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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 마시면 자해하는 버릇이 생긴 게 고민입니다.
게시물ID : gomin_831160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류세아
추천 : 1
조회수 : 1719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3/09/07 22:36:40
물론 뭐 칼로 자신을 난도질한다던가 하는 중증의 자해는 아니니 큰 걱정은 마시구요. 
사실상 자해가 문제라기보다는 자존감의 부재라던가 미래에 대한 걱정이 문제인 것 같네요. 

오늘도 친구와 친구의 친구들과 술을 한 잔 걸치고 왔는데, 원래 술 먹는 걸 많이 좋아하는지라 많이 먹고 말짱하게 집에 와서는 솟구치는 자괴감에 시달리고는 해요. 요즘은 그 덕에 술이 많이 줄기도 했는데요, 

제 소개부터 하자면, 좋아했던 사람은 있지만 서로 좋아해서 사귄 사람은 없는 23살 모태솔로 군필 공대생입니다. 여러분이 sky라고 부르는 나름대로 입지있는 대학교에 정말 뼈빠지게 공부해서 들어가기도 했구요, 그곳에서도 뒤쳐지지 않는다는 일념 하나로 서울 친구들을 제끼고 전액장학생으로 학교를 다니고 있어요. 

그런 저한테 한때는 자부심이 있었습니다. 누구는 젊음을 허비하지만, 난 이만큼을 이뤄내고 산다고. 누구보다 내 일에 몰두할 자신이 있고, 내 일에 완벽해질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능력은 일에 대한 능력이 전부가 아니었죠. 문제는 실무였습니다. 

저는 사람 사귀는 데에는 모자란 면이 많았어요. 특히 여자인 사람? 뭐 그렇다기보다는 저랑 다른 환경에서 자란 사람이라고 하는 게 정확한 표현인 것 같네요. 고등학교 때야 같은 게임을 하는 친구, 혹은 시청각물( 영화, 애니메이션, 만화책 그 외 모든 눈으로 보면서 즐길 수 있는, 이를테면 클래식을 좋아하거나 미술을 좋아한대도) 을 좋아해서 공감대가 형성되는 친구하고는 거진 친했었죠. 반에서 친하지 않은 사람이 없는 발 넓은 애들 중 하나이기도 했었고. 

문제는 군대에서 발생했습니다. 언제부턴가, 제가 친구를 사귀는 데 써왔던 저만의 방식은 통용되지 않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어요. 제 닉네임으로 검색해보시면 아시겠지만, 군에서 여러 모로 모진 대우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다시 학교에 복학했고, 저는 해서는 안 될 선택을 한 것 같습니다. 공부에 올인하는 것. 사무적인 관계 이상을 가지지 않는 것. 
전 조별 활동에서도 제가 항상 가장 많은 파트를 분담했고, 누가 봐도 완벽한 결과물을 제출했습니다. 물론 저희 수준에서지만요. 교수가 봐도 적어도 이 조가 최선을 다해서 결과물을 도출했다는 느낌이 들 수 있도록, 저는 그렇게 학교 생활을 했습니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저는 제 자아를 잊어버린 듯한 느낌이 들어요. 군대를 가기 전보다 월등해진 성적과, 좋아진 교수들의 평가 속에서 전 전액 장학생이라는 영예를 안았으나 주변에는 아무도 없게 되었네요. 

같은 과 친구들은 그나마 저를 이해합니다. 이 정도 하려면 엔간한 지신의 모든 여유시간과 취미들을 포기해야 하고, 제가 평소에 어느 정도로 학업에 힘을 쏟는지 다들 알기 때문이죠. 또한 저 만큼의 점수를 받을 과제물을 만들어내는 것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도요. 추가적으로, 저와 친한 사람들 대부분이 4.3만점에 4점 이상의 학점을 받고 있기 때문에, 그네들도 저와 비슷항 양의 무언가를 희생하기도 했지요. 그래서 우리네 사이에선 우리네를 이해합니다. 

문제는 다른 누구도 우리를, 저를 이해해주지 못한다는 것에 있어요. 그들 눈에 나는 고리타분한 공부벌레일 뿐이고 너드일 뿐이죠. 여자 이야기를 시작하자면 따로 할 이야기가 없고, 취미생활 이야기를 하자면 남들이 그 흔하다는 취미를 즐길 때 난 편의점 막걸리를 마시고 조금이라도 더 편하게 자는 데에 바빴으니까요. 

공대생인 우리네 사이에서 이런 말을 합니다. '공대생은 디메리트이다.'. 대사에서부터 벌써 고리타분한 냄새가 풍기지요. 그래요 전 일과 공부밖에 모르고 살았습니다. 마감이 끝나고 좋다고 술을 마시러 신촌의 술집 거리를 쑤시다가 어디로 들어갈 지 몰라 어영부영 흩어지는 게 우리입니다. 

놀면서 공부도 잘 하는 분들이 계시는데, 그분들이야말로 진정한 승리자요, 대단한 분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왜냐면 놀지 못하고 공부만 했는데도 전 만점을 받아본 적이 한 번도 없었고, 누군가 한 명은 꼭 저보다 우월한 점수를 받아왔기 때문입니다. 

모든 걸 쏟아부으면서도 내가 쏟아부은 곳에서는 최고가 될 수 없었던 제게 마음 속으로는 실망감과 자괴감을 느꼈었 던 것 같아요. 
또한 이제 누구를 만나도 내 '힘들다'는 말을 이해하줄 수 없다는 걸 알았을때, 그리고 당연히 이런 줄만 알았던 대학생활이 그네들에게는 절대 그렇지 않았다는 걸 알았을 때. 내가 상아탑에 갇혀 있는 걸 깨달을 때, 있는 힘을 다해도 상아탑의 꼭대기에는 내가 아닌 꼭 누군가 다른 사람이 존재할 때.

우리 과 학생들은 다들 몸이 좋은 편이에요. 군대의 경험 때문이기도 하고, 다들 자기관리가 어느 정도는 철저하죠. 
그건 우리 자신에 대해서 우리가 자신이 없기에, 그래서 뭐라도 가시적인 우월성을 만들기 위해서, 우리는 그렇게 운동을 합니다. 
그리고 간혹 사람들을 만나서 그 어떤 것도 공감이 안 될 때, 다들 신난다고 떠들고 있을 때 조용한 우리를 발견할 때 되게 자괴감을 느껴요. 그게 술자리구요. 

어느 날이었던가 손에 피가 나도록 벽을 후려갈겼습니다. 며칠간 손을 쓰지 못했어요. 우린 항상 자학적인 발언을 내뱉지만, 이젠 그게 우리에 한정된 건지 나에 한정된 건지 알 수가 없습니다. 

친구는 폴리텍에 다닙니다. 다른 사람들은 실용음악과에 다니구요. 
내가 잘못된 것이 더 이상 내 육체에 있지 않음을 알고 있습니다. 내가 그네들과 어울리지 못함이 그네들의 잘못이 아니라 내 잘못임을 압니다. 
난 굉장히 고리타분한 존재입니다. 보수적이고 흔히들 말하듯이 국가가 강요하는 교육과 등용문의 길에 평생을 순응해온 사람입니다. 

오늘은 술을 먹고 자괴감에 빠졌지만 내일 일어나면 난 또 불평없이 도서관을 들락거리며 싸구려 학식을 먹고 토익과 스펙에 몸을 맡길겁니다. 
나와 같은 사람은 많이 없습니다. 그래서 항상 외롭네요. 

누군가 이해해주길 바라지만, 이해할 만큼의 처지 설명을 하면 고리타분한 놈이 되고, 그렇지 않으면 신나는 말은 딱히 할 게 없는 제가 원망스럽습니다. 이 생활은 너무 힘든 것 같아요. 어쩌면 이까짓 몸 키워봐야 뭘 하냐는 심정으로 자해하게 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어느 정도 고통이 느껴지면 차라리 후련하네요. 

글에 기승전결이 없고 이상하겠죠. 머릿속에 항상 지니고 있던 생각을 그저 끄집어 내 놓은 것이니까요. 
날 비난하셔도 좋습니다. 명확한 근거를 따져서 제 논리가 완전히 틀렸다는 것을 증명하셔도 좋습니다. 

그냥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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