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이 당대표가 되면 당이 쪼개질 것이다."지난 2월 새정치민주연합 전당대회 당시 문재인 대표와 맞섰던 박지원 의원의 예측이었다. 놀랍지 않은가. 박 의원의 예측은 기가 막힐 정도로 정확하게 현실로 이어졌다. 떨어져 나가지만 않았을 뿐 당은 이미 쪼개진 것과 다를 바 없다. 그렇다면 왜 박 의원은 당이 쪼개질 거라고 예상했을까. 문재인을 잘 알기 때문이다. 문 대표는 자기가 하자는 대로 따라올 사람이 아니라는 것 말이다.
그럼 이번엔 문재인 쪽. 당시 문재인 의원이 당대표 도전에 나설 당시 문재인 측근 다수는 이를 만류했다. 나가서 당대표가 되더라도 다칠 것이라고 봤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이들은 당대표 출마를 말렸을까. 역시 문재인을 잘 알기 때문이다. 그가 이른바 '여의도 문법'에 충실한 정치인이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그래서 당은 박에게 맡기고 문은 체력을 다지며 대권 도전에 집중해야 한다고 본 것이다.
당대표가 될 경우 당내 만성적인 장애요인과 돌발적인 위험요인들이 수두룩했음에도 문재인이 그 선택을 한 것은 과연 무엇일까. 저 당을 그대로 두고서는 정권 교체가 요원하기만 하다는 판단 때문이다. 그래서 당의 체질 개선을 목표로 삼았고 그 방안은 바로 혁신이었다. 문제는 새정치민주연합이 민주당 때부터 이제까지 혁신을 해본 적이 없다는 점이다.
지난 7년간 여섯 개의 혁신안이 만들어졌지만 모두 용도폐기됐다. 그 이유는 무엇? 소속 의원들이 혁신에 저항하기 때문이다. 이 세상의 직업 중 가장 좋은 직업인 국회의원을 영원무궁 계속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들 중 다수가 지금 문 대표의 사퇴를 요구하고 있다. 또다시 혁신을 거부하고 버티며 "문재인 사퇴하라"만 외치고 있는 것이다.
아수라장 새정치연합의 원인 박지원 의원은 8일 트위터에 "어떤 경우에도 안 전 대표의 탈당은 본격적인 분당의 시작"이라며 "이것을 막을 책임은 문 대표에게 있다"며 문 대표의 사퇴를 압박했다. 그러면서 그는 "저는 입버릇처럼 새정치는 DJ, 노무현 세력이 함께 해야"한다고 주장한다. 과연 그럴까. 이를 곰곰이 다시 생각해 보면 지금 새정치연합이 왜 이런 아수라장에 빠져 헤어나오지 못하는지 이해할 수 있다.
'아수라장 새정치연합'의 이유는 당내 지역 구도에 있다. 현재 새정치연합의 갈등은 친노 대 비노, 주류 대 비주류의 갈등으로 알려져 있다. 친노가 주류고 비노가 비주류라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 당내 핵심 인사의 증언에 따르면 당의 주류는 비노 중에서도 호남이다.
결국 호남 기득권 집단 및 이들과 결탁한 수도권 의원들의 연합체가 당의 주류인데 이들과의 상부상조에 응하지 않는 부산 출신 문재인이 당대표가 되면서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지금 흔히 이야기하는 비주류가 사실은 주류이고 터줏대감인데 소수파인 문재인이 혁신을 하겠다고 나서니 이들 기득권세력 입장에서 기가 찰 노릇인 것이다. 지금 새정치연합의 대결구도는 엄밀히 말해 혁신 대 기득권이다. 결국 문재인 흔들기의 본질은 공천 보장하라는 것이다. 오픈프라이머리가 바로 "내 공천 보장하라"는 그들의 절규다.
문 대표 사퇴를 주장하는 의원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이야기가 "친노가 다해먹는다"이다. '친노 패권주의'다. 그런데 이 친노 패권주의의 실체는 참여정부 때 자신(이나 자신의 측근)을 기용하지 않았다는 원망이 퇴적물이 되어 쌓였다가 이제 다시 드러내는 것일 뿐이다. 지금 문 대표는 당 조직에 자기 사람은 거의 한 명도 못 쓰고 있다. 지금 문 대표의 비서실장은 박광온 의원으로 김한길 의원과 가까운 사람이다. 그렇다면 부실장이라도 자기 사람을 임명할 수 있어야 하는데 반대파가 이마저도 격렬하게 저항해 빈 자리로 남겨두고 있다.
이 반대파들은 당 요직에 자기 편 아니면 무조건 거부권을 행사한다. 문재인은 대표 취임 후 사무총장에 정세균계로 분류되는 최재성 의원을 앉히려 했지만 이들 반대파의 저항 때문에 임명에 실패했다. 결국 사무총장 기능을 다섯 개로 쪼개 최재성이 총무본부장을 맡고 가장 핵심이랄 수 있는 조직본부장에 이윤석 의원을 임명해야 했다.
지금 새정치연합에서 벌어지고 있는 내분은 지역 배타주의에 학벌주의가 더해지고 여기에 개인적 감정까지 얽히면서 터져버린 것이다. 여기에 '문재인 콤플렉스'가 내재된 안철수 의원의 이해관계가 반대파의 그것과 딱 맞아떨어지면서 '문이냐, 안이냐'라는 양극의 대결로 보일 뿐이다.
동시에 갈 수 없는 길, 혁신과 화합 야당 지지자들은 혁신을 요구한다. 압도적이다. 그런데 당내에서는 화합을 말한다. 박지원, 이종걸 등 이른바 비주류는 비상대책위원회를 말하며 안철수를 붙들어야 하고 당이 혁신하면서 화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비대위로 가자는 여론도 있기는 하다. 진중권 교수는 혁신을 밀어붙여야 한다고 말하는 반면 조국 교수는 내년 총선에서 참패하지 않기 위해서 혁신안 관철을 전제로 비대위체제로 가야한다고 주문한다.
그러나 지금 새정치연합 상황에서 혁신과 화합은 서로 논리모순이다. 이 둘은 동시에 추구할 수 있는 방안이 될 수 없다. 새정치연합은 지금 혁신이냐 화합이냐 갈림길에 서있는 것이다. 총선을 망치지 않으려면 안철수의 탈당을 막아야 하고 이를 위해서 문 대표의 사퇴가 불가피하다는 말은 결국 혁신을 하지말자는 것이다. 결국 '도로 새정치연합'이 되자는 것이고 '다시 나눠먹기' 하자는 것이다.
총선을 위해 문재인은 사퇴하고 안철수, 비주류와 함께 해야 한다고 강하게 주장하는 사람들은 국회의원들과 내년 출마예상자들이다. 결국 자신들의 당선을 위한 목소리이다. 그러나 지지자들은 다르다. 이들에게 총선은 둘째 문제다. 이들이 바라는 것은 새정치연합이 새롭게 태어나는 것이다. 그래서 제대로 된 야당을 갖는 것이다. 이제 저 처참한 수준의 야당의 지리멸렬을 끝내야 한다.
제대로 된 야당을 만들기 위해서는 총선 하나쯤은 건너 뛸 각오를 해야 한다. 무책임하다는 반론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총선이 중요하다는 명분을 앞세우며 또다시 '나눠먹기 정당'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주장이야말로 무책임하다. 비대위야말로 지긋지긋하다. 나눠먹기의 또다른 이름이 바로 비대위 아니던가.
야당 지지자들이 원하는 정당은 큰 야당이 아니다. 좋은 야당, 강한 야당이다. 지금의 '거대 야당'이 뭐 하나 제대로 한 게 있나. 흔히 박근혜 대통령에겐 '콘크리트 지지층'이 있다고 하는데 새정치연합이야말로 세월호, 메르스, 교과서 국정화에도 불구하고 꿈쩍 않는 콘크리트 지지층을 가지고 있다. 이것도 야당이냐.
혁신과 화합은 함께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그리고 이 당은 고쳐서 쓸 수 있는 상태가 아니다. 절명케 해서 다시 만들어야 한다. 오직 혁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