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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와 나.. ( 약간 스압)
게시물ID : gomin_31024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ㅇㅎㅁㄷ
추천 : 2
조회수 : 428회
댓글수 : 4개
등록시간 : 2008/12/18 14:50:52
안녕하세요 두번째인가, 세번째인가로  글을 올려봅니다.


고민방에 올리는 글인만큼 제이야기이고, 어찌보면 나 자신에게 하는 이야기이니,,

독백 형식으로 써내려가겠습니다..




나.

아버지..

나와 아버지 



나는 아버지와 친한 관계를 유지하는 사람들을 보면 매우 부럽다. 그렇다. 나는 아버지와 그렇게 친하지못하다. 내가 처음부터 아버지와 친하지 않았냐고? 아니다. 나는 지금도 아버지의 마음에 들기위해서 꽤많은 것들을 포기한것 같고 인정받는 아들이 되고싶다. 

어릴적 부터 그렇게 우리는 친한 관계가 아니었다. 매일 회사일에 바쁜아버지.. 나름 대기업도 다니셨고 임원들사이에서도 인정받는 재원이었던 아버지는 사업을 하시면서 우리집은 소위 중산층 가정이 되어갔다. 한대도 벅차보였던 자가용이 두대, 세대,, 늘어가고,, 신도시로 이사, 늘 좋은음식과 좋은 환경을 제공받으며 사춘기를 보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와 아버지는 그리 많은 말을 나누지 않았고 아버지의 행동에만 난 주시 할뿐이었다.

나는 그분의 어떠한 정치적, 신념적 생각을 알지도 못할 나이였고, 내 아버지가 정확히 무슨일을 하는 지알고싶어도 잘 못알아 들은채 아버지 직업은 그냥 나에게있어 그냥 회사원, 사업가 이상이하도 아니었다.

우리는 늘 수직적인 대화만 있을 뿐이었다.

공부 해라, 밥먹어라, 노력해라, 학교 교장선생님들도

해줄수있는 뻔한 말들..


나의 학창시절 고민거리들과 궁금증들은 모두 친구들이나 정말 좋아했던 젊은 학원 선생님들을 통해 배워갔다.


하지만 나는 알고있었다.

인생의 중요한 결정을 내리는데 있어서 싫든 좋든 아버지를 통한 대화와 허가가가 필요한 것 임을

그러나, 결국  그것은 대화가 되질 않았고 일방적인 강요속에 내꿈은 사라졌다. 인생 처음으로 저항이란걸 해보았는데, 결국 내 학비를 대줄 사람은 부모님이라는 공식이 성립되면서 알아서 내꿈을 접었다.

혹자는 그렇게 꿈을 이루고싶었다면 학비를 벌어서라도 갔어야 하는거 아닌가라고 지적할 수도있었겠지만

맞다. 하지만 난그때 열여덟이었고 그런 결정을 쉽게 내리기 어려웠다. 난 그때 대학을 못가면, 웬지 낙오자가 되는것 같았다..


하기싫은 공부였지만, 참 나도 미련한놈인지.. 꾸역꾸역
하니깐 장학금도받고 관련분야 대학원 진학도 했다. 지방대에서 서울로.. 뭐 나름 보기 좋지않은가. 소위 학벌세탁.. ㅎㅎ 지금알았지만 뭐 이것도 그다지 좋은 직장을 얻는데 썩 좋은 생각은 아니었다.


아버지의 명령에 따르며 내꿈을 버리는 대신 나는 IT 분야를 전공하는 석사학위자 라는 타이틀을 얻었다..




엄마나 동생은 아버지에게 고마워 하라고 한다. 이렇게 널 만든건 아버지라고.. 삼류 지방대생을 이렇게 까지 만든건 아버지라고.. 아들아 네가 자랑스럽구나라고..
다 니게 재능이 있어서라고

ㅎㅎ 

짜증나고 열받고 내자신이 싫어진다.
나의 노력은 모두 부모덕에 일구어진거라는 상념이
나를 또 괴롭힌다. 이글을 쓰면서도 화가 난다. 도대체
나는 어디에있는가

또 어느 밑바닥에서 기어야 내가 거듭날 수있을까



시간이 지나



아버지가 늙고있고 지금도 충분히 늙었다는걸 깨닫는다. 그에겐 힘이없어지고있으며 이젠 내가 힘이 생기고있다는걸 느낀다. 나는 내 아버지에게 좀더 대담해졌다.

아버지는 왜 어떻게 살았고 살아왔는가?..


대답은 아버지는 매우 치열하게 사셨다. 그리고 공산당, 북한, 김일성, 625에대한 트라우마가 강하게 남아있었다. 심지어 그것들이 친일의 대한 합리화까지 이어지는것을 확인할 수있었다. 당연히 김대중 노무현 정권을 싫어하는 분이셨고 전라도의 대한 무조건적 비판은 서슴치 않으시는 분이었다. 아직도 밥상머리앞에서 사람을 가리지않고 김대중 노무현 을 깐다. 촛불시위자들을 비난하고 미국을 본받자는 생각들.. 그리고 당신도 부정부패를 비난하지만
거기에 은근히 눈감아주며 동조해왔던 부분들.. (이유는 먹고살기 위해서라고하였다.) 

그렇다

내아버지는 한나라당의 정론과 너무도 똑같았다. 대운하는 반대하지만, 뭐그것도 그렇게 성내면 반대하는정도는 아니고..


이러한 사실을 알고나서

나는 내가 아버지와 물과 기름같은 사이가 될것을 예상하고있다. 가끔씩 나는 아버지와 엄마를 상대로 밥상머리앞에서 가급적 정치얘기를 하지않으려 한다. 그분들과

너무도 매우 다르기 때문에..


하나더.


얼마전 종부세 정책으로 인해 부모님은 혜택을 입었다.
한두푼도 아닌 큰액수의...



내친구들이 취직을 못하고 몇년씩 비정규직으로 사는게 당연하다고 하고 돈없으면 싸구려 보건소에서 치료받고 돈있으면 럭셔리 병원 고급 서비스를 받는것도 당연하다고 하고, 있는놈 없는놈을 확실히 구분지어야 부국강병해지고 잘사는 나라가된다는 논리의 정당을 지지하는 나의

부모님..

조선일보 동아일보 무려 신문을 두개씩이나 보면서 합리적 사고를 하신다는 나의 부모님..




못난 자식 낳아주고 길러주신 큰 감사함은 이루말할수없이 엎드려절하고 평생 봉양해야 함은 물론 알고있으나


그 못난자식이 커서 그분들을 이어 세상을 만들 주역이되고자함에따라 배놔라 감놔라 식의 조정을 마흔이넘어서도 받아야하는것은 옳은 일인것일까

세상은 변하는데, 사람이 변하지않는다..


슬프고 너무나도 슬프다..

이를 어떻게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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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글 읽어줘서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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