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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바뀐 '태도에 관하여'
게시물ID : today_64035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아프릭사스
추천 : 2
조회수 : 189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20/12/20 10:5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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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오늘은 알라딘 중고서점으로 책을 되팔러 갔다. 간만에 코믹스 본듯한 빅 재미를 준 책, '돈지랄의 기쁨과 슬픔'을 떠나보내고 평소와 같이 신간을 가장 빨리 업어 올 수 있는 '방금 고객님이 판매한 책' 코너로 가서 책장을 유심히 스캔했다. 그리고 늘 그렇듯이 우연히도 임경선의 '태도에 관하여'를 집어서 몇 장 읽다가 뭔가에 홀린 듯 방금 전에 판매하고 적립한 예치금으로 계산해서 집으로 데려왔다.


사실 나는 최근까지 임경선이라는 사람에 대한 선입견이 있었다. 지난 인연이 가져다준 굴레 같은 것이다. 그 사람이 작가를 많이 아낀다는 점 + 가끔씩 대하는 작가의 페미니즘적인 성향의 시너지로 작가의 글은 왠지 피하고 싶은 대상이었다.


그러다가 누군가의 소개로 작가의 신작 소설, '가만히 부르는 이름'을 네이버 오디오 클립에서 듣게 되면서 그녀에 대해 내가 감히 이렇게 저렇게 재단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부끄러워졌다. 맞다. 내 관념에 눈이 멀어서 그녀의 가치를 못 알아본 것이다.


늦은 밤에 새롭게 산 책을 몇 장 읽어나가는데 갑자기 나 자신이 참 많이 바뀌었구나 하는 깨달음이 왔다. 전에 읽던 책들은 거의 대부분 경제/경영, 자기 계발, 또는 인문 신간들이 대부분을 차지했다. 직업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내가 되는 게 제일 중요했고, 그러기 위해서 다양한 지식을 채워줄 수 있는 책들이 읽을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다.


학교를 졸업하고 거의 20년 동안을 자리를 잡고, 성과를 내는 데에만 몰두하고 있었다. 그리 잘날 것이 없었기에 주어진 기회를 최대한 잘 살리기 위해서 늘 전전긍긍했고, 그렇게 몇 년이 지나가니 나만의 분야를 가지고 싶어서 다시 몰두했다. 아침마다 먼 이국 땅의 동향을 파악했으며, 그걸 번역해서 사이버 세계로 실어 나르면서 사람들에게 칭찬이라도 받는 날이면 우쭐해지기도 했다. 그렇지만 적어도 작년의 현실 세계에서 나는 자만감에 취해 있었고 동료들에게는 한없이 까칠했다(물론 이건 작용에 대한 반작용 이기도 했다. 올해의 나는 한 없이 순한 맛이다). 


돌이켜보니 직장/직업 세계에서의 '나'는 서서히 자리를 잡아갔지만, 한편으로 개인으로서 '나'는 점점 지워지고 있었다. 어릴 적부터 요구사항이 많이 부모(나도 이런 타입 중에 하나다-_-;)로 부터 영향을 받아 착하고 공부 잘하는 10대, 좋은 회사에 들어간 20대, 결혼해서 아이 낳고 잘 사는 30대라는 강박관념이 늘 마음을 짓누르고 있었다. 거기서 조금이라도 벗어나면 인생의 실패자라도 되는 것 마냥. 


짓누르는 부담감을 겨우겨우 견뎌가면서 규격화된 모델에 나를 어찌어찌 끼워 맞췄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나이트 가본 횟수를 손에 꼽을 수 있는 10대/20대, 배우자 눈치 보느라 PS 한 번을 못 사본 30대를 거쳐서 위스키 바 하나 알지 못하는 집돌이 40대가 되어 버렸다. 누구 표현대로 젠틀하기는 하지만 재미는 없는 대기업 차장이 딱 내 꼴이지 뭐야.


그런데 지난 10월, 새로운 전기를 가지면서 '나'에 대해 많이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파도가 들어왔을 때는 나를 향한 질문에 대답을 할 수 있어야 했고, 파도가 나간 다음에는 내가 진정 '어떤 사람'이고 '앞으로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조금 더 확실히 알고 싶어 졌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 과정을 안내받고, 종종 지혜도 빌릴 수 있는 수단이 필요했다. 가장 쉽게 확보할 수 있는 자원은 바로 '책'이었다. 정확하게는 이전에는 잘 들여다보지 않았던 다양한 수필들 말이다. 


그들(!)로부터 참 많은 것들을 얻었다. 덮어두기에 급급했던 내면의 상처를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고, 나에 대해 꾸준하게 관심을 가지고 돌아보는 계기도 지속적인 책 읽기 덕분이다. 그리고 오늘 새로운 치료제로 '태도에 관하여'를 집어 들게 되었다.


바뀐 태도로 인한 변화는 하나 더 있다. 나를 알아가는 과정은 매우 주관적이라서 복잡하고 자주 길을 잃고 헤매기 쉬운 관계로, 읽었던 내용을 따로 적어서 정리하는 것이 아주 중요해졌다. 그리고 이 중 일부는 손글씨로 옮겨 인스타그램에 따로 저장해서, 언제든지 보고 또 보면서 앞으로 삶의 방향성을 다시 잡아 나간다.


요즘에는 페이스북에 업계 동향을 올리지 못하는 대신(물론 팬(?)들은 언제 올리냐고 가끔씩 물어주긴 한다. 감사하게도), 인스타그램에 개인적인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쏟아낸다. 그래서 주위에서 요즘 왜 그렇게 인스타그램 열심히 하냐고 묻는데, 그게 이런 이유랍니다. 저를 좀 더 잘 알아가는 과정이에요. 저는 40 중반의 저라는 사람이 태도를 바꿔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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