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색의 승용차 한 대가 한적한 도로를 유유히 달리고 있었다. 새차는 자주 하는 일이 없는지 뽀오얀 먼지가 빗물에 녹았다 마른듯 어지러이 얼룩을 남겨놓았고, 타이어 또한 관리가 허술한 모양인지 공기가 모자라 다소 늘어져있는 모양이 썩 잘 나가는 자동차의 느낌은 주지 못했다. 날은 토요일이었고, 마흔의 나이에 만년과장이었던 형식은 그래도 휴일을 틈 타 낚시터를 돌아다니며 드라이브도 하고 한적한 곳에서 여유로이 쉬다 물고기의 스릴넘치는 입질도 맛보는 재미에 세월을 보내는 사람이었다. 그런 모습을 반증하듯, 트렁크 안에는 소 가죽으로 만든 꽤나 비싸보이는 낚싯대 가방이 모셔져 있었고 온갖 낚시도구 또한 정연하게 자기 자리들을 지키고 있었다.
"세월은 아무나 낚나, 그 누가 쉽다고 했나아~"
어설프고 우스꽝스럽기 짝이 없는 개사로 라디오에서 나오던 트로트 음악을 따라부르며 흥을 돋우는 형식은, 네비게이션에 의존하여 자신이 전해 들은 낚시를 하기에 목이 좋은 포인트를 찾아 떠나는 중이었다. 이렇게 낚시로 휴일을 보낼 때면 생활비를 사정없이 재촉하는 아내도, 학비와 용돈만 쏙 받아가고 말 한마디 건네지 않는 아들 딸도, 일 제대로 처리 못한다고 갈구고 괴롭히는 자신보다도 어린 상사나 그런 자신을 보며 얄밉게 비웃고 무시하는 부하 직원들까지도 전부 잊고 편한 마음을 가질 수 있었다. 어차피 형식이 휴일을 어떻게 사용하든 회사의 나쁜자식들은 상관할 바가 아니었고, 가족들도 자신이 돈만 쥐어준다면 무슨 일을 해도 신경쓰지 않았기에 더더욱 이런 여행을 마음껏 다니며 텅 빈 마음을 무언가로 채우고 싶었는지도 몰랐다.
한동안 주말 휴일마저 반납한 채, 야근까지 해대며 일만 해 왔기에 더더욱 이번 주말은 값진 휴일로 느껴졌다.
도시에서 제법 멀어진 탓에 평소에는 볼 수 없는 멋진 광경들이 한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는데, 먼 곳에 우직하게 서 있는 바위 봉우리들은 그 묵직함과 다르게 우아하고 어여쁜 안개를 몸에 두르고 자태를 뽐내고 있었고 그 아래 빼곡히 펼쳐진 나무 숲의 카펫은 진한 녹음을 뿜으며 머리마저 상쾌하게 씻어주는 기분이었다.
이런 곳에서 산다면 정말 며칠이고 씻지 않아도 깨끗하게 지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어린애같은 생각마저 들게 해 주었다.
형식은 잠시 차를 세우고 그런 멋진 풍경을 카메라에 열심히 담았다.
아마 그 멋진 작품들은 한동안 자신의 사무실 컴퓨터에 저장되어, 회사 때문에 심신 가득 쌓이는 피로를 눈을 통해서나마 달래줄 약이 될 것이었다.
"으차차차차차~ 허이구! 어이구구!"
형식은 잠시 정차하여 차에서 내린 김에 기지개도 켜고 체조도 열심히 하여 운전으로 찌뿌둥해진 몸을 열심히 풀었다.
관절에서 나는 뼛 소리 하며, 몸을 한번 움직일 적 마다 나오는 힘겨운 추임새까지 미루어보아 형식은 회사원들의 고질병인 운동부족을 앓고 있다는 것이 누가 보아도 알 만큼 한 눈에 드러나는 것이었다.
원래부터 등산도 좋아했고, 수영하기도 좋아했던 형식은 자신의 몸이 이렇게 둔해진 것이 내심 씁쓸한 탓에 서둘러 자동차에 올라 갈 길을 재촉했다.
"뭐, 뭐요? 나 분명 예약까지 하고 왔는데?"
"아, 글쎄 예약을 받긴 했는데 갑자기 물고기들 상태가 안좋아진걸 어쩌란 말이오. 그러게 전화를 잘 받으셨어야지! 지금 물고기들 물도 갈아줘야 하고, 약도 쳐 줘야하고! 스트레스 받지 않게 잘 달래주지 않으면 떼죽음 나게 생겼단 말이오!"
별 괴상한 낚시터도 있다고 형식은 생각했다.
물고기 상태까지 봐 가며 운영하는 낚시터가 있을 줄이야. 목이 좋다는 말 뒤에, 물고기 관리 또한 철저해서 싱싱하기 그지없다는 말을 허투루 흘려듣지 말았어야 했다. 여기 주인은 영 괴팍하고 요상스럽다고 형식은 생각하며, 간만에 찾아온 황금보다도 귀하고 번쩍번쩍하는 주말 휴일을 이렇게 허무하게 마감하자니 뒷 목을 잡고 쓰러질 지경이었다.
너무나 분하고 원통해 눈물이 다 글썽였다.
"아아니!! 내가… 이 날을 얼마나 기다렸는데!! 예약까지 하고… 왔는데!! 나 하나 낚시 좀 하다 가면 어디가 어때서어!!! 나 이렇게 못가! 안가아!!!"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하며 금방이라도 눈이 튀어나올 것 같이 화를 내는 형식의 모습은 무섭다기보다 애처로웠다.
낚시터 주인은 혀를 끌끌 차다가 지나가는 말 마냥 한마디 투욱 던지고 집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저기 산 밑동에 보면 버려진 낚시터 하나 있수. 관리하는 사람도 없고, 뭐 하나 막아놓는 울타리도 없는데 예전에는 잘 나가던 낚시터였다고 하니까 뭐 아직도 물고기가 남아있을수도 있지 않겠소? 정 그냥 못 돌아가겠거든 거기나 한번 가 보시우. 가둬놓은 물이 아니라서 물이 썩지는 않았을거요."
솔직히 말 하면 그냥 자신이 알고있는 낚시터로 아무곳이나 찾아가 낚시를 즐겨도 상관은 없었다. 단지, 새로운 곳에서 낚시를 한다는 기대감이 실망감으로 바뀌는 것이 싫어 발걸음을 뗄 수 없었던 것이었다.
장소를 바꿔 조금 더 달려가 바다낚시나 즐겨볼 것인가, 아는 낚시터나 다시 찾아갈 것인가.
아니면 당장 스마트폰을 뒤져 근방의 낚시터 중 가장 쓸만한 곳을 찾아 갈 것인가.
형식은 합리적인 선택을 뒤로 한 채, 객기를 부렸다.
산 밑동은 어디엔가 물이 가득 흐르고 있다는 증거라도 과시하듯 안개가 자욱했다.
솔직히 여기서부터 벌써 겁이 덜컥 나기도 하고, 분위기도 불안하기 짝이없어 형식은 돌아갈 것을 진중하게 고민했다.
이런 곳에서 몹쓸 사람이라도 만나 변이라도 당한다면 누가 자신을 구해 줄 수 있겠는가.
하지만 형식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우포 늪에서 몰래 낚시를 즐겼을때의 추억이었다.
인적이 거의 없는 장소일수록 고기는 많고 월척 또한 많다.
우포 늪에서 낚시를 할 적에는 순찰에 걸리지 않도록 몰래 낚싯대를 드리웠다. 사람이 거의 다니지 않는 장소라 낚시를 하기에는 명소라는 현지인의 말을 따라 시도해 본 것이 그에게 팔뚝만한 붕어를 세 마리나 안겨주었었다.
그때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르자 형식은 다시 한번 마음을 다잡고 운전대를 잡았다.
도착했을 때의 낚시터는 상상이상으로 낡아서, 낚시터라기엔 폐허에 가까웠다.
간신히 바스러진 벽 몇 군데와 집 터만이 그곳이 낚시터의 주인이 상주했던 건물이었다는 것을 알려 주었고, 저수지 따위를 이용하는 요새의 낚시터와는 달리 산에서부터 흘러 내려오는 물줄기들이 모여 만들어 낸 하나의 계곡이었다.
가늘고 맑은 물줄기들이 조금씩 내려오고, 그 아래 하천으로 조금씩 넘치는 물들을 흘려보낼 뿐인 다소 큰 크기의 그 계곡은 천연의 아주 작은 호수였다. 큰 산의 밑동과 바로 옆의 작은 두개의 언덕 사이에 위치한 분지에 그 낚시터는 존재를 유지하고 있었다.
낡을대로 낡아 한 켠이 떨어져 한 쪽 기둥에만 대롱대롱 매달려있을 뿐인 을씨년스러운 나무 간판에는 '망시천 낚시터' 라고 씌여있었다.
형식은 우선 차를 낚시터 밖에 세우고, 건물이 있었던 터 한 가운데에 텐트를 치기로 결정했다.
적어도 아직은 다 쓰러지지 않은 돌벽이 바람을 막아줄 것이었고, 한번 집 터를 다져놓은 곳이기에 어디보다도 평평하고 물기없이 잘 마른 땅이었다. 바로 옆이 습지인데다 안개가 자주 끼는 곳으로 보였기에, 사방의 땅이 축축하고 온통 눅눅한 것이 설명되는 상황이었는데 그나마 건물이 있었던 터는 나은 편이었다.
텐트를 치고, 주변에서 버려진 벽돌 따위를 몇 개 주워와 불을 피워 음식을 조리할 장소까지 마련해 두었다.
주변은 온통 을씨년스럽고 음산하기 짝이 없었는데, 이런 곳에 당당히 들어온 자신의 행동이 너무나 놀랍고 자랑스럽기까지 한 형식이었다.
형식은 우선 요기를 하기 위해, 버너로 불을 피워놓고 라면을 하나 꺼낸 채 물을 올려두었다.
물이 끓을동안 형식은 잠시 낚시터의 물 상태를 파악하기 위해 계곡으로 나섰다.
계곡의 수질은 그 많은 물이 한 곳에 고여 유속도 느리고 깊이도 깊었던 환경에 비해 산에서 내려오는 물들이 워낙 맑아서였는지 부유물 하나 없이 맑았다. 이정도라면 물고기가 진짜 있을 법 하다는 생각에, 형식은 연신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텐트로 향했다.
잠시 라면을 끓여 요기를 한 형식은 바로 낚싯대를 계곡에 드리웠다.
물은 맑았지만, 깊이가 오죽 깊었으면 발 바로 아래까지만 바닥이 보이고 그 이후는 캄캄했다. 그런 까닭에 물 속에 뭐가 있는지 당최 알 턱이 없어 무작정 낚싯대를 드리워보는 형식이었다.
형식은 배가 어설프게 고파 조바심이 생기는 참이었다. 라면을 배불리 먹었다면 괜찮았겠지만, 물고기를 잡으면 라면보다 더 맛있는 민물매운탕을 먹을 수 있다는 생각에 배를 훨씬 덜 채웠기 때문이다. 한번 식사를 할 때, 라면 두 세개는 기본으로 먹고 밥까지 말아먹었던 형식의 위장은 라면 하나가지고 그 허기를 달랠 수 있을리 없었다. 허기가 지니 괜스레 드리웠던 낚싯대를 옮겨볼까 말까를 고민하며 손을 살짝 대었다가 물고기가 행여나 도망갈까 손을 떼고, 다시 손을 대었다가 떼기를 몇 번 반복했다.
'아, 창피하게 이러지 말자. 낚시 인생이 벌써 얼만데 이리도 참을성이 없어서야, 낚시 앞으로도 계속 할 수 있겠어?'
인내하기로 다짐하며 허기를 기분 좋게 참기로 한 형식의 눈에, 낡고 녹슬어가는 보트가 둘 보였다.
계곡이 꽤 넓다보니 보트를 타고 한가운데까지 가서 낚시를 하기도 했었나보다.
보트를 발견한 형식은 그 바닥을 알 수 없는 깊은 계곡물을 잠시 바라본 뒤, 입질조차 없는 낚싯대를 챙겨 보트 위에 올랐다.
보트는 낡은 것에 비해 물이 새는 곳 하나 없이 잘 떠다녔다. 친절하게도 노까지 구비되어 있었고, 보트의 앞머리에는 '망시천 3호' 라고 적혀있었다. 그나마 둘 중에서는 조금이라도 튼튼해 보이는 놈으로 고른 것이었는데, 유속이 느린 탓인지 보트는 조용하고 잔잔하게 수면을 가르며 계곡의 중심을 향해 나아갔다. 그러다 또 너무 깊은 곳으로 가면 물고기들이 수면 위로 잘 올라오지 않을 듯 싶어, 아주 중심으로는 가지 않고 조금 깊어졌다 싶은 곳에서 배를 세웠다.
형식은 손에 땀을 쥐고 낚싯대를 드리웠다. 물은 너무도 잔잔해 낚싯바늘이 가라앉으며 수면 위에 그린 둥글고 가느다란 주름을 제외하고는 어떤 움직임도 보이지 않았다. 형식은 낚싯대를 보트에 고정해 놓고 손을 놓은 채 쉬기로 했다. 둥둥 떠다니는 찌가 형식이 물 위에 있다는 것을 말해 줄 뿐, 주변은 너무도 고요해 마치 어딘가에 떠 있는 듯한 기분마저 들게 하고 있었다.
'첨벙!!'
형식은 황급히 낚싯대를 붙잡고 줄을 당겼다. 꽤 묵직한 느낌이 오는 까닭에 그의 얼굴에는 금새 기분좋은 스릴로 인한 기쁨이 자리잡았고, 그 수면아래의 무언가는 형식의 손에 의해 모습을 드러냈다.
"우, 우와!! 이게 뭐야!! 으하하하하!!!"
형식은 난생 처음 볼 정도로 큰 메기였다.
이런 맑고 차가워 보이는 물에 메기라니 조금 의외였지만, 그런 의아함은 싸악 가시게 할 정도로 메기는 육중한 체급을 자랑했다. 거의 70cm는 되어보이는 대형 메기였고, 형식의 얼굴에는 성취감과 환희가 가득해졌다. 그는 가지고 온 양동이에 메기를 넣었는데, 양동이 하나가 가득 차서 거의 헤엄도 못 치는 지경이었다. '냄비에도 안 들어갈 것 같은데, 이놈은 집에 가서 끓여 먹어야겠다.' 따위의 생각을 하며 형식은 한층 더 밝아진 얼굴을 하고 다시 한 번 낚싯대를 드리웠다.
그리고 입질은 십 분이 채 지나지 않아 다시 찾아왔다.
"으, 으하하하하!! 왔다 왔어~ 물고기가 왔어어!!"
이번에도 꽤 묵직한 느낌이 팽팽해질대로 팽팽해진 낚싯줄을 통해 전달되었다. 정말이지 참을 수 없을 만큼 짜릿한 손 맛이었다. 이번 물고기는 변화무쌍하게 이리저리 움직이며 수면 아래를 펄떡 펄떡 뛰어다니는 듯 했다. 형식은 더욱 세게 힘을 주며, 동시에 줄이 끊어지거나 바늘이 빠지지 않도록 조심해야만 했다. 그리고 약간의 시간동안 짜릿한 힘씨름을 한 뒤, 물고기는 모습을 드러내었다.
그건 80cm에 육박할 것 같은 큰 가물치였다. 가물치라는 것이 그리 귀하다거나 맛이 뛰어나다거나 한 것은 아닌 까닭에 메기를 낚았을 때 보다 그 기쁨이 덜 하긴 했지만 그건 정말로 약간이었다. 80cm 가량 되는 크기는 월척중에 월척이었고, 이렇게 간단히 연속으로 월척을 낚았다는 사실에 형식의 얼굴은 있는대로 상기되었다.
단지 아까의 메기도 이상했지만, 이렇게 바닥이 깊고 물이 맑은 곳에서 가물치가 잡히는 것이 매우 의아하고 요상스럽다는 생각이 뒤이어 찾아왔다.
하지만 이 사정없이 펄떡이는 힘 좋은 가물치를 놓치기 전에 양동이에 넣어야 하기에 자잘한 생각은 접기로 하고, 보트 위에서 다시한번 용을 쓰기 시작했다. 애초에 이런 큰 놈들이 걸릴줄은 꿈에도 몰랐던 탓에, 양동이는 두 개 뿐이었다. 형식은 좋은 자리를 찾았는데 다시 뭍으로 올라가야 한다는 것이 아쉬웠지만, 잡은 물고기들을 뭍에 두고 다시 또 오면 된다는 생각에 여유를 가지고 노를 젓기 시작했다.
배가 뒤로만 간다.
노를 분명 앞을 향해 젓고 있는데, 배는 어느새부턴가 뒤로 흘러가기 시작했다. 물이 눈에 보일 정도로 어디론가 흘러가는 것도 아니었는데, 배는 홀로 말을 듣지 않으며 뒤로 이동하고 있었다. 아무리 노를 저어도 애꿎은 물만 튈 뿐, 배는 점점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뭐, 뭐야! 왜… 이래…!"
덜컥 겁이 난 형식은, 노를 더 깊고 더 빨리 저어 보았지만 점점 자신의 텐트가 있는 방향에서 멀어져만 갔다.
빠직
요란한 소리를 내며 부러진 것은, 형식의 거친 움직임에 견디지 못한 낡은 나무 재질의 노 였다.
형식은 사색이 되어, 부러진 노를 건지려고 손을 뻗었다.
그 순간, 뭔가 오싹한 느낌이 등골을 타고 형식의 온 몸을 흔들어놓았다.
형식은 노를 향해 뻗던 손을 황급히 가져왔다.
노가 물 아래로 가라앉았다.
나무로 만들어진 노가 물에 빠지자마자 가라앉을 수 있을까?
더군다나 물 위를 젓고다니기 위해 만들어진 물건인데.
형식은 알 수 없는 불안감에 사로잡혀 노 젓기를 포기했다.
보트는 그렇게 유유히 흘러가 계곡의 반대편에 다다라 멈추어섰다. 드디어 땅을 밟을 수 있게 되자, 형식은 보트에서 곧장 내렸다.
형식이 도달한 곳에는 주인 없는 보트가 하나 떠 있었는데 앞머리에는 '망시천 2호' 라고 적혀있었다.
계곡은 빙 돌아서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올 수 있게 되어 있었다.
어차피 도달했던 곳은 바로 산으로 이어지는 곳이었기 때문에 아무 볼일도 없었고, 빨리 돌아가고 싶은 생각에 그 무거운 양동이 두 개를 열심히 들고 텐트로 돌아왔다. 이마에는 땀이 송골송골 맺히기 시작하다가 이제는 비 오듯 주룩주룩 흘러내려 등줄기가 후덥지근하게 젖어왔고 옷이 철썩 달라붙는다. 형식은 바로 돌아갈 채비를 하기로 했다. 애써 펼쳐놓은 텐트를 정리했고, 분주히 여기저기 펼쳐놓은 생필품들을 회수했다. 낚싯대를 소중히 다루던 형식은 난생 처음으로 낚싯대를 우겨넣듯 가방에 넣었다.
그리고 물건들을 싣기위해 자신의 자동차로 분주히 다리를 놀렸다.
형식은 다시 텐트를 펼쳤다.
버너에 불을 붙이고 아까 잡은 메기를 토막내어 끓는 물에 야채와 함께 넣었고, 반 토막 남은 메기의 남은 부위와 가물치는 아이스박스 안에 대충 정리해 넣었다.
자동차를 타고 나갈 수가 없었다.
처음 자신의 자가용을 보았을 때, 위화감을 깊게 느꼈다.
먼지얼룩이 가득했던 자신의 차가 깨끗해져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흠뻑 젖어있었다.
마치 물에 빠진 차를 건져놓은 양, 차량 내부까지 전부 젖어있었다.
그리고 시동이 걸리질 않았다.
급히 보험사에 연락하려 했지만 아예 통화권 이탈지역이었다.
솔직히 일본 대마도에서까지 신호가 잡힌다는 이 대한민국에 통화권 이탈지역이 있다는 것이 신기할 따름이었다.
걸어서 나갈 수 밖에 없을 것 같은데, 도보로 나가기엔 그 전에 날이 저물것이 불 보듯 뻔한 일이다.
형식은 결국 하룻밤을 낚시터에서 보내고 다음날 날이 밝는 대로 짐을 두고 나가 도움을 요청한 뒤, 자신의 차와 짐을 챙기러 사람들과 다시 찾아올 요량이었다. 우선 배가 고팠기 때문에, 가장 맛있어 보이는 메기로 매운탕을 끓이기 시작하는 것이다.
이런 긴급상황에서도 맛있는 냄새를 맡은 위장은 온갖 소리를 내며 요동치기 시작했고, 결국 매운탕의 메기살이 익기 시작하자마자 먹기 시작했다. 형식은 어찌나 배가 고팠던지, 그 많은 매운탕을 밥 두 공기를 해치우며 깨끗이 비워냈다. 식사가 끝날 즈음, 날은 저물었고 가뜩이나 안개가 짙을대로 짙어 어두웠던 곳이 밝디 밝은 캠핑용 랜턴 불 빛까지도 어둠에 삼켜질 정도로 캄캄해졌다.
형식은 배불리 맛있는 식사를 하고나니 졸음이 쏟아졌다.
빨리 자야 긴 밤이 후딱 지나고 홀가분한 기분으로 이 곳을 나갈 수 있다는 생각에 빨리 잠자리에 들기로 했다.
밤이 무척 추웠기에 난로를 최대한 강하게 켰고, 행여나 가져왔던 군용 방한내피까지 챙겨 입은 뒤 서둘러 침낭 안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형식은 불안감을 애써 떨치고 잠에 빠져들었다.
형식은 난데없이 찾아온 요의에 부시시하게 잠에서 깨었다.
이 어두컴컴하고 음산한 곳에서 텐트 밖으로 나가기는 영 껄끄러웠지만, 본인이 아끼는 텐트 안에서 실례를 할 수는 없는 노릇이기에 형식은 텐트의 지퍼를 내려 밖으로 나섰다. 랜턴을 켜고 몇 걸음 안걸었는데 벌써 텐트가 안보이려고 한다. 형식은 빨리 바로 옆에 있는 담벼락에 볼일을 보기 시작했다.
안개는 마치 살아있는 듯, 형식의 주변을 이리저리 멤돈다. 기분나쁘게.
사사삭 사사삭 사사삭
무언가 자갈바닥에 끌리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형식은 토독토독 돋아나는 소름에 몸서리를 치며 소리가 난 곳을 응시했다. 한치 앞도 보이질 않는 안개짙은 밤에서 무엇인들 보일까. 분명 무언가가 움직이는 소리가 틀림없었다. 형식은 혹시 사람인가 싶어 소리가 난 방향으로 조심스레 걷기 시작했다.
소리가 난 곳은 물가였다.
"어, 저…"
형식은 누군가가 물가에 서서 펄떡펄떡 뛰어다니며 춤을 추는 것을 발견했다.
파마머리에 허드렛바지를 입고, 솜조끼를 입은 아주머니였는데 그 모습이 몹씨 괴상했다.
눈은 눈동자가 보이지 않을 지경으로 웃고 있어 자글자글한 눈 주름이 가득했고, 입 또한 좌우로 쫙 째진것이 마치 찢어진 것 같아 보일정도로 격하게 웃음 짓고 있었다.
이 세상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단번에 깨달았다, 소름끼쳤다.
하지만 형식이 밝은 랜턴을 들고 바로 앞에 서 있었음에도, 그 아주머니는 전혀 형식을 볼 수 없는 듯 자신의 괴상한 춤사위만을 계속 이어갔다.
형식은 빨리 다른 곳으로 자리를 옮기기로 했다.
지금 걸어왔던 길을 다시 되돌아가는 형식은, 왠일인지 자신의 텐트를 찾을 수가 없었다.
안개가 너무 짙은 까닭에 그런것이 아닐까 싶어 한 방향을 잡고 계속 걸었지만 아무것도 나타나질 않는 평지만이 계속되었다. 사방이 산과 언덕인 분지였는데, 이렇게 넓은 평지가 있을 리 없었기 때문에 형식은 더욱 당황했다.
더욱 앞으로 나아가면 더 알 수 없는 곳으로 떨어질 수 있다 생각해 형식은 다시 발걸음을 돌렸다.
그런데 걸어오기는 상당히 많이 걸어온 것 같은데, 몇 걸음 떼자마자 자신이 떠나왔던 계곡이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고작 몇 걸음 정도의 거리밖에 못 벗어났다는 말인가. 물가가 나타나자마자 자신이 보았던 위험해 보이는 아주머니를 찾으려고 두리번 거렸지만 아주머니는 모습을 감췄는지 보이질 않았다.
퍼석!! 퍼석!!! 퍼석!!!
등 뒤에서 느닷없이 무언가 부딪치는 소리가 연이어 들려왔다.
형식은 황급히 뒤돌아 소리가 난 방향으로 랜턴을 가져갔다.
그곳엔 어떤 남자가, 몽둥이를 들고 방금까지 펄쩍펄쩍 춤을 추고 있던 아주머니를 때려 눕혀놓고 흠씬 두들기고 있었다. 더욱 소름끼치는 것은, 피를 흘리며 쓰러진 아주머니의 얼굴은 변함없이 징그러운 웃음을 띄고 있었고 남자 또한 마찬가지였다는 것이다.
희번뜩 치켜 뜬 눈에는 붉은 실핏줄이 가득했고 거의 흰자위밖에 안보일 정도로 눈동자는 과하게 옆으로 돌아가 있었다.
입은 치아의 앞면이 거의 다 보일 정도로 벌어진 채 양 옆으로 찢어져 있었다.
그 남자 역시 형식은 바라보질 않는다.
형식은 그 소름끼치는 자리에서 벗어나기 위해, 계곡을 끼고 다른방향으로 달렸다.
적어도 계곡을 끼고 있으면 날이 밝을 때 까지 길을 잃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형석은 잘 떼어지지도 않던 발걸음을 다시 멈춰야 했다.
눈 앞에선 많은 사람들이 바닥에 피를 뿌린 채 널부러져 있었다.
모두가 그 기괴하기 짝이없는 웃음을 얼굴에 담은 채, 쓰러져 있었고 그 사이를 한 남자만이 덩실덩실 춤을 추며 뛰어다니고 있었다.
아까 아주머니를 두들기던 그 남자였다.
형식은 어찌할 바를 몰라 바들바들 떨며 그 자리에 덩그러니 멈춰섰다.
대체 뭘 보고 있는 것인지 영문도 모르고 무엇인지도 모른다.
사시나무 떨듯 몸을 떨어대며, 패닉상태에 빠진 형식은 몸을 쉽게 가누지 못 할 정도였다.
그때, 미친듯이 춤을 추던 그 남자가 제자리에 멈춰서서 형식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붉은 핏줄이 가득한 시뻘건 두 눈망울이 형식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바닥에 널부러져있던 수 많은 피투성이의 사람들이 일제히 형식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으아아, 으악!! 으아아악!!! 흐, 흐아아아아아아악!!!!! 흐익!!! 흐익!!!!"
형식은 미친듯이 소리지르며 도망가기 시작했다.
도망치면서도 뒤를 돌아본 형식의 눈에는 두 팔을 공중에 이리저리 휘저으며 달려오는 수 많은 사람들이 보였다.
하나같이 턱이 빠진 것 처럼 입을 쩌어억 벌린 채, 달려오고 있었다.
마치 끓는 주전자에 바람 빠지는 듯 한 소리가 그것들의 목에서 새어나온다.
두 눈은 썩은 황새치 따위의 눈알마냥 흰자위가 온통 샛노랗고 실핏줄이 시뻘겋다.
이리저리 관절을 뒤틀며 위를 향해 휘두르는 양 팔은 뼈만 남은 듯 앙상하고 시커먼 색이었다.
이대로 가다간 잡힐 것 같았다.
형식은 눈 앞에 나타난 보트에 자신의 몸을 싣고 재빨리 땅을 박차 물 위로 도망쳤다.
두 눈은 온통 눈물범벅에 두 손은 와들와들 떨려와 무엇하나 제대로 붙들기 힘들었지만, 살기위해 노를 저었다.
노를 저었다 '망시천 1호' 를.
얼마정도 땅에서 멀어지자, 형식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뒤를 돌아보았다.
자신을 따라오던 수 많은 무언가들은, 몹시 신이 난 듯 제자리에서 펄쩍펄쩍 위아래로 뛰어대며 웃기 시작했다.
칵칵칵칵칵칵칵칵칵칵칵칵칵칵칵칵칵칵칵칵칵칵칵
그것들은 바람소리가 대부분인 마른 웃음소리를 끊임없이 뱉어내며 형식만을 끝까지 바라보았다.
그가 안개 속으로 모습을 감출때까지.
얼마 뒤 땅에서 많이 멀어진 탓이었을까, 사방은 온통 안개 뿐이고 아무것도 보이질 않았다.
그제서야 떨리는 손을 부여잡고 두려움에 젖어 흐느끼기 시작하는 형식은, 고개를 보트의 바닥에 처박고 사정없이 몸을 떨어댔다. 무언가 잘못되어도 크게 잘못되었고, 이 곳에서 도망가고 싶다는 생각만이 들었다. 하지만 형식은 사방이 안개로 뒤덮힌 계곡물의 한 가운데에 고립되었고, 어디로든 그 미친 괴물같은 것들이 있을까봐 뭍에 도달하기가 겁이 났다.
보트 아래에는 새삼 뭐가 있을지 모를 시커멓고 깊은 물이다.
어디로든 오도가도 못하며 자기 자신을 무의미하게 진정시키려 애 쓸 뿐이었다.
찰박
물 소리가 들렸다.
어디에서 들렸는지는 모른다.
찰박 찰박 찰박
형식은 황급히 소리가 나는 곳을 살폈다.
소리는 일정치 않게 사방에서 들려왔다. 점점 형식의 얼굴은 사색이 되었고, 물 소리는 사방에서 점점 가까워왔다. 형식은 떨리는 손으로 노를 부여잡고는 이리저리 휘둘러댔다. 형식의 격한 움직임에 보트가 어지러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휘두르는 소리는 제법 위협적이었지만, 그가 휘두르는 노는 바로 눈 앞의 안개 한 줌도 흩어놓지 못한다.
"으아아아아아아!!! 나한테 왜 그러는거야!!!! 꺼져!!!! 꺼져어어어어어!!!!!"
형식의 비명의 끄트머리에서, 사방에서 다가오던 찰박이는 물 소리는 일순 멎어버렸다.
잠시 무거운 적막함이 공기를 짓눌렀다. 형식의 얼굴은 이미 눈물 범벅이 되어 있었고, 아랫턱까지 바르르 떨려 딱딱거리며 치아가 부딪치는 소리를 내고 있었다. 눈은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고 사방을 살펴댔고, 노를 쥔 손은 힘을 풀 줄을 몰랐다.
생각을 했다.
적은 물이 들어오고 적은 물이 나가는, 그럼에도 많은 물이 고여있는 물 웅덩이가 과연 투명하게 맑을 수 있을까.
진흙탕 바닥 같은데서나 자라고 서식하는 메기나 가물치 따위가 이런 깊고 맑은 물에서 쉽게 잡힐까.
이런 맑은 물이 고여있는 웅덩이가 바닥이 보이질 않고 시커멓게만 보이려면 도대체 얼마나 깊어야 하는거지?
한가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어쩌면 이 계곡의 밑바닥은 깊어서 시커멓게 보이는 것이 아니라, 수면 아래 시커먼것이 있기 때문에 그렇게 보이는 것이 아닐까.
시커멓고 거대한 무언가가.
밑바닥을 가득 메울 정도로 거대한 것이.
그리고 사방에서 다시 물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이제는 여기저기에서 포말까지 일어나며 보트를 뒤흔들었다.
"지금 이곳은 일주일 전 실종되었던 강형식 씨의 차량과 소지품이 발견된 곳입니다. 그 중에 발견된 아이스박스에서는 사람의 팔과 다리가 한 짝씩 발견되어 사건의 방향이 새로운 국면을 맞았습니다. 게다가 그가 식사를 할 때 사용한 것으로 추정되는 냄비에서도 음식으로 조리된 사람의 살과 뼈가 일부 발견되어 충격을 주고 있습니다. 경찰은 오늘 오전 열 시 경, 강형식 씨를 전국적으로 수배하고 하루빨리 검거할 수 있도록 많은 노력을 기울이겠다고 발표했습니다. 이상 KGM뉴스 김성아 였습니다."
강형식은 아직도 망시천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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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쓰는 동안에는 재미있었는데 왠지 쓰고나니까 뽝! 하는 임팩트가 없어서 그런지 밋밋해보이네요.
이.. 이래도 되는걸까...
음, 이럴때도 있는거고 저럴때도 있는거겠죠.ㅎㅎ
오늘도 좋은 하루 되시구요 ㅋㅋㅋㅋ
재미있게 봐 주시는 분들 정말정말 깊이 애정합니다 ㅎ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