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과 같은 아픈 역사와 슬픔을 잊고 각성 하지 않는 것은 전쟁의 씨앗을 싹 틔우는 또 하나의 방조이다.
상흔
조용한 시골 마을
사람들 왕래가 잦은 길가에 위치한
한 초가집 마루에
한 할머니가 앉아 계시네.
"여보게,
우리 철남이 보았는가"?
"집에서 나간지가 벌써 몇 해가 지났는디
이 옆에 앉아서 재롱 떨고 밤낮으로 문안 하던
우리 철남이
어디 살아 있는가 아는 사람 있걸랑 말해나 보시오".?
"어찌 된 일인가 하모'
"이 놈이 어느 날
학교에 댕겨 오더니 가방은 홀라당 던져 냅비고
할매야 나라에 난리가 났다고
그래서 나라 구하로 가야 됭께
할매 몇일만 기다려 보랐고
금방 갔다 올깅께
나 보고 싶어도
밥 삼시 세끼 잘 잡수시고 계시라꼬 허고는
잽싸게 날라 버리당께"..
"음력으로 오늘이 우리 철남이 생일인디
이 놈이 오늘 오나 내일 오나 기다리믄서
흰 쌀밥에 미역국 끓이고
그 놈 좋아하던 자반 고기 구워 놓고
언제오나 하믄서
이렇게 왼 종일 앉아 기다리고 있는거 아니긌소.
철남이 이 놈이
어제도 내 꿈 속에 불쑥 나타나드만
할미야 나 왔어 하는거 아닌교.
지금도 그 놈 옷가지캉 쓰던 책상 보고 있으모
이게 꿈인지 생시인지 헷갈링당께.
관부에 나랏님들 싸움에
이 천한 것이 이렇다 저렇다 헐 말은 아니어도
이제 전쟁은 하지 말았으믄 좋긌소.
그거 해 갔고 좋을게 뭣이여?
왠만하믄 저것이 막돼먹게 꼴깞 떨고 밉보이도
시간 지나고 세월 흘러 보면 별것도 아니여.
같이 알콩달콩 살라믄 좀 손해 보더라도
내 밥 한숟깔 덜어주는게 사람사는 인정 아니긌소?
우리 철남이 말고도 이 부락안에
그리 가서 돌아온 아들이 반도 채 안된당께.
젋은 아들이 다 마을을 떠낭께
나 같이 이 늙은 몸은 가을 추수하랴 밭 일 하랴
어찌 혼자서 이 많은 걸 감당 하긌소 ?
이 촌에도 그런데 저기 읍내나 서울 같은 도회지는
오죽 하긌소?
이리 되믄 우리나라도 그렇고 서로 손해 아니요라?
그나저나 지나가던 사람들이 이제 전쟁 끝났다 카더만
이 놈은 객지로 돈 벌로 갔는가 오지를 않소?
이 놈이 밥은 잘 묵고 다니는가 모르겄네
내 저승 가기 전에
우리 철남이 얼굴 꼭 한번 보고 손 잡아 보고 죽는게 소원인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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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보시오 도회지 양반.
한 가지 부탁 해도 될란가?
집으로 돌아 가믄
거기는 라디오도 많고 사람도 많이 산다 카드만
혹시나 우리 철남이 닮거나 아는 사람 보거덜랑
여기서 할미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고
잽싸게 집으로 돌아 오라고 말 좀 전해 주시오..
눈물샘도 말라버린 할머니는 머지 않아
노곤 하셨는지 마루에 누워 잠을 청하시네.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파랗고 바람도 따뜻한데
저 멀리 오솔길과 가로수는
말 없이 한적하기만 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