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당장 오늘 2시만 해도 총궐기에 갈까, 말까 하고 망설이고 있었어요.
친구들은 위험하니까 가지 말라는 이들이 많았고,
보다 이야기가 필요하고 논의되어야 하는 안건들이 많고 동의할 수 없는 것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시위에 참여하는 행동은 그것 자체로 모든 안건에 대한 긍정으로 비추어질 우려가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습니다.
또한 미리 선포된 강경대응에 대한 불안감 역시 있었어요.
하지만 결과적으로, 전 홀로 광화문으로 갔습니다.
오후 4시의 광화문은, 이미 도착한 친구의 말로는 이미 봉쇄되었다고 하네요. 그래서 서대문에서 나와 걸어갔습니다.
(원래 피켓도 하나 써 가려 했는데, 바깥쪽에 깔린 경찰 병력 보고 폐기처분했습니다. 그걸 들고 간다는 것 자체가 섶을 지고 뛰어드는 불나방의 꼴과 다를 바 없다고 판단되어서이죠. 슬프게도, 저 역시 자기검열을 했나 봅니다.)
한참을 걸어서, 경찰분들 오가는거 구경하면서 광화문 쪽으로 도착했습니다.
4시 경의 광화문 상황을 정리드립니다.
*네이버 지도를 편집했습니다.
빨간색 부분은 세월호, 국정화 교과서 반대를 위한 모임
파란색 부분은 국정화 교과서 찬성을 촉구하는 모임
주황색 부분은 현재도 대치중인 총궐기 시민들이 집결한 위치
갈색 부분은 주된 경찰의 도로 봉쇄 지점입니다.
친구가 임시기자로써 뛰고 있어서 그 친구를 만나려 가려고 주황색 지역으로 가려고 했지만
이미 오후 4시경부터 통제가 이루어지고 있었습니다.
이 시기에 저처럼 많은 시민분들은 경찰의 분리와 도로 통제에 의해 우왕좌왕 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마치 스타 성큰디펜스가 생각나는 미묘한 배치가 인상적이었습니다.
어찌되었건 완전한 교통봉쇄는 경찰 측에서도 위법이 된다는 사실을 알아서인지, 한참을 경찰차를 따라 돌면 부분적으로 열린 샛길을 통해 지나갈 수 있었습니다.
특히 한 지역은 파스쿠치, 였나요. 그 카페의 쪽문을 이용해야만 지나갈 수 있게 해놓아서, 그쪽 장사하는 사람과 카페 이용하시는 분들(사실 별로 없었지만)에게 미안하더라구요. 뭐 그래도 적어도 제가 만난 경찰분들은 다들 친절했습니다.
일단 친구가 있는 주황색 지역으로 가는 것은 포기하고, 한참을 두 개의 폴리스 라인 벽을 구경하고 있었습니다.
꽤나 장관이었습니다.
한쪽에서는 어르신들이 반공주의자들을 모조리 없애버려야 한다고 스피커를 짱짱하게 켜고 있었고
군복 입은 전우회 할아버지들이 맞씁니다!, 아닙니다! 이러시더라구요.
뭐 그들의 신념인건지 알바인건지는 잘 모르겠으니, 일단 나름대로 존중은 해야하지 않겠습니까. 최대한의 존중을 담아 무시했습니다.
(애시당초 제가 가장 반대하는 것이 국정화 교과서 문제이기 때문에 고운 눈초리를 보낼 수는 없더군요.)
그리고 한참을 돌아돌아 빨간색 지역으로 갔습니다.
이곳은 그야말로 평화로웠습니다.
짱짱한 스피커도 없었고(개인적으로 피아구분 없이 싫어합니다.), 피켓 드신 분들 역시 조용히 자신의 뜻을 관철하고 있었습니다.
그 뒤편에는 마치 박람회(보다 적절한 표현을 찾고 싶었지만...)같이, 각 장소마다 세월호와 국정화 교과서 반대를 위한 공간이 있었습니다.
옆쪽에는 서명 운동도 벌이고 있어서, 그곳에 가서 서명하고 왔습니다.
사실 이 장소가 저는 제일 마음에 들었습니다. 조용하고 평화로운 방식으로 자신의 뜻을 보인다는 것이 느껴져서요. 많은 분들이 이 장소를 언급하고 많은 언론이 이곳을 다뤄주었다면 좋았을텐데,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아, 이건 다섯 시쯤 제가 있을 때의 이야기인데
위쪽에 피켓 들고 계신 분들에게 한 어르신께서 오셔서 그분들을 질타하고 있었습니다.
이에 대응하는 한 중년분께서도 어르신에게 지지않고 말씀하셔서, 잠시 험악한 분위기가 연출되었습니다.
일단 중년분을 감싸서 말리고, 할아버지는 저쪽 같은 생각을 하는 이들이 있는 곳(파란색 지역이겠죠)으로 떠나가더군요.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음, 굳이 과격하게 응수하지 않아도 돌려보낼 수 있었을텐데. 하는 것.
물론 모두가 냉정하고 침착할 수는 없겠지만, 괜한 도발에 걸려들어서 약점을 보이는 것은 좋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상호 존중은, 쉬운 일이 아닌가 봅니다 역시.
마지막으로 덕수궁 돌담길을 따라 한참을 돌아서 주황색 시위 본대 쪽에 합류했습니다.
위쪽 지도에는 작게 그려져 있지만, 실제 방문한 분들은 모두 아시겠지만 저 지역부터 시청역까지의 전 범위를 커버했다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그리고 언론에 방송되고 있는 최루와 살수는 최전선 폴리스 라인 인근에서 발생하고 있는 충돌이며,
그 뒷 부분의 시위대에는 여러 다른 생각을 지닌 이들(국정화 교과서 반대, 노동조합 운동가, 장애인 인권운동가) 등이 있었습니다. 노점도 많았구요.
저는 용기가 부족하고, 솔직히 모든 뜻에도 충분히 공감하지는 못하고 있기 때문에 코리아나 호텔 인근까지만 나가보았습니다.
캡사이신이 뿌려진 것을 충분히 느낄 수 있는 것이, 광화문 한 블럭 전체가 콜록콜록거렸다고 생각하시면 될 듯 합니다.
가볍게 화생방의 추억을 상기시켜주어 꽤나 즐거웠습니다.
전방에 나가있는 경찰 친구의 말로는, 최선두에 있는데 우산살로 찌르는 사람이나 둔기로 압박하는 이들이 있다고 하더군요.
시위대에게 끌려갔던 부대원을 자신이 데리고 오기까지 했다고...
음, 글쎄요. 저는 이런 방식에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비록 현재 오유의 격앙된 분위기를 보았을 때 반대가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이제 와서 폭력행위의 선후관계를 따지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판단됩니다.
물론 보다 월등한 무장과 일원화된 지휘체계를 지닌 경찰 측이 보다 억제하고 함부러 그 힘을 휘두르지 않았어야 하는 것이 백번 옳다 생각하지만,
상대가 나쁘게 나온다고 해서 날카로운 물건으로 사람을 찌르는 행동은 '정당한 의견 표출'이라기 보다는 단순히 분노해서 '경찰을 다치게 하려는 행동'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의 뜻이 옳다고 해서 모든 수단이 정당화되는 것은 아닙니다. 이는 경찰 측에도, 시위 측에서 적용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분명히 저는 다소 과격한 선두의 충돌을 목격했고, 친구의 이야기를 들은 이상 정도를 넘었다고 판단되는 행위에는 동조하기 힘들었습니다.
선후관계는 확인이 불가능하고, 확인한다 해도 명백한 증거가 없다면 모든 사람들을 설득시킬 수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경찰에 대한 폭력은, 특히 날카로운 물건으로 찌르는 행동은, 누가 보아도 불쌍한 개인의 희생을 낳을 뿐입니다.
이런 방식은 옳지 않다고 여깁니다.
사실 제가 바랬던 방법은, 위의 평화로운 시위에 가깝지 않았나 싶습니다.
뒷부분에서는 보다 평화로운 양상이 진행되고 있어 그들과 잠시 어울리다가 들어왔습니다.
마지막으로 사진 한 장 올리겠습니다.
이것은 이번 총궐기에서 역풍맞기 딱 좋다 여긴 두 번째 행동입니다.
집단적으로 움직인 노조의 활동은 이해합니다.
하지만 바닥에 널부러진 쓰레기에 대한 대책이 전무했다는 점이 아쉬움에 남는군요.
담배꽁초, 유쾌하지 않았습니다.
이 장황한 글의 결론을 짓겠습니다.
제가 민중총궐기에 참석한 것은 모든 안건에 대한 긍정이 아니었습니다. 아마 많은 분들 역시 그렇게 생각할 것입니다.
저는 폭력시위를 결코 긍정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매스컴은 저를 폭력시위꾼이자 민중총궐기의 모든 안건에 대한 긍정입장을 지닌 사람으로 만들 것입니다.
그리고 저를 바닥에 쓰레기를 투척하고 간 몰상식한 시위꾼으로 포장할 것입니다.
하지만 아시다시피, 저는 다른 모든 분들과 마찬가지로 이 모든 분들과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같은 방향성과 노선을 지향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정도는 다를 수 있어도 현 정부에 대한 비판의식이라는 공통된 의식을 가지고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제가 오늘 방문에서 원했던 것은 그것을 확인하고자 했던 것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그리고 앞서 말했던 평화로운 광화문 시위장소에 대해 알리고 싶었던 마음이 큽니다.
역풍맞지 않고 대중의 지지를 얻어낼 시위의 방식은 저런 것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오늘 나가신 많은 분들, 저와 생각이 다를지라도, 시민이건 경찰이건
부디 무사하시길 바랍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