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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살 여자의 인생 풀어내기
게시물ID : humorbest_647266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익명ampkY
추천 : 179
조회수 : 12255회
댓글수 : 44개
베스트 등록시간 : 2013/03/19 17:02:23
원본글 작성시간 : 2013/03/19 15:30:49

어딘가에는 풀어내고 싶은, 담담하게 일기처럼 정리해 적어보고 싶은 서른살 여자의 주절거림.

 

84년 가난한 집의 첫째딸로 태어났다.

시작부터 진부하다.

 

얼마나 고생을 시키려고 한건지 나는 8개월만에 양수가 터져 급하게 세상에 나왔다.

2키로 남짓으로 나와 인큐베이터에 들어가려던 나를

아빠는 분명 나와 눈이 마주쳤다고 굳이굳이 집으로 데리고 오셨다.

그래서 내가 아직도 반올림해야 155cm다. 라고 아빠한테 항의하고는 한다.

그렇다고 십개월 다 채운 내 동생이 큰건 아니다. 159cm.

 

나는 몸이 약하고 약한만큼 까탈스러웠다고 한다.

우유도 조금먹고 버리고 (지금은 식신에 가깝게 먹는다)

하루에 면 기저귀를 스무개씩 빨았어야 하고

업고 앉으면 울고 둥가둥가를 해줘야 안울었다고 한다.

진짜 피곤한 스타일이다.

딸 낳으면 엄마 닮는다는데, 그래서 난 결혼 안하는거다. 진짜다.

 

말은 또래보다 엄청 빨랐는데, 걸음마는 두살 아래인 동생하고 비슷하게 걸었다고 한다.

지금도 내 몸인데 내 마음대로 움직이는게 가장 힘든것 같다. 몸치라는 말임. 운동못함.

 

2년뒤 동생 태어남. 여자. 10개월 꼭 채우고 순산+우유 원샷+쉬야 한방이라는 모태 효녀

 

그 후로 3년 뒤 동생 또 태어남. 남자.

집 대문앞에 금줄 치고 난리남.

 

7세, 고부갈등으로 시댁에서 분가

이제와 알았지만 할머니는 엄마를 묶어놓고 때리고 기절하면 물부어서 깨웠다고 한다.

엄마는 집을 나가려다가도 내가 눈에 밟혀 못갔다고 하신다.

그때 그냥 가시지..가서 행복하게 사시지.

 

남동생, 또래가 단어를 겨우 말할때 문장을 구사

그러나 3살 무렵 불러도 대답이 없고 눈빛이 멍함.

자폐증+정신지체 판정.

 

초등학교 고학년까지 나는 영재소리 듣고 자람

따로 아무 공부 안해도 늘 백점

아이큐 검사해도 늘 상위 1%

그때 제대로 못 잡아준게 너무 속상하다고 하심.

다른 애들에게 10 만큼의 노력을 요하는 과업이라면, 나에게는 1만큼의 노력이 필요했고

왜 노력해야 하는지 어떻게 노력해야 하는지 몰랐던 나는 고등학교때 곤두박질 침.

 

무튼, 막내동생의 자폐로 인해 나는 빨리 어른이 되어야 했음.

몸도 약하고 체구도 작았던 나는 초등학교때 따돌림도 당함.

그 때 일기 보면 그 나이에 항상 죽고싶다고 써 있음.

12세때는 크게 다쳐 병실에 몇개월간 누워 지냄.

무섭고 외로운 1인 병실에서 기저귀차고 혼자 지냄.

아빠는 돈벌어야 하고, 엄마는 막내동생 특수교육을 다니셔야 했기 때문.

 

공부한자 안하고도 중학교도 상위권 입학, 유지함

그러나 고등학교때 실업계가서 내신 잘받아 대학가겠다고 우겨 실업계 진학.

미끄러짐.

공부 분위기가 이래서 중요한거임.

 

여기서 잠깐

특별히 꿈이 있거나 재능이 있거나 한 친구들 아니면

무조건 공부가 답임. 제일 쉽고 빠른길이며, 나중에 무얼 하든 선택이란걸 할 수 있음.

공부라도 안 해 놓으면 선택권 조차 주어지지 않음.

 

우리 부모님이 훌륭하신게 보통 시골동네에서 그런 장애아가 나오면 집안에 숨겨둠

그러나 우리 부모님은 절대 부끄러워 하지도, 숨기지도 않으셨음

그래서 우리 또한 동생을 엄청 예뻐함.

 

나는 철딱서니 없이 고등학교때 미끄러짐. 지잡대 감.

그냥 졸업장만 자격증 따듯이 땀

 

아무리 발버둥쳐도 한계라는게 있듯 우리 가족 모두 뼈빠지게 노력했지만 생활유지도 어려웠음

돈이 돈을 버는거임.

종잣돈조차 없고 모을 수 있는 돈도 환경도 아무것도 없이 우린 그렇게 삼.

 

막내동생을 시설에 맡겨보려 했으나 다 거절당하고 겨우겨우 집에서 네시간걸리는곳에 입소했으나

한달에 십키로가 빠지고 밝던 아이가 비쩍 마르고 표정이 없고 손톱끝부터 머리끝 발 끝까지 쥐어뜯기고 뾰족한걸로 찍힌 상처 발견

 

항의고 뭐고 통하지 않음. 우리 말고도 거기 보내려는 사람들은 많았으니.

 

결국 아빠는 시설을 설립하시기로 함.

근데 될리가 없음

엄마 아빠 모두 학력도 환경도 받쳐주지 않았고, 해본적도 없음

그야말로 가진건 맨 몸뚱이 하나

 

일단 나부터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취득함.

그리고 빚을 냄. 장애아동을 모집함.

소외된, 다른 시설에 갈 수 없는, 그런 아이들을 받음.

우리가 아니면 안돼는.

 

그냥 우리 집을 시설로 인가내고 우리 집에 같이 삼.

이건 내 몫이었음.

그 어린 나이에, 24시간을 매일같이 삼시세끼 해 먹이고 애들하고 씨름하는건 보통일이 아니었음

각자 입맛이 달라 안먹으면 죽어도 안먹는 애들이라 삼시세끼 다른 메뉴에

숟가락질 못하는 애들 떠 먹여주고 배변 못가리는 애들 시간맞춰 배변 시키고

먹이고 씻기고 치우고의 반복이었음.

 

하루가 어떻게 가는지도 모를만큼.

 

나도 미쳐가기 시작함

 

어떤날은 막내동생하고 싸움

싸웠다기 보다는 장애는 장애로 받아들이고 이해해야 하는데, 마음의 여유가 없던 내가 엄청 화내고 노발대발함

자폐증은 감정 표현이 없음 눈물흘리며 우는법도 없음

근데 그날 막내가 눈물흘리며 움

지금도 생각하면 자동으로 눈물이 뚝뚝 떨어짐.

 

다시 마음을 다 잡음

 

그때 우리 아빠는 전국 방방 곡곡을 돌아다니며 가르쳐만 주시라고 머리를 숙이심

컴퓨터 부팅도 할 줄 모르던 분이....

책상도 없어 좌식으로 항상 하셔서 복숭아뼈 있는데 피부가 다 까짐

내가 좀 더 도와드렸으면 되는데, 나는 더 빨리 할 수 있는데

전혀 아무것도 모르시다 보니 아빠는 더 오래 걸리셨음 훨씬..

 

고시원생활도 하셨는데 돈 아끼신다고 학교는 물론 걸어다니시고 냉동밥, 냉동국을 보내드리면 그거 드시고 쪽방에서 주무심.

 

그리고 아빠가 드디어 시설을 설립하심!!!

그냥 아주 작은 임대아파트에 인가만 난 거였지만 그래도 너무 기뻤음

 

그때도 난 철없이 나 고생했으니까 이제 놔달라고 매정하게 가족을 버리고 나감

 

나가서 혼자 돈벌어 쓰고 다님.

그러다 어느날 고속터미널에서 혼자 밥먹는 아저씨 뒷모습을 보고 그자리에 주저앉아 펑펑 움.

이게 우리 아빠구나 싶어서..

그게 스물 네살임

 

막내하고 나는 둘이 엄청 친했음

둘이 손잡고 잘 돌아다님.

대부분은 호의적으로 대하거나 그냥 무관심이지만, 가끔 못된사람들은 장애인 비하 발언을하며 깔보기도 함.

내 성격 또한 만만치 않으나 막내가 관련되면 나는 말 못하고 펑펑 울기만 함.

 

스물다섯살

다시 집으로 소환됨

나 좀 살려달라고 울고불고 빌었으나 결국 가족에게 돌아와 그때 그 생활이 반복됨

 

서로에게 생채기 내는일도 많았음

서로서로 마음의 여유가 없다보니 그럴 수 밖에 없었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마음이 아픔.

지금도 그때 상처되는 말 했던거 생각하면 너무 죄송해서 눈물남.

 

그리고 25살 초반 내 생에 첫사랑이 시작됨

 

당시 나는 우울증에 찌들어 있었음

물론 지금도

성격쎄고 자유분방하고 멋대로 걱정없이 사는것 같이 보였겠지만

사실 항상 죽고싶어 했음

 

목표 꿈 뭐 이런거 당연히 없고 짜증+예민+무기력으로

일상활동 하나하나가 다 힘든 과제처럼 나를 짓누르는 짐처럼 느껴질만큼.

 

그런데 그걸 누구한테 덧씌우겠음 나의 짐인걸

 

그 사람은 화목하고 부유한 집안에서 곱게 자라 공부 잘하고 똑똑하고 건강한 생각을 하며 바르게만 자라온 사람이었음

애초부터 나랑 맞지 않는다고 생각함. 욕심은 낫지만 욕심난다고 그 사람을 힘들게 할 일을 하고싶지는 않았음. 거절함.

그러나 그 사람의 대쉬로 사귀게 됨.

 

정말 살면서 행복이 뭔지, 사랑받는게 뭔지, 사랑하는게 뭔지 세상이 이토록 아름다운지 그때 다 느껴봄

그때 사진보면 다 웃고있고, 행복에 겨워 어쩔줄 모르는게 느껴질 정도로.

 

나라면 맨날 짜증내고 마음에 없는 소리하고 울고 감정변화 심하고 우울증에 죽고싶다고 발악하는 사람

놔버리면 그만인데, 그 사람은 끝까지 나를 잡아줌.

귀찮아하고 찌푸리긴 커녕 예를들어 내가 짜증나 오늘 빨래도 해야돼 설거지도 해야돼 왜 일찍 일어나야돼 짜증나 라고 말도 안돼는 짜증 부리면

ㅇㅇ야, 괜찮아. 오늘은 빨래만 하자 그것만해도 큰 일이야. 하루에 하나씩 한다고 생각해보자. 라고 말하고, 기분좋게 모닝콜 해주는 사람이었음.

 

맘에 없는 말로 상처주고, 당시 우리는 장거리였는데 별거 아닌걸로 불같이 화내고 ㅈㄹ떨어도 장대비를 다 맞고 집 앞에서 기다려주고

한참 버티다 얼굴만 보여도 고맙다고 말하며 안아주던.

 

나는 점점 좋아졌음.

나중에는 진취적이고 긍적적이고 다른 사람처럼 변함.

 

서로 서로 윈윈하려고 많이 노력함.

도서관 다니고 책보고 카페에서도 공부하고..

그애는 만나는동안 학점을 만점 가까이 올려 장학금을 받았고, 나는 자격증 시험과 국가시험에 합격함.

 

이년쯤 지나 나는 집에서 독립함. 장거리 청산하고 그애 집 근처로 이사를 옴.

그애는 학생이었고 나 또한 거기서 받는 월급으로 방세내고 살기에 빠듯했지만

둘이 아껴가며 가계부쓰고, 공부하고, 시내버스 타고 혹은 날 좋은날 운동화신고 돌아다니면서

너무너무 행복했음.

 

다른 누군가에게 관심이 간 적도 없었고 권태기가 오지도 않았음.

 

아, 우리는 법적으로 결혼할 수가 없는 사이었음.

그렇기에 더 잘 되어야 한다고 서로서로 공부하며 인생 계획을 그렸음.

시간,주,월,년단위 목표 설정해두고 차근차근 준비하자고..

 

그리고 우리는

4년째에 헤어짐..

 

나는 항상 만나는동안도 혹시라도 마음이 다하면, 정말 혹시라도 다하면 그때는 죄책감없이 떠나라고

항상 죽으려고 생각한 나에게 세상이 얼마나 행복한지 보여주겠다고 말하며 정말 그걸 이루어준 그것만으로 충분하다고 했었음

 

어떤날은 싸우고나서 화장실에서 갑자기 부르는거임

아 뭔데 하고 갔더니 따뜻한 물을 받아놓고 발을 씻겨줌

 

하루종일 구두때문에 발 아팠지? 그것도 모르고 미안해 나한테 예쁘게 보이려고 한건데 얼른 차가 생기면 좋겠다 라고 웃으며 발을 씻겨주는 그 애를 안고 펑펑 움

나는 이런 행복을 받을 자격이 없는데 이상하다고, 혹시 네가 나중에 떠나는게 벌일까봐 겁난다고.

 

그런 그 애가 진짜 떠남.

나는 아직도 마음이 아픈게, 자기 마음이 식어가는걸 알면서 얼마나 힘들었을까

아직도 자기만을 바라보며 사랑하는 나를 보면서

다시 불타지 않는 자기 자신을 얼마나 채찍질 했을까 생각하면 마음이 아픔.

 

결국 우리는 헤어졌고, 나는 그렇게 그 애를 보내줌.

착하고 마음약한 그애는 내가 울며 빌면, 혹은 얍삽한 말로 설득하면

다시 돌아오거나 친구로 지낼수 있었겠지만,

나는 그냥 다 잊고 행복하길 바랬음.

 

다만 그 이후로 나는 전보다 더 망가짐

몸과 마음이 다 무너짐

 

소주 한잔도 못마시던 내가 밤새 술마시고 토하는일이 반복

이사람 저사람 만나고 다니고 눈 떠 있는 시간은 모두 울고 자면서도 울었음

그래도 독하게 연락한번 안했음

 

너무 보고싶은 날엔 집 근처 먼 발치에서 가만히 집을 바라보다가 돌아옴

 

그렇게 2년동안 나는 껍데기만 그대로(좀 삭은)인 채 다른사람처럼 변함.

사람에게 정을 주는걸 겁내하고, 주지 않음

혹시 정이 들었다가도 겁내고 밀어냄

사람만나고 연락하는거 좋아했던 나는 이제 거의 모든 사람을 끊음

그나마 있는 사람도 안만나고 연락하지 않음.

 

누군가 잃는 아픔을 또 겪는게 끔찍함.

혼자 그냥 정말 숨만붙어서 삼.

꿈도 희망도 목표도 없음. 그냥 그러고 삼.

잘 안웃음. 사회적이지 못함.

짜증도 많고 부정적이고 예민하고 까칠함.

오늘 자면 내일 깨어나지 않길 이라는 생각을 매일 함.

자살하지 않는건 내가 죽으면 슬퍼할 가족들이 있어 짐을 지우고 싶지 않음.

엄마나 아빠랑 통화하면서 "나 잘지내" 라고 말하고 끊고나면 눈물이 많이 남.

 

가족에 대한 애착이 늘었음.

엄마와는 친구처럼 지내는데, 엄마도 여자구나 하고 느껴짐. 엄마 또한 약하신 분인데

엄마라는 이름으로 너무 모진 세월을 견디었구나 싶음.

매일 통화하고 힐링되는 글귀들 손편지로 보내주기도 하고 때때로 좋아할만한 선물도 사드리고

언젠가 한번 같이 밥먹고 영화봤는데 그냥 애슐리가서 밥먹고 영화본건데

이런데가 있었냐고 신기해하시고, 너무 너무 즐거웠다고 다음에 아빠랑 같이 오자고 하는데

눈물이 핑 돔.

나는 아무렇지도 않게 누리는 것들인데..

 

한번은 가까운데로 가족여행을 감.

환갑이신 아빠가 아이처럼 좋아서 어쩔줄 모르심.

그냥 평범한 펜션이었는데 너무 너무 좋다고 하시며 실내스파에 거품을 처음 풀어보셔서 거품 천장에 닿을뻔함ㅋㅋㅋㅋㅋㅋ

삼십만원이었는데 몰래 삼십만원을 쥐어주심. 우리 딸 밖에서 서럽지 말라고.

 

내가 편하게 누리고 산 만큼 엄마아빠는 더 힘들고 가난하셨던거임.

 

그걸 왜 이제야 알았을까 싶음.

 

아, 우리 막내는 20살 이후 경기를 시작했는데 1년에 한두번 발작적으로 일어남

원인도 모르고 약도 없음. 그때 못 깨어나면 그냥 그대로 천사가 되는건데, 다행히 몇번의 고비를 넘김.

그리고 복용하는 약의 부작용으로 살이 엄청 찜. 내 눈엔 아직도 애기같고 귀엽기만 한데

객관적으로 보면 복부비만 청년일뿐ㅋㅋㅋ

 

그리고 우리 아빠, 엄마는 "착하게만 살면 다 잘된다" 는 말의 표본처럼

돈욕심 안부리고 무료 입소에 선물같은거 들어오면 다 애들 나눠주고, 가정방문해서 어려운 집 있으면 그 집 도와주고,

우리도 빚갚느라 힘들면서 저 집 먼저라고 챙겨주고 정말 내 자식처럼 챙겨주심.

 

아무리해도 발전 가능성이 안보이던 애들이 외적, 내적으로 눈에 띄게 발전하고

시설 규모도 조금 커짐.

 

우리 아빠는 작년에 환갑을 지나심.

돋보기 쓰시고 마르신 모습을 보면 너무 안쓰러움.

내 나이 서른에 엄마아빠한테 해 드리지는 못할망정

한달벌어 한달 먹고 사는 내가 한심함.

 

근데도 아빠는 괜찮다고 다독여 주시고

더 못해줘서 미안하다고 하심.

 

가끔 내가 집에 간다고 하면 제일 맛있는걸로, 좋아하는걸로만 상 차려주시고 챙겨주심.

난 결단코 날씬은 커녕 잘봐줘야 통통인데 왜 이리 말랐냐고도 하심.

 

백키로가 되어도 건강만 하라는데 백키로면 안 건강함.

 

시집가라고 하면서도 막상 결혼하면 눈물나서 식장에 못 들어설 것 같다고 하심.

 

 

 

우리 엄마는 최강동안에 최고 예쁨

여자로써 존경함

나는 미용실도 몇년에 한번가고 꾸미는것도 별 관심 없는데 엄마는 잘 꾸미시고 워낙 본판이 되어서인지

삼만원짜리 들어도 삼백짜리 같은 포스가 풍기심.

 

최근들어 갱년이 우울증이 오셨다고 해서 영양제 보내드렸더니 딸 키운 보람있다고 하시며

언제나 마무리는 사위 데려오라고.....

 

나 시집안가고 엄마랑 살래 라고 했다가 등짝 스파이크 맞음

 

둘째동생에 대한 얘기가 없는데 얘는 난뇬임.

첫째가 딸 둘째가 딸 막내가 아들

첫째 아픔, 반항적임

막내 아픔

 

자연스레 알아서 척척 잘하는 둘째에게 보살핌이 덜했음

아니, 그렇다고 느껴질 수 밖에 없음.

 

한땐 그 설움을 너무 과격하게 표현해 집에서도 거의 미칠 뻔 했으나

지금은 제정신 돌아옴

 

항상 노력하고 공부하고 발전적이고 아주 사회적임.

나를 보면 아주 한심해함................ㅋㅋㅋㅋㅋㅋ

빈둥거리고 지멋대로 살고 할말 다 하고 산다고

 

아님...

아님.......

 

그치만 역시 나보다는 난뇬임.

 

그리고 나는 올해 서른살이 됨

최근들어 마음아팠던 일은

첫사랑 이후 나는 마음을 아주 닫았음.

그리고 내 첫사랑은 나랑 법적으로 결혼할 수 없는 사람이었음(오유인들은 이해할꺼라 봄)

그냥 그 애만 그리워하며 살고있었음

버려도 버려도 기억은 버려지지가 않았음

 

근데 그 이후로 처음 남자사람을 좋아하게 됨

오래된 여자친구가 있는 사람이었음.

당연히 처음엔 밀어냄

내가 그 여자친구 입장이라면 얼마나 속상할 일이며,

그사람과 내가 잘 된다고 해도

신뢰가 쌓일리 만무함.

 

양다리 바람 등등 이해 못할 일이며, 설렘은 오래가지 않는법임.

 

하지만 지속적인 표현에 나도 많이 흔들렸음.

그리고 결국 사고를 쳤음.

남자사람과의 처음 사고였음

 

다른 무엇보다 내가 그간 지켜온 신념이 무너졌다는거에 너무 힘들었음

내 자신이 너무 더럽고 그동안 깨끗한 척 했구나 싶고

나도 같은 쓰레기구나 싶었음.

 

그리고 진부한 스토리처럼

매일같이 전화하고 카톡하고 만나자고 하던 사람이, 매일같이 스킨쉽하고 애정넘치던 사람이, 밤중에라도 달려오던 사람이

그 이후로 개인적인 연락도, 만남도 없음.

당연히 달려오는일도 없고, 애정을 느낄수도 없음.

 

속상하고 서럽고 서운한데 더 허탈한건

그래 내가 그렇지 뭐, ㅄ같은ㄴ 이라고 생각하며

점점 더 사람에대해 포기하고 체념하고 숨게되는거..

 

이렇게 한심하게 살으라고 우리 엄마 아빠가 그렇게 고생하고 날 공주처럼 예뻐해 주신게 아닌데

내가 너무너무 싫어서 미칠 것 같음.

 

사라졌음 좋겠음.

누구에게도 도움이 못돼는 내가, 사랑받지도 주지도 못하는 내가.

 

물론 엄마 아빠에게는 정말 잘하려고 노력하고, 엄마 아빠 또한 힘이 많이 된다고

장녀는 장녀라고 해주시지만

그래도 내가 더 의지하는게 많고 도움받는게 훨씬 많음.

더하기 빼기 하면 엄마 아빠가 훨씬 손해보시는거임.

 

그래서 그냥 내가 사라지면 좋겠다는 생각이 듬.

 

사회적으로 꽉 찬 서른인 나는

아직도 그냥 한달벌어 한달 먹고 사는 꿈도 미래도 없고 친구도 애인도 없고 철도 없고

그리 착하지도 못됐지도 않고 별다른 개념도 생각도 없고 장점도 없는 그저 그런 잉여, 그야말로 남는 인력일 뿐임.

이제 더 나이드시면 더 아프시고 힘드실 부모님 모셔야 하는데, 그럴 능력도 없는, 이미 늦어 가능성도 없는..

나이들어 짐만 되는 자식임.

같이 우울증 앓던 언니가 어느날 "자살해도 일정 금액을 주는 보험이 있대" 라고 말해줌.

 

결과적으로는 안들었음.

정말 내가 죽을까봐

정신이 불안정한 내가 어느날 이겨내지 못하고 죽을까봐.

 

이런 내 모습을 온전히 알고 사랑해준 한 사람, 그 사람 말고는 아무도 모름

 

그냥 철없고 성깔있는 여자사람으로 보여짐.

의도치않게 그냥 그런 가면이 씌워졌고, 굳이 어필하고 싶지 않음

그냥 나는 모든게 이대로 흘러가고, 튀고싶지 않음.

 

 

 

 

구구절절 풀 이야기들이 더 많은데 지금도 너무 김.

요점도 없이 그냥 어디 털어놓고 싶었던 이야기들이 자기비하로 끝남.

 

음슴체인 이유는 조금이라도 가볍게 보이고 싶어서 라는 무의식 자아가 쓴 듯

 

매일 같은 시간에 일어나고 같은 시간에 같은 일을 순서대로 함.

 

즉 일곱시에 일어나 순서대로 씻고 옷입고 준비하고 회사에서 순서대로 일을 하고 퇴근하여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일을 하고 네다섯시간을 뒤척이면 겨우 두세시간 잠. 불면증임

 

그리고 엄마한테 전화가 오면 아주 밝게 이야기 하는것..

 

응, 나 잘지내 엄마. 걱정하지마..

 

그냥, 나는

모두가 행복했으면 좋겠음.

 

그냥 가난한 집 첫째딸로 태어나 자폐증인 동생있고 이리저리 치이고 몸도 크게 다치고 엄마, 아빠, 막내도 큰 사고 한번씩 당하시고 지금도 아프시고 수술도 하시고 빚도 많은 30년 동성애자로 살다가 서른에 처음으로 좋아한 남자와 사고치고 까인 내가 가끔 그래도 난 행복하다 라고 느낄때는 나보다 못한 사람과 비교할때도 아니고, 허황된 꿈을 꿀때도 아닌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고, 내가 울면 안아줄 가족이 있고, 이렇게 못난 나라도 감싸주시는 부모님이 계시다는거.

 

정말 살기 힘든 세상에서 금요일 일에 치어 지쳐 토할것 같은 몸으로 한껏 예민해 진 채 집에 들어섰을때, 그 늦은 시간까지 불을 켜두고 집 앞까지 마중나온 부모님을 볼때 모든 피로가 씻기고 웃음이 나고 행복감이 차 오르는 순간이 있다는거..

 

 

 

나보다 더 한 환경에 처한 사람도, 혹은 모든걸 다 가진것처럼 보이지만 힘든 사람도 있을꺼임.

더 한 환경에 처한 사람은 저까짓걸 가지고 라고 말 할 수 있고,

다 가진것처럼 보이는 사람은 나도 힘든데 라고 할 수 있음

 

누구나가 다 힘들고 지치는게 세상사임.

 

돈 명예 뭐 외모 뭐 진짜 다 가진 사람 붙들고 물어봐도

망설임없이 난 행복해 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겠음?

 

누구나 다 그런거임.

누구나 다 힘든 삶 속에서 작은 행복들이 곳곳에 숨어있고, 그 행복을 키우는 것 또한 본인 몫임.

 

지금 당장 지치는 사람들에게 무라카미 하루키-무라카미 라디오에 나오는 글을 소개해 주고 싶음.

 

그렇게 특별하다 믿었던 자신이
평범은 커녕 아예 무능력하다고 느끼는 순간이 있고

쳐다보는 것 만으로도 설레이던 이성으로 부터
지루함을 느끼는 순간이 있고

분신인듯 잘 맞던 친구로부터
정이 뚝 떨어지는 순간이 있고

소름돋던 노래가 지겨워지는 순간이 있고

자기가 사랑하는 모든것이
그저 짝사랑에 불과하다고 느끼는 순간도 있다

삶에 대한 욕망이나 야망 따위가
시들어 버리는 순간이 있는가 하면
삶이 치명적일 정도로
무의미하게 다가오는 순간 또한 있다

우리는 여지껏 느꼈던
평생 간직하고 싶던 그 감정은 무시한채
영원할것 같이 아름답고 순수하던
감정이 다 타버려
날아가는 순간에만 매달려 절망에 빠지곤 한다

순간은 지나가도록 약속되어 있고
지나간 모든것은 잊혀지게 마련이다
어차피 잊혀질 모든 만사를 얹고
왜 굳이 이렇게까지 힘들어하며 사냐는게 아니다

어차피 잊혀질테니, 절망하지 말라는거다.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해서 힘든 사람들에게는 이 시를 소개해 주고 싶음

 

양애경-교차로에서 만나다

 

우리가 사랑하면 같은 길을 가는 거라고 믿었지 한 차에 타고 나란히 같은 전경을 바라보는 거라고

그런데 그게 아니었나 봐 너는 네 길을 따라 흐르고 나는 내 길을 따라 흐르다 우연히 한 교차로에서 멈춰서면

서로 차창을 내리고 - 안녕 보고 싶었어, 라고 말하는 것도 사랑인가 봐

사랑은 하나만 있는 것도 아니고 영원히 계속되지도 않고 그렇다고 그렇게 쉽게 끊어지는 끈도 아니고

이걸 알게 되기까지 왜 그리 오래 걸렸을까 오래 고통스러웠지

아, 신호가 바뀌었군 다음 만날 지점이 이 生이 아닐지라도 잘 가, 내 사랑 다시 만날 때까지 잘 지내 <style></style>

 

 

 

 

 

 

 

 

 

 

 

마무리 이상한거 나도 암.

글 속의 내용으로 나를 유츄할 수 있는것들이 많아보여 언제 또 변덕이 불어 지울지 모르고

이 길고 지루한 글을 누가 읽기나 할까 싶지만

끝에 있는 시라도 누군가 읽고 힘이 된다면 좋겠음.

 

금요일 퇴근시간 같은 날들 보내시길. <style></sty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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