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인은 95군번으로 남들보다 0.5~1년 정도 늦게 군대를 간 케이스임. 306보충대로 입대해서 8사단 훈련소로 가게 되었음.
군대 간 친구놈들은 그나마 괜찮은 곳-후방 해변대라든지, 운전병, 1군사령부 같은 곳에 있었는데 익히 그놈들을 통해 한 자리수 부대를 피해야 한다는 얘기를 들음. 3사단 백골, 5사단 열쇠같은. 근데 내가 8사단 오뚜기에 오게 된 거임. 하도 빡시게 훈련 뛰고 행군해서 부대마크도 팔다리가 다 닳아 없어져 오뚜기가 됐다는 땅개 중의 땅개 오뚜기. 시바시바.
근데 뭐 훈련소가 어딘들 편하겠으며 군대가 어딘들 좋겠음. 그냥 포기하고 맘편히 구르고 짬 쳐먹다보니 6주 훈련의 5주차, 행군주간이 됨. 다른 훈련소가 40키로 행군이 보통인데 8사단만 유독 빡세게 하지 않으면 혀에 가시가 돋는지 60키로 행군이었음. 여튼 발바닥이 다 물집으로 도배가 되었던, 하지만 행군을 끝내고 새벽에 부대복귀할 때 그 가슴벅찬 뿌듯함이 채 가시지 않은 이병 계급장을 달기 일주일 전. 퇴소식때 부모님 뵐 생각, 먹고 싶은 사제음식들이 꿈에 나오던 그 시기, 훈련도 뭐 좀 풀어주던 차에 슬슬 조교들로부터 자대에 대한 정보가 제공되기 시작함.
"야, 들었냐? 1,2소대는 8사단이고 3,4소대는 군단 위탁훈련병이래. 내가 들었어." "아냐 임마. 우리(3소대)까지가 사단이고 4소대만 군단 배치라던데? 저 새끼들 조케따. 군단은 아무래도 오뚜기보단 날 거 아녀?"
뭐 이런저런 소문들이 돌고 돌던 어느 날, 우리 소대 조교가 점호 시간에 그간 수고했다며 우리 소대는 5군단 포병으로 갈 거라고 정보를 줌. 그 중에서도 자주포 견인포 차원을 뛰어넘는, 방사포나 다련장같은 부대라고 들었다고 함.
"니들은 군 생활 핀거야. 아무래도 돈 때려박은 장비 다루는 곳이니 군기는 쎄겠지만 그래도 포병은 3보 이상 차량탑승이다. 게다가 포 정렬하고 그런거 없이 다 트럭에 실려있는 거 다루니까 편할거야. 가서 군 생활 잘 해라."
우리는 조교 말을 듣고 점호 후 서로 하이파이브도 하고 되도 않은 기쁨의 춤사위를 시전하며 들뜨기 시작했음. 그건 옆 4소대도 마찬가지였는데, 그 녀석들은 5군단 예하 각종 직할부대로 가게 되었다는 얘기를 들었던 것임.
행정반을 중심으로 1.2소대가 한편에, 3.4소대가 다른 한편에 배치된 막사에서 우리 쪽은 기쁨의 미소와 군단 내에서도 보다 더 편한 보직과 자대 배치를 기대하는 반면, 반대쪽 아이들은 이틀 앞으로 다가온 퇴소식에도 똥씹은 표정을 짓고 다녔음. 불쌍한 것들. 형님들은 군단 소속으로 너님들의 불행을 뒤로하고 햄보칸 군생활을 할 거임, 너님 즐~ 하며 놀려먹으며 꿀을 빨았음. 그래도 오뚜기에서 2년 보내면 오뚜기처럼 넘어져도 금방 일어나는 근성을 얻을거야라고 놀리는 재미가 쏠쏠했음.
그리고 퇴소식. 뭐 남들 다 그렇듯 엄마 얼굴 보고 울고, 집에서 싸온 음식 토하기 직전까지 먹고… 엄마와 형한테도 나 편한 부대 가게 됐어. 포병이야. 걱정 마~ 하고 헤어진 후 내무반에서 남산만한 배를 뚜둥기며 눈누난나 할 때였음.
"야 근데 5군단에 특공대도 있다카던데? 조교가 4소대 애들 중엔 특공 가는 애들도 있다든데 그건 진짜 X된거 아이가? 시바 나 같음 뒤져 삔다 진짜." "뭐 우리랑 무슨 상관이당가? 우리는 트럭타고 다닐텐디. 앞으로 행군하고 물집잽힐 일은 없는 거시여~ 아따 오뚜기 아닌 것만으로도 성공한거여~"
우리는 결코 남의 불행에 위로나 측은지심을 보여줄 성인군자가 아니었음. 4소대 동기 중 누가 특공대 각이다 하며 그 놈들의 불운을 조롱하기 바빴음. 마치 그렇게 하지 않으면 내가 그 불행을 덮어쓰기라도 하는 것처럼.
운명의 자대배치일. 더블빽을 꾸리고 각 잡고 앉아 빛나는 이등병 짝대기를 바라보는데 조교가 몇 몇 이름을 부르며 따라나오라는 거임. 우리 소대 몇, 4소대 몇. 합쳐 열명이 채 안 되는 인원이었음.
"니들이 먼저 출발한다. 자대 가서도 잘들 할 거라 믿고… 힘들더라도 잘 견디고… 거기도 사람 사는 덴데 뭐… 군대 다 똑같으니까 어디가면 안 힘드냐. 자 이제 신고하고 육공타고 출발한다. 이상."
교관의 말이 쫌 심상치 않음. 뭐지? 난 포병이 되기 위해 태어난 몸인데? 거기도 사람 사는데? 뭥미? 게다가 우리 경례를 받는 조교들이 다들 묘한-마치 유명한 손담비짤 같은 표정으로 우릴 바라보는 거임. 웃는 것도 아니고 비웃는지 불쌍해하는지 참 묘한 표정들이었음. 우린 다들 뭐지 싶어 어디냐고 묻지도 못하고 덮개를 덮지 않은 육공에 몸을 실은 채 십일월의 쌀쌀한 바람을 맞으며 포천 어딘가를 달려 나갔음.
다들 별 말이 없었음. 내심 속으로 뭔가 심상치 않다 느꼈지만 각자 우린 아직 젊기에~ 빛나는 미래가 있기에~ 설마 그게 아니겠지 하는 마음이었을 것임. 생각하고 있는 것을 입 밖으로 내는 순간 그것이 현실이 될까봐 부러 우리는 침묵으로 애써 위안하며 불안한 시선을 서로 피하기 바빴음.
근데… 난 중요한 몇가지 단서를 포착하게 됨. 우리는 다 안경을 끼지 않았고 나름 키가 크고 체격이 호리호리했음. 아닐거야… 아니야. 난 포병이야. 그것도 고급진 방사포나 다련장. 트럭 위에서 죽고 사는 포병. 걸어 다니는 땅개 따위완 차윈이 다른 고급인력. 내가 또 멀리던지기 만점자인데 내가 아님 누가 포병? 이런 무의식의 흐름을 붙잡고 있는데 저 멀리 부대 정문이 보임.
그 부대는… 쉣다빡. 정문 지나자마자 길고 긴 장애물 코스가 있고 건물 앞에 커다란 표범의 대가리가 그려져 있었음. 그 놈은 아가리를 벌리고 우릴 씹어 삼킬 듯 노려보고 있었음. 또 커다란 돌멩이에 일기당천이라는 한자가 새겨져 있었음.
"샹… 이게 뭐여. 뭔 부대 내에 장애물 훈련코스가 있어?" "뭐냐 이거… 여기 뭐야? 저거 뭐라고 써 있는 거냐?" "…… 일기당천…" "그게 뭔데?" "하나가 천을 상대하는…아 몰라 시밤바."
그 순간 내 불길함에 한 가지 확정적 단편이 스쳐지나감. 2년 전 신검 마치고 나오는데 내 신검 등급이 '특'으로 찍혀 있었던 것이 기억난 거임. 그게 이거일 줄이야…
부대 내 군인들은 전투모에 이상한 하얀 천사 날개 같은 것이 계급장 위에 달려 있었음. 나중에야 그것이 공수윙이었단 걸 알았지만, 하여간 모자부터가 남다른 거심. 또 가끔 이상한 경례구호가 들렸는데 훈련소에서 쓰던 필승이 아니 탁구공~ 탁구공~ 하는 소리가 나는 거임. 지나가는 병사들이 간부나 선임을 보며 경례할 때 "탁꽁!" 하는 거였음. 이게 뭔 소린가 싶었지만 곧이어 이등병 마크를 단 아마도 우리 바로 웟고참이었을 병사는 아주 우렁차며 절도 있게 허리를 뒤로 젖히며 "특!~~(2초 쉬고) 꽁!" 하고 경례를 함. 모든 것이 명확해짐. 우린 똥꼬가 타들어가고 얼굴이 벌개져서는 심장이 마구 빠운스 빠운스 하기 시작했음.
아마 석식시간이라 그랬는지 연대본부 행정실에 덩그러니 남겨진 우리는 책상 위에 붙은 705특공연대라는 표식을 통햬 이 몹쓸 곳의 정체를 확인하곤 또 머리를 감싸쥐거나 우리 몸의 소중한 그곳이 되었구나… 라는 장탄식을 읊조렸음. 신을 원망하거나, 헛된 기대를 부둥켜 안게 한 조교를 원망하거나, 돈없고 빽없는 이내 신세를 한탄하는 시조를 읊기 시작했음.
그렇게 우리는 용맹스러운(그랬다고 기억 속에서 미화된) 그리고 자랑스러운(실상 알고보면 훈련 쫌 많고 많이 걷는 똑같은 땅개) 승진 표범부대 혹은 5군단 특공대의 일원이 되어버린 것임.
햐… 정말 다시 떠올려도 뭣같은 순간임. 조교의 말을 철썩같이 믿고 있었는데… 그 놈의 혀를 순배째 빠힐까보다… 게다가 해병대는 지원해서 가니까 괜찮겠지만 우린 차출인 것임. 우리가 특별해서, 지원해서 간 것도 아니고 단지 시력 좋은 특정 체격 조건을 갖춘 장정 중에 뺑뺑이로 뽑히는 것임…
몇몇 얘기들이 더 있는데 반응봐서 올릴 수도 있음. 뭐, 5군단 직할부대 축구대회나, 동계빙상훈련, 부처님 오신날 쉬지도 못하고 공수훈련 받은 썰, 서울뺀질이들 강하게 키운다고.회식 때 돼지 잡게한 썰 등…(돼지좀비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