어, 이런 것들이 나에게 중요한 것들이다. 지판 위에서 손가락을 정말 빨리 움직이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다. 그건 그냥 기타 올림픽일 뿐이다. 그런 무의미한 일에 관해서라면 나는 생각하고 싶지도 않다.”(562쪽)
_‘음악은 코드 세 개만으로도 감동을 준다’ 중에서

톰 모렐로는 한국과 관련해서도 부끄러운 기억을 떠올리게 해준다. 2007년 봄 한국 최대의 기타 제조회사이던 콜트, 콜텍사가 회사를 폐업하고 공장을 중국으로 옮기면서 많은 노동자들이 한꺼번에 해고당한 일이 있었다. 절박한 해고 노동자들은 기나긴 투쟁에 들어갔다. 톰 모렐로는 해고 노동자들이 2010년 1월 이와 같은 사실을 알리기 위해 미국 애너하임에서 열린 세계적인 악기쇼 남(NAMM)을 찾았을 때 이들을 처음 만났다. 그리고 한국 노동자들의 투쟁에 대한 공식적인 지지를 선언했다. “노동자의 아픔이 서린 기타, 착취 받는 기타로는 노래할 수 없다” “기타는 착취가 아니라 해방의 수단이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일성이었다.(681쪽)
_‘기타는 착취가 아닌 해방의 수단이어야 한다’ 중에서

라디오헤드의 라이브에서는 조니 그린우드가 무대 위에서 바이올린 활로 기타를 연주하는 모습이 자주 목격된다. 지미 페이지의 모습이 연상되는 광경이다. 조니 그린우드는 흔히 ‘사나운 기타’로 불리는 공격적인 연주 스타일 때문에 부상이 잦다. 그래서 항상 무대 위에서 손목보호대를 착용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는 이에 대해 “그것은 마치 경기 전에 권투 선수가 손가락에 붕대를 감는 것과 같다”라고 설명한다.(699쪽)
_‘공격적이면서도 영리하고, 정교하면서도 난수표 같은’ 중에서

존 메이어의 음악은 블루스와 포크의 경계에 있으며 그의 기타 역시 그렇다. 그의 기타는 화려한 솔로 연주보다는 곡의 전체적인 흐름에 자연스럽게 녹아드는 프레이즈와 리듬에 주력한다. 그렇지만 그는 뛰어난 솔로 연주자이다. 포크 성향의 곡들에서는 별다른 솔로 없이 물 흐르듯 한 번의 단순한 진행으로 곡을 마감하는 경우가 많지만 가끔씩 블루스 지향의 곡들에서 선사하는 블루지한 솔로 연주는 블루스 기타리스트로서의 그의 현재와 미래에 큰 기대를 품게 만든다. 아주 드물게는 탄성을 자아낼 만큼 빼어난 속주 능력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존 메이어는 더 많은 순간 그것을 드러내기보다는 감추는 절제의 미학을 선택한다.(726쪽)
_‘왜 사람들은 그의 기타에 그토록 열광하는가’ 중에서



1차 출처 : 어바웃어북

2차 출처 : 북카페 책과 콩나무 (http://cafe.naver.com/booknbeanstalk/41656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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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게에 올릴까 책게에 올릴까 고민하다가 기타리스트 관련 책이라 음게에 올립니다.

105명의 기타리스트에 대한 이야기가 쓰여져있고 대표 앨범, 대표 기타에 대한 설명까지 있어 기타를 치시거나 기타리스트를 좋아하시는 분들이라면 재미있게 읽힐 거라고 생각합니다.

책 페이지가 700페이지가 넘는데 비해 가격은 2만8천원(정가)라 비싸다고 생각되지는 않네요.

구입하셔서 읽으실때 소개된 각 기타리스트들의 대표곡을 찾아 들으시면 더욱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것 같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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