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서 잠깐 역사적인 사실을 좀 정리해보자. 이번에 집권하게 된 아베 신조의 외조부인 기시 노부스케는 일본의 56·57대 총리(1957~1960)를 지낸 인물인 동시에, 일본제국이 제2차 세계대전 중 만주에 세운 괴뢰국가인 '만주국(1931~1945)'의 총무청 차장을 지낸 A급 전범이다. 만주국은 겉으로는 중국인을 국가 지도자로 내세웠지만, 어차피 괴뢰국가였으므로 만주국을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건 5명의 일본인 실력자들이었다. 기시 노부스케는 바로 이 5인의 실력자 중 한 명이었으며, 나중에는 귀국해서 일본 총리까지 역임한 것이다. 그는 1955년에 자유민주당(자민당) 결성에도 관여했는데, 2012년 12월 16일에 정치 세습이 만연한 일본은 기시 노부스케의 외손자인 자민당 소속 아베 신조가 또 다시 정권을 잡은 것이다. 쉽게 말해, A급 전쟁범죄자 기시 노부스케의 내력이 그 집안에 그대로 이어져서 이번에 아베 신조라는 극우 총리로 재탄생된 셈이다.
기시 노부스케가 다스린 '만주국' 하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인물이 하나 있다. '다카키 마사오'이자 '오카모토 미노루'이자 '박정희'.. 친일과 독재의 아이콘, 박정희는 바로 만주국 군인이었다. 일제시대에는 출세를 위해서 일본군 장교가 되었고, 광복 직후에 좌익세력이 맹위를 떨치자 요즘 말하는 종북 빨갱이인 남로당 프락치가 되었으며, 한국전쟁 이후에는 냉전시대를 맞아 미국의 시선을 의식하며 남다른 반공주의자로 변모했던 박정희. 그는 언제나 권력의 이동에 민감했고, 자신의 성공보다 더 중요한 건 이 세상에 없는 철저한 출세지향 기회주의자였다. 박정희는 1940년부터 1945년까지 만주군관학교와 일본 육군사관학교를 거쳐 만주국의 장교로 복무했으며('한목숨 다바쳐 충성함 박정희(一死以テ御奉公 朴正熙)' - 박정희가 일본 만주군에 지원하면서 쓴 혈서의 내용), 나중에는 어처구니 없게도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되어 굴욕적인 한일협정을 체결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