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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득종 기
게시물ID : jisik_160377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크루시오해룡
추천 : 0
조회수 : 305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3/10/17 05:02:24
  저 멀리 남쪽 바다 가운데에 한 고을이 있었다. 거기에 한 산이 하늘에 닿아 있으니 이를 한라라고 하였다. 한라라고 불린 이유는 은하수를 쥘 수 있었기 때문이다. 또 다른 이름으로 원산이라고도 하였다. 둥글게 가운데가 솟아있었기 때문이다. 이 고을의 이름을 제주라고 한다.
 
  병신년에 이르러 그 고을을 셋으로 나누어 동은 정의, 서는 대정이라고 하였다. 옛날에는 동영주라고 부르기도 했으며 탁라, 탐라라고 부르기도 하였다. 시대에 따라 고쳐졌는데 책에 실렸다. 애초에는 사람들이 없었으나 신의 아이 셋이 땅에서 솟아나와 신라 때에 이르러 스스로 신라에 부속하여 해마다 공물을 바쳐 1100년간 역사가 내려왔다.
 
  조선에 들어와 성스러운 군주의 교화와 부드럽게 감싸는 덕을 입어 풍속이 좋게 변하였다. 이에 땅에 편하게 살게 된지 오래되었다.
 
  계축년에 그 해의 가을부터 다음 해의 여름까지 가물어 산천이 시들고 온갖 물건이 시드니 백성들이 굶주렸다. 이에 임금이 마음의 염려를 다하여 조선의 신하들에게 명하였다.
 
  "제주 지방이 우리나라에 속하여 좋은 말이 나고, 귀한 곡물이 나서 나라가 많이 기대고 있다. 그러나 그 땅은 척박하고 백성들은 가난하니 해적이 끊이질 않고 산적이 몰래 일어나서 그들을 제압하기 힘들어서 내가 그 땅을 지키는게 힘들었다. 근래에는 가뭄이 들어 매년 이어져 흉년이 심해지니 초목은 시들어 백성들이 굶주리니 내가 매우 불쌍히 생각한다. 하물며 저 바다 밖에 떨어져 있어서 내가 있는 곳과 머니 백성들이 잘 살고, 못 살고 정치가 잘 되고, 안 되고를 어찌 내 눈으로 확인할 수 있겠는가? 이에 어진 사람 중 문,무에 능력이 있고 혼내거나 어루만지는 것을 잘 하는 사람을 선발하여 내게 보고하도록 하여라."
 
  이에 전 공조참판 익양 최해산 공을 천거하였다. 임금은 기뻐하며 마땅하다고 윤허하였다. 갑인년 가을 팔월 초칠일 도안무사겸 판부사를 부여하였다. 공이 명령을 받고 인사를 하는데 꺼리는 기색이 없고 날짜를 정해 출발 하였다. 도착한 처음에는 나라 창고의 곡식을 풀고 마음을 바쁘게 쓰고 백성들을 가엽게 여기어 따뜻하게 해주고 은덕을 베풀어 민생을 구제해 주었다. 감옥에 있는 자들은 재판이 지체되지 아니하도록 하였다. 잘 가르치고 널리 알려 백성들이 예의를 알아 말 기르는 기술, 해적을 방지하는 대책, 농사를 권하는 일, 불쌍하고 근심있는 자들을 구제하고 귀신을 섬기는데 마음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여 모든 제사와 기도에 온 마음을 다해 귀신들의 비위를 잘 맞추었다.
 
  그 다음 해에 바람과 비가 때에 맞아 싹이 자라 말리게 하니 백성들이 즐거워 하며 배를 두드리고 말이 크게 번식하였다.
 
  우리 전하께서 어진 사람을 선발한 은혜가 깊고 또 지극하다.
 
  공은 일을 하는데 있어 사람을 잘 모으고 무너지는 관사를 수리하기를 원했지만, 그 일을 무겁게 생각하여 할 겨를을 내지 못 했다. 마침 불이나서 살기가 어려워지니 스님과 군인을 동원하여 허물어진 절의 목재와 기와를 수거하여 먼저 쉬고 자는 집을 짓고, 근무 공간과 씻는 곳, 쉬는 곳, 요리하는 곳의 자리를 갖추었다.
 
  그 자그맣게 서쪽을 향해 기둥 세 개를 지어 정사를 보는 곳을 지었다.
 
  좌우에 별채를 달아 방을 나눠 문서를 보관하게 했고, 그 서쪽에는 각을 짓고 이중 처마로 모방하니 그 규모는 거대하고 치밀했으며 장로는 관대하고 화려했다.
 
  그 곳의 풍채는 날개를 단 듯하였다. 단청을 바르니 많은 건물들이 보기 좋았다.
 
  그 남쪽에는 수령 집무실을 짓고, 그 북쪽에는 말을 바치고 말을 기르는 마굿간을 지었다. 동쪽에는 약 창고와 서쪽에는 깃 창고를 지어 동서가 대치하게 만드니 반듯하였다. 그리고 건물의 간 수는 총 206간으로 각각 떨어져 있었는데 이는 화재를 방지하기 위함이었다. 이 모든 계획은 공의 계획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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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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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이 말하길 "이 제주 고을은 북쪽으로는 바다를 끼고 있고,그 바다가 아주 넓어 한 번에 천리를 볼 수 있고, 남쪽으로는 초목이 우거져 푸르러 사시사철 한 가지 색입니다. 겨울에는 추위가 없고 여름에는 시원한 바람이 불어, 집집마다 귤나무가 있고 자류마가 있으며 바람과 구름의 모습, 달이 뜨고 이슬이 맺히는 모습이 밤낮으로 바뀌고 천만가지로 바뀌고 왕명을 받아 다스리러 온 사람이 올라쉬고 산의 푸름과 파도 소리를 책상 앞에서 나누고 기이한 풀과 꽃이 고개만 돌리면 모습이 보입니다. 과거 누각이 있었을 때의 이름이 만경이니, 새로 지어진 건물의 이름을 만경이라하지요."
 
그러자 공께서 말씀하시길
 
"나는 경치를 구경하기 위해 이 누각을 지은 것이 아니다. 사사로이 돌아다니기만을 위해 지은 것도 아니다. 옛 문왕 때 주공은 안에서 다스리고 소공은 밖에서 다스려서 사람들에게 미치는 것이 바람의 움직임과 같아 점차 점차 멀리퍼져서 당세의 사람들이 덕화에 고무되고 그 기질을 변화시키려는 사람이 없게 되었으니, 이 것이 두 사람이 나라를 다스리면서 미치치 않은 것이 아니냐. 바야흐로, 지금은 성인의 밝음이 높아 여러 신화들과 상의를 하여 관리를 급히 파견하였지만, 그러나 오히려 혜택이 다하지 않고 다스리는 교화가 미흡한 것은 일을 맏기는 것이 사람을 잘 뽑지 못하고 그 자가 일을 행하는 것이 미진한 것이 그 이치라. 모든 임금의 근심을 나누는 자가 날마다 이 누각에 올라서 질탕하게 놀지 않고 하고픈 대로 하지 않고 임금이 맏긴 책무를 다할 것을 생각하여 항상 왕하를 널리 펴고 민정을 다 알게 되는 것으로 서 마음을 먹는 다면 주나라의 통치를 오늘날 다시 볼 수가 있을 것이고 제주 백성들은 마땅히 무궁한 복을 받을 것이다. 어찌 홍화로서 이름을 짓지 않을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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