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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 찬양 국사책을 불태워 없앤 후 내가 겪은 실화
게시물ID : sisa_620536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시다의꿈
추천 : 16
조회수 : 1542회
댓글수 : 31개
등록시간 : 2015/10/30 17:57:18
전두환찬양 국사책을 불사르고 받은 것

 
1. 회상
 
1984년 봄 어느 따뜻한 주말. 그 동안의 내 삶의 밑바닥을 뒤집어엎는 일대 사건이 내게 닥쳤다. 그런데 그것은 정말 우연이었다. 도서관에 가려 탄 버스에서 깜빡 졸다가 내린 곳이 명동성당 앞이었다. 거기서 나는 수많은 사람들이 소리치고 울부짖는 모습을 보았다. 호기심이 발동해 성당의 입구에 도달한 나는 그만 보지 말아야 할 사진들을 보았다. 80년 5월! 불과 몇 년 전에 남도 땅 광주에서 벌어진 참상들을 생생히 웅변하는 그 사진들!! 그것은 천인공노할 집단학살이었다. 국군이 아줌마와 아저씨들 그리고 언니와 형들을 잔혹하게 때리고 찌르고 총 쏴서 죽인 거였다. 나는 주저앉았다. 땅이 꺼지고 하늘은 노랗게 빙글빙글 돌아 나는 토악질을 해댔다. 그리고 한 동안 벽에 기대 혼미한 정신을 놓았다. 
운명적으로 조우한 그 ‘광주학살 사진전’으로 나는 전 인생을 건 환골탈퇴의 운명적 기회를 잡았다. 나의 정체성에 극적 변화가 일어났으니 화가 치밀면 거대한 야수로 변하는 레인저스에 나오는 녹색괴물에 비견할 만했다. 어느 정도였느냐 하면 나는 한 동안 내가 보고 들어온 모든 익숙한 일체의 것을 의심했다. 심지어 내 부모가 과연 날 낳은 진짜 혈육인가도 의심했다. 그리고 당시 가장 존경하던 담임선생님마저 누구의 지시로 우리의 육체와 정신을 어떻게 조작하려 드는지 그의 훈화 한 마디, 우스갯소리 하나까지 따져 묻고 있었다.
 
이런 나의 의구심을 확신에 찬 거대 음모론으로 확정 짓게 한 결정적 계기가 바로 당시 교육부 발행 국정 국사 교과서였다. 현대사 전두환 정권 편의 한 대목에서 자국민을 학살한 원흉을 찬양하고 칭송하는 교과서의 그 문구는 지금도 유레카를 외치던 아르키메데스의 환희에 찬 깨달음과는 정반대로 살과 뼈가 와들거려 찢겨 나가는 초특급 공포체험 그 자체였다. 지금 내가 또렷이 기억하는 그 부분은 도통 검색이 되지 않아서 그저 이 정도의 자료를 찾을 수밖에 없었다.
▲1982년 중학교 국사 교과서, 184쪽
 
나는 그날 밤 우리 집 뒷산에서 이 저주스러운 악령이 깃든 주술서를 갈기갈기 찢어 사지를 도륙내고 그 위에 신나보다 더 쎈 초강력 본드를 부어 밀봉한 후 주기도문이 새겨진 성냥 통에서 골라낸 빨간 성냥개비 두 개를 십자가로 만들어 불을 질러 태워버렸다. 내가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완벽한 엑소시즘을 위한 신성한 제의였다. 그 저주스런 국사책이 한줌의 하얀 재로 化하는 동안 나는 마녀를 불태우는 제사장이자 주교였다. 어느 정도 마음의 안정이 찾아왔다.
 
 
그러나 모든 행위에는 대가가 따르는 법, 인과율의 냉엄한 법칙은 국사수업 시간에 엄습해왔다. 나 하나만 국사책이 없이 수업이 진행되던 어느 날 마침내 무던히 인내하던 국사 선생님의 공개적인 질문이 떨어졌다.
 
“왜 너는 교과서가 없는 거니?”
예상했던 질문이라 나의 답은 무미건조했다.
“가치가 없는 교재라서 불태워 없앴습니다.”
 
역시 예상대로 선생은 교권에 대한 도전으로 인식하고 추가 질문도 없이 나를 불러 세우고는 안면을 강타했고 나는 그 힘에 걸맞게 나가 떨어졌다. 그리고 얼굴이 붉어진 선생은 수업을 중단하고 나를 교무실로 호출했다. 그리고 취조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나는 모든 사정을 자백했다. 이미 학교에서 퇴출 될 각오를 한 뒤였기에 담담하게 진술했다.
 
그런데 이런, 극적 반전이 일어났다. 아무런 말없이 내 얘기를 듣던 그 선생님은 한 동안 눈을 감더니 그저 손짓으로 올라가라고 표현하고 돌부처처럼 굳어 있었다. 그리고 며칠 뒤 다시 나를 호출한 그 선생님은 내게 손수 포장한 것 같은 책 한 권을 건넸다. 그리고 이런 당부를 했다.
 
“이 책의 내용에 대해서 동의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것에 대해서 경청해 볼 필요는 있는 것 같다. 언젠가 이 책의 내용들도 교과서에서 다루어지고 그것에 대해 자유로이 따져볼 수 있는 시대가 올 것이다. 그때가 되면 네가 불태워버린 교과서도 똑같이 비평할 기회가 있을 것이다. 그러니 열심히 공부하고 치열하게 살아라.”
 
그리고 얼마후 국사선생과 동창인 국민윤리 선생은 수업시간에 뜬금없이 이런 얘기를 했다.
 
“니네들 졸업하면 국사책이랑 윤리책은 찢어서 불태워버려라. 쓰레기통도 아까우니 말이
지.”
 
그리고 약속이나 한 듯이 두 분은 아예 근현대사 관련해선 전혀 교과서의 내용을 언급하지 않았다. 아니 아예 그 부분은 진도를 나가지 않고 그 직전에 종강을 해버렸다.
 
국사선생님이 건넨 그 책은 나중에 알고 보니 너무도 유명한 ‘해방 전후사의 인식’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것을 몇 번을 읽으면서 진정으로 인식의 전환을 이룰 수 있었다. 그리고 비로소 정신분열을 멈추고 세상을 똑바로 대면할 용기가 생겨났다. 그리고 그로부터 20여 년을 나는 나름 치열하게 살려고 노력했다. 거창한 구호보다는 역사의 한 주체로서 주어진 작은 역할이라도 회피하지 않으려 노력했다.
 

 
2. 감격
 
그리고 마침내 역사적인 정권교체! 김대중 대통령의 시대가 시작되었다. 그제야 나는 나의 소명이 구현되는 것에 만족하고 일상으로 복귀했다. 세상과 사람의 진전을 믿으며 나의 소박한 일상을 찾았다. 그리고 우여곡절의 과정에서 탄생한 노무현 정권의 출범을 보면서 더욱 역사의 진보를 확신했다.
 
그리고 마침내 감격스럽게도 역사교사인 아내가 건넨 검인정 교과서에서 그 역사적 진보를 내 눈으로 볼 수 있었다. 독립과 해방을 위해 싸워온 우리 민족의 정신이 곳곳에 살아 꿈틀대는 것이었다. 감격했다. 독재를 독재라 하고 쿠데타를 쿠데타라 표현할 수 있는 것이다. 가치전도가 바로 잡히고 흰 것은 희고 검은 것은 검다고 할 수 있으니 홍길동이 아비를 아비로 부르는 감격이 이와 다를 것인가?
 
 
또 한 가지 고무적인 것은 한국사가 국정에서 검정으로 바뀌면서 근현대사가 독립교과로 분리되었다는 거다. 그래서 전체 고등학교 국사 수업 일수가 대폭 늘게 되어 박정희에서 시작된 국정교과서에서 소홀히 했던 근현대사를 이제야 정식으로 미래의 민주시민들에게 제대로 가르칠 수 있게 된 것이다. 사실 그전까지는 구한말에서 국사수업은 종쳤다. 기껏해야 을사조약과 한일합방 그리고 3.1운동과 임시정부수립을 스치듯 지나간 게 전부였다. 그러니 일제 36년과 해방 후 50여년의 역사에 대해서는 오히려 깜깜한 게 현실이었다.
 
또한 제7차 교육과정의 정신인 창의적 인재양성과 자기 주도적 학습능력 고양을 위해서 도입된 수능과목 국사선택제로 수업시수는 늘었지만 오히려 대학입학 시험대비 차원을 넘어서 다양한 수업이 가능해졌다. 아내의 전언에 따르면 주제연구발표, 현장탐방, 비디오 활용 등 일방적 주입식교육에 벗어나 학생들 스스로 문제를 찾아 해결해가는 방식이 가능해졌다는 것이다. 토론식 수업이 국사과목에서도 가능해 졌다는 거다. 물론 교사의 역할이 더 필요하고 준비할 과제가 늘어나 강의식 보다는 힘들다고 투덜대기는 했다.
 
이로써 우리나라도 오랜 식민지와 독재체제의 臣民양성교육의 잔재를 털고 현대적 문명국가에 걸 맞는 민주시민을 위한 자유로운 발간시스템을 구비하게 된 것이다. 그것이 현행 검인정 교과서이다.

 
 
3. 앙시앙레짐
그런데 대다수의 사람들에겐 형식과 내용 면에서 아주 바람직한 이 국사교육 시스템이 누군가에겐 아주 불편하고 음험해 보였나 보다. 아니 척 보니 그런 기운이 강하게 온몸으로 전해져 왔나 부다.
 
친일독재미화로 문제가 된 교학사 교과서 채택률이 사실상 0%로 판정나자 도저히 검인정제로는 뜻을 이루기가 불가능해 보였는지 다시 국정교과서를 만들겠단다. 수많은 역사학자들이 집필을 거부하는 마당에 그것은 교학사 교과서를 국정으로 발행하겠다는 것이다.
 
거기에 수능필수가 결합되면 어찌 될까? 다시 친일과 독재를 미화하는 왜곡된 역사를 주입식으로 강요하는 교육으로 돌아가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민주사회의 가장 중요한 비판적 시민의식은 실종되고 국가가 시민을 통제하는 왕조사회의 충성스런 신민을 양성하려 들것이다. 이는 최소한 현대문명사회가 합의한 공론에 완전히 위배되는 것이다.
 
오죽하면 공산당 일당체제인 베트남도 국정제를 폐기하고 검인정제도를 도입하겠다고 하겠는가? 더 이상 말할 것도 없이 사회발전에 교과서 국정화는 해악이 아닐 수 없다.

 
4. 전망
국정화를 올바른 역사 세우기라 강변하는 다카기 마사오의 장녀 박그네를 보면 정말 가관이 아니다. 目不忍見이란 말이 딱 맞는다. 이명박은 그래도 짐승적 탐욕을 충족하기위한 ‘도구적 이성’은 있었다. 나꼼수 4인방이 잘 갈파했듯이 해쳐먹더라도 최소한의 절차적 꼼수로 포장하는 정도의 배려(?)는 있었다. 그런데 박그네에겐 그 ‘도구적 이성’ 조차도 없는 것 같다. 오로지  비참하게 죽음을 당한 부모의  명예회복을 위한 '한풀이 유훈통치'에 대한 집착만이 전부인 듯하다.
 
그래서 유훈통치의 계승자답게 王命과 이에 대한 복종만이 그가 아는 정치행위의 전부인 것이다. 그것을 수단으로 달성하려는 공동선을 위한 동기? 아무리 봐도 없다. 그저 공화국을 왕정으로 전복하려는 동물적 지배욕의 발현! 탐욕스런 앙시앙레짐의 化身일 뿐이다.
 
따라서 제아무리 수많은 학자들과 일반시민들이 들고 일어나 반대해도 아비의 제단 앞에 독재와 쿠데타라는 딱지를 떼고 위대한 민족의 영도자이자 구국의 영웅이라 찬양하는 ‘유신왕조실록’을 헌사하려할 것이다. 
 
 
또 한 가지 음험한 속셈이있다.
 
내년 총선은 경제와 민생분양에서 자질구레한 지역공약이 아닌 총체적 사회방향을 둘러싼 대결이 될 것이다. 현재 날로 심해지는 공황적 경제상황에선 이런 민생경제의 이슈화는 여권에 불리한 구도가 될 것이다. 자유당독재시절 ‘배고파서 못 살겠다’란 슬로건이 작금의 헬조선에서 부활할 기세이다. 그래서 국정교과서로 쟁점을 전환하려는 포석인것이다.
 
이념대결은 수구꼴통 유권자의 투표율 제고와 청년층의 무관심을 증폭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친박계 꼴통들이 연일 야당과 학자들을 북과 연결시키려 궤변을 선동하고 있다. 권력이 장악한 온갖 매체로 민생 대 혼란 프레임을 확산하고 역시 포섭된 야권의 간자를 통해 강경파(?) 문재인체제를 흔들어 댈 것이다. 그래서 장외집회를 시작한 야당을 안팎으로 흔들려고 할 것이다.
 
그러나 전가보도인 반공반북 이념공세가 잘 먹히지 않고 있다. 그 칼은 너무 오래 써먹어 낡아버렸다. 더 결정적인 것은 국민 다수가 박그네- 김무성의 국정화 시도가 자기 조상들의 족보세탁이란 걸 간파하기 시작했다는 거다. 
 
따라서 야권은 국정교과서 문제는 대국민여론전으로 그 실체적 진실을 확산하되 여기에 올인하는 것은 수구세력의 의도에 말리는 것임을 알고 대응해야 한다. 국정화 문제와 더불어 국정파탄- 민생 경제회복을 구체적으로 이슈화하는 데에 집중해야 한다. 따라서 야당은 자발적인 참여시민과의 연대를 통해서 지속적인 이슈제기에 주력하고 원내외병행투쟁으로 나가야 한다.
 

 
5. 감상
 
30여 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나의 분서사건으로 고뇌하던 두 스승의 모습을 또렷이 기억하고 있다. 혹시나 아내가 그런 상황에 처하게나 되지 않을까 걱정이다. 또 어느 제자가 국사책을 불사르고 항의하는 일이 다시는 우리 아이들의 교실에서 일어나지 않기를 소망한다.
 
역사는 반복된다고 한다. 한번은 비극으로 또 한 번은 희극으로. 오늘 우리가 겪고 있는 어느 정신 나간 망녀의 굿판이 한바탕 푸닥거리로 끝나서 온 동네에 다시 평화가 찾아오기를 바라고 또 빌어본다.
 
비나이다 신령님. 부디 저 악귀를 데려가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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