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이 ‘성탄절’, ‘크리스마스’라고 합니다. 12월 25일 이니까요.
해서 흔히 “메리 크리스마스” 또는 “복된 성탄절” 이런 인사들을 건넵니다.
하지만 먼저 알아야 할 것은 12월 25일은 예수의 생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아니 더 정확하게는 예수의 생일이 언제인지는 아무도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12월 25일을 예수의 생일이라고 하는 것은 그리스도교가 로마 문화와 접목되면서 당시 로마가 지켜왔던 ‘태양신 축제’ 날에 예수의 생일을 끼워 넣었던 것이고 그 이후 교회들은 12월 25일을 ‘예수 생일’로 지켜 왔던 것입니다. 물론 그렇다고 이제 와서 “예수 생일 아니다!” 라는 말을 하고 자 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예수 ‘생일’에만 시각을 고정 해 버린 다면 매년 12월 25일은 생일잔치를 하는 것으로 끝나버리고 마는 것일 뿐, 예수가 왜 세상에 왔고, 예수가 세상에서 어떻게 살았었는가 하는 것에 대해서는 생각 해 볼 기회를 얻지 못하게 되고 만다는 것입니다.
예수는 세상에 왔습니다. 그리고 길지 않은 그러나 짧지 않은 삶을 세상과 함께 살았었습니다. 그의 삶은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셔서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기 위함”이라는 말로 시작 했던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가 세상에 온 목적이었고 세상에서 살았던 삶의 모습이었던 것입니다. ‘예수 믿고 복 받고, 돈 많이 벌고, 건강하고, 출세하고, 잘 먹고, 잘 살고, 천당 가자’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 정말 예수를 제대로 믿고자 한다면, 자녀를 잃고, 직장을 잃고, 희망을 잃고, 삶의 모든 것을 잃어버림으로 하여 죽음에 직면 한 이들에게 살아야 하는 이유, 살 수 있는 자리, 살만한 세상을 함께 만들어 갈 동지가 있다는 기쁜 소식을 전해야 하는 것이며, 세상의 규례와 전통과 관습에 의해 묶이고, 돈과 권력에 잡혀 포로가 되어 끌려가는 모든 이들에게 자유로운 생각과 각자가 결정한 삶을 마음껏 누리고 살 수 있는 자유가 보장 된 세상을 만들어야 하는 것이고, 돈과 권력에 묶여 사랑과 자유, 존중과 배려로 이웃과 함께 사는 세상이 있음에 눈 먼 이들의 눈을 뜨게 하는 사회, 힘과 재물, 사회적 구조와 권력으로 인하여 눌린 자들이 복면으로 얼굴을 가리지 않고도 마음껏 이야기 하고, 그 어떤 경우에라도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권리를 눌림 당하지 않는 세상을 만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가 그렇게 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그러므로 성탄절은 ‘예수 생일이다.’가 아니라 ‘예수가 이렇게 살았었다.’하는 것을 기념하고 그렇게 살기 위해 다시 한 번 허리띠를 조이고 신발끈을 단단히 묶고 세상으로 나가야 하는 날인 것입니다.
이런 말을 하면 “예수 믿기가 이렇게 힘들어서야...”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나는 늘 이렇게 대답 해 줍니다. “그래서 예수 믿는 거야”
2015년 성탄절, 예수처럼 살아 봅시다.
장호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