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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도다완이니 하는 것들은 그당시 일본의 문화예술 수준을 보여
게시물ID : history_6452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realgura
추천 : 4
조회수 : 670회
댓글수 : 3개
등록시간 : 2012/11/24 10:02:25






주는 하나의 예일 뿐입니다. 오랜 내전기간을 거치면서 문화,예술적으로 상당히 뒤떨어져있었던 그당시 일본의 상황을 보여주는 것이죠.    

실제로 임진왜란 이후에 일본에 끌려간 조선도공들은 백자의 자체생산에 굉장한 노력과 돈을 투입했고 결국에는 조선도공인 이삼평이 고령토를 찾아내서 백자 생산에 성공하게 됩니다.  일본의 도자기 수준은 조선도공들 때문에 급격한 발전을 이루게 되고 결국에는 유럽으로의 도자기 수출까지 가능하게 됩니다.  

조선도공들이 끌려가기전의 일본은 자체적인 생산을 시도하기는 하지만 불의 온도를 맞추는 것 부터 실패해서 유약이 터져나오고 그릇이 깨지는등의 불량품만 양산하는 그런 수준에 머무르고 있었죠.  애초에 가마부터가 현재 일본에서 전통 도자기 가마라고 불리는 것들의 원형이 조선가마입니다.   

 도자기 산업의 수준이 극에 달하고 실생활에서 아무렇게나 막사발을 사용할 수준이 되는 상황에서 막사발에서 뭔가 어떠한 미학을 찾아내고 헥헥거리고 그러면은 그냥 좀 이상한 취미 정도로는 봐줄 수 있겠지만 도기 하나도 제대로 못구워내는 수준에서 그런다는건 그냥 수준이 낮다는 얘기가 되는 것이죠.  

  우리나라 사람들이 한국의 도자기 킹왕짱 아무리 외쳐댄다고 해도 본차이나도 못만들어 내면서 그런 애기를 한다는 건 그냥 자위에 불과한 얘기가 되는 것처럼 말이죠.   (실제로 우리나라에서는 본차이나 국산화 성공한게 1957년 한국도자기 회사가 최초인걸로 알고 있습니다.) 

 조선도공들의 후손으로 현재 가장 잘 알려지고 잘 나가는 걸로 보이는  15대 심수관 같은 경우에는 청송 심씨 족보에도 올라가 있고 집안사람들과 꾸준히 교류를 하는 걸로 알려져 있습니다.   조상 묘도 찾아가서 제사도 지내고 족보 업데이트도 하고 그러는 것 같더군요. 

 이삼평의 후손들은 도자기를 하는 것 같기는 하는데 명성은 좀 미약한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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