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아이언포지의 경매장다리에 처음으로 발을 들여 놓은 것은
아마 12레벨즈음 되었을 때의 일이 었던 것 같다.
하지만, 그 많은 사람들이 외쳐대던 거래 요청 채팅창은
1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아직 내 머릿속에 생생히 되살아난다.
경매장 앞에 사람들이 모여드는 시간이면
만렙 드워프씨는 언제나 조용히 나타나서, 다리위 난간에 서서 광고를 했다.
그는 꽤 키가 꽤 작았기 때문에, 언제나 조금 높은 곳에 있어야 눈에 띄이곤 했다.
나는 그처럼 마음을 사로잡는 여러가지 아이템들이 한꺼번에 펼쳐진 것을 본 적이 없었다.
그 중에서 한 가지를 고른다는 것은 꽤나 어려운 일이었다.
먼저 어느 한 가지를 머릿속으로 충분히 사용해 보지 않고는 다음 것을 고를 수가 없었다.
그러고 나서 마침내 내가 고른 재봉옷을 구입한 다음에는 언제나 잠시 괴로운 아쉬움이 뒤따랐다.
'체력이 높은 것을 살 것을 그랬나?'
'지능이 높은게 흑마법사에게 더 나은건가?'
만렙 드워프 사냥꾼은 아이템을 거래창에 올린 다음, 잠시 기다리는 버릇이 있었다.
한 마디도 말은 없었다.
그러나 하얀 눈썹을 치켜올리고 서 있는 그 자세에서
다른 아이템과 바꿔 살 수 있는 마지막 기회가 있다는 것을 누구나 알 수 있었다.
거래창 위에 골드를 올려놓은 다음에야 비로소 거래완료 버튼은 눌러지고
잠깐 동안 주저하던 시간은 끝이 나는 것이었다.
내가 렙업하던 곳은 스톰윈드에서 조금 떨어진 서부몰락 지대.
하지만, 내게 처음 와우를 가르쳐주던 마법사 형은
로그인을 할 때에나 로그아웃을 할 때, 언제나 귀환석을 통해 아이언포지 여관으로 거치곤 했다.
어느 날,
형이 모단호수에 볼 일이 있어 아이언포지까지 나를 데리고 나갔다가
지하철에서 내려 던모로쪽으로 가는 길에 경매장다리에 들른 일이 있었다.
"뭐, 좀 쓸만한 게 있나 보자."
형은 정신없이 올라가는 공개 채팅창을 주시하고 있었다.
그 때
다리 난간위에서 만렙 드워프가 내려왔다.
형이 만렙 드워프와 귓속말로 흥정을 하는 동안
나는 사방에 뛰어다니는 여러가지 탈 것들만 정신 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마침내, 법사형은 내게 줄 천옷 한 가지를 고른 다음, 값을 치렀다.
선배형은 매주 한 두 번씩은 아포엘 다녀왔는데
그 시절에는 스톰윈드에 상급직업자가 어딨는지 아는사람이 적었기 때문에 나는 늘 형을 따라다녔다.
형은 나를 위하여 경매장다리에 들르는 것이 규칙처럼 되어 버렸고
처음 들렀던 날 이후부터는 새로운 천옷들을 사주곤 했다.
(레벨 제한이 있으니... 좋은 걸 입을 수도 없었다)
그 무렵, 나는 시세에 대해서 전혀 아는 것이 없었다.
그저 다른 사람에게 얼마인가를 건네 주면, 그 사람은 또 으레 무슨 아이템등을 내주는 것을 보고는
'아하, 물건을 팔고 사는 건 저렇게 하는 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마음 속에 자리잡았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한 가지 결단을 내리기에 이르렀다.
아이언포지 경매장 다리까지 엄청나게 먼 거리를 나 혼자 한번 가 보기로 한 것이다.
상당히 애를 쓴 끝에
간신히 지하철을 타고 경매장 앞에 도달 했을 때, 그 엄청난 렉신의 강림을 지금도 나는 뚜렷이 기억한다.
나는 두근거리는 가슴을 안고 천천히 경매장 다리 앞으로 걸어갔다.
한 쪽엔 무언가를 열심히 만드는 마법사가 보였고
그 옆엔 나이트엘프 사제가 "님하.. 물 빵좀 주세효.." 라고 '/애원' '/간청' '/비굴' 등을 날리고 있었다.
한쪽에서는 마부를
그리고 또 다른 한쪽에서는 "닫힌 금고 따드립니다~!!" 하는 도적의 외침소리가
또 공개 채널에서는 "XX가실 사제님 모십니다. 오심 바로 ㄱㄱ~" 라는 파티찾는 메세지도 보였는데
그런 곳은 만렙들도 한바퀴를 도는데 2시간 이상 걸린다는 이야기도 들은 적이 있었다.
그러다 애완동물을 이것 저것 파는 만렙 드워프 사냥꾼을 보면서
나는 그 상자들 안에 들은것이 어떤 모양일까 곰곰히 생각해 보았다.
마침내 내가 한참의 고민끝에 '에메랄드 용의 알'과 '샴고양이 상자'를 고르자
그 만렙 드워프는 나를 올려다보면서 물었다.
"...님, 이거 구입하실 만큼의 골드는 있으신가요?"
"네에." 나는 대답했다.
그리고는 거래창을 띄워 그 위에 그동안 모아둔 '호안석' 3개를 조심스럽게 올려놓았다.
그 드워프 사냥꾼은 잠시 거래창을 띄워놓은 채로 말을 꺼냈다.
"후....."
그러더니, 잠시 무언가를 생각하는 눈치였다.
"모자라나요....?"
나는 거래창위에 '최하급 생명석'까지 올려놓으며 걱정스럽게 물었다.
그러자 그는 조용히 한숨을 내쉬고 나서 대답했다.
"돈이 좀 남는 것 같네요. 거슬러 드려야겠어요...."
그는 거래완료 후 은행보관소 쪽으로 달려가더니
잠시후 다시 뛰어와서는 재차 거래창을 띄웠다.
그리고는 내게 14칸 가방 4개와 5골드를 건네 주었다.
내가 혼자 아포까지 가서 가방을 구입했다는 사실을 안 선배형은 나에게 뭐라고 했다.
하지만 골드의 출처는 물어보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된다.
나는 다만, 그 다음부터는 사기를 당할지도 모르니
꼭 거래를 할때는 자기에게 귓말을 보낸 다음 하라고 주의를 받았을 뿐이었다.
나는 확실히 형의 충고를 받아들였다.
그리고 두번 다시 호안석등으로 물건을 산 기억이 없는 것으로 보아
아이템거래를 할 경우엔 분명히 귓말로 시세확인을 한 다음 물건을 구입한 듯 하다.
그 당시엔 너무도 배워야 할 것이 많았으므로,
열렙의 기간을 지나는 동안 나는 그일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내가 드디어 만렙 60렙을 찍었을 때, 나는 길드를 하나 만들었다.
아이언포지에서 외침을 통해 길드서명도 받고,
스톰윈드와 골드샤이어등에서 신규길드원도 모았었다.
아포에만 오면 계속되는 렉을 없애고자 컴퓨터도 업그레이드를 하여
CPU 2.8에 그래픽카드 6600GT, 심지어 메모리까지 2기가를 맞췄다.
그리고 점차 자리를 잡아나가 화산레이드라는 것도 다니게 되었으며
나중에는 소위 에픽이라고 하는 '타락셋'도 일부 가질 수 있었다.
전문기술도 익혀서 나는 '재봉술'과 '마법부여'를 배우게 되었는데
당시엔 마부가 아직 초창기를 벗어난지 얼마 지나지 않았던 시절이라
유저들 대부분 마부라고는 '가슴 생명력 100'이면 최고이던 때였다.
그래도 최하 20~30골 밑으로는 힘들었었다.
한손 무기공격력 5 등은 워낙 그 가격이 고가라,
'필멸의 비수'를 든 도적쯤은 되야 천골마를 포기하고 마부를 지르곤 했다.
그래도 언제나 마부재료가 모자라 '눈부시게 빛나는 큰 결정' 등은 그 값이 하늘을 찌를 지경이었다.
때문에 부길마는 언제나 4대인던등을 돌며 파템등을 쪼개서 마부재료를 대었고
그것으로 우리는 길드 운영자금까지 조달하곤 했다.
어느 화창한 오후,
렙18짜리 노움 남캐 도적 하나가 렙15 여 노움법사와 함께 경매장 다리밑에서 멍하니 나를 올려 보고있었다.
아마도 내가 때리는 광고를 보고 있는 듯 했다.
/1 "마법부여 해드립니다.[무기 지능+22] [무기 민첩 +15] [무기 공+5,+4] [양손무공 +9] [망토 화저 +7] [망토 올저항 +5] [가슴 생 +100] [가슴 마나 +100] [손목 체 +7] [장화 체 +7]
/1 "마법부여 해드립니다.[무기 지능+22] [무기 민첩 +15] [무기 공+5,+4] [양손무공 +9] [망토 화저 +7] [망토 올저항 +5] [가슴 생 +100] [가슴 마나 +100] [손목 체 +7] [장화 체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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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가 노움 도적 남캐가 말을 걸었다.
"야아! 우리도 마법부여란 거 할 수 있죠?"
"그럼요." 나는 대답했다.
"돈만 있다면야."
"네, 돈은 많아요."
노움 도적이 자신있게 말했다.
그 말하는 폼이 어딘가 친근하게 느껴졌다.
그 두사람은 얼마 동안 귓속말로 소근대는 듯 하더니 이윽고 내게 몇가지 마법부여를 요청 했다.
"저는 가슴 생명력 100을 해주시고요,
저 법사에게는 무기에 지능 +22를 해주세요."
"네에..."
"얼마죠...?"
거래창이 열렸다.
다음 순간,
거래창위에 벤퀘 퀘스트 보상템인 '서부몰락 지팡이'가 올라왔을 때
나는 앞으로 일어나게 될 사태를 금새 알아챘다.
그리고 그 저렙 노움법사의 입에서 나올 말까지도.
노움법사와 나 사이에 떠있던 거래창 위쪽에는 2골드, 그리고 76실버
그리고 '반짝이는 작은 진주'가 하나 올라와 있었다.
그 순간,
나는 먼 옛날에 만렙 드워프가 내게 물려준 유산(遺産)이 내 마음속에서 솟아오르는 것을 느꼈다.
그제서야 비로소,
지난날 내가 그에게 안겨 준 어려움이 어떤 것이었나를 알 수 있었고
그 사냥꾼이 얼마나 멋지게 그것을 해결했던가를 깨닫게 되었다.
손에 들어온 그 동전들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나는 그 옛날 쪼렙이 되어 아이언포지 경매장다리위에 다시 서있 는 기분이었다.
나는 그 옛날 만렙 드워프 냥꾼이 그랬던 것처럼
두 저렙분들의 순진함과
그 순진함을 보전할 수도 있고 파괴할 수도 있는 힘이 무엇인지를 알게 되었다.
그 날의 추억이 너무나도 가슴에 벅차, 나는 목이 메었다.
노움 여법사는 기대에 찬 얼굴로 내 앞에 서 있었다.
"모자라나요?"
그녀는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돈이 좀 남네요." 나는 목이 메는 것을 참으며 간신히 말했다.
"거슬러 줄 게 있어요."
나는 금고로 달려가 창고를 뒤져 16칸 여행자용 가방을 각각 4개씩 두사람에게 건네주었다.
그러고 나서, 노움 도적에게 거스름돈으로 5골드를 건네주었다.
그리고 던모로 길을 걸어 내려가고 있는 연인인듯한 두 사람의 모습을 아포 성문에서 지켜보고 서 있었다.
경매장 다리쪽으로 들어와 보니
부 길마는 스칼로맨스에서 얻은 듯 한 아이템들을 마부로 쪼개고 있었다.
"대관절 무슨 까닭인지 말씀 좀 해 보시죠."
부길마가 나를 보고 말했다.
"고작 서부몰락지팡이 따위에 지능 +22라니,
그게 얼만지나 아세요?"
"한 삼백골 정도는 될테지..."
나는 아직도 목이 멘 채로 대답했다.
"하지만, 그럴 수밖에 없었어."
내가 만렙 드워프 냥꾼에 대한 이야기를 끝마쳤을 때,
부길마인 나이트엘프 여사제의 두 눈은 젖어 있었다.
그녀는 경매장다리 난간에서 내려와 나의 뺨에 조용히 /키스를 날렸다.
"아직도 아이언포지의 버벅거리던 렉이 잊혀지지 않아."
나는 숨을 길게 내쉬었다.
그리고 마지막 마부재료를 정리하며
어깨 너머에서 들려 오는 만렙 드워프 남캐의 나지막한 너털웃음 소리를 들었다....
-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