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년뒤 본처 이혼후 결혼” 믿고 순결을…
법원 “현실성 없는 말 믿어” 혼인빙자간음 손배소 기각
‘17년 뒤 본처와 이혼하고 결혼하겠다’고 한 약속은 현실성이 없는 만큼 혼인빙자간음의 이유로 인정하기 어렵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서울동부지법 민사9단독 이헌영 판사는 A(여·37) 씨가 3년 4개월간 동거하다가 헤어진 유부남 B(43) 씨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 소송에서 A 씨의 청구를 기각했다고 13일 밝혔다.
A 씨와 B 씨는 지난 2006년 한 용역업체의 직원과 사장 사이로 만났다. 이미 결혼해 두 자녀까지 둔 B 씨는 1년 8개월간의 끈질긴 구애 끝에 미혼인 A 씨와 내연 관계를 맺게 됐다. A 씨는 종교적 신념에 따라 혼전순결을 지키려 했다.
그러나 B 씨는 유부남임을 밝힌 뒤 ‘현재 3세인 작은아이가 성년(20세)으로 자라면 본처와 이혼하고 당신과 결혼하겠다’고 약속하며 적극적인 애정관계를 요구했다.
결국 A 씨는 성관계를 허락했고 두 사람은 지난 2008년 6월부터 2011년 10월까지 동거생활을 했다. 동거 기간 동안 B 씨는 A 씨를 부인 또는 아내로 불렀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마치 배우자인 것처럼 소개했다. A 씨의 동생들 역시 처제 또는 처남으로 불렀다.
정식 부부처럼 생활해오던 두 사람의 관계는 B 씨가 또 다른 여자들을 만나면서 변하기 시작했다. B 씨의 변심에 심한 스트레스를 받은 A 씨는 지난 2011년 10월 B 씨와의 관계를 정리한 뒤 정신적 충격으로 병원 치료까지 받았다. 이후 A 씨는 B 씨가 결혼 의사가 없었음에도 혼인할 것처럼 속여 순결을 잃었다며 B 씨에 대해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이 판사는 “B 씨의 행동이 도덕적으로 비난받아 마땅하지만 17년 뒤에 결혼하겠다는 약속이 현실화될 가능성에 대해 일반적인 사고 방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충분히 의심할 수 있는 상황”이라며 “B 씨의 약속이 진실이라고 믿기 어려운 만큼 혼인빙자간음으로 인한 불법 행위가 성립한다고 할 수 없다”고 판결 이유를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