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7시.
"어 쒸파. 들어오네."
아침을 먹고 부산하게 일이등병애들 준비를 돕다가 잠시 담배 한대 입에 물고 쉬고 있자니,
두돈반 여러대가 중대연병장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전달하겠습니다. 중대원들은 행정반 앞으로 집합하시기 바랍니다.
전달하겠습니다. 각 소대 선임분대장들은 행정반으로 와주시기 바랍니다."
그랬다.
오늘은 뜬금없이 행군을 하는 날이었다.
주둔지 경계가 주임무인 부대라 퍽퍽한 군생활을 하는 병사들이 안쓰러워,
넓기는 오질라게 넓은 부대. 산마다 단풍이 곱게 들고 날도 좋으니 행군 한번 하자.며...
새로 부임하신 부대장님이 급하게 추진하시어, 이렇게 행군을 하게 되었다. 아이 쒼나.
연병장에 소대 분대별로 오와 열을 맞춰서고,
역시나 군장을 메고서 중대장횽이 단상에 섰다.
입술이 저만치 튀어나온걸 보니, 이 양반도 하기 싫은가 보다.
인원파악하는 분대장들한테 괜히 짜증을 내기도 한다.
"인원맞냐? 그럼 타."
평소 훈련시작전에 이런저런 말이 많던 중대장횽은 사상 처음으로 간결하게 말을 끝내주었다.
소대별로 덩치 좋은 애들이 먼저 훌쩍 올라타고 군장을 받아올리고 병사들 손을 잡아끌어 두돈반에 태운다.
"야. 나 잡아올리다가 손놔버려. 나 입실하게."
"그럼 전 입창(영창피아노연주)입니다. 꽉 잡으십쇼."
어떻게든 뒤로 나자빠져 나 아야해쩌요!!!하고 행군을 빠질려고 했지만,
키 190에 몸무게 거의 0.1톤급의 이 놈은 그 큰 손. 한손으로는 내 양손목을 잡아버리고, 다른 한손으로는 내 뒷덜미를 잡아 끌어올려버렸다.
후임에게 뒷덜미잡히기는 또 처음이었다.
중간중간 나 돌아갈래!!!!라며 달리는 두돈반에서 뛰어내리려는 작자들이 있었지만, 적절히 찍어누르며 차는 어느새 본부연병장에 도착했다.
하차할때 발목 좀 접질려다오.라며 내리찍듯 뛰어내렸지만,
비오면 물새고 겨울에는 냉기들어오고 일병쯤되면 앞축 양쪽이 다 찢어지고 뒷굽은 한달에 두번 못을 박아줘야하는 품질에도 단가가 10만원대라는 이 전투화는 내 발목을 완벽하게 보호해주었다.
점프후 착지과정에서 발목부상의 위험에 시달리는 NBA선수들에게 추천해주고 싶을 정도였다.
(이거 신으면 발이 무거워서 아예 점프를 못하니 발목부상을 사전에 차단. 대신 무좀을 조심하세요)
그러고보니 우리 태우고온 두돈반운전병아저씨가 안면이 있다.
그런데 이 아저씨도 우리 중대장횽만큼이나 입이 튀어나와있었다.
"엌ㅋㅋㅋㅋㅋ 아저씨가 우리 태워줬네. 나 찾지. 담배한대태우게."
"아. X중대 아저씨네. 하하하하하하하하하."
"왜 그려??? 뭔일있어???"
아저씨는 자기 옆자리에서 군장을 꺼냈다.
"운전병들도 행군해...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엌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오늘 행군안도는 인원은 위병소근무자 사관조장포함 6명. 각 초소 경계조 2조 맞교대인원. 행정보급관+행정병 1명. 앰뷸런스운전병. 지통실인원 및 각 사무실별로 최소인원빼고 "전인원"이란다. 취사병들도 얄짤없음ㅋㅋㅋㅋ
어쩐지 항상 경계및 작업으로 뭘해도 부대반절은 쪼개야하는 부대인데, 훨씬 많은 인원이 모인 기분이었다.
그리고 스피커에는 군가 "행군의 아침"만 울려퍼지는 느낌이었다.
"부대!!!!! 차렷!!!!!!! 부대장님께 대하여!!!!!!! 경롓!!!!!!!!"
"추웅!!!! 써엉!!!!!"
"충성."
단상의 부대장님은 보이실게다. 중령(진)경비대장부터 저번주에 자대배치받은 이등병까지 다들 입이 뚜~나와 있는걸.
"아아. 오늘 날씨가 참 좋구나. 밥들은 든든히 먹었나???"
작은 반항일까. 작게라도 "예. 그렇습니다."라고 하는 인원이 거의 없었다.
잠시 부대장님이 군인이 행군을 귀찮아하고 어쩌고하며 훈시가 있었으나 귀에 하나도 안들어왔다. 거 빨리 돌고 들어갑시다.라는 생각뿐이었다.
"다들 군장, 총기 자기 오른발 앞에 내려놔라."
우리가 입 뚜우~나와있다고 삐치셨나??? 술렁거리면서 군장과 총기를 내려놓았고, 소대장들이 돌아다니면서 오와 열을 맞춰놓으라고 소리쳤다.
"그리고 전원 제자리에 앉도록."
뭐지???? 뭐야????라며, 다들 제자리에 앉았고, 또 소대장들은 돌아다니며 오와 열을 맞춰서 앉으라고 소리쳤다.
그리고 부대장님은 단상에서 내려오시더니,
앉아있는 부대원들 사이사이로 돌아다니면서 무작위로 병사들을 자기 군장 들고 앞으로 나오라고 했다.
그러고보니, 부대공식땡보. 부대장님 당번병이 군장 하나를 들고 내려오고 있었다.
"자네."
"네!!!! X중대장!!!!"
"앞으로. 자네."
"네!!!! X소대장!!!!"
"자네도 앞으로."
병사들과 다르게 군장을 메고 서있던 간부들도 무작위로 불려나갔다.
그렇게 한 30여명 가까이 불려나왔다.
나는 분대장이라서 제일 앞에 있었던지라 다 제대로 볼 수 있었다.
"이게!!! 부대장의 군장이다!!!"
네. 그래보입니다. 아주 그냥 번뜩번뜩한것이 딱 봐도 우리부대최고존엄의 군장입니다요.라고 생각하는 찰나.
부대장님은 자기 군장을 힘껏 내던졌다.
가라로 안쌋으면 30kg은 우습게 넘는 군장인데, 제대로 싸셨는지 별로 날아가지도 않았다.
"OO야. 거기 선그어라."
"네!!!!"
땡보당번병은 준비해온 락카로 군장이 날아간곳 까지 선을 그었다.
"내가 각 계급별로 적당한 인원을 무작위로 뽑아서 데리고 나왔다!!!
사전에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았고!!!! 여기 당번병도 자기 행군하는줄 알고 군장 다 싸서 나왔어!!!
지금부터 내가 여기 나온 인원들 군장을 하나하나 던질텐데, 저 선 넘어가는 인원은 각오해라."
이등병들도...간부들도 얼굴이 파래졌다.
이등병들이야 뭐야뭐야뭐야???라며 어안이 벙벙해서 얼굴이 파랗게 질린거고,
간부들은...뭐 상상에 맡기겠다.
일이등병들것부터 집어던지시는데, 가라라고는 일절도 없을 일이등병들의 군장이 그 선을 넘을리 없었다.
상병 몇명도 그렇게 통과했는데, 이제 슬슬 기운이 빠지지않을셨을까 싶던 부대장님이 어느 상병의 군장을 집어드시려다 내려놓으시더니...
지금까지 두손으로 들어올리던 군장을 한손으로 들어서 내던지셨다...
(키고 좀 작으신 편이었는데, 몸이 어찌나 좋으신지 팔씨름해서 이긴 사람이 거의 없었음. 힘빡줬는데도 그냥 넘어감-_-)
그리고 다음 차례의 어느 분대장도 어느 부소대장도 어느 소대장도 어느 중대장도 어느 과장도...
그렇게 날아가는 자신의 군장이 영원히 떨어지지 않았으면 싶었을거다. 이 모든게 꿈이었으면...
그리고 부대장님이 풀어해친 영원히 날아갈것만 같던 군장들에는
재활용품모아 팔아서 얼마 안되는 중대운영비에 보태시는 행보관님이 보고 좋아하실 온갖 라면박스며 페트병들이 쏟아져나왔다.
부대장님도 이거 모아팔면 차 한대는 뽑겠다!!!! 이 새끼들아!!!!라며 역정을 내셨다.
그렇게 급하게 다른 중소분대장들의 군장이 모두 들려졌다. 거의 3분의 1은 걸려들었고, 그들도 끌려나갔다.
다행히 운동운동몬인 중대장횽과 중대원들이 사고치면 그 책임으로 군장을 1주일에 1~2번은 일상처럼 도는 분대장들이 모인 우리 중대는 놀랍게도 걸린 인원이 한명도 없었다.
"그리고!!!!!"
"???????????????"
"지금부터 모두 탄입대를 깐다!!!! 실시!!!!!!"
탄입대에는 당연히 좌우에 3개씩 탄창이 들어있어야 했다. FM대로라면.
그러나 이일상병장을 막론하고, 행군때 탄입대에는 사탕이며 쵸코바며 젤리같은게 들어가기 마련이었다...
여기서도 거의 대부분의 분대장들이 걸려들었는데
나는 이미 월급을 PX에서 탕진해버려 그냥 침삼키며 걷겠다고 했었고,
동기랑 후임들이 불쌍하다고 한줌모아준 사탕이 탄입대가 아니라 건빵주머니에 들려있었다-_-ㅋㅋㅋㅋㅋ
평소에는 여기 담배와 라이타가 들어있었는데, 행군때 피우면 목만 타니 빼버리고,
평소처럼 한쪽만 채워두자니 좌우균형이 안맞는것 같아 탄창을 다시 채워둔 터였다.
(그 운을 모아모아모아서 로또를 샀어야했는데...;;;)
그렇게 군장무게+탄입대 불시점검에서 살아남은 이들은 다시 두돈반을 타고 중대로 돌아갔다.
그리고 그렇게 걸려든 이들은 부대장님이 직접 지휘하시는 미니유격을 "3일동안" 받게 되었다. 간부고 뭐고 짤없이.
첫날 돌아온 이들의 전투복은 걸레짝이 되어있었고, 점호때는 사용못하는 세탁기였지만, 그날은 특별히 밤새도록 돌아갔다.
아예 다음날부터는 CS복입고 본부로 갔다. 제대로 싼 군장을 메고.
마지막날에는 오후내내 주도로를 행군했다카더라.
그리고 그 후로 훈련준비하는 과정에서...특히 군장만큼은 장난질이 싹 사라졌다.
나는 아직도 봄바람에 실린 민들레씨처럼 날아가던 그 군장들을 잊을 수가 없다.