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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교과서 비판의 포인트는 왜곡 친일이어서는 안됩니다.
게시물ID : sisa_620764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소주는25도
추천 : 10
조회수 : 679회
댓글수 : 38개
등록시간 : 2015/11/01 01:41:12
국정 교과서를 반대하는 입장에서 좀 우려되는 것이 있어 글을 써봅니다.

사실 저 말고 이 점을 잘 알고 계시는 분도 많을 것이고 ..
며칠 전에 시사게에도 이미 이미 지적한 글이 올라왔습니다.

http://www.todayhumor.co.kr/board/view.php?table=sisa&no=620150&s_no=620150&kind=search&search_table_name=sisa&page=1&keyfield=subject&keyword=%ED%98%9C%EC%95%88

글 작성자분이 구체적이고 자세하게 써놓으셨는데, 좀 길어서 오히려 묻힌 것 같네요. 

저 글의 내용을 간단히 다시 쓰자면 이렇습니다.

1. 국정화를 밀어붙인 뒤 처음 나오는 교과서는 의외로 멀쩡한 교과서일 수 있다.
2. 그때 새누리는 '너희는 왜곡 친일 교과서가 나올 거라고 했지만' 보아라 멀쩡한 교과서가 나오지 않았느냐.
3. 역시 좌빨의 근거없고 맹목적인 반대였을 뿐이다. 
4. 여기까지 진행되고 나면 국정교과서 반대 동력은 이미 사라질 것이고, 
5. 그 후에 교과서를 조금씩 개판으로 바꿔나간다 한들 막을 힘이 이미 없게 된다. 

굉장히 현실적이고,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 전개입니다. 

여기서 질문이 하나 나올 수 있습니다. 
'멀쩡한' 교과서를 만들 수만 있다면야 국정해도 괜찮은 것 아닌가? 
(그러므로 국정 교과서를 반대하는 건 박근혜가 지 애비 빨려고 만들것이 분명하다는 추측 때문이 아닌가?) 라는 것이죠.

결론은 그렇지 않습니다.

교과서라는 것은 성장하는 아이들이 배우는 책인 만큼 아이들의 교육에 최대한 도움이 되는 시스템이 되어야 합니다.
하다못해 수학이나 교과서를 만들더라도 (요즘은 생활 결합형 어쩌고 해서 많이 보이는데) 
철수가 우주선을 타고 여행하는데 블라블라 하는 과학 책이 있을 수 있습니다.
다른 교과서에서는 같은 내용을 철수가 자전거를 타고 여행하는데 블라블라로 낼 수도 있고 
경운기나 기차나 로켓을 탈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철수는 죽겠죠. ....)
검인정 교과서의 장점은 어떻게 아이들에게 효과적으로, 실감나게 전달할 수 있느냐를 여러 팀이 다양한 방식으로 제시할 수 있다는 겁니다.
(문과 이과의 우열을 나누자는 건 아닌데) 하다못해 지식 과목인 과학에서도 이런 차이가 아이들의 창의적인 발상과 학습에 큰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역사 교과서에서는 이런 차이가 훨신 더 큰 의미를 가집니다.
역사란 무엇인가? 라는 물음에 여러 가지 답이 있고, 아마 가장 유명한 것은 '과거와 현재의 대화'라는 카의 말이겠지만,
제가 제일 좋아하는 말은 마르크 블로흐의 "(역사는) 사람들의 이야기, 다시 말하지만 사람은 아니다. 사람들의 이야기이다."라는 겁니다.

역사를 배운다는게 몇년도에 무슨 일 따위를 배우는게 아니라, 
어떤 상황에서 집단으로서의 사람'들'이 어떤 결정을 내리고 그 결과는 어땟고 하는 것을 배운다는 겁니다. 
수백년 전의 왕정 국가에서 왕한테 '정치 이따위로 하면 니가 폭군 아니냐'라고 상소했던 사람들, 
적당히 절충해서 왕을 구슬러 바꿔보려고 했던 사람. 뜻은 좋았지만 왕한테 살살거리다보니 결과적으로 나라말아먹은 사람 ..
봉기를 일으킨 농민, 나라가 혼란한 틈에 착실히 자기 앞가림을 해서 신분 상승하는 사람 ... 
한 시대의 모습에도 여러 면모가 있고 이 면모들은 모두 '개인들이 갑툭'한게 아니라 당대의 문화적, 정치적 흐름 속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런 것을 보는 게 역사라고 할 수 있죠.

하다못해 본인과 가족, 친구, 동료 등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만 해도 (당장 모든 사실관계를 꼼꼼하게 확인할 수 있는 상황인데도)
이 입장에선 이렇게, 저 입장에선 저렇게 볼 수 있습니다. 이 모든 관점은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고 합당한 관점입니다. 
여기에서 '어느 하나의 관점이 올바르고 정확하다'라고 주장하면 관계가 파탄나겠죠.
"니 말도 옳다, 니 말도 옳다." 했던 황희 정승의 얘기가 시대를 넘어 명언으로 회자되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역사에 대한 평가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컨대 정조에 대해 가르친다고 하면, 정조에 관한 모든 '확인되는 실재했던 사실'을 똑같이 쓰면서도
당시 시대의 변화에 부응한 여러 가지 개혁적인 정책을 펼친 왕으로 서양 르네상스에 비견되는 개혁군주로 보는 관점도 있을 거고
대단히 똑똑하지만 고식적인 유교에 투철했던 왕으로 보거나
뛰어난 개인 정치력으로 과거의 왕정국가를 몹시 효율적으로 운영한 것뿐 세도정치의 초석을 다진 왕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 평가들이 '어떤 면에서는 다 맞다'라고 볼 수 있다는 거고, 
그래서 정조라는 역사적 인물을 가르칠 때 '이러한 면들이 공존하고 있다.'라는 걸 가르치는 겁니다.
그리고 이게 역사 교육의 핵심이라고 개인적으로 생각합니다.
당연히 다양한 시각에서 교과서들이 편찬되어야 하겠지요. 

사실 이것은 우리가 현실에서도 굉장히 자주 마주치는 일인데요.
'내 생각과 다르지만 나름대로 존중되어야 할 타인의 생각이 공존할 수 있다.'라는 걸 익히는데 
역사만큼 효과적인 과목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왜냐면 역사는 '사람들의 이야기'이기 때문이죠. 
그리고 위에도 말했듯이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는 데 최악의 방법은 단 하나의 관점을 '바른 것'으로 우기는 태도이고요.

새누리당은 역사학자 90%가 빨개이라는 말도안되는 헛소리를 하지만
얼마전 인터뷰하신 이태진 교수님을 비롯해서 많은 역사 교수님들이 보수적입니다.
그럼에도 이분들이 국정화를 반대하시는 것은 다만 학문적 양심을 걸고, '역사라는 게 그런 게 아니다'라고 말씀하시는 것일 뿐이죠.

따라서 국정 교과서의 가장 큰 문제는 '국정화 그 자체'에 있는 것이지, 
왜곡되고 친일미화적이라는 데에 포인트를 맞출 일은 아닙니다. 

------ 여기까지만 읽으셔도 됩니다. 아래는 부연 ------

1. 국정화한 후에 멀쩡한 교과서가 나올 수 있겠느냐? 라는 우려
솔직히 현재 시점에서 2년 후에 교과서가 나온다면 시간적인 문제 때문에 누가 만들어도 개판인 책이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사실 관계조차 오류가 수천건 나오는 교학사 교과서처럼 되겠죠.
하지만 관점의 측면에서 보자면, 어쩌면 정책적으로 보통인 교과서를 만들 수도 있습니다. 
위에 말씀드린 대로 반대자들을 아닥시킬 수 있는 방법이니까요.

물론 역사란 '과거와 현재의 대화'이므로 필연적으로 현재 서술하는 측, 정부의 입김이 들어갈 수밖에 없겠지만
이것 역시 '어떤 면에서는 그렇게 볼 수도 있는 입장'일 수 있습니다. 
지금 새누리당이 멀쩡한 교과서를 두고 '종북적 서술이다'라고 꼬투리를 잡는 것과 공수위치가 바뀐 비슷한 형국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이거 관련해서는 처음 드린 링크 글에 잘 설명되어 있습니다.) 

2. 어차피 7차 교육과정(한 2009년쯤?)까지 국정교과서였지 않느냐. 그때 배운 사람은 획일적 사고를 가졌나? 
2000년대 들어와서 교육과정에서 굉장히 강조하는게 창의성 같은 덕목입니다. 
박근혜의 창조경제도 이런 시류를 반영하는 거고요. 
지금 한국정도의 경제 수준, 규모가 되는 나라가 좀더 발전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딱 창의성이기 때문입니다.
정확한 자료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까라면 까고 안되도 되게하는 기계처럼 일하는' 문화의 나라가 도달할 수 있는 한계가 바로
무섭게 성장하다 선진국 문턱에서 좌절하는 케이스입니다. 수치상으로는 대략 국민소득 2만달러 안팎, 나라로는 멕시코, 한국의 케이스가 되겠네요.
여기를 넘어가려면 '창의적인 컨텐츠 생산'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이 창의적인 컨텐츠 생산은 국민이 충분한 여가와 번득 떠오르면 뭔가 해볼 수 있는 환경이 필요하겠죠. 
그런데 국민들이 배가 부르면 기어오르거든요. 민주주의 하자 하고, 지역 정치에도 관심을 쏟고, 내 세금 어디갔나 하면서 분개하기도 하고 말이죠.
그러니 나라는 후퇴하더라도 까라면 까는 노예로 만들기를 원하는 겁니다.  아.. 이건 삼천포로 갔는데,

획일적인 텍스트로 하는 교육이 창의적인 컨텐츠 생산에 도움이 되지는 않겠죠.
물론 자유당 때 교과서를 정독하고도 비판적 창의력을 개발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사람들'의 문화적 기반과 저변이라는 것은 한두명의 천재로 극복되는 게 아닙니다.
쉽게 비유하자면, 순수과학을 천대하는 우리나라에도 굉장히 뛰어난 세계적 과학자분들이 몇몇 계십니다. 하지만 그게 다죠.
획일적인 교육을 해도 굉장히 자유로운 사고를 가진 비판적 지식인이 몇몇 생겨날지 몰라도, 그게 다입니다. 
다양하고 자유로운 사고, 합당하게 존중받아야 할 여러 이견이 공존하는 교육 컨텐츠가 꼭 필요한 이유입니다.

3. 검인정 역사 교과서도 창의력 개발 이런 거 없고 별거 아닌데?
사실 이 비판은 맞습니다. 
현재의 검인정 교과서 편찬 과정을 보시면 각 대단원, 중단원, 중단원에서 써야 할 내용을 모두 '구체적으로' 지정해줍니다.
게다가 쪽수 제한이 있죠. 고등학교 국사 교과서면 한 400쪽 정도 되야 할 겁니다. 너무 두꺼우면 학습에 문제가 되니까요.

예를 들면 ..
[동학 농민 운동과 청 일 전쟁으로부터 일제에 의한 국권 침탈에 이르는 시기를 다룬다 / 동학 농민 운동 갑오개혁 광무개혁 등 근대 국가를 수립하기 위한 노력을 살펴본다 / 일본의 국권 침탈 과정과 이에 맞서 전개된 다양한 국권 수호 운동을 파악한다. 
① 청 일 전쟁과 러 일 전쟁을 거치면서 일본의 제국주의가 본격화되었음을 안다. 
② 외세의 중국 침략이 확대되고 이에 맞서 반외세 근대 변혁 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되었음을 안다. 
③ 동학 농민 운동의 배경과 전개 과정을 알고 이를 통해 농민군이 주장했던 사회 개혁의 방향을 파악한다. 
④ 갑오개혁 독립 협회 운동 대한 제국의 개혁이 근대 국가 수립 운동에서 차지하는 의미를 파악한다. 
⑤ 국권 피탈 과정과 일제의 침략에 맞선 국권 수호 운동의 흐름을 파악한다. 
⑥ 민권 운동의 성장과 근대 문물의 유입으로 나타난 문화와 생활의 변화를 이해한다 ] 

이렇게 지정해줍니다. 이것을 교과서에 의례히 들어가는 확인문제, 생각해보기, 각종 사료 포함해서 
대략 30~40쪽 정도에 서술해야 합니다. 저거를 기본적인 사실관계에 따라서 고등학생이 읽을만하게 나열하기만 해도 30쪽은 금방 나옵니다.
검인정제이지만 자유도가 크지 않다는 얘기죠. 저 지침을 무시하고 마음대로 쓰면 당연히 탈락이고요. 
지금 쓰이는 교과서는 박근혜 정부가 검정해서 저 기준에 부합한다고 합격시켜준 겁니다. 

따라서 지금의 검인정 교과서가 '비판적이고 합리적이며 유연한 사고'를 배양하는 데 부족하다면, 
검정지침이 너무 빡빡해서 교과서 서술의 자유도가 부족하기 때문이지 '검인정이기 때문'이 아닙니다.
오히려 앞으로 자유도를 더 늘려나가는 방식으로 변경해야 겠지요.

.......
어느 역사학자분인가 '올바른 역사'란 있을 수 없다고 하셨는데. 정말로 맞는 말입니다.
지금 좀더 강조해야 할 것은 '국정화 자체'라는 점을 좀더 부각시켜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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