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시곤 보도국장은 지난 1987년 공채 14기 기자로 KBS에 입사했다. 모스크바 특파원, 경제부 차장, 사회부 사건담당 데스크 등을 역임하며 후배들로부터 ‘바이어스’가 강하고 고집이 센 인물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2007년 첫 부장급 보직인 디지털뉴스팀장을 맡으면서부터 김 국장은 커밍아웃을 하기 시작한다. 이명박 대통령 취임 직후인 2008년 초 김인규 씨를 사장으로 옹립하기 하기 위해 만들어진 이른바 ‘수요회’에 참여했고, 그 공로를 인정받아서였는지 이듬해 경제팀장으로 영전을 하게 된다. 이때부터 김 국장은 우리뉴스의 공정성을 둘러싼 숱한 논란의 중심에 서게 된다.
4대강 예산 리포트 불방사태
2009년 9월 18일 방송 예정이던 9시 뉴스 연속기획 ‘긴급점검-4대강 살리기’의 마지막 편인 ‘4대강 예산 어떻게 마련하나’가 불방됐다. 4대강 사업의 최대 쟁점 가운데 하나인 예산 문제에 대해 경제팀 김원장 기자가 취재한 이 아이템은 당시 김시곤 팀장이 원고 승인을 거부해 방송 예정 당일 회의 자료에도 오르지 못했다. 그는 기자협회보를 통해 ‘여야의 의견이 다른 상황이고 예산 배분의 권한은 정부 여당이 가지고 있다. 해당 아이템에는 야당의 이야기만 들어 있다. 예산 배분에 대한 책임은 선거로 평가 받으면 되는 부분이다.’라고 밝혔다. 선거를 통해 집권한 정부여당의 예산권은 논란의 대상도 될 수 없다는 김시곤 국장 특유의 국가주의가 투영된 발언으로, 그는 이후로도 4대강 아이템은 물론 경제 현안과 관련한 친자본(기업)적인 입장으로 인해 해당 팀원들과 지속적으로 마찰을 빚게 된다.
보도위원회 규정 무력화하려다 망신
2010년 2월부터 해설위원을 맡게 된 김시곤 국장은 고대영 본부장 때인 2011년 7월 보도국 편집주간으로 화려하게 복귀한다. 이때부터 아이템을 누락시키는 소극적 역할에서 벗어나 공정방송을 하려는 후배들의 의지를 꺾는 적극적인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2012년 9월 보도국 편집회의에 참석하던 기자협회장이 우리 뉴스에 대에 잇따라 문제제기를 하자 기자협회장은 옵저버에 불과해 발언권이 없다고 주장했다가, 방송법에 따라 제정된 편성규약에 근거한 보도위원회 시행세칙 규정(평기자 대표는 편집회의 이외의 뉴스 최종 편집과정에서 실무자들의 의견을 공식적으로 제기할 수 있다)을 제시하자 자신이 착각했다며 ‘앞으로는 자신이 앞장서서 발언할 수 있도록 하겠다’라고 인정했다.
하지만 제작자율성을 훼손하려는 그의 시도는 올해 1월 보도국장으로 취임하면서 노골화됐다. 지난 3월 선배 기자들의 언론 자유와 독립을 위한 투쟁의 결과물로 2005년 제정된 보도위원회 시행세칙에 당사자들의 사인이 없다는 말도 안 되는 논리를 들어 시행세칙을 부정하고 기자협회장의 편집회의 발언을 금지한다고 일방적으로 통보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편집권은 사주의 권리’라고 주장하는 보수성향의 변호사를 동원해 팀장급 이상 간부들을 상대로 ‘KBS 편성규약의 문제점’에 대한 특강을 여는 황당한 일을 벌이기도 했다.
용산참사→용산사건, 공약파기→공약수정으로 바꿔!
구체적 아이템과 관련해 부당한 지시와 상식 이하의 발언을 한 사례는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 정도로 많다. 보도국장 취임 직후인 지난 1월에는 ‘용산참사라는 용어는 경찰 공권력에 대한 부정적인 인상을 주고 가치중립적이지 않으므로 용산사건으로 쓰라’고 지시하는가 하면, 최근에는 기초연금과 관련해 공약 파기라는 논란이 일자 ‘공약 수정이지 어째서 파기냐’며 ‘그런 말이 나가서는 안 된다’고 새누리당 측의 주장을 앵무새처럼 옮기기도 했다. 또한 지난 2월에는 탐사보도팀이 정홍원 총리 후보자의 재산 신고 누락을 단독 취재했지만 ‘내용이 너무 약해 9시 뉴스에 나가는 것은 전파 낭비’라며 불방시켰다(정 후보자는 이후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이에 대해 사과했다).
“더러워서 내 준다”
지난 5월에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아들의 영훈국제중 입학 당시 성적 조작을 확인한 특종 보도에 대해 ‘특종이라고 뉴스 가치가 높은 것은 아니다’라는 해괴한 논리를 들며 9시뉴스에서 해당 아이템이 나가는 것을 거부했다. 이에 대해 기자협회와 노조가 강력 항의하자 ‘나중에 시끄러워질 것 같아 더러워서 내준다’라고 보도국장의 발언이라고는 믿기 힘들 정도로 수준 이하의 발언을 하기도 했다.
아울러 영훈중 보도 당시에도 ‘증거를 가져오면 내주겠다’라고 말하는가 하면, 이번 TV조선 인용 보도 건과 관련해 우리가 그대로 받은 전례라고 본인이 언급한 조세피난처 관련한 <</font>뉴스타파> 인용 보도 때는 심지어 ‘증거서류에 등장한 홍콩 은행 직원이 실존하는지 여부까지도 확인하라’는 황당한 지시로 TV조선 인용 보도 때와는 상반된 태도를 보이기도 했다.
지난 2일(수) 기자협회(협회장 조일수)가 심야에 총회를 열어 찬성률 85.1%(찬성 143, 반대 25)로 김시곤 국장에 대해 신임투표를 실시하기로 결정하자 그는 4일 코비스에 ‘보도국장입니다’라는 글을 올려 조선종편 받아쓰기 사태에 대해 장황하게 변명을 늘어놓았다. 전국기자협회(협회장 박장훈)가 곧바로 반박 성명을 올리자 다시 답변 글을 올렸다. 이 글들은 명색이 보도국장이 쓴 글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온갖 유치한 궤변으로 가득 차 있다.
“(조선종편 보도를) 물먹었으면 부끄러워하고 상사에게 미안해해야” 한다며 “적반하장”이라고 주장하는가 하면, “KBS뉴스를 타도하겠다는 기치를 내걸고 있는 뉴스타파의 취재 내용을 그대로 받은 전례가 있음”, “뉴스타파는 되고 TV조선은 안 된다는 식의 기자협회의 정치적 편향성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만큼 보도국장 직선제를 해서는 안 되는 이유도 명확히 밝혀졌”다며 <</font>뉴스타파>와 양 기자협회를 근거 없이 비방하고 있다. 또한 기자협회의 신임투표를 언급하며 “임의단체”인 기자협회가 “어떠한 근거도 없이 보도국장을 평가함으로써 조직의 근간을 흔든다면 사규에 따라 엄정하게 처리된다는 사실을 명심해주시기” 바란다고 자기가 마치 사장이라도 된 듯 협박을 했다.
그런데 첫 번째 글에서 그는 ‘뉴스가치’라는 말을 무려 11번이나 언급했다. TV조선 보도를 베끼기 한 것은 ‘뉴스가치’가 있기 때문이라는 건데, 이 ‘뉴스가치’는 그가 공방위 자리에서도 전가의 보도처럼 내세우는 논리다. 보도의 편파성을 지적하면 ‘뉴스가치’가 있어서 했으니 잔말하지 말라는 것. 그의 빈약한 이 논리를 들어보면 어떻게 저런 사람이 보도국장이 됐는지 신기하게 느껴질 정도다.
요즘 코비스에는 수신료 현실화를 촉구하는 글들이 연일 올라오고 있다. 이 글들을 읽어보면 공영방송의 위기가 드디어 현실화되고 있는 현 상황에 대한 KBS 구성원들의 고민을 여실히 느낄 수 있다. 하지만 현재 사내에서 진행되는 수신료 현실화 논의에는 가장 핵심적이고 중요한 것이 빠져 있다. KBS가 ‘공영방송’으로서 시청자들에게 무엇을 해줄 것인지에 대한 약속이 생략돼 있다는 점이다.
올해 6월 18일, 경영진은 ‘수신료현실화 추진위원회’를 발족하고 4,300원 또는 4,800원 인상안을 이사회에 제출했다. 그리고 수신료 현실화에 대한 대국민 여론조사를 실시하며 △명품 프로그램 제작 △콘텐츠 제작역량 강화 △미래 방송기술 투자 △보편적 서비스 확대 △지역방송 역량 강화 공영성 강화 △약자 배려 △공영성 강화 등 이른바 ‘7대 약속’을 내놓았다.
사단은 여기서부터 시작됐다. 2011년 1,000 원 인상안에 비해 인상폭이 크게 늘어났을 뿐 아니라, 그동안 수신료 인상 추진과정에서 가장 중요시하게 언급됐던 방송 공정성 확대방안이 아예 언급조차 되지 않은 것이다. 대통령 임기 초기에 ‘공정성’이란 말을 꺼내는 것조차 불경하다고 생각돼서였을까? 이유는 모르겠지만 예상대로 시청자들과 시민단체들의 반발이 터져 나왔다.
7월 3일 여권 추천 다수 이사들은 이 안을 단독 상정했고, 야권 추천 소수 이사들은 이에 반발해 수신료 절차 불참을 선언했다. 이후 야권 추천 이사들은 8개 국장 직선제 등을 요구했으나 8월 14일 여권 추천 이사 전원(이병혜 이사는 불참) 반대로 이 안은 부결됐다. 이후 수신료 현실화 절차는 실질적으로 올스톱된 상태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김인규 사장 때인 2011년에는 선언적 의미에서나마 공정방송위원회 기능 강화, 공정성평가위원회 신설, 이사회 내 제도개선특위 설치 등 KBS의 공정성과 독립성을 강화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런데 회사 경영진이나 여권 추천 이사들은 불과 2년 전에 KBS가 한 선언조차도 다 빼버린 상태에서 별다른 약속을 내놓지 않고 있다. 주요 국장 직선제나 평가제 같은 최소한의 제도적 장치마저도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설령 이사회에서 표결로 밀어붙이든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 안을 통과시켜 방통위와 국회에 넘긴다고 치자. 과연 수신료 인상은 가능할 것인가?
불편한 진실이지만,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 2011년에는 국회에서 여당 단독 처리 가능성도 있었지만 지금은 여야의 의석수도 비슷하고 국회선진화법으로 여당만의 단독 처리는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또한 국정원 대선개입 의혹에서부터 시작된 여당과 청와대의 불통행보에 대한 반발이 극에 달한 상황이다. 결국 KBS가 공정방송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지를 설득력 있게 제시하지 않는 한 수신료 현실화는 애초에 불가능한 것이다.
무엇보다, 현재의 불공정 방송을 시정해야
수신료 현실화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지난 5월 초, 윤창중 성추행 사태가 벌어지자 KBS 뉴스는 이를 덮고 박근혜 대통령 방미성과를 부각하기에 급급했다. 그리고 수신료 안이 이사회에 제출되던 지난 6월 중순 원세훈 전 국정원장이 구속되고 곧이어 새누리당이 ‘NLL 대화 녹취록’을 공개하자 9시 뉴스는 새누리당의 공세로 ‘도배’를 해버렸다. KBS에 대한 시청자들의 분노는 극에 달했다. 그리고 이번에는 TV 조선 베끼기 사태까지 일어났다.
이 사건들은 모두 임창건 보도본부장과 김시곤 보도국장이 취임한 이후에 벌어진 일들이다. 두 사람은 수신료 인상을 조직적으로 방해하려고 아예 작정을 한 것일까? 정권에 잘 보이면 자기 자리는 좀 더 굳건해질 수 있겠지만 KBS는 그럴수록 더 나락에 빠져들 뿐이다.
이제는 말해야 한다. 아무런 거리낌없이 배임행위를 저지르고 있는 수뇌부들을 준엄히 응징해야 한다. 그것만이 KBS가 살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