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인 남편과 결혼한 지 7년차 여자사람입니다.
우리 남편은 가끔 평생 기억될 예쁜말을 해줍니다.
몇년전 일입니다.
저는 당시 일본의 중소기업에서 통번역을 주업무로 하는 일을 하고있었습니다.
사회생활은 십년이 훌쩍 넘어가는데, 중간에 여러번 이사를 다니다보니 회사도 자주 옮겼고, 이렇다할 직함도 없는 게 씁쓸하다고,
나이만 먹고 이뤄놓은 게 아무것도 없는 것 같아서 허무하다고 남편에게 푸념을 했을 때 남편이 해 준 얘기입니다.
"나도 너 통역하는 거 봤는데(사내연애로 시작 ㅎㅎ), 내가 본 통역자 중에서 넌 탑클래스야.
내가 한국말은 잘 모르지만, 통역을 잘하는 사람이 통역하는 자리와 못하는 사람이 통역하는 자리의 분위기가 어떻게 다른지는 잘 알아. 너 진짜 잘해.
내가 만난 너의 상사분들도 하나같이 네가 얼마나 좋은 인재인지 칭찬했어.
중요한 건 니가 맡은 일을 잘하느냐지 직함이 있고 없고는 중요하지 않아.
그리고 너 아직 삼십대야. 아직 무언가를 새로 시작한다고 해도 전혀 늦은 나이가 아니야.
알렌 릭먼(스네이프 교수?)는 마흔이 넘어서 영화에 데뷔했지만 유명한 배우가 되었어.
무라카미 하루키도 첫 소설을 쓴건 서른이 다 되어서였고.
언젠가 니가 갖고있는 그 변태적인(괴기스러운 의미에서) 상상력을 소설로 풀어낼 날이 올지도 모르잖아?
소설가가 된다든가 하는 거창한 것을 이루지 못하면 또 그건 어때서?
너랑 나는 지금 하루하루 행복한 일상을 보내고 있잖아?
사랑하는 사람과 행복한 일상을 보내는 일은 결코 사소하거나 당연한 일이 아니야.
그걸 해내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네 인생은 충분히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
글로 쓰고보니 별거 아니긴한데 저한테는 굉장히 힘이 된 말이었어요.
내가 보내는 이 일상이 매우 소중한 것이고, 그걸 만들어가는 것만으로도 제 인생이 의미있다는 걸 새삼 깨달았거든요.
무엇보다, 이런 위로를 해 줄수 있는 남편을 만났다는 게 참 큰 복이구나 싶었구요.
아... 근데 정말 맞춘듯이...
이 글 쓰고 있는데 옆방에서 누워있던 남편이 자기가 엄청 독한 방귀 꼈다고 냄새 한번만 맡아보라고 부르네요.
덕분에 이 글은 기승전방구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