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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여년 전 겪었던 같은 사고, 다른 결과
게시물ID : car_34256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올드가이
추천 : 10
조회수 : 949회
댓글수 : 7개
등록시간 : 2013/10/07 16:56:51
면허를 취득하고 5년 간의 장농면허를 제외, 자차를 운전한 이래 올해로 11년 무사고 경력입니다.
모두가 어쩜 그렇게 운전을 잘 하냐.. 자잘한 사고 한 번 없었냐.. 라고 말하며 엄지를 추켜 세웁니다.
하지만 사실 면허를 갓 취득한 초보 시절 접촉사고를 낸 적이 있었습니다.
그 사건은 아직도 눈 앞에 어려 생생히 기억나며 제 운전 습관이 자리 잡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10여 년 전 친구들과 한창 어울려 놀던 20대의 어느 날 우리는 인근 지역으로 1박 2일 캠핑을 다녀 왔습니다.
전날 저녁부터 아침 새벽까지 이어진 술 자리로 인해 다들 상태가 말이 아니었지요.
귀가하던 중 점심으로 해장을 한답시고 도로 가에 있던 동태탕 집에 들어간 것이 화근이었습니다.
고개 정상에 위치한 가게 툇마루에 앉아 여름 끝자락의 더위를 아우르듯 불어오는 미풍을 맞으며 먹던 시원한
통태탕 국물은 동료들의 뱃속 주충을 또 다시 깨우고 어느새 술잔을 채우는데 여념이 없었습니다.
주당 친구들 중에서도 으뜸인 저는 마침 전날 과음을 하여 토하기 직전이라 술을 마다하고 국물만 500cc는
먹은 것 같습니다.
이내 모두가 취하고 길을 나서는데 운전은 해야겠고.. 술 먹지 아니한 사람 중 면허 가진 사람은 저 뿐였습니다.
난감했죠.. 면허 딴지 3년 정도 된 시기였지만 자차도 없고 경험도 없던 소위 말하는 장농면허였습니다.
하필 차량은 캠핑 장비 싣고 7명이 한 번에 다녀오기 위한 스타렉스 스틱 차량였습니다.
그래도 나름 운전에 센스가 있는 편이라 첫 장거리 주행임에도 불구하고 문제 없이 1시간 가량 주행했습니다.
(아버지를 포함한 집안 어르신 대부분이 운전직에 종사하는데 이것도 유전인가 싶었음 -,.-;)
이제 도착지는 20여분 거리이고, 한참 신나 "제법 몰잖아"하고 속으로 자화자찬하며 조그만 국도를 벗어날 쯤
바로 앞에 중국집 오토바이가 달리고 있었습니다.
차선 변경해서 추월하고 싶지만 서울 초입이라 많은 차량이 빽빽히 들어서서 끼어들기는 엄두도 안 나는데
배달원은 배달지를 찾고 있는지 연신 우측 건물을 보고 한 손에 든 메모를 보고 하면서 매우 느리게 갑니다.
스틱 조종에 익숙치 않은 나로서는 주춤주춤 가는 오토바이가 어려웠고 연신 클랙션을 울렸습니다.
마침 배달원이 집을 찾았는지 옆으로 빠지기 시작합니다.
오케이~~ 하면서 부우웅~ 가속을 하고 기어를 바꾸려는 찰나.. 오토바이가 찾던 곳이 아닌지 바로 롤링하듯
몸을 홱 틀어서 재진입 하는 것이 아닌가… 허억~!
워낙 찰나의 순간이어서 오토바이가 다시 들어오는 걸 보고 브레이크에 발을 올리는 순간 퉁~!
가볍게 부딪혔지만 바퀴가 범퍼에 말리면서 배달원은 넘어지고 오토바이 밑에 발목을 깔리게 됩니다.
지금 생각하면 창피하지만 저는 내려서 괜찮냐는 말 보다는 순간적으로 "아니 왜 빠졌다가 다시 확 들어오냐.
일부러 차에 박으려고 작정했냐"며 핀잔을 주고 오토바이를 몰던 19살~21살쯤 되 보이는 배달원은 아픈
발목을 잡으면서도 잘못했다고 합니다.
상대의 사과에 괜히 우쭐대는 마음으로 한참 뭐라 하던 중.. 우연히 제 시선은 맞은 편 차선을 보게 되는데..
이쪽 사고를 구경하느라 속도를 늦추며 서행으로 오던 퀵 배달원 오토바이를.. 역시 이쪽 사고를 구경하느라
고개를 왼쪽으로 돌린 채 달려오던 후속 차량이 너무 쎄게 들이 받은 것 입니다.
못 해도 시속 40은 되 보이는 상태로 들이 받히자 오토바이는 쾅~!!! 소리를 내며 앞으로 퉁겨 나가고 운전자는
하늘로 튕겨 올라 약 6~7미터 정도 날려져 떨어지고도 5미터 정도 더 굴러가 버렸습니다.
쾅~! 하는 소리, 박살나서 파편이 튀는 오토바이, 공중으로 튕겨 날아가는 운전자,, 그리고 마주친 헬멧 속의
시선…. 이 끔찍한 순간을 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 봤었습니다.
말문이 막히고 그 참상에 먹먹해진 채 고개를 돌리자 제가 사고 낸 오토바이 학생이 저를 쳐다보고 있습니다.
순간 정말 많은 생각이 오가고 무언가 의식의 사고를 몇 계단 확 뛰어넘는 그런 상황이었습니다.
같은 사고, 다른 결과, 가해자와 피해자, 서로간의 입장 차이.. 온갖 생각이 교차된 이후 저는 바로 그 학생을
태우고 병원으로 달려 갔습니다.
다행히 오토바이(CT100)가 가벼웠던 탓인 지 발목을 살짝 긁혔다는 진단을 받고 마침 달려온 학생 어머니와
학생에게 정중히 사과를 하고 전치 2주로 합의하자는 어머니 말에 학생의 2주 치 알바 급여를 주는 것으로
합의 마무리 했습니다.
그렇게 서로가 합의를 본 후 같은 병원에 들어온 길 건너편 사고자 소식을 물었더니…
"도착 시 사망" 이라더군요… 자세히 알려주진 않았으나 떨어질 때 머리부터 떨어졌다고 합니다. 아~..
일련의 사고를 겪고 집에 돌아오는 길 저와 친구들 모두는 침묵으로 일관 했었습니다.
우린 모두 차를 좋아해서 면허 따고 곧 바로 중고차나 부모님차를 몰고 매일 같이 드라이브를 하고 사고도
많이 쳤었으며 술 자리에서 그 사고들을 마치 재밌던 경험인 양 떠들곤 했었기에 더욱 숙연했던 것 같습니다.
국도 코너에서 드리프트 한다고 속도 내다 논두렁에 차가 거꾸로 뒤집혀 기어 나왔던 일.
프라이드 몰던 친구가 자기는 제로백 8초 나온다고 뻥 치는 걸 입증하려다 타이어 터져서 두 바퀴 회전했던 일.
비가 추적추적 오는데도 음악 크게 틀고 창문에 팔 걸치고 와서 젖은 팔 내밀고 킬킬대던 일.
당시 무시무시한 스포츠카 티뷰론이 앞 질러 간다고 트럭에 타던 세 얼간이가 내리막에서 시속 140으로 제끼고
좋다고 낄낄대다가 경찰에 걸려 "아니 무슨 트럭이 제일 빨러~" 황당해 하시던 일.
그 웃으면서 톡톡 거리던 일화들이 더 이상 웃기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 이후 저와 함께 있던 친구들 전원 13년 정도 무사고일 뿐 아니라 운전 습관 등 크게 달라졌습니다.
사람을 죽이려고 목을 조르거나 칼로 찌르는 등의 행위와 차량이라는 큰 흉기를 가지고 킬킬대면서 시선 돌리고
조급한 마음을 가지거나 위협을 하는 등의 행위가 전혀 다를 게 없다는 걸 정말 뼈저리게 느낀 사건이었기에…
문득 옛 생각이 나서 길게 글을 썼습니다.
읽어주신 오유분들 부디 안운하시고 우리 함께 조심 또 조심히 운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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