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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두개골 깨진 여인 살해사건 <5>
게시물ID : history_6203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sungsik
추천 : 16
조회수 : 1032회
댓글수 : 2개
등록시간 : 2012/11/04 23:55:22




이 이야기는 이미 상당히 유명한 이야기라 아시는 분들이 많으실 겁니다.

그래도 가능한 스포일러성의 내용적 언급은 자제해주셨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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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todayhumor.com/?humorbest_556017 - 1부

http://todayhumor.com/?humorbest_556075 - 2부

http://todayhumor.com/?humorbest_556552 - 3부

http://todayhumor.com/?humorbest_557312 - 4부



<본 이야기는 100%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된 이야기로 각색없이 구성하였습니다.>



두개골이 깨진 여인이 처음 발견 된지 벌써 한 달이 넘게 지났습니다.


시간이 지날 수록 이 사건은 범죄와 진상규명이 중심이 아닌,

왕과 신하의 정치적 힘싸움이 중심이 되는 느낌입니다.

한 달동안의 상당수 실록 기사가 이 창원군 이야기인 걸 보면,

당시 조정에서 이 사건을 얼마나 중요하게 여겼는지 대충 짐작이 갑니다.


참 아이러니한 게 원칙대로라면 신하들이 말하는 것처럼 창원군을 벌주는 게 맞는데,

신하들에게 엄청나게 시달리는 성종을 보면 왠지 성종의 편을 들어주고 싶은 그런 마음이 생기네요.



성종 9년 2월 19일,

그 전의 논쟁의 연장선상으로 창원군을 빨리 처벌하자는 이야기와

성종의 고읍지 출처가 확실치 않아 자신이 마음이 결정되지 않으니 창원군에게 억울한 면이 없는지에 대한

경연에서의 논의를 마지막으로 이 사건에 대한 이야기는 한동안 잠잠해집니다.


그런데 2월 28일, 성종에게 힘을 실어주는 일이 발생합니다.

바로 창원군의 첩 옥금이 창원군의 죄를 승복하지 않는 것이지요. 

한성 판윤 어세공은  옥금이 간사하여 쉽게 입을 열리 만무하고,

이미 형문(몽둥이로 때리며 심문하는 것)으로 지쳤으니 2~3일 지난 뒤 다시 심문하자 합니다.


그러자 헌납 김괴는, 죄 없는 사람을 자꾸 가두고 형문하는 게 옳지 못하다 반대하지요.


다 끝난 것 같아 보였던 창원군에 대한 재판이 자꾸 질질 끌리니 

성종은 드디어 자신이 직접 심문하겠다고 하지요. 

당연히 주위에선 반대하지만, 질질 끌기만 하는 재판에 성종은 자신의 의견을 관철할 명분을 얻습니다.

그리고 다음날 창원군 사건 관련 노비들을 성종은 친히 심문합니다.




임금이 눈앞에서 노비를 직접 심문하자 진실이고 뭐고가 있겠습니까.

창원군의 노비인 가외, 원만, 석산, 성금, 도질금, 무심 등이 한 목소리로

'우리 주인이 고읍지를 죽인 것이 틀림 없습니다.'

하고, 돌양 산이, 부합 등은 처음엔 좀 망설였으나 결국엔 고읍지를 죽였다 합니다.


하지만 이는 왕이가서 심문하니 원하는 답이 나온 것이란 걸 성종의 의심하지 않을리 없었습니다.

이에 성종은 창원군이 죽였다는 실질적인 증거가 필요하니,

고읍지를 죽이는 데 이용되었다는 노비들이 증언한 환도를 찾으라고 합니다.



내관 조진 등을 창원군의 집으로 보내 환도를 찾으려 하자, 창원군은 억울하다며


'당초 심문할 때 노비 원만이 환도의 모양을 거짓으로 말하였음으로 다른 노비도 또한

거짓으로 승복했을 뿐입니다. 어찌 환도가 있겠습니까. 

그리고 자신은 고읍지란 자를 보지도 못하였습니다. 원만이 죽였다고 말하였으니, 

오히려 원만에게 물으소서.' 라고 자신의 완전 무죄를 주장하지요.


노비들이 그 환도의 모양과 장식을 일치되게 진술했다고 하는데,

그게 노비들을 각기 다른 장소에서 개별적으로 질문해서 일치한 것인지

그냥 같이 모두다 심문했는데, 원만 한 명이 먼저 말하니 다른 사람들이 따로 말한 건지..현재로썬 알 수가 없습니다.

후자라면 노비들이 말한 진술이 사실 큰 의미가 없지요.


또한 창원군이 정말 범인이라고 하더라도 살해도구를 그 때까지 집에 정말로 두었을 가능성이 만무합니다.

실제 사건 초창기 창원군의 집을 수색하려했을 때 창원군은 이를 거부했었고,

그 후 자신이 의심을 살만한 짓을 했다는 걸 모를리 없을테니 환도를 버릴 기회는 충분했습니다.


여하튼 지금까지 정황상 창원군이 의심을 살만한 행동은 엄청나게 했고 

의심할만한 증거는 잔뜩 나온데다 주위 증언도 넘쳐나지만,

피해자의 신원과 살해도구라는 가장 중요한 두 단서가 없는 그런 상황인 것이죠.



3월 11일. 첫 시체가 발견된지 딱 두 달째 되는 날입니다.

이미 고읍지의 시체는 썩어버려 신원 확인이 불가능한 시기일테고, 환도는 결국에 못 찾았습니다.

하지만 창원군에 대한 처벌은 어떤 식으로든 결정 지어야하는 상황이지요.

즉, 결전의 날인 것입니다.



종부시(왕실의 잘못을 조사 규탄하는 관청)에서 아뢰기를,


'창원군 이성이 고읍지를 죽인 것은 사건의 흔적(집안의 핏자국들)이 명확하고,

여러 사람의 증거가 명백하니 그의 죄가 확실한데, 창원군 스스로 말하기를,

'신은 본래 고읍지라고 일컫는 여인을 알지 못하며, 지금까지 여인을 살해한 일이 없습니다.

집안에 다만 삼인검과 삼진검이 각각 한 자루씩 있을 뿐이고, 환도 또한 없습니다.'

라고 합니다. 비록 되풀이하여 추궁해 따져도 조금도 승복하지 않는 상태입니다.

청컨데 성상께서 재단하소서.'


하니 성종은,

'증거에 의거하여 너희들이 조율하라.' 했다가 금방 말을 바꿔서,


'왕자를 담당 관아로 하여금 조율하게 하는 일은 그 사례가 없다.

내가 직접 판결하려고 하고자 하는데 어떠한가. 이것을 정승에게 문의하라.'

합니다. 자신이 직접 이 사건을 판결하겠다는 거죠.



이에 정인지와 윤사흔은,

성종이 죄를 결정하더라도 정부와 육조에서 함께 의논하여 죄를 결정하자 건의합니다.


이어, 정창손, 한명회, 심회, 윤자운, 김국광은 의논하기를


'창원군 이성의 큰 죄에는 네 가지가 있습니다. 


처음에 여인의 시체 사건의 발생하였을 때에 삼사의 수사관이 왕명을 받들고 그 집에 이르니,

창원군이 왕명을 거역하고 그들을 집에 들이지 않았으니, 그 죄의 첫째이고,


살인한 형적이 이미 드러나 성상께서 친히 심문하셨음에도 

죄를 사실대로 대답하지 않음이, 그 죄의 둘째이며,


칼로써 함부로 사람을 죽여 포학한 행위를 멋대로 하여 거리낌이 없었으니,

그 죄의 셋째이고,


그 흉학한 행위를 감행한 칼(환도)을 종들이 형체와 모양을 분명히 말하였는데도,

내관이 전교를 받들고 물을 때에 숨기고 승복하지 않았으니, 그 죄의 넷째입니다.


창원군은 비록 왕자이나, 이같은 큰 죄를 범하였으니 용서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종묘사직에 관련된 것이 아니니 성상께서 직접 판결하심이 어떻겠습니까?

라고 성종이 직접 판결하라 의견을 정합니다.


사건 처음부터 끝까지 성종의 의견에 반대만 했던 대신들이,

처음으로.. 그것도 가장 결정적인 권한을 성종에게 양보(?)합니다.

이렇게 사건의 결정권을 손에 넣은 성종은 의정부, 대간, 육조 등의 관원을 불러 의논을 하고 결국 판결을 합니다.




'창원군을 부처(유배)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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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편이 아무래도 마지막  편이 될 거 같습니다.

의도치 않게 시리즈가 상당히 길어졌습니다. 

이야기를 너무 끌어버려 지루하신 건 아닌지 모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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