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창 와우하느라 롤을 안하고 있었는데
어쩌다 배치를 보니 브론즈 1에 배치를 받았다.
지난 시즌 골드2까지도 갔었는데 너무한거 아닌가 싶었지만
흔히들 말하는 즐겜 마인드로 게임을 투척하다보니 어느새 실버5가 되었다.
그리고 시험끝난 기념으로 주말에 한창 게임 했더니 다시 승급전 자격을 획득하게 되었다.
첫판은 할줄도 모르는 자르반 정글픽했다가 말려서 패배
두번째 판은 최근에 재미들린 애쉬 픽하고 무난한 승리
이렇게 1승 1패의 상황에서 승급전 막판에 돌입했는데
게임을 시작하는 순간 까지도 나는 이 판이 어떻게 전개될지 상상조차 할 수 없었을 것이다.
화면이 전환되고 픽창이 떴다.
역시나 승급전 막판은 5픽이어야 제맛.
5픽 자리에 위치한 내 아이디를 보면서 이번에는 어떤 포지션에 가게될지
만약 정글을 간다면 이번에는 티모를 픽해보면 어떨까 상념에 잠겨있는 찰나에
1픽과 3픽이 지난 게임을 같이 했던듯 재회의 기쁨을 나누었다.
"너 다시는 원딜한다고 XX하지마라 XXX야"
"니가 XX하지마라 XXXXXXX"
아무래도 많이 친한 것 같았음. 같이 있는 다른 3명의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저렇게 격하게 안부인사를 나누는 것을 보니
필히 어려서부터 허물없이 마치 피를 나눈 형제처럼 자란 사이리라.
아무래도 이렇게 훈훈한 분위기에서는 냉혹한 승부의 세계인 이 협곡을 헤쳐나갈 수 없겠다고 판단,
강력한 한수를 두었다.
"저 승급전이에요"
물론 든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들은 아무래도 좋고 어쩌면 내가 그들의 훈훈한 분위기를 망치지 않도록
닷지...를 통해 자리를 비켜줬으면 하는 마음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어쨌거나 우리는 게임을 시작해야했고 차례차례 픽을 했다.
픽 자체에 특이점은 없었지만 자기가 11살에 실버4라고 주장하는 1픽은
번개같은 속도로 아리를 락인했고 그걸보면서 3픽은 죽마고우의 안위를 계속해서 걱정해줬다.
문제는 2픽과 3픽 간에 다시 터져나왔다.
픽이 끝나고보니 두명다 강타를 들고 있는 것이었다.
간간혹 천상계에서 혹은 롤챔스에서 보인다는 강타탑라이너인가 생각도해봤지만
역시나 실버5인 내가 몸담고 있는 이곳의 인력 인프라는 그렇게 녹록하지 않다.
서로 상대에게 탑 라인 자리를 양보해주고 싶은 마음을 강하게 표현하며
또다른 훈훈함으로 채팅창을 채우고 있었다.
분명 내 모스트는 원딜이라고 말을 했지만 4픽은 나 ㅇㄷ 감 이라는 짧은 말과 함께
트리스타나를 픽했다.
"승급전이라며"
라는 말에서 미루어보건데 트리스타나를 픽하기만 하면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가득찬 장인이겠지.
갈수록 승급에 대한 미련이 옅어지는게 역시 열반은 멀지않은 곳에 있음을 느낀다.
남은 포지션은 서포터, 시즌 3에 자주했었던 쓰레쉬를 픽했다.
서로 어찌다 친한 것인지 나의 픽에 대해서 아무도 언급을 안해주고
자기들만의 친목을 도모하는 것에 약간 소외감을 느꼈지만 뭐 어쩌겠는가
지난 판에 같이 만나지 못했던 나의 불운에 감사해야지.
그리고 게임은 시작되었다.
아군의 픽은
1픽 : 아리(미드)
2픽 : 쉔(?)
3픽 : 우디르(?)
4픽 : 트리스타나(원딜)
5픽 : 쓰레쉬(서폿, 나)
상대팀의 픽은
모르가나(서폿)
리신(정글)
니달리(미드)
티모(탑)
드레이븐(원딜)
(픽 순서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시작하자마자 적 부쉬에서 니달리의 날카로운 창이 날아왔고 나의 몸통에 직격했다.
"아픈듯?" 이라는 니달리의 전체 채팅을 보며 나는 무감각하게 사형선고를 날렸고
끌려온 니달리는 몇대 맞더니 스펠 두가지를 모두 쓰면서 돌아갔다.
"스펠 뺀듯?" 이라고 응수해주었으나 역시나 답은 없다.
아무래도 나랑 친해지고 싶지 않아보였다.
이윽고 라인전이 시작되었고
상대 드레이븐은 자신의 막강함을 믿고 달려나왔고 나의 사형선고를 맞은채
트리스타나의 애정어린 포탄을 듬뿍 맞고 퍼스트 블러드를 줬다.
이윽고 배우자없이 이 험난할 세상을 살아갈 용기가 없었던 모르가나 또한
발길을 뒤돌려 허공에 Q를 던지고 생을 마감했다.
게임 시작 3분만의 더블킬이라는 쾌거였다.
쉔이 짧게 "ㅅㅅ" 이라는 메세지를 보내줬다. 오 드디어 공과 사를 구분하고 진지하게 승부에 임하려는 것인가
라는 기대가 0.2초 정도 스쳐갔는데 이어진 쉔의 메세지는
"근데 어쩌냐 나랑 우디르 이러고 있는데"
,,,
2레벨이 된 쉔과 우디르가 두꺼비 앞에서 함께 춤을 추며 채팅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무도 없는 탑에서는 상대 티모가 열심히 CS를 먹으며 타워로 진격해오고 있었고
강타를 둔 아군 두명은 누구도 티모와 친해지고 싶지 않은 모양이었다.
이 난관을 어찌하면 좋을까 생각하는 찰나
어느새 트리스타나는 킬을 또 먹었다.
다른 공간 다른 시간에 함께했더라면 더 좋은 인연이었을텐데
못내 아쉽지만 그래도 남은 15분 가량은 더 함께해야한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 벌어졌다.
계속해서 무도회를 벌이고 있을줄 알았던 두명이 마치 경쟁하듯 봇으로 함께 달려나왔고
흔히들 말하는 4인갱 구도가 되었다.
아.. 정글러가 두명이니 갱만 오면 무조건 4인갱이구나
라는 깨달음과 함께 탄식이 흘러나왔다.
그리고 어찌된 영문인지 모르겠지만
11살의 실버4를 자칭하던 아리는 모두의 걱정속에서도 묵묵히 상대방 니달리와 농담을 따먹으며
3킬 0데스를 기록하고 있었다.
그냥 훈훈하게만 끝날 줄 알았던 게임이 사실은 모두의 연극이었는지
어느새 우리는 전혀 예상치 못했던 승리를 향하고 있었다.
이후에는 너무나도 급격하고 드라마틱한 전개가 계속 이어져 정확히 내가 어떤 플레이를 했었는지
어떤 채팅을 나누고 어떤 감정이 들었는가 세세한 부분이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어렴풋하게도 반피인 트리스타나를 옆에 두고 풀피인 나를 두들겨 패던 리신이라거나
홀로 용감하게 궁극기를 시전하고 점멸을 써서 적진으로 향하던 모르가나 등의 장면이 머리속을 스친다.
하지만 끝내 우리가 상대팀의 넥서스를 파괴하는 일은 없었다.
2억제기를 부수고 미니언들이 열심히 넥서스를 두들겼지만 반피가 되었을 때 상대팀의 억제기는 재 생성되었고
우리의 모든 것을 건 마지막 진격에 상대팀은 끝내 응수했다.
그렇게 우리는 넥서스를 다시 때리지 못하고
...
다만 상대팀의 항복을 얻어냈다.
실버의 경기는 언제나 기묘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