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민족주의가 사실은 안티테제(anti-thesis)의 입장에 설 수밖에 없습니다.
일단 사회과학적으로 용인되는 내용에 대해서 논하겠습니다.
어려운 말로 '지배이데올로기' 혹은 '담론'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 민족주의입니다.
국가는 민족주의적 이데올로기를 반복적으로 재생산합니다.
그 도구는 학교교육, 직장 내 교육, 미디어 등으로 나타날 수 있습니다.
우리는 국어, (한)국사를 배우면서 '한민족'이라는 사실을 배우고
미디어를 통해서도 반복적으로 '붉은 악마'의 일원이 되거나 '애국자'가 되기를 요구받으며
직장에서도 파업이나 노조 결성이 아닌 노사협조주의로 나아가기를 요구받습니다.
예, 물론 일제강점기 다른 민족의 지배를 받았던 경험이 있죠.
그래서 저항적 민족주의의 유산을 쉽게 부정하기 힘듭니다. 이건 완전히 동의합니다.
저 같은 경우 국어나 국사의 영역은 자본주의 근대 국가에서 깰 수 없는 영역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탈민족주의가 국사를 해체하자고 하는 것도 그리 동의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역사적으로 다음과 같은 것을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1. 조선후기→근대국가라는 일방향적 역사관
조선과 대한민국은 별개의 국가입니다.
하나는 왕조국가이며, 가시적 계급사회(양천제, 사농공상 등)였습니다.
다른 하나는 자본주의국가이며, 비가시적 계급사회(부자-빈자 계층, 자본가-농민-노동자 계급)입니다.
조선이라는 나라에서는 자본주의를 꿈꾸거나 자주적 근대국가를 꿈꾸었던 사람이 없습니다.
개항기 이후에나 그런 상상이 가능했던 것이었죠.
이전 시기를 하나로 묶는 역할을 했던 것은 '민족문화' 창달에 힘썼던 박정희 정권입니다.
'자본주의맹아론'
'화랑정신'
'신라 중심의 삼국통일관'
많이 들어보셨죠? 전부 박정희 정권기에 나온 겁니다.
'자본주의맹아론'
'고구려 중심의 삼국통일관'
전부 김일성이 주체사상 만들 때 확립한 역사관들입니다.
알고 계시는 상식들을 믿는 것은 좋습니다.
다만 누가 그것을 '주조'했는지는 알고 계시라 이 말입니다.
이것이 탈민족주의 역사관의 '장점'입니다.
2. 일제강점기 민족주의와 사회주의 진영
일반 민중이 '국민'으로 호명되기 시작한 것은 대한제국 시기입니다.
그러나 자주적 국가의 길은 한일'병합'으로 막혀버리고 말았습니다.
수많은 연구자들이 이 시기 사회주의자들은 민족주의적 성향을 띠고 있었다고 합니다.
동의합니다. 하지만 한국인들이 모두 똑같은 국가를 꿈꾸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미국식의 국가를 꿈꾸는 사람도 있었고
당시로서는 성공적 모델이었던 소련식의 국가를 꿈꾸던 사람도 있었습니다.
물론 우리가 '친일파'라고 부르는 사람 중 일본의 속국으로서 '자치국'으로서의 조선을 상정하던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독립을 꿈꾸던 사람들은 다양한 정치체제를 꿈꾸었습니다.
처음부터 이승만, 김일성으로 대표되는 정체를 세우려고 한 것은 아니라는 겁니다.
물론 민족주의 사관도 이와 같은 생각은 머릿속에 가지고 있습니다만,
다양한 체제가 상상되었다는 생각은 애써 없애려고 하는 것이 대다수 민족주의 사학자들의 생각입니다.
그것을 '민족주의'로 일원화하게 되면 지금의 체제는 하등 문제가 없는 것입니다.
한편 '임정법통론' 또한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왜 '임정법통론'이 나오고 '김구 선생님이 최고'라는 사관이 나왔을까요?
김구를 암살한 것이 거의 확실한 사람이 초대 대통령인 나라에서?
그것은 대한민국임시정부를 법통으로 한 체제를 지금의 체제로 확립하고 싶어하는 것입니다.
물론 뉴라이트들은 대한민국임시정부가 가지고 있는 최소한의 '양심'마저 부정하려고 합니다.
진정한 탈민족주의자들이라면 뉴라이트의 이러한 생각을 타파해야 됩니다.
그렇다고 해서 임정법통론으로만 모든 것을 설명하게 된다고 하면
전체 민족해방운동의 70% 정도를 차지하고 있던 국내 사회주의 세력들,
중국에서 활동한 게릴라 부대들은 무시하게 되는 것입니다.
탈민족주의가 지향하는 바가 모호하다보니 이러한 오해를 하시게 되는 것 같은데
<<해방전후사의 재인식>>에 나오는 일부 탈민족주의 논자들이 이렇게 이야기를 합니다.
그렇지만 최소한 오유 역게에 계시는 분들은 그 점에는 전혀 찬성하지 않고, 오히려 반대한다는 입장입니다.
여태까지 논쟁 구도를 봐오셨으면 알잖아요?
다만 논의를 다양화하자는 겁니다.
3. 현재
전에도 언급한 적이 있었는데
'다물단'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주로 회사를 중심으로 '민족문화' 창달과 그로 인한 노사협조주의 확장을 외치는 조직입니다.
http://www.dhamul.co.kr/buksori/news_view.php?type=2003111618562044&ho=2005041406543062&ind=1056
현대중공업이나 다수 대기업 노조들에서 활동하고 있지요.
민족주의가 사람들의 '불만'을 잠재워주는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평상시 우리는 살아가면서 어떤 불만을 갖나요?
1. 회사에서 돈을 너무 조금 준다. 혹은 취직이 잘 안 된다.
2. 학교와 집에서 맨날 우리에게 성적을 잘 받으라고 이야기한다.
3. 혹시 세계 정세 속에서 전쟁이나 경제위기로 우리나라가 무너지지 않을까 걱정한다.
회사에서 돈을 조금 주거나 취직이 안 되는 이유로
1990년대부터 조금씩 들어오던 외국인노동자를 표적으로 삼는 것입니다.
'우리의 일자리를 뺏어가는 '다른 나라 사람들!''
그렇게 해서 고용자인 회사가 아닌 외국인노동자들에게 분노를 풀게 만들죠.
또한 학교, 집에서 성적을 잘 받으라고 이야기한다든지, 1번을 포함한 회사 스트레스라든지
월드컵 응원문화 등을 통해서 '민족'이 하나되는 행사를 열어서 '표출'하게 하는 것입니다.
꼭 나쁘다고 이야기하는 것이 아닙니다만 ㅡㅡ; 일상의 스트레스를 푸는 자리를
'민족의 제전'인 스포츠를 통해서 풀게 만드는 것이지요.
"빵과 놀이", 역사적으로 항상 중요한 '분노 표출'의 장이었죠.
스포츠는 특히 근대 민족주의의 산물입니다.
고대 그리스의 올림픽을 참조해 올림픽을 만든 쿠베르탱 남작의 의도라든지
그 유명한 '축구 전쟁'(온두라스-엘살바도르)이라든지(축구 때문에 실제로 전쟁했음)
그런 사례들이 은근 많다는 생각을 해보셔야 합니다.
우리나라가 무너질지도 모른다는 생각!
MB가 독도를 방문하고, 다른 나라와 영토 분쟁을 일으키는 맥락을 잘 읽어야 합니다.
왜 집권 말기에 측근 비리가 터지는 시기에 '영토 분쟁'이 일어날까요?
또 한편으로, 일본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후쿠시마 원전 폭발과 집권당의 위기 속에서 상대적으로 민주적이라는 일본민주당이
'독도 문제'를 터뜨려서 일본 국민들을 '통합'하려고 하지 않았나요?
민족주의 문제를 터뜨리는 맥락을 읽는데도 탈민족주의적 시각은 도움이 됩니다.
4. 결론
탈민족주의적 시각의 방향은 다양합니다. 제가 상상할 수 있는 것으로는
1) 근대 자본주의 국가에서 세계시민으로 살아나가기 위해서 필요한 '인종차별'에 반대하는 것
2) 한국적 상황에서 NL로 표상되는 '저항적 민족주의'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는 측면에서 투쟁적 차원으로 쓰는 것(사회민주주의적 지향을 가진 분들이 많이 가지고 있죠)
3) 소수의 사회주의자-공산주의자.
하지만 1), 2), 3)을 모두 공유하자는 것이 아닙니다.
1990년대 한국의 경제성장으로 말미암아 외국인노동자들이 많이 들어오는데요
1920년대 일본, 미국, 1970년대 독일 등 선진자본주의 국가에는 원래 외국인노동자가 많이 들어옵니다.
프랑스만 하더라도 흑인이 축구대표팀에 있는 것이 아무런 위화감이 없을 정도이지요.
서로 인정하는 삶을 살자는 1) 정도는 용인할 수 있지 않나요?
그것이 탈민족주의의 문제의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