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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아주 오래전 마눌과 결혼 직전 사귈 때 이야깁니다.
15년도 훠얼씬 넘었죠.
그당시 있었던 훈훈한 미담이라면 미담이고 슬픈 이야기라면 슬픈 이야기입니다.
마눌과 사귀기 전 썸도 타기 전이라고 해야 하나요
사귄다는 것과 썸 타는 것의 모호한 경계라고 해야 하나요.
저도 정의 내리기 애매한 그런 시기였습니다.
아마 기억하기로 마눌이 면허증을 1종으로 바꿨던가 아니면 오토면허인데 보통으로 바꿨던가 했습니다.
그래서 내가 도로연수를 해주겠다 했고 마눌은 흔쾌히 그러자고 했습니다.
약속날짜 아침에 집을 나서려다가 그냥 가기 허전하고 뭔가 차안에서 간단하게 먹을것이 있어야겠다는 판단에 냉장고를 열어 과일을 찾았습니다.
아 있긴 있었는데 내가 그닥 좋아하지는 않는 오렌지만 과일칸에 있더라구요.
일단 아쉬운대로 이놈이라도 가져가자 라는 생각으로 대충 몇 개인가 잘라서 껍데기를 벗기고 락앤락통에 담아 갔습니다.
연습을 하면서 과일 좀 드시라고 하면서 오렌지를 줬는데 잘 먹더라구요.
그게 참 인상적이었습니다. 아 이 아가씨 오렌지를 참 좋아하는구나.
뭐 나도 기분 맞춰 줄라고 오렌지 조각을 입에 넣고 씹어서 삼켰습니다.
이런 나의 행동이 나중에 참사를 불러옴
(이표현 나도 정말 써보고 싶었슴)
모 이번 스토리에서 중요한 일은 아니니까 어찌 어찌 결혼한 이야기는 생략하고
결혼 후 장 보러 마트에 갔는데 과일코너에 오렌지가 눈에 띄더라구요.
그래서 아 저거 마눌이 좋아하지
라는 생각에 한봉다리 집어왔습니다.
집에 오자마자 마눌이 오렌지를 잘라서 내왔습니다.
거 참….
주는거니 안먹을순 없고 몇조각 먹고 말았습니다.
그 뒤로도 딱히 좋아하지 않는 오렌지는 내가 집어들거나 마눌이 집어들거나 해서 꾸준히 우리집에 들어왔고, 꾸준히 소비가 되었습니다.
내가 좋아하던 좋아하지 않던간에
역시나 아이 생긴 이야기는 이번 스토리에서 중요한게 아니니까 생략하고
또 마트에 갔습니다.
역시나 울 마눌이 오렌지를 집어듭니다.
나는 이제 결혼도 하고 어느 정도 시간도 지났고 아이도 생기고 했으니 이제 진실을 말해야 겠다 라는 생각에 마눌에게 말을 했습니다.
저기xx씨 나는 오렌지 그닥 안좋아해. 그러니 xx씨 먹을 만큼만 사요.
라고
그러자 울 마눌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정색을 하며 말을 하더라구요
정말?
찔끔 합디다. 화가 난건가 싶어서.
아니 내가 못할 말 했나?
하지만 그런건 아니었고 마눌은 제가 놀랄 만한 말을 하더라구요.
자기는 여태까지 제가 오렌지를 좋아하는 줄 알았다고
그래서 쭈욱 오렌지를 산거라고
아니 이런 무슨 개가튼……
무슨 근거로
울 마눌은 운전연습 했던 그때 내가 오렌지를 싸온걸 보고, 입안에 넣고 씹는 걸 보고 아 이남자 오렌지 좋아하는구나 라고 생각을 했다는 겁니다.
거기다가 마트 과일코너에 가서도 내가 오렌지를 카트에 담길래
응 그래 이남자는 오렌지 좋아해
라고 믿었고 그뒤로 와입은 저를 위해서 오렌지를 챙긴겁니다.
(나는 당신을 위해서 챙긴거야. 내가 아니고)
거기다가 사실 마눌 자신도 오렌지는 별로라고 실토 하더군요.
그냥 내가 잘 먹는거 같아서 장단 맞춘다고 옆에서 먹었다고 하더라구요.
허얼…..
우리는 그자리에서 한참을 웃고는 카트에 들어있던 오렌지 봉지를 진열대로 돌려보내고 집으로 왔습니다.
후일담이지만 오렌지봉지는 끈질긴 생명력을 자랑하며 우리집 과일칸에서 버티고 있습니다.
울 딸아이가 좋아합니다.
킬러입니다.
참 아이러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