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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직구주의) 미필자들은 몰랐던, 그 곳의 이면 (13)
게시물ID : military_29994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류세아
추천 : 9
조회수 : 1374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13/09/07 23:43:47
안녕하세요, 너무 오랜만입니다. 
이게 사실 여행을 다녀오고 나서 열심히 올리려고 했었는데, 여행 후 남쪽의 집으로 돌아가고, 돌아가서 부모님 앞에서 컴퓨터를 마음대로 막 쓰기에는 눈치가 좀 보이고, 그렇게 다시 서울로 돌아왔더니 각종 개학 첫 주의 문제들이 절 기다리고 있었기에, 딱히 여기에 많은 신경을 쓰지 못했네요. 

결국 연재를 재개한다고 말한 지 거진 한 달이 지난 지금에 와서야 겨우 이래저래 다시 글을 쓸 수 있게 되었습니다. 
내일까지가 마감인 과제들이 있지만, 뭐 어때요, 그러라고 하지요 뭐. 

항상 말슴드리는 것이지만, 제 글을 읽기 전에 이젠 연재물들을 먼저 읽고 오시는 것을 추천합니다. 스토리가 많이 진행된지라, 이제 전 이야기들을 읽지 않는다면 이해하지 못하시는 부분이 많을 거라고 생각되기 때문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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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가 만났을 때, 우리는 항상 공감대를 찾는다. 그것은 공감대야말로 둘의 사이를 강하게 연결시키는 공통점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무엇을 좋아하세요'라는 질문은 첫 데이트에서 마치 공식처럼 나오는 질문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는 매우 비효율적인 일이다. 우리는 같은 것을 좋아하는 것보다 같은 것을 싫어하는 상황에 더 많은 공동체 의식을 느끼기 때문이다. 만일 윤리의식을 배제했을 때 같은 것을 싫어하는 남녀가 있다면, 그들은 같은 것을 좋아하는 남녀보다 훨씬 더 이어질 확률이 높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얄랑한 윤리적 관념은 뭔가를 싫어한다는 것을 부정적으로 받아들인다. 싫어하는 게 많을 수록 그 사람은 부정적인 사람이다. 그리고 윤리적으로 긍적적인 사람을 찾기 위해서 우린 오늘도 비효율적인 질문을 한다. '무엇을 좋아하세요?'

오늘은 초소의 이야기에 대해서 말해보려고 해. 여러분은 초소에 대해서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을 지 모르겠지만, 사실 초소라는 공간은 서로 그렇게 친하지 않을 수 도 있는 2~3사람이 하루 종일 틀어박혀 있어야 하는 공간이야. 그것이 초소의 가장 큰 개념이기도 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아. 그래서 전혀 친하지 않은 몇몇이 초소로 들어갔을 때, 그들은 정말 지옥도에 가까운 지루함을 느끼면서 초소 근무 역시 소홀해지는 경우가 많지. 

초소에서는 기본적으로 각자 배정되어 있는 영역을 감시하면서 서로의 컨디션에 문제가 있지 않은지 시시각각 체크해 주어야 해. 그 방법 중 내 선임들이 가장 많이 썼던 방법은 역시 구타. 그리고 그네들이 전역한 뒤 가장 많이 사용한 방법은 대화였지. 

이를 위해서는 서로가 서로를 지루하게 하지 않을 만큼의 대화주제가 필요한데, 여기서 중요한 것이 사회에서의 경험의 차이야. 난 사실 그런 면에서는 매우 부족하다고 할 수 있었지. 난 우리 분대 유일의 공대생이었으니까. 

공대생이라는 이유만으로 재미없다고 할 수는 없어. 하지만 난 정말 공학 공부에 모든 대학생활을 들이부은 공대생이었거든. 따라서 내가 가지고 있는 대화주제에 대학생활의 여유로움과 풋풋한 여자 이야기는 어딜 돌아봐도 없었지. 해부학 이야기. 구조공학 이야기, 집을 짓는 순서는 어떻게 될까, 왜 우리는 집을 지을 때 땅을 일자로 파 내려가는 것일까(비스듬히 넓게 파 내려가면 파내려간 부분이 함몰될 가능성이 훨씬 떨어지지)

이런 주제들에 공감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거라고 봐. 오유에도, 아니 사실 우리 과의 우리 학생들을 제외한 그 누구도. 게다가 졸리운 야간근무 속에서 '제가 이 여자를 이렇게 따 먹었는데 말입니다'식의 자극적인 이야기가 넘쳐 흐르는 가운데 과학적 호기심따위. 

난 실제로도 그렇게 친구가 많은 편은 아니야. 군대에서는 더더욱 그랬지. A의 시절로부터 이어져온 반 매장기가 있었기 때문에 내 맞후임들에게 얕보여지고 있었으며, 많은 일을 내가 담당했지만 당당하게 내가 이만큼의 경력을 가졌으니 이만한 지식을 가진 사람이 있으면 내 권위에 덤비거라 라는 말보다는 '내가 할 수 있으니 내가 할게'식으로 아무래도 자신감이 없기도 했고. 

그렇게 나는 많은 후임들을 잃어버렸어. 여러분이 군대에 곧 가야 한다면, 가기 전에 많은 여자 경험과 다양한 취미생활을 즐기고 가길 바래. 그것들이 전부 여러분의 무기가 될 테니까. 이것은 이론적인 방면에서 심하게 빗나간, 이른바 실무적인 이야기야. 명심해. 내 뒤를 따라오지는 말아줘.

재미없는 놈.

과연 이런 딱지를 붙이고 선임병으로서의 인생을 살았던 사람은 얼마나 되었을까. 난 나름대로 나 자신에 모든 걸 투자한다는 자부심이 있었는데, 결국은 그게 틀린 것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 그 상실감을 사람들은 알까.

오히려 놀던 사람이 군생활은 잘 해. 그네들은 많이 놀았었고, 사람들이 흔히 궁금해하는 것에 대해서 더 해박하게 아니까. 실제 생활에서도 대개 그런 면이 많아. 일을 매우 잘 하는 사람보다는 통하는 사람이 더 좋아 보이는 법이지. 난 술자리에서 말이 없는 편이야. 술은 이성을 흐리게 하고, 그 와중에 무슨 말을 내뱉아 실수할 지 모르니까. 하지만 그것은 항상 차선이야. 술을 먹으면 흥이 나서 신나게 농담을 던지는 친구가 더 인상적이고 더 밝아 보이지. 난 오로지 술을 먹고 개가 되는 몇몇 문제있는 친구들보다 아주 조금 나은 사람일 뿐이지. 

맞는 말이야. 나는 나름대로 명문대라는 곳에 입학해서, 상위권의 성적을 받으며, 누구 말따마나 엄마친구아들이라는 호칭을 얻고 살고 있지만, 우리네 삶은 그저 퍽퍽한, 개사료같은 삶이었는데, 놀던 친구들의 삶은 이태리 음식 같아서, 개사료만 먹던 우리는 그 느끼한 것을 온전히 소화시키지도 못하지. 

난 언제부턴가 혼자 할 수 있는 취미에 눈을 들이기 시작했어. 기차역 편의점에서 팔고 있던 퍼즐잡지를 사 들고 군대로 들어간 것도 그 시점이 아니었나 싶어. 혼자서 멍하니 숫자 퍼즐들을 풀고 있자면, 나와 관계없다는 듯이 시간은 흘러가곤 했지. 

누구는 날 이해해보려고 손을 내밀었고, 누구는 난 영 재미없다며 등을 돌렸어. 하지만 이젠 내가 선임이라 아무도 가타부타 나에게 말하진 않으니까 그것으로 나는 괜찮았어. 

상병의 어느 날이었던 것 같아. 나와 후임 한 명은 초소에 들어갔고, 우리 둘은 조용히 두 시간동안 있었지. 그 후임은 나에게 자신이 나름 재미있었던 이야기를 늘어놓았지만 나는 더 이상 그 후임의 이야기가 재미있지 않았어. 어서 쉬는 시간이 되어 방에서 퍼즐이나 풀고, 덮어놨던 수학책이나 흝고 싶었지. 내 개념 안에서 그네들과 나는 완전히 분리된 느낌이었어. 난 완연히 인정했어. 내 군생활에서의 실패는, 내가 문제였던 거야. 지금까지 나와 만났던 아주 많지는 않은 분대원들은 사실 정상이었어.

대학으로 돌아가고 싶었어. 내 인성과 그 외 각종 인간관계는 신경쓰지 않고, 오로지 내가 제출한 결과물만으로 나를 평가해 주는 곳. 사람과 사람이 부딫히지 않는 곳. 지금까지 배운 것을 완벽하게 습득하면 그만큼의 대가가 확실하게 따르는 곳. 

같은 것을 좋아하는 것은 관계형성에 긍정적 영향을 끼치고, 같은 것을 싫어하는 것은 관계형성에 박차를 가할 수 있게 해 준다. 
하지만, 같은 것을 좋아하지 않는데 같은 것을 싫어한다는 것 만으로 관계는 형성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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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좀 개념적인 이야기가 되어버렸는데요, 읽으시는 분들에 따라서는 무슨 궁상이냐고 비난하실 분들도 많으실 것 같은 느낌입니다. 
사실 모든 게 자기합리화에 불과하다고 저도 그렇게 생각하니까요. 

자신을 고치고 좀 더 활달한 성격으로 바꿔서 모두와 즐겁게 지낼 수 있지 않겠느냐, 그런 노력도 없이 인간관계가 좋을 리가 없지 않곘느냐. 라고 말씀하시는 분들 물론 정말 많습니다. 

하지만 제 문제는 그게 아니에요. 지금까지 제가 해온 모든 일에 관한 제 신념이 뿌리부터 흔들린 사건이니까요. 전 너무 슬펐습니다. 대학에 있었을 때는 며칠 밤을 새어 가면서 피눈물 끝에 나온 결과물들이, 기억들이. 명문대에 합격하겠답시고, 인생은 합격 후에 즐기자고 다 던져버리고 매달렸던 입시의 기억이. 텁텁함을 애써 참아가면서 여섯시 반에 일어나면 눈을 비비고 의자로 기어올라 책부터 펴들었던 노력들이, 가치관들이 다 찢기고 무너지는 현실이 너무 싫었습니다. 

후에 제 스펙을 보고 뽑은 회사에서 술자리가 있으면 그 술자리에서도 저는 조용하겠죠. 
그리고 상관은 이렇게 말할 겁니다. 
'넌 대체 젊을 때 뭘 했냐'
'스펙 쌓았습니다'

빌어먹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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