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가 열 달 산고(産苦)를 거쳐 아이를 낳듯,
우리 양궁 국가대표 선수들도
열 달간 열 번의 대회를 치러 선발됩니다.
그렇다고 아무나 선발전에 참가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 국가대표 선발전 참가 자격은
2007년 남녀 랭킹 100위 까지 에게만 주어집니다.
그런데 이 100등 안에 들어가는 것부터가 무척 치열합니다.
보통 한 달에 한두 번씩 전국대회가 열리는데,
여기서 2주일만 훈련을 소홀히 해도
바로 100등 밖으로 밀립니다.
국내에서 남녀 랭킹 80등 정도 하면
세계 랭킹 5위 안에 듭니다.
이런 선수들이 100명씩 모여
열 달간 열 번의 대회를 치르는 겁니다.
그 열 번의 대회가
똑같은 방식으로 치러지는 것도 아닙니다.
1차전은 체력이 좋은 선수가
기록이 잘 나오도록 대회 방식을 만들어놨습니다.
2차전은 정신력이 뛰어난 선수를 가려내기 위한 방식입니다.
11월 강원도에서 대회를 치르는데,
선수들은 닷새간 얇은 티셔츠 한 장만 입고
아침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밖에서 경기를 합니다.
11월의 강원도는 춥습니다.
비라도 오면 손가락이 곱아 감각조차 없어집니다.
한마디로 정신력 싸움인 겁니다.
3차전은 담력,
4차전은 집중력,
5차전은 근성,
6차전은 환경 변화에 대한 적응력,
이런 식으로 대회마다 다른 목적을 가지고 치릅니다.
7차전은 최종 8명에서 4명이 남는 대회이기 때문에
선수들은 한 발 한 발에 엄청난 압박감을 느낍니다.
그래서 이를 잘 극복하는 선수가
좋은 점수를 받도록 경기방식을 만들었습니다.
이렇게 7차전이 끝나면 100명에서 남녀 각 4명이 남습니다.
이 선수들이 국내 대회 한 번, 국제대회 두 번을 더 치릅니다.
국내 대회에서는 잘하는데
국제대회에만 나가면 헤매는 선수가 있거든요.
그렇게 나머지 한 명을 걸러내면
최종적으로 남녀 각 3명이 올림픽 대표선수가 됩니다.
그런데 환경 변화에 적응력이 뛰어난 선수를
어떻게 뽑는지 궁금하시죠?
간단합니다.
7월에 대회를 치르는데,
먼저 기상청에 문의해
태풍이 올라오는 날짜를 뽑아달라고 요청합니다.
그 자료를 통해 태풍이 올 가능성이
가장 높은 날짜를 넣어 일정을 잡습니다.
그럼 대회가 열리는 닷새간
무조건 하루는 걸리게 돼 있거든요.
지난해 대회 때,
누구라고 하면 다 알 정도의 간판급 스타선수가 있었습니다.
그 선수가 시위를 당기기 위해 섰습니다.
비바람이 몰아치고, 물은 발목까지 차오르고….
이럴 때 활을 쏠 수 있겠습니까?
조준 자체가 안 됩니다.
그런데 제한시간은 흘러갑니다.
이때의 갈등은 말도 못하죠.
그러다 선수가 순간적으로
바람이 잦아드는 듯한 느낌을 받았나 봅니다.
쐈거든요.
한데 바로 그 순간 ‘빠방’ 하면서 천둥이 쳤고,
그 선수가 깜짝 놀라 0점을 쏴버리고 말았습니다.
올림픽 2관왕에 세계선수권 2관왕, 아시안게임 2관왕.
누가 봐도 세계적인 스타인데
그 한 발 때문에 국가대표에서 탈락했습니다.
긴 안목으로 보면 원칙을 지키는 게 옳습니다.
그 덕에 고등학교 1학년의 어린 선수가
여자 4명이 남는 단계까지 올라왔습니다.
무명 선수도, 나이 어린 선수도
열심히 하면 국가대표가 될 수 있다는
강력한 동기부여가 된 셈입니다.
앞서 말씀드렸듯, 어느 선수라도
‘그 자리에 서면 해낼 수 있는’
능력을 기르기 위해 많은 훈련을 합니다.
양궁팀이 공수특전단에서 훈련을 한다는 사실은 잘 아실 겁니다.
한 달 전엔 북파공작원이 훈련했던 HID에 다녀왔습니다.
그런 곳에 가면 여자선수들은 기절 직전까지 갑니다.
남자선수들도 팬티에 오줌을 쌀 정도니까요.
올림픽 한두 달 전에는
경기에 대한 부담감 때문에 불면증에 시달리는 선수가 많습니다.
그럼 우리는 선수들을 서부 최전선 부대에 데려갑니다.
군복 입고 철모 쓰고 실탄 지급받고 GOP로 들어가
경계근무를 서게 되죠.
이걸 왜 하느냐.
밤새 자기성찰 시간을 가지면서
복잡한 머릿속을 단순화하자는 의도입니다.
그래서 이 훈련을 하고 나면
정말 머릿속이 단순해집니다.
아무 생각 없이 잠도 잘 자거든요.
그러다 또 생각이 복잡해지면 다시 집어넣습니다.
그런데 지도자들은 뒷전에서 놀며
“야, 너희들 갔다와”
이러면 선수들이 제대로 하겠습니까?
지도자들도 똑같이 군복 갈아입고 들어갑니다.
지난해 12월 20일에는 제주도에 갔습니다.
밤 9시에 앞뒤 사람 간격을 1km로 두고 출발해
1100도로를 거쳐 중문, 서귀포로 해서 표선까지 걸었습니다.
11시간 걸렸습니다.
표선에 도착해 오전 11시경 아침 겸 점심을 먹고
선수들을 버스에 태워 관광을 시키는데,
이게 실은 선수들 잠 못 자게 괴롭히는 겁니다.
밤새 걸었기 때문에 차에 태우면 얼마나 잠이 오겠습니까?
잠이 들 만하면 “하차!”,
찬바람 맞고 잠 다 깨면 5분쯤 뒤에 “승차!”
이렇게 온종일 계속하면 남자든 여자든 반은 미쳐버립니다.
그런데 선수들이 왜 화를 못 내는지 아십니까?
지도자든 감독이든 자기들과 똑같이 하기 때문입니다.
만약 감독이 자기는 잠자면서 선수들에겐
“야, 내렸다 타” 이랬다면
쿠데타가 나도 몇 번은 났을 겁니다.
똑같이 하니까 화도 못 내고,
자신에 대한 울분만 풀어내는 겁니다.
그렇게 돌다가 22일 새벽 4시에 다시 표선에 도착했습니다.
30분간 밤참 먹고, 새벽 4시40분부터 다시 걸었습니다.
앞뒤 사람 1km 간격으로 세워 한라산 정상까지 갔습니다.
당시 최연소 선수가 중학교 3학년이었습니다.
우리가 표선에서 출발할 때는 비가 왔는데
한라산을 3분의 2쯤 올라가니
눈보라로 바뀌어 앞이 안 보일 정도였습니다.
이 어린 선수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엄마, 엄마” 하면서 막 울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코치들이 옆에 붙어
“하나 둘, 하나 둘” 격려하며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그 어린 선수도 결국 한라산 정상까지 갔습니다.
한 사람의 낙오자도 없이 전원이
잠 한 숨 안자고 무박3일 훈련을 소화해낸 겁니다.
우리 민족을 동이족(東夷族)이라 합니다.
동쪽의 활을 잘 쏘는 민족이라는 뜻입니다.
한국 양궁의 성공이 과연 타고난 기질 덕분일까요?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한국 양궁의 성공은 뼈를 깎는 노력과 치밀한 전략의 결과입니다.
아무리 작은 일이라도 동반자가 필요합니다.
가장 조화로운 분위기에서
최고의 결과를 기대할 수 있는 겁니다.
서로 강점을 인정하고 약점을 보완하면서
성취를 이뤄가는 것이 함께 성장하고 승리하는
윈-윈 파트너십입니다.
개인이 좀더 나은 삶의 질을 창출하려 노력할 때
자기가 몸담은 조직도 글로벌 조직으로 커갈 수 있습니다.
바로 이런 동반자 정신, 주인의식을 가져야 합니다.
양궁도 마찬가지입니다.
선수가 너무 힘들다 보면
“그래, 나 하나 금메달 포기하면 되지” 하는
상황까지 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건 선수 개인이 금메달을 놓친 게 아니라
대한민국 양궁, 나아가 우리 한국 선수단이
금메달을 놓친 게 됩니다.
그래서 주인의식과 동반자 정신이 필요한 겁니다.
오늘 하루가 저물어가고 있습니다.
오늘은 우리에게 남은 인생의 첫날이었습니다.
두 번 다시 오지 않죠.
그래서 우리 선수들에게 늘 말합니다.
매순간 살아가는 의미와,
무엇이 돼야 하고 무엇을 이룰 것인지를 생각해보라고 말입니다.
살다 보면 어제가 오늘 같고,
오늘이 내일 같고, 내일도 모레 같고…,
그렇게 어영부영 지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차’ 하면 누구나 그런 삶을 살게 됩니다.
그러나 이는 실패한 삶입니다.
끊임없이 위기의식을 갖는 게 필요합니다.
저는 선수와 지도자들에게 세 가지를 부탁합니다.
첫째, 매순간이 승부다.
둘째, 우리는 진정한 프로페셔널이다.
그러니 프로정신과 프로 근성으로 살아라.
셋째, 적어도 조직을 관리하는 리더라면
자기가 있어야 할 그 시간에 바로 그곳에 있어야 한다.
우리 선수들은 20대 초반에서 30대 초반까지
약 10년간 운동선수로서의 인생에 마지막 승부수를 펼칩니다.
단 두 번의 기회가 주어질 뿐입니다.
두 번의 올림픽입니다.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그 10년간
집중해서 파고들면 다들 경지에 오릅니다.
그런 꿈과 희망을 갖고 인생의 승부를 거는 겁니다.
- 서거원 전 양궁 국가대표 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