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 만화
= 설국열차와 덴마-야엘로드의 비교
: (1) 칸과 키를 통한 적나라하고 소름끼치는 풍자
2013년 여름, 많은 영화들이 상영 됐지만, 그중 가장 뜨거웠던 건 봉준호 감독의 <설국열차>일 것이다. 일단 영화가 재미있냐는 제쳐두고, 인간 사회의 본질적인 구조를 열차에 빗대어 표현했다는 점에서 <설국열차>는 많은 이야깃거리들을 낳았는데, 나는 이를 웹툰 <덴마>의 야엘로드 에피소드와 섞어 이야기해보자 한다.
<설국열차>의 배경은 전형적인 디스토피아로 과학을 통해 환경을 통제하겠다는 인간의 오만이 낳은 빙하기의 시대이다. 모든 것이 얼어붙은 상황에서 한 열차덕후가 만들어낸 ‘영원히 달리는 기차’만이 인류 생존의 유일한 공간이 되고, 1년에 지구 한 바퀴를 도는 열차 속에서 사람들은 살아간다.
반면, <덴마-야엘로드>의 배경은 전형적인 현실세계이다. 물론 이곳은 작가의 독특한 상상력이 만들어낸 외계종족이 사는 행성 ‘네게브’다. 허나 인간과 다른 종족, SF를 기반으로 한 발달된 기술을 제외하곤 우리가 사는 현실과 비슷하다. 즉 행성 네게브는 빙하기의 열차처럼 절망적인 상황이 아니며, 여러 특이점을 제외하면 우리가 사는 곳과 비슷하다.
한쪽은 멸망의 끝에 다다른 디스토피아, 다른 한쪽은 우리의 보통 삶과 비슷한 현실세계, 이렇게 둘은 전혀 다른 배경을 하고 있지만 한 가지 결정적인 공통점을 시사하고 있다. 바로 우리 인간 사회에 내재된 계층 갈등을 다루고 있다는 점이다. 나는 영화와 만화 이 두 가지가 보여주는 소름 돋치는 풍자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설국열차>의 열차는 꼬리칸과 머리칸으로 나뉘어져 있다. 꼬리칸은 전형적인 빈민층으로, 하루하루 보급되는 단백질 블록으로 겨우 생을 이어고 있다. 이들은 모습부터가 노숙자를 떠오르게 한다. 반면 머리칸은 온갖 사치와 향락을 누리는 부유층이며, 이들 사이에는 머리칸에 노동력을 제공하는 중간 계급이 존재한다. 이런 상황 속에서 머리칸은 꼬리칸 사람들의 접근을 막은 체 폭력과 억압을 통한 지배를 실시하고 있다. 꼬리칸은 이따금씩 머리칸을 향해 반란을 일으키지만 번번이 실패했고, 머리칸의 지배에 숨죽이며 또 다른 반란을 계획한다.
<야엘로드>의 네게브는 키가 곧 계급이다. 네게브 사람들은 넥타르라는 물질을 통해 성장하고 살아가는 데, 이 때 처음 5년간의 성장 환경에 따라 키가 달라진다. 원래 이들에게 키는 자유롭고 다양한 것이었지만, 근현대와를 거치면서 경제성장과 환경문제를 고려해 신체 크기를 통일 시키게 된다. 왜냐하면 급속한 산업화의 부작용으로 넥타르의 90%가 오염됐기 때문이다. 결국 정부는 몇몇 자본가의 권유에 따라 규격화 된 성장고 ‘피코’를 각 가정에 공급했다. 그러나 경제성장과 함께 가진 자가 늘여나면서 피코보다 큰 성장고들이 등장한다. 자식들을 좀 더 크고 강하게 키워 남과의 경쟁에서 앞세우려는 이들은 세금을 내더라도 더욱 큰 성장고를 원하였고, 상류층에서 시작된 성장고 키우기는 곧 사회 전반에 퍼지게 됐다. 결국 키가 곧 개인의 경제력과 교육 수준을 알려주는 척도가 돼버렸고, 이중 가장 작은 키의 피코(110cm)는 네게브 최하층민을 뜻하는 의미로도 쓰이게 됐다.
이렇게 <설국열차>와 <야엘로드>는 각각 열차 칸과 키라는 소제를 통해, 우리 사회 계층 문제를 노골적으로 보여주고 있으며 이는 상당히 날카롭다. 더 이상 우리 사회에 신분이라는 '제도'가 존재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계층이 사라진 것도 아니다. 다만 이것은 좀 더 모호해져 구별하기가 힘들 뿐이다. 그런 계층을 하나는 머리에서 꼬리까지 이어지는 열차의 칸으로, 다른 하나는 180(추정)에서 110cm까지 이어지는 키로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지구온난화를 해결하려다 역으로 빙하기를 불러온 cw-7)
(근현대화를 통한 경제적 발전은 오히려 키를 통한 네게브의 계층화에 일조하였다.)
칸과 키, 이 두 작품에서 어떻게 계급화가 형성 됐는지 살펴보면 그 비유는 정말이지 소름끼치다. 인간 사회가 수천 년간 존재해왔던 계급제도를 철폐하고 만민 평등의 민주사회를 만드는 데에는, 과학기술의 발달과 산업화를 통한 경제 성장으로 사회가 어느 정도 풍요로웠기 때문이다. 허나 <설국열차>에서 빙하기를 불러일으킨 건 발달 된 과학이었고, <야엘로드>에서 키가 계층의 상징이 된 건 산업화와 경제성장이 원인이었다. 이것은 우리를 번영으로 이끌어 신분제도를 없앨 수 있게 만들어준 것들이 다시 우리를 덮쳐 더 심각한 계층 사회로 이끌 수 있음을 보여주는 소름끼치는 풍자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적나라하고 소름끼치는 풍자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다행히도 영화와 만화 모두 단순히 문제를 제시하는데서 그치지 않는다. 이에 대한 해답은 남궁민수와 야엘, 두 주인공에 달려있다. 이 이야기는 2편 선각자와 구세주에서 다뤄보도록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