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초기 가장 극명하게 대비되는
희대의 간신과
희대의 충신
성삼문 박팽년 등의 사육신과
그들과 집현전에서 동고동락을 같이한 신숙주...
한 쪽은 충신은 불사이군이라는 유교적 윤리를 완벽하게 수행한 만고의 충신이 되어서 역사에 길이 남고.
한쪽은 주군을 배반한 간신으로 역사 속에서 욕먹고 있다.
이런 신숙주를 더욱 비참하게 몰아붙이는 야사가 있었으니.
그서이 바로 신숙주 부인에 대한 이야기이다,
내용은 이렇다,
윤씨 부인은 남편의 표정을 보고 수양대군이 단종을 상왕(上王 : 자리를 물려주고 들어앉은 임금)으로 만들고 정변을 일으켰으리라 짐작한다. 신숙주가 문종으로부터 받은 갖옷을 어루만지며 눈물을 흘린다. 갖옷은 문종이 임종시 집현전 학사에게 어린 단종을 부탁하며 내린 하사품이다.
어린 단종이 왕위에 오르자 수양대군은 주위 세력을 모아 김종서 등 반대세력을 처형하고, 왕좌를 차지한다. 세조는 신숙주의 문장과 재주를 사랑하여 자기에게로 돌아설 것을 요구한다. 신숙주는 여덟 아들의 목숨을 위하여 세조를 따르겠다고 약속한다. 성삼문 등은 세조를 죽이고 단종을 다시 임금으로 세우고자 한다.
그러나 여기에 가담하였던 김질은 장인 정창손을 통하여 이 사실을 밀고하여 피의 숙청이 계속된다. 평소 성삼문과 가깝던 신숙주는 자신의 비열함을 탄식하며 괴로워한다. 신숙주는 부인 윤씨에게 자신이 절개와 지조를 저버린 것을 고백하려 하나 차마 하지 못한다.
성삼문과 박팽년 등은 곤장을 맞으면서도 오히려 세조를 꾸짖자 결국 이들은 노들강 건너편 새남터로 끌려간다. 신숙주는 자신의 비굴함을 부끄러워한다. 한편, 바느질하던 윤씨 부인은 학사들이 단종의 복위(復位)를 기도하다 발각되어 새남터로 잡혀갔다는 하인의 보고를 듣고 남편을 따라 죽을 준비를 한다.
그러나 죽기는커녕 오히려 대신이 되어 행차를 하고 돌아오는 자기 남편을 보고, 그녀는 "당신의 친우들은 충성을 다해 죽으러 가는데, 어찌 당신만 살아오십니까? 그것이 당신이 그리 말하던 충인가요?"라며 신숙주를 호되게 꾸짖고. 윤씨 부인은 이튿날 대들보에 목을 매어 자살한 시체로 발견된다.
일명 만고의열신숙주부인전에 나오는 이야기인데..
이 이야기로 신숙주의 비열함 혹은 간신배로서의 모습이 더욱 극대화 된다.
그러나 여기서 나오는 신숙주의 부인 윤씨는
옥사가 일어나기 5개월 전에 자결이 아닌 지병으로 사망했고,
신숙주는 당시 중국에 있어서 부음조차 듣지못했다고 한다,.
그럼 신숙주가 이렇게 비열한 간신 이미지로 변한 것은 왜일까?
먼저 민중의 단종에 대한 안쓰러움이 한몫을 했었다고 보여진다.
차마 왕이 된 수양을 직접적으로 욕할수는 없고, 대신 선왕의 유지를 받았던 집현전 학사이자
사육신과 대비되는 신숙주가 그 대상이었을 것이라는 짐작이 가능하다,
또, 춘원의 단종애사 등에서
단종이 더욱 비참하게 묘사되기 위해 절대악인 수양과 그 절대악을 받쳐주는 차악의 인물로써 신숙주가 부각되었을 것이라는 추측도 가능하다.
그 이미지가
tv드라마를 통해 확인사살이 되버린 것이다.
그러나
신숙주는 외교에 있어서 두각을 들어낸 당대 최고의 외교가중에 하나였고 스스로 일본 중국 등지를 방문해 많은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또한 해동제국기 등을 통해 일본사신에 대한 예법을 정리했고,.
이외에도 수많은 저술을 한 어쩌면 당대 최고의 수재였을지도 모른다.
그런 그가
희대의 간신으로 알려진 것이 아깝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