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에 술을 먹고 취한 이민서
대제학(大提學) 이민서(李敏敍)는 1633(인조 11)∼1688(숙종 14)
이민서가 경연관(經筵官)이 되어 밤에 임금을 모시고 강론을 하는데 갑자기 졸음이 쏟아졌다.
아무리 참으려 애를 썼지만 그만 깜빡 잠이 들고 말았다.
옆에 있던 대신이 보니 이민서가 술에 취한 벌건 얼굴로 무엄하게 졸고 있는 게 아닌가.
그래서 임금에게 죄를 주어야 한다고 아뢰었다.
“이민서는 경연(經筵)에 들어오면서 술을 마셨을 뿐 아니라, 무엄하게 졸기까지 했으니 죄를 주어야 마땅합니다.”
“그것 참 이상한 노릇이로다. 이민서는 평소 술을 먹지 않는 것으로 아는데, 오늘 웬일로 술을 먹었는지 모르겠구나.
나중에 술이 깨거든 물어보겠노라.”
밤이 깊어 경연이 끝날 무렵에야 이민서는 잠에서 깨어나 자신의 실수를 알아차렸다. 그래서 임금 앞에 머리를 조아리며 죄줄 것을 청하였다.
“평소 마시지 않던 술을 오늘은 웬일로 마셨느냐?”
“….”
“어서 바른 대로 고하라.”
“실은 그런 게 아니옵니다. 오늘 경연에 들어오자마자 저도 모르게 갑자기 졸음이 오더니 꿈을 꾸었습니다.”
“그래 무슨 꿈이더냐?”
“예, 제가 몇 년 전 광주 고을을 다스릴 때, 그 고을 선비들과 교분이 매우 두터웠습니다. 그런데 꿈에 제가 광주를
가니 그 곳 선비들이 모두 모여 즐겁게 술을 마시면서 저에게도 자꾸 권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도 모르는 사이 술에 취하게 되어 예의를 잃었습니다. 죽여주십시오.”
임금은 평소부터 이민서가 백성들에게 고루 은혜를 베풀어 신망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광주에 사람을 보내어 그날 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아보라고 명하였다. 그 보고는 이러하다.
“이민서가 광주를 다스릴 때, 그곳 백성들이 자식처럼 따뜻하게 보살펴 준 은혜를 잊지
못하여 이민서의 공을 기리는 생사당(生祠堂)을 세웠습니다. 그런데 그날이 바로
낙성식(落成式)을 한 날이었습니다.”
이민서가 잠든 사이에, 그의 혼(魂)이 육신에서 빠져나가 광주의 자기 사당에 가서 사람들이 올린 술을 한껏 마시고 취하게 되었던 것이다.
<참고자료〉
대동기문 (강효석 편, 명문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