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금 저녁.
친구들과 함께 4인 일반 게임을 즐기고 있었습니다.
오랜만에 미드를 가게 되어 설레는 마음으로 평소 애정하던 브랜드를 골랐습니다.
'세상을 불 태울 준비는 되었나?'
세상은 불 태우진 못하더라도 최소한 이 협곡만은 불바다로 만들어주리라. 다짐하며 협곡에 입장했습니다.
상대는 카사딘.
미니언에게 평타 한 대. 카사딘에게 한 대.
다시 미니언에게 한 대. 카사딘에겐 불기둥.
천천히 하지만 흔들림 없이 협곡에 불을 지르고 있었습니다.
곧 저의 강함을 보여줄 기회가 왔습니다.
브랜드 6랩, 카사딘은 5랩.
저는 강함을 보여주기 위해 파멸의 불덩이를 선물 하기로 했습니다.
운이 좋아 궁이 3방 들어간다면 카사딘은 죽을 것이고,
그렇지 않더라도 카사딘을 우물로 후퇴시켜 목을 축이고 오게끔 하고 싶었습니다.
하루 권장 섭취량은 2리터나 되니까요.
마침 적 미니언들이 포탑에 도착하고 있었고 카사딘은 포탑과 벽 사이에서 매우 위축되어 있었습니다.
오늘의 운세를 시험하기 위해 불타고 있는 카사딘에게 과감하게 궁을 던져보았습니다.
안 되잖아??
궁이 튀질 않습니다.
조금 많이 의아했지만 거리가 멀었나보다 생각하며 넘어갔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금 저의 강함을 보여줘야할 순간이 돌아왔습니다.
카사딘은 이미 무릎이 꺽여있었고, 비틀거리고 있었습니다.
당장에라도 우물로 도망가고 싶은 본능과 남자로서의 자존심 사이에서 갈등하고 있었습니다.
그 순간 카사딘은 두려움을 억지로 떨치려는 듯 궁을 뽐내며 앞으로 나섰습니다.
전 보았습니다. 카사딘의 노란 안광에 눈물이 반짝이고 있었습니다.
eq스턴.
평타와 불기둥.
마침 카사딘의 옆에는 보잘 것 없지만 훌륭한 단백질원인 적 미니언이 두어마리 있었습니다.
이번에는 완벽했습니다.
마치 엘리스와 새끼거미들 마냥 카사딘은 그의 미니언 친구들에게 둘러 싸여 있었습니다.
지체없이 궁을 카사딘 몸에 던져주며 승리를 확신했습니다.
아디오스.
안
되
잖
아!
궁이 튀질 않아!
궁은 마치 처음부터 그런 스킬인 것 처럼 카사딘 몸에 닿더니 사라져버렸습니다.
너무나 자연스럽게. 마치 카사딘이 불덩어리를 몸으로 흡수하는 듯이도 보였습니다.
저는 너무 황당하고 어리둥절하여 카사딘에게 물어보았습니다.
"왜 내 궁이 안 튕겼어??"
카사딘은 눈물을 안들키려 애써 밝은 어조로 대답했습니다.
"옆에 챔피언이 있어야 튕기지ㅋㅋ"
'흔한 브알못이군..'
대꾸할 가치가 없었습니다.
원래대로라면 저 브알못 카사딘은 이 추운 날씨에 입 돌아가는 줄도 모르고
차가운 협곡 바닥에 쓰러져 수족 같던 아군 미니언들을 원망하며 눈을 감았어야 했습니다.
이후에도 번번히 적 미니언이 카사딘과 부비부비를 하고 있는 장면에서도
제 궁은 속절없이 카사딘 몸에 닿기만 하면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그렇게 그 카사딘은 제 고자 궁으로 인해 몇 번이나 반복해서 목숨을 부지하더니
결국 게임에서 승리합니다.
저는 이미 수십만원을 스킨에 질러버려 아직 브랜드 스킨은 없지만, 브랜드 숙련도 7.5k를
자랑하는 브랜드 성애자입니다. 이것은 너무나 확실하게 버그였습니다.
제가 억울함을 호소하자 상대였던 카사딘이 넌지시 말을 건냈습니다.
"아무래도 버그 같은데, 그거 라이엇에 버그 제보해. 그럼 스킨 줌. 개이득."
저는 그런 사람 아닙니다.
비록 스킨이 없어 윗도리도 없이 바지만 입고 다니는 거지 브랜드 유저이지만
버그 제보 한 번 했다고 해서 스킨을 바라거나 하는 사람은 아닙니다.
냉기 심장 브랜드가 있었으면 참 좋겠다고 생각은 하지만 그걸 누구에게 말한 적도 없는 사람입니다.
냉기 심장 브랜드는 그 색감과 디자인이 유년 시절 보았던 베트맨4의 미스터 프리즈를 떠올리게 하는
아주 훌륭한 스킨이라고 생각만 했었습니다.
여튼 이런 버그를 제보하기 위해 사용자게임에서 좀 더 알아보았습니다.
1. 브랜드의 패시브인 '불길'이 붙은 상태에서는 궁이 미니언에게 튕기지 않습니다.
2. '불길'이 적용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정상적으로 궁이 미니언에게도 튕깁니다.
3. '불길' 여부와 상관없이 챔피언들 사이로는 궁이 정상적으로 튕깁니다.
브랜드를 참으로 아끼고 사랑하는 유저로써
이 치명적인 버그가 빨리 알려져서 고쳐졌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원래는 리플레이를 저장하여 스샷을 첨부하고 싶었지만,
어찌된 일인지 리플레이도 실행이 잘 안되어 글로 적어 보았습니다.
이 추운 겨울.
그것도 불금에.
브랜드로 외로움을 불살라 버리고 싶었지만.
그렇게 하지 못해 더욱 쓸쓸한 밤입니다.
모두들 감기 조십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