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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에게 '종북이니?' 소리를 들었습니다.
게시물ID : sisa_636885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어슴새벽
추천 : 12
조회수 : 1114회
댓글수 : 99개
등록시간 : 2015/12/19 19:1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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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호남이 고향인 여징어입니다.

아빠는 원래 정치 성향이 안 그랬는데,
지지해도 변하는 게 없다는 걸 깨닫고 무력해지셨던 것 같습니다.
대선 때도 박통령의 선거사무실 같은 곳에서 아주 열심이시더니,
취임식 때는 5시간 거리를 버스까지 대절해 올라왔더라구요.
(저는 국회와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에서 일했습니다. 처음엔 몰랐는데 '나 취임식 갔다 내려간다~' 전화 한 통 왔어요...)
어떻게 사람이 저렇게 한순간에 변하나... 했지만
별 도리가 없었지요.

그러다 얼마 전 고향에 내려가서
아빠랑 술을 마시며 이런저런 얘기를 했습니다.
정치 얘기는 되도록 안 하려고 하는 편이에요.
(올 초에 제가 세월호 팔찌를 차고 있으니
'이제 그것 좀 하지 말고 그만좀 해라. 놔 줘라.' 하는 겁니다.
제가 아는 누구보다 공감능력이 뛰어난 아빠에게 그런 말을 들으니 화가 났어요.
'놔 줘? 왜 놔 줘야 하는데? 아직도 풀리지 않은 의혹들이
이렇게나 많은데. 난 절대 안 잊어버릴 거야.' 했더니
뭐가 그렇게 의심스럽냐더군요.
해상 교신, 해경의 태도, 여왕님의 7시간 등을 얘기하니까
가만히 듣고 있던 아빠가
'너 무슨 빨갱이 찌라시를 보길래 그런 소리를 하냐'고 하더군요.
그 때 생각했죠. 아... 아빠랑은 되도록 이런 얘기를 하지 말자...)

어쨌든 다시 돌아와서, 아빠랑 술을 마시는데
제가 원래 일하다가 아예 다른 직종으로 이직하고 싶어서
이번에 대학원을 가거든요.
아빠가 '거기 나오면 돈 많이 버냐, 안정적이냐' 하는 겁니다.
그래서 제가 '요즘 정규직 안 뽑아. 대학원 나오고도 비정규 계약직이야.' 했죠.
거기서 그칠 걸 입이 근질거려서 '아빠가 좋아하는 박근혜가 추진하는 노동개혁법 통과되면 난 그냥 평생 계약직으로 살 지도 몰라' 했어요.
아빠가 잘 모르면 그런 말 하지 말라더군요. 아무 말 말았어요.

한참 술만 먹던 아빠가 갑자기 묻습니다.
한상균 어떻게 생각하냬요 ㅋㅋㅋ 웃겼어요 사상검증인가 ㅋㅋㅋ
저는 '나 집회 엄청 열심히 다니는 거 아빤 모르지' 했습니다.
대학 시절부터 웬만하면 집회는 안 빠지려고 해요.
근데 나가서도 집에서 전화 오면 구호 소리 같은 거 듣고 걱정할까 봐 안 받거나 문자 보내거나 그랬었거든요.
그런 거 처음 들은 아빠는 당황한 표정이더니
'거기 나가서 oo이가 주장하는 건 뭔데' 하십니다.
저는 '국정교과서 반대, 노동개혁법 반대, 세월호 진상조사, 백남기 선생님에 대한 사과'라고 말했어요.
아빠는 한숨을 쉬며 '박근혜가 하는 건 다 마음에 안 드는구나' 하더니
이내 '그런 곳 가서 여러 경험을 해보는 것도 많은 도움이 되지' 하고 말더군요.
그날은 그렇게 서로 아무말 않고 잠들었네요.

그러다 다음 날, 밥을 먹고 집에서 뒹굴거리는데
아빠가 갑자기 부르더니 '너 종북이냐?' 하십니다.
저는 너무 황당해서 그게 무슨 말이냐고 했더니
'아니 집회도 꼬박꼬박 다 나간다고 하고...' 하면서 말끝을 흐립니다.

저 진짜 종북이니 빨갱이니 하는 말 어처구니가 없고 무식해 보여서 너무너무너무너무 싫어하거든요.
찌질이들이 논리적으로 반박 못하겠으면 '종북', '빨갱이' 그러잖아요.

'나도 북한 엄청 싫거든! 김정은 싫거든!!!'
애처럼 쏘아붙이고 나니까 기분이 이상하대요.
종북 소리를 아빠한테 들으니까... 뭐랄까 세상이 무너지는 기분이었어요.
아빠랑 나는 이제 너무 다르구나... 우린 서로를 이해하기 힘들겠구나... 공허하고 허탈하고...

일주일이 다 되어가는 이야기인데 오늘 오유에서 집회 이야기들 보고 있자니 또 마음이 이상해서 써 봅니다. 복잡하네요.

글이 길어져 버렸네요.
다들 수고 많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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