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만 들어 온 오유역게에
무려 88플이나 달린 논쟁이 올라와 있어서
이거 뭥미? 하고 봤는데
굉장히 발전적인 대화가 될 수 있는것이
그놈의 또 민족주의, 편견, 음모론이 들어와 결국 사납게 끝나는 것이 안타깝네요
역사를 대하며 중립을 잡는게 이토록 힘든가하는 생각이 듭니다.
일단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1. 명성황후를 명성황후라 불러야지 왜 민비라 부르는지 이해를 못하겠습니다.
살아생전에나 민비라 불리워 지고 기록에 남은거지 죽은 뒤 멀쩡히 명성이란 시호가 붙었는데
다른 왕비나 국왕은 시호 묘호로 호칭하며 명성황후만 민비라고 부르는건 또 뭔가요
인현왕후 역시 그럼 민비로 불러야 하나요?
물론 살아생전 황제국의 후가 아니었고 대한제국 이후 황후가 된거니
그게 문제면 명성왕후라고 부르던지 해야 논리에 맞습니다.
뉴라이트들이 쓰는 민왕후라는 용어는 말 그대로 창작한 해괴한 용어고
조선의 역대 왕비 왕후도 전부 시호로 부르면서 무슨 억하심정 있다고
민비라고 고집하나요.
댓글보니 광무제를 언급하는데 광무는 연호고 고종은 묘호죠
광무제라 불리워져도 되고 고종황제라 불러도 되죠
조,종이 붙는 묘호라는게 애초 황제국만 사용하는 것인데
조선이 생까고 쓴거거든요.
고려때 강등된 뒤 원종 이후 충자항령 시호만 쓴 시절을 지나
명나라가 조선에 시호를 내려줌에도 묘호로 통칭한게 그 예죠
애초 조선이 참칭해서 쓰던 묘호인데 그게 제국을 선포하고 쓰던
안하고 쓰던 상관 없으니법도에 틀린게 없기에 편한바를 쓴거고요
더 이상한건 민자영이라고 이름으로 부르는 것입니다.
명성황후의 실제 이름이 자영인지 여부는 민씨 족보에서도 명확히 밝혀진바 없고
민자영이라는 출처자체가 1960년대 소설에서 나온거인데
명성황후라는 용어가 맘에 안든다고 불분명한 소설을 쓰면 되나싶네요.
명성황후쓰면 민족주의라 하는게 더 과민반응 같습니다.
2. 에조보고서 대체 어디에 강간이란 말이 나온다고 상상의 나래를 펴시나요
김진명이라는 작가는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출판때 부터
쓰라는 문학은 안하고 민족주의 코드로 책 팔아 먹기로 유명하죠
문학교수님이 작가가 문학으로 독자와 대화하는게 아닌
민족주의 선동만하니 그게 어찌 문학의 범주냐고 비난하던 기억이 나네요
이런거입니다.
에조보고서는 1960년대 일본국회에서도 인용된 바 있고
김진명이 소설책 팔아먹기 위해 언론플레이 한답시가
시나리오 짜서 유포한 107년만에 발굴된 비밀보고서가 아니라
그냥 애초부터 공개된 자료입니다.
실제 김진명이 한 일도
그냥 도서관에 전화해서 복사해서 팩스넣어달라 부탁한게 전부죠
전화로 복사요청해 팩스 받아보는 비밀자료죠 ㅋ
문제가 된 부분입니다.
오카모토(岡本)는 대원군과 동시에 입궐, 사건 실행의 임무를 맡았습니다. 일본 수비대의 장교, 병사들은 경비에만 그치지 않고 대궐 안으로 침입했습니다. 특히 이들은 대궐의 깊은 안쪽까지 들어가 왕비를 끌어내 칼부림을 하고 옷을 발가벗기고 국부 검사(우습기도하고 화가 치미는 일입니다)까지 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기름을 뿌려서 태워버렸다고 합니다. 참으로 이것을 쓰기 염려가 됩니다. 차마 쓸 수가 없습니다. 궁내부 대신은 몹시 잔혹한 방법으로 살해했다고 합니다.
불행하게도 어떤 미국인[米人]이 현장을 목격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보통 일반 조선인의 증언처럼 일방적으로 말살(抹殺)해버릴 수도 없게 되었습니다.
영국공사 힐리어의 보고에 의하면 일본 낭인들이 새벽 5시경 침입하여 5시 45분 경 마무리되었다고 하죠
당시 외국인 목격자였던 러시아 건축기사와 미국인 교관은 명성황후가 죽는것을 목격하고 자릴 떴다고 합니다.
명성황후가 시해되는 과정에서 참흑한 참상이 벌어졌음은 주지하는 사실이고 그 자체로 비극이죠.
힐리어 보고서에 따르면
사진을 들고 입궐한 낭인들이 궁에 들이 닥쳤는데 궁내부 대신이 보호한다고 두발을 벌려 막자
궁내부 대신 보호하고 있는 인물이 명성황후임을 확신하고 칼을 휘둘러 궁내부 대신은 팔이 잘려 나간뒤 죽임을 당했으며
명성황후가 시해된 뒤 황후를 확실히 제거하기 위해 주변에 있는 궁녀들중 사진과 비슷한 궁녀들을 몇명 더 죽였다고 합니다
그후 의자가 시해당한 명성황후의 얼굴을 하얀 천으로 덮어 주었다고도 그록합니다.
정황상 이른바 능욕으로 표현된 국부검사와 시체의 소각은 이런 일이 끝난 후 러시아인과 미국인이 자리를 뜨고 난 뒤에 일이겠죠.
모두해서 새벽 45분간 일어난 참변입니다.
때문에 이를 인용한 일본인의 연구서 역시 시체능욕이란 표현을 쓴 것이고 참으로 수치스럽다 했던 것입니다.
이정도 만으로 충분히 치욕스럽고 비극적인 사건을 가져다가
김진명은 자신의 소설을 팔아먹기 위해 보다 자극적이고 하드코어한 상사역을 추가해서
살아있을 때 강간을 한 것이고 살아있는 채로 불태워 졌다고 합니다
인터넷상에서 에조보고서를 찾아보면 이 짧은 문구가지고 말도 안되는 상상의 나래를 편 문구가 참 많죠
무슨 20명이 돌아가며 윤간을 했네 칼로 찔러가며 강간을 했네 등등 ㅡㅡ;
인간의 상상력이란 무한하고 또한 일본에 대한 적개심이 더 해지면 더한 상상도 추가가 되곤합니다.
김진명이 자신의 소설을 팔아먹기 위해 언플을 시작하며
당연히 더 큰 국민적 공분과 이를 바탕으로 한 민족주의 자극을 바랬겠죠
그 목적은 당연 책 좀더 팔아 먹고 돈 벌고자 하는 욕망이었겠고요
하지만 이렇게 생각해 봅니다
존재하지 않는 사실을 상상력으로 부풀려서 유포하는게
대한민국의 역사에 어떤 도움이 되나요?
이런 경험이 있죠.
과거 90년대 위안부 논란이 처음 불궈졌을 때
조선일보를 필두로 10세 여아도 끌려가던 정신대 즉 공장에서 일하는 근로정신대 전체를
마치 위안부 징집인 것 마냥 호도한 사례가 그러합니다.
목적은 일본은 10세 여아도 성적으로 착취하는 변태전범이며
정신대로 끌려간 100여만의 여성들이란 규모가 주는 충격을 통해
일본의 악랄함을 폭로하고자 했겠음이지만
정작 그후 일본 우익들은 이런 부정확한 상상력의 동원과 인용을 근거로
실제 위안부 피해자의 증언도 거짓된 상상력이라 폄훼하고
위안부피해 역시 정신대와 구분 못하는 한국인들의 거짓말일 뿐이라며
거꾸로 악용해 전체의 실체적 진실을 가리는 도구로 맹렬히 이용했습니다.
명성황후의 참흑하고 비극적인 시해사건을 두고
강간이니 윤간이니 하는 상상의나래를 펴는게
무슨 애국이고 민족주의를 고취하는 수단으로 생각한다면
착각도 정말 착각인 것이죠.
사실의 엄정함을 논하는 역사에서 상상력은 항상
사건의 본질을 가리는 방해물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였음이
우리가 배워온 역사라는 학문의 경험입니다.
2002년 김진명은 이런 에조보고서 떡밥으로 노이즈 마케팅을 성공적으로 했고
늘 그렇듯 대한민국에 뿌리깊은 민족주의를 이용해 또 다시 소설 같지도 않은 소설을
팔아먹으며 충분히 돈을 벌었습니다.
2012년이면 그만할 때도 된 이야기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