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일전쟁
잊고
만주국 설립
잊고
국제연맹 탈퇴
잊고
일본은 파멸을 향해가고 있습니다.
- 작중 인물인 독일인 기술자가 호리코시 지로에게
리뷰를 하기 전에 먼저 해야만 할 얘기가 있을겁니다. 다들 생각하는 그거요.
거기에 대해서 말하자면, 일본이건 한국이건 트레일러는 모두 낚시입니다. 영화의 포인트를 피해갔어요.
신화가 된 제로센? 가슴시린 러브스토리? 다 낚시입니다. 둘다 씁쓸하기만 할뿐 전혀 아름답지 않아요.
어떤 의미에선 우익을 위한 작품인 것처럼 광고해놓고 내용으로는 우익들 뒤통수를 갈긴 일본침몰과 비슷합니다.
그렇기에 이 리뷰는 스포일러 따위 티끌만큼도 신경 안쓰고, 리뷰하는데 필요한 내용을 모두 언급할 예정입니다.
사실 스포일러라는 개념을 따질 필요도 없어요. 내용을 알고 보건, 모르고 보건 전혀 상관이 없는 작품이거든요.
바람이 분다의 이야기 구조를 관통하는 것은 현실과 비현실이다. 비행기를 만든다는 꿈에 몰두하는 호리코시 지로의 현실과 그런 호리코시 지로의 꿈의 세계간의 교차가 끊임없이 반복된다. 현실 파트는 그저 담담히 진행될 뿐이다. 대지진도, 다가올 전쟁도, 비행기를 만든 다는 것의 의미도 그저 스쳐지나갈 뿐이다. 어떠한 평가도 없이, 그저 묵묵히 비행기 설계자의 삶을 보여줄 뿐이다. 마치 컬럼바인 총기 난사 사건에 대해 어떠한 평가도 없이, 그저 사건을 보여주기만 했던 엘리펀트처럼. 반면에 꿈속에서는 끊임없이 평가를 한다. 이탈리아의 비행기 설계자인, 현실에서는 일본어를 할리가 없는 카프로니 백작의 입을 빌려서. 이러한 교차를 통해 이야기가 진행된다.
처음으로 카프로니가 나오는 꿈에서 그는 자신의 비행기가 전쟁에 사용되는 현실을 달갑지 않다는 듯이 말한다. 그럼에도 비행기를 만드는 것은 아름다운 꿈이라 말한다. 전쟁(1차대전)이 끝나면 100명을 싣고 대서양을 횡단할 비행기를 만들 것이라며. 비행기는 전쟁의 도구, 장사의 도구도 아닌 아름다운 꿈이라 말한다. 그리고 현실로 돌아온 어린 호리코시 지로는 엄마에게 비행기 설계자가 될 것이라 말한다.
우려와는 달리, 작중의 호리코시 지로는 아무 생각 없이 비행기 개발에만 몰두하는 인물로 묘사되지 않는다. 자신이 병기를 만든다는 것을 명확히 알고있고,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알고 있다. 일본은 어디와 전쟁을 하려는 걸까라는 그의 질문에 동기는 중국, 소련, 프랑스, 미국, 네덜란드 등등 후일 연합군이 되는 다양한 나라들을 거론한다. 그리고 지로와 동기는 일본은 파멸할거라는 결론을 내린다. 그러나, 지로도 동기도 비행기 설계를 포기하지는 않는다. 대지진이 일어나건, 중일전쟁이 일어나건 간에. 그저 비행기라는 꿈에만 몰두한다.
한편 카프로니 백작은 지로의 꿈에서 얘기했던 100명을 싣고 대서양을 횡단할 거대 여객기를 만든다. 그러나 그 비행기는 부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행기라는 꿈을 포기하지않을 것이라고, 지로 또한 그러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는 지로의 회사인 미쯔비시가 육군의 의뢰인 하야부사의 개발에 실패한 것과 대비된다.
그리고 그 다음의 꿈. 카프로니 백작은 은퇴할 때가 됐다며, 자신의 마지막 작품에 지로를 태운다. 그 폭격기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타고 있는데, 직원들과 그 가족이라며 이일을 군에 들키면 안된다며 웃는다. 그리고는 큰 것을 좋아하는 멍청이들을 속여서 만들어내긴 했지만, 이건 절대 폭격기로 쓸 수 없는 물건이라면서 크게 웃는다. 꿈속의 카프로니 백작은 이탈리아 정부와 군을 속여서 자신의 꿈인 거대 여객기를 만든 것이다. 그리고 지로에게 얘기한다. 비행기는 아름답지만, 저주받은 꿈이라고.
이러한 대비를 통해 비행기의 의미가 구체화된다. 수많은 사람들을 태우고 날아오를 거대 여객기는 시험비행에서 산산히 부서진다. 그 여객기는 다시 꿈에서 군부에게 폭격기라고 속이는 형태로 완성되지만, 꿈은 꿈일 뿐이다. 현실에서 그런 것이 가능할리가 없다. 결국 그 시대의 비행기란, 군용일 뿐이다. 꿈을 쫓는 것만으로 전쟁의 도구가 되는 것이다. 그렇기에 저주받은 꿈이다. 그것을 알고도, 지로는 여전히 현실에서 비행기를 만들기를 포기하지 않는다. 꿈속의 카프로니 백작은 비행기를 아름답지만 저주받은 꿈이라며 은퇴를 선언했지만, 지로는 그저 비행기를 만들 뿐이다.
이후 호리코시 지로는 해군이 의뢰한 함재기 프로젝트를 맡게 된다. 일제의 해군이 사용한 함재기. 한마디로 제로센이다. (여기서 한가지 재밌는게, 해군과의 회의 장면에서 해군들은 쉴새없이 의미없는 괴성을 지른다. 대사 자체가 없다. 그저 의미없는 괴성을 지를 뿐이다. 여기서 얼굴만 인간이 아닌 짐승 또는 괴물로 바꾼다면, 미야자키 하야오의 전형적인 클리셰가 된다.)
여기서, 이야기는 갑자기 이상한 곳으로 샌다. 지로는 산속의 호텔에 있다. 주요 프로젝트를 맡았음에도 뜬금없이 혼자서 산속의 호텔에 묵고 있다. 여기서 대지진 당시 도와주었던 소녀, 지금은 성숙한 여인이 된 나호코를 우연히 다시 만나고, 독일인 엔지니어와 만나서 어울리게 된다. 이 독일인 엔지니어가 바로 이 글의 시작지점에 있는 대사를 한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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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파멸을 향해가고 있습니다.
마의 산이라는 내러티브는 그 독일인 엔지니어가 현실 역사에서는 물론이고, 이야기 상으로도 존재할 수 없는 인물이라는 사실을 통해 강조된다. 그는 첫 만남에서 대뜸 독일인 비행기 설계자인 융커스가 나치에게 쫓기고 있다고 말했으며, 본인도 일제 경찰을 피해 도주하면서 이야기에서 퇴장한다. 한마디로 나치 치하에서는 일을 할 수 없다며 도망친 엔지니어인 것이다. 그런 사람이 인접한 유럽국가들이 아니라, 멀고 먼 극동. 그것도 독일의 동맹국에 와있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된다.
이는 나호코와도 연결이 된다. 대지진으로 인한 화재가 그치고 지로가 나호코의 집에 가봤을때, 그 집은 터만 남긴채 전소되어 있었다. 인연이 완전히 끊긴 것이다. 그런데 현실에 존재할 수 없는 마의 산에서 우연히 다시 만나 약혼을 한 것이다.
국가 프로젝트를 맡은 비행기 설계자가 뜬금없이 혼자 휴가를 즐기고 있고,
나치에 쫓기는 독일인이 당당하고 여유롭게 노래를 부르며 놀고 있고,
집이 전소되어 다신 만날 수 없을거라 생각했던 이와 우연히 만난 곳.
현실을 잊을 수 있는 곳. 현실이 붕괴된 곳. 현실에 존재할 수 없는, 마의 산.
이는 나호코가 꿈속의 인물은 아니지만, 현실의 인물도 아님을 의미한다.
(실제로 실존인물이 아니다. 호리코시 지로에겐 저런 부인도 저런 로맨스도 없었다. 나호코 자체가 호리 타츠오의 자전적 소설 바람이 분다의 여주인공을 차용한 가상의 인물이다.)
이 시점부터 이야기는 현실과 비현실이 섞인다.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현실과 이루지 못한 다른 현실이 섞인다. 나호코와 약혼한 마의 산에서 독일인은 전쟁을 막아야 한다고 말한다. 또한 이후 나호코는 치료를 위해 산속의 결핵 요양원(소설 마의 산의 무대가 바로 결핵 요양원이다.)에 들어갔다가, 호리코시 지로와 살기 위해 지로의 집으로 온다. 여기서의 포인트는 주례를 맡은 상사가 그녀는 치료를 위해 요양원에 있어야 한다고 말하자, 그리고 지로는 내가 그녀와 함께 요양원에 있거나 그녀가 내 곁에 있어야 한다. 우리에겐 시간이 없다고 대답하는 부분이다.
나호코라는 인물 자체가 가지못했던, 그러나 가야했던 다른 현실을 의미하는 것이다. 독일인의 주장대로, 독일도 일본도 전쟁을 하지도 팽창을 하지도 않았던 미래. 호리코시 지로가 제로센을 포기했던 미래. 파멸을 향해 달려나가지 않았으면 닿았을지도 모르는 미래. 그러나 호리코시 지로는 제로센 개발에 열중한다. 의사가 된 동생 카요가 나호코의 상태가 매우 심각하다며 요양원이 아닌 자신의 곁에 잡아두는 지로를 이기적이라고 욕하지만, 아무런 변화도 일어나지 않는다. 지로는 그저 제로센 개발에 열중하고, 나호코는 그런 지로의 곁에서 죽어간다.
그리고 호리코시 지로가 드디어 시험기 비행에 성공하는 날, 나호코는 편지를 남기고 요양원으로 돌아간다.
호리코시 지로는 제로센 개발을 선택하고, 그의 다른 미래는 마의 산으로, 비현실의 영역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렇게 이야기는 끝나고, 마지막 최후의 꿈이 시작된다. 거대한 불길이 치솟고, 모든 것이 폐허가 된다. 수도 없이 많은 비행기들이 부서져 있다. 그 혼돈을 넘어 올라선 곳은, 처음으로 호리코시 지로가 카프로니를 만났던 꿈의 초원과 카프로니다.
카프로니는 지로에게 말한다. ‘이것이 우리의 꿈의 왕국’이라고.
호리코시 지로는 카프로니에게 답한다. ‘지옥이라고 생각했다’고.
중일전쟁도 잊고. 만주국 창설도 잊고. 국제연맹 탈퇴도 잊고. 모든 현실을 무시하고 그들이 꿈만을 쫓으며 내달린 끝에 다다른 곳. 그곳은 지옥이었다. 아름다웠던 꿈 자체가 지옥이 된 것이다.
마지막으로 그들이 비행기라는 저주받은 꿈에 대해 얘기하고, 카프로니는 이곳에서 지로를 기다린 이가 있다고 말한다. 들판의 한가운데서 나호코가 나타난다. 그리고 갑자기 불어닥치는 바람에 실려 사라지면서 지로에게 ‘그래도 살아야 한다’는 말을 남긴다. 그에 지로는 울면서 고맙다고 외친다. 그렇게 영화는 끝난다.
그 마지막 장면이 모든 것을 망친다.
담담하게 그 시대를 살았던 비행기 설계자의 삶을 담아내면서도, 동시에 꿈이나 비현실적인 인물을 통해 그가 실은 모든 현실을 무시하고 파멸을 향해 내달리고 있음을 지적했던 내러티브가 여기서 무너진다. 가지 못했던, 가야만 했던 또 다른 미래가, 지옥의 위에 서 있는 미래에게 그래도 살라는 말을 남긴 것이다. 상당히 불편하다. 물론 그래도 살아야겠지만, 그렇다고 그 한마디로 얘기를 끝맺을 수 있단 말인가.
그런데 여기서 다시 한번, 독일인의 말을 언급할 필요가 있다.
중일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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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연맹 탈퇴
잊고
일본은 파멸을 향해가고 있습니다.
이는 분명히 호리코시 지로에게 던진 말이지만, 동시에 그렇게만 해석할 수는 없는 말이다. 이 영화를 보는 우리는 1930년대를 사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역사적 사실도 붕괴시키고, 이야기 구조 자체도 붕괴시켜가며, 만들어낸 영화에서 그 붕괴의 정점에 있는 인물이 한 말. 이는 옛 사람들이 나눈 대화가 아니다. 이 영화를 보는 이들에게 하는 말이다. 있는 그대로, 현재의 일본이 파멸을 향해가고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사실 영화 전체가 이러한 식의 해석을 요구한다. 옛날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사실 그 이야기의 구조 따위는 개판이고, 실제로는 관객들에게 끊임없이 말을 걸고 성찰하길 요구하는 것이다. 실제로 이야기 자체로만 놓고 보면 담고 있는 의미를 떠나서, 구조 자체가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이라하기 부끄러운 수준이다. 하고 싶은 말을 다 하고 싶었지만, 다큐멘터리적인 내러티브를 선택하진 못하고 스토리가 있는 척은 하려고 했던 미야자키 하야오의 아집이 만들어낸 문제라고 할 수 있겠다.
이러한 시각을 토대로 되짚어보면, 작품이 전하는 메시지가 확실해진다.
지금 일본은 수많은 고난과, 새로운 대립이라는 시대적 바람 위에 놓여있다.
대지진, 원자력 사고 같은 자연적 재해와, 한-일 중-일 대립이라는 위기 상황에도 불구하고 일본은 우경화하고 있다.
역사는 또 다시 분기점에 선 것이다. 재난의 폭풍과 민족주의적 광풍에 휩쓸려, 호리코시 지로처럼 예정된 파멸을 향해 갈 것인가. 아니면 그가 가지 못했던, 우리는 가야 하는 새로운 미래를 잡아낼 것인가.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실패한다면.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
씁쓸한 메시지다.
덧1.
그렇다 하더라도, 미야자키 하야오가 이야기를 잘못 짰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일단 무엇보다도, 불친절하다는 게 가장 큰 문제다. 마의 산을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될 것이며, 이 엉성한 이야기를 이야기 자체로 보지않고 현실과 대비시켜가며 해석할 사람은 몇이나 될 것인가. 그가 받는 비판은 그가 자초한 문제다.
그리고 이 모든걸 감안하더라도, 현실을 무시하고 파멸을 향해 달려나간, 스스로의 꿈을 지옥과 맞바꾸는 주인공을(위에서 누누히 말했지만, 실제 역사 뿐만 아니라 영화 내에서도 그렇게 묘사된다.) 그래도 살라며 위로하는 엔딩은 불편하기 그지없다.
덧2.
우익 본성을 드러냈다는 비판은 저런 해석없이 그냥 이야기 자체만 놓고봐도 말이 안되는 비판이다. 하야오가 장담했듯이 일장기를 단 비행기는 모두 추락한다. 지독할 정도로. 다만 최후의 꿈에서 나온 제로센은 카프로니에게 보여주고 난 뒤 하늘로 올라가서 사라지긴 하는데, 그 전에 지로가 말한다. 한대도 돌아오지 못했다고. 그리고 이게 제로센의 유일한 등장이기도 하다. 싸그리 추락했다고 언급되기만 하고, 꿈에서나 제대로 나는 제로센.
또한 몇번이고 언급한 일본이 스스로 파멸을 향해 가고 있다는 발언이나, 중간에 지로가 사상범으로 잡힐뻔 했을때(나치에게 쫓기는 독일인과 대화했던 것 때문에) ‘이런 일은 근대국가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화내자, 옆에 있던 동기와 상사가 ‘일본이 근대국가인줄 알았냐’고 박장대소하는 모습 등을 보면 우익은 커녕 대놓고 일까다.
그 외에 비행기 개발할 비용이면 길거리의 굶주린 아이들 모두가 카스테라에 초밥을 배불리 먹고 살 수 있을거라며 당시의 군국주의 일제는 물론이고,그에 종사한 비행기 설계자들 자체를 까는 발언도 있다. 우리가 북한 미사일 개발 깔때 쓰는 표현이랑 똑같다.
덧3.
원령공주와는 다른 의미로 확실히 은퇴를 결심했다는 느낌이 든다. 원령공주는 미야자키 하야오 다움을 극한으로 끌어올린 작품이었다면, 바람이 분다는 붉은 돼지에서 살짝 비췄던 하야오의 모순을 있는 그대로 내보였다. 파시스트가 보다는 돼지가 낫다고 말하는 주제에 여전히 전투기를 타고 다니며 도그 파이트도 즐기는 포르코 롯소. 그리고 반전을 외치는 주제에 밀덕인 미야자키 하야오.
물론 결론은 아름답지만 저주받은 꿈. 이라는 한마디고, 그것이 실현된 세상은 지옥이라는 결말이다. 풀어서 말하자면 밀덕은 얌전히 프라모델이나 워게임 또는 월탱에나 하악대고, 진짜 병기를 만들자는 말은 자제하라는 얘기. 그러니 밀덕들은 월탱을 하자. 엘크 승차감이 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